한국 교회 연중론 좌장 윤영상 목사 확증편향에 따른 난독증
박채동 (2019. 02.19. 10:24)
…(전략)…
아래 그림(도표)은 한국 교회 연중론(연속적인 중생론) 좌장 윤영상 목사 {페북} 담벼락에서 가져온다.
연중론 도표 “죄 각성”은 제임스 뷰캐넌 도표에서는 “1)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심”이다. 물론, 연중론 도표 “죄 각성”과 “믿음과 회개”의 과정은 ‘성령 하나님께서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죄인에게 값진 생명의 씨를 심으시는 수태’ 뒤에 있는 ‘열 달 임신 과정’으로 ‘참된 회심을 위해 태아가 분투하는 과정’이다. 연중론 도표 “회심 사건”을 위해 ‘태아가 거짓 회심을 되풀이하는 중간 단계 과정’ 이다. 태아가 출산(참된 회심)을 위해 ‘믿을까, 말까? 회개할까, 회개하지 말까?’ 갈등하며 자라나는 기간에 속한 과정으로서 ‘점진적으로 어느 정도 회심하는 과정’이지만 ‘불신의 기간에 속하는 과정’이다. ‘중생했으나 참된 회심을 하지 않은 불신자가 참된 회심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다. 더 줄여 말하면, ‘열 달 임신 기간에 중생한 불신자가 겪는 과정’이다.
그러면 제임스 뷰캐넌 목사님께 ‘하나님만의 단독사역으로서 좁은 의미의 중생: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이지만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죄인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값진 생명의 씨(새로운 본성)를 주셔서 그를 살리시는 중생, 그의 지정의知情意를 새롭게 하시는 중생’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연중론에서는 당연히 “죄 각성”=“1)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심” 앞이다. 그런데 제임스 뷰캐넌 목사님께 “3) 의지와 마음을 새롭게 하심”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만의 단독 사역으로서 좁은 의미의 중생’을 뜻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제임스 뷰캐넌 목사님 도표에서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심”과 “구세주에 대한 지식을 비춰 주심”은 ‘특별 은혜인 효력 있는(유효한) 부르심’에 속한 과정이 아니라 ‘일반 은혜인 일반(보편) 부르심’에 속한 준비 은혜, 중생 전前 준비 은혜 과정이다.
다음은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신호섭 역 (서울: 지평서원, 2011)’ 203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중생 받은 불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은 ‘제임스 뷰캐넌 {성령의 사역, 회심과 부흥}’ 207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회심은 점진적 단계를 허용하지 않는다. 죄인은 그 본성상 모두 악하지만 다소간 차이가 있으며, 중생 받은 신자 상태 역시 모두 거룩하지만 그 거룩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회심에는 차이가 없다. 죄인은 어느 정도만이 회심하고 또 어느 정도는 회심하지 않을 수 없다. 회심하든지 회심하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인 것이다. 곧 중생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살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만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 중간 지대는 없다.
다음은 ‘리차드 개핀 {안식, 종말, 성신에 대한 성경 신학적 교훈: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서울: 성약출판사, 2007)’ 159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가로속 글 “회심하지 않고”는 내가 넣는다.
몇몇 개혁파 선생들과 목사들에게 알려져 있는 한 가지 현저한 예로는, 다 자란 아이나 성인이 신자가 되기 전 얼마 동안 (회심하지 않고) 중생한 채로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존 머레이는 명쾌한 수업에서 이 점에 관해 논평한다. ㅡ기억을 더듬어 보자면ㅡ 성경으로 고찰할 때 중생한 불신자라는 개념은 ‘기괴한 것’이다.
{페북} 제 담벼락에서 옮겨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