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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원성현 박사가 로앤처치(http://lawnchurch.com/)에 기고한 글이다. 원 박사는 연세대를 전과목 만점으로 수석 졸업했으며, 부산장신대, 장로회 신학원, 연세대 철학과를 거쳐 연세대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편집자 주
5. 근대교회 시대: 다채로운 이단분파의 재흥
(1) 이단분파의 온상적 환경
근대의 대표적 이단분파들은 미국에서 발생했다.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안식교, 크리스찬 사이언스 등 미국에서 발생한 4대 이단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단들이 미국에서 19세기를 기점으로 우후죽순처럼 발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 미국의 정치, 사회, 종교적 상황이 이단발생의 온상이었다. 19세기 미국사회는 경제불황, 서부개척, 남북전쟁과 분열, 자본주의 폐해로 인한 노동문제, 흑인 노예문제, 스페인과 전쟁수행, 대각성운동 그림자였던 종파분열, 근본주의와 현대주의의 신학적 대립, 카톨릭의 내분사태와 카톨릭에 대한 개혁파의 반대운동 등 끓는 가마와 같은 형국지세였고, 이러한 종합 현상은 이단종파가 득세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
(2) 다양한 이단종파들
이사야 43장 10절, 이사야 44장 8절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여호와의 증인’이 태동됐다. 아담의 차자인 아벨이 최초 여호와의 증인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으뜸 되는 여호와의 증인이고 그 후계자는 창설자인 찰스 테즈 럿셀, 과도기 지도자 조셉 플랭클린 러더포드, 성장기 나단 노오르(11만 5천명의 증인을 2백만 명 이상으로 성장시킴) 등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의 독점과 자파 출판물 우선성, 아리우스주의적 피조물 그리스도론, 성령의 거부, 삼위일체의 부인, 그리스도의 신성 부정, 천사장 미가엘과 예수의 동일성(불순종의 죄로 타락하여 사탄이 된 루시퍼를 예수의 형제로 여김), 행위구원 강조, 지옥설 부인(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을 만들 리 없다는 주장), 선택적 구원론(선택된 자들과 양들 외에는 구원을 못 받음), 지상낙원설, 사후 영혼사멸설, 악한 자의 최후 부활 거부, 재림 예언의 남발 등을 주장했다.
몰몬교 역시 여호와의 증인과 마찬가지로 주도자들의 기존교회 타락에 대한 불만, 잘못된 성경해석, 주관적 신앙체험 등에 의해 출발했다. 창시자는 조셉 스미스 2세이다. 그는 한참 교파분쟁이 지속되던 장로교회에 속한 자로, 그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이탈한 자였다. 그는 몇 차례 환상을 자신의 신흥이단 창출 근간으로 삼았다. 후계자 브라이엄 영은 몰몬교를 성장시켰다. 그는 유타주 솔트레이크로 가서 둥지를 틀었다. 그는 공식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채택, 25명의 아내와 56명의 자녀를 뒀다. 몰몬교도는 미국 내에서 2천 5백만명을 웃돌며, 그 중 50만명 이상이 해외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참 신앙의 독점, 몰몬교 집단만의 참교회성, 조셉 스미스 영접을 통한 구원, 교회 역사의 정통성 부인, 정통교리의 실패성, 권위 출처로서의 몰몬경, 오염된 성경,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 및 값진 진주를 영감된 유일의 책으로 믿음, 다수의 하나님과 신인동형론적 신관, 성자 부인, 독생자 거부, 삼위의 동일본질성 부정, 만인구원설에 가까운 보편구원론, 사도시대에 끝난 지상교회와 이를 회복하는 몰몬교회론, 침수세례, 일부다처제 등이 몰몬교 핵심 교리다.
안식교는 초창기 이단으로 규정됐으나 오늘날에는 이단시하지 않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초창기 모습은 당시 미국 천년왕국 사상 유행기와 맞닿아 있다. 이는 기성종교의 안이한 태도에 대한 반동으로, 타락한 모습을 지녔던 기성교회는 열정적인 신자들의 불만을 야기시켰고, 이는 새로운 신앙운동의 모티브가 되었다. 당시 뉴욕주 중서부 지역은 이러한 신생종교운동의 최적지였고, 약 20년 동안 이 지역에서는 몰몬교, 강신술, 재림운동 등 신생종교가 발생했다. 밀러가 창시자였던 안식교 재림운동은 바로 이러한 상황과 지역에서 발생했다.
윌리암 밀러는 기존 자유주의 후천년설 재림론(예수께서 천년왕국이 도래한 이후에 재림한다는 주장)에 맞서 새로운 전천년설 재림론(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실제 창시자는 엘렌 G. 화이트였지만, 사실상의 진원지는 밀러였다. 그는 침례교회에 속했으나 염증을 느낀 나머지 독자적으로 성경공부를 해 1843년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했으나 불발했다. 예수 재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밀러는 다니엘 8장 14절의 2300주야를 2300년으로 계산, 주전 457년부터 합산하니 1843년이 나왔다고 한다. 로마력으로 1844년 10월 22일인 그날 12만명의 안식교 교인들이 뉴욕주에서 재림을 고대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안식교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종말론주의자 밀러의 세대주의적 시한부 재림신앙에 근거하여 태동했다.
히람 에드슨은 1844년이 재림의 해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늘의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간 해라 주장하면서, 여기서 죄를 완전히 도말한 후 재림한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한편 요셉 베이츠는 안식일을 제정했다. 그는 안식일이 창조 때 예표된 뒤 에덴동산에서 명령됐고, 시내산에서 확인됐다고 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교황과 짐승을 경배하는 자, 짐승의 인을 이마에 받은 자라고 주장했다. 실제 창시자 화이트는 감리교 출신이었으나, 이러한 선배들의 이론들을 종합하여 실제적인 안식교 출범을 가져왔다.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그녀는 이백 번 이상의 환상을 보았다.
죄악된 품성을 소유한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역 미완성, 하늘 지성소에서의 조사심판(율법의 표준에 따라 개인의 성품과 생활이 검토됨, 즉 하나님이 친히 지성소에서 의롭다 하심을 인정하는 것이 참 구원이 됨, 신자도 율법의 의에 이르지 못하면 구원이 막힐 수 있게 됨, 그리스도의 보혈이 유일한 구원의 근거가 되는 길이 막히게 됨)을 통한 그리스도 구원의 완성, 죽은 후 조사심판에서 구원의 여부가 가려지며, 구원받은 자도 율법준수를 하지 않으면 구원을 상실한다는 이중 구원론, 일요일을 이방인 태양우상숭배일로 보고 원래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드려야 한다는 주장 등이 안식교의 주된 율법주의적 교리들이다.
안식교는 흔히 이단종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혼음교리, 이권분쟁, 가정파괴 등과 같은 비도덕적이며 반사회적인 행태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경건한 삶은 청교도를 방불케 했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을 강조하여 세속적 삶, 즉 무도회, 화투, 담배, 술 등을 금하고 검소한 옷차림, 화장금지, 보석 장신구 부착 금지 등 단순하고 검박한 삶을 촉구했다. 또 사회봉사와 구제활동에 역점을 두고 의료선교, 무공해 농산물과 식품 생산 등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로써 안식교는 자신들에 대한 이단혐의를 어느 정도 가린 듯하다.
크리스찬 사이언스는 메리 베이커 에디가 창시했으며, 그녀는 엄격한 예정론을 신봉하는 회중교회 출신이었다. 그녀는 한때 치명적인 병에 걸렸으나, 큐임바이가 개발한 심리치료를 받고 나아 그의 열렬한 제자가 됐다. 최면술과 안수로 병고침을 받은 그녀는 <과학과 건강>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이를 신적 계시로 주장했다. 성경 외의 계시론, 치유은사를 인간심리 요법사가 아니라 신적 계시로 여김, 이원론적 질병관(병을 망상과 환상으로 보고 이를 정신 및 심리적으로 치료하는 태도), 하나님을 우주의 무한한 원리나 생명, 진리, 사랑, 혼, 영, 마음 등으로 보는 범신론적 견해, 영적 그리스도만의 주장과 육체의 예수를 거부하는 기독론, 성육신 부정, 인성 부인, 부활 부정, 죄에서 해방이 없는 질병 치유를 구원으로 여김 등이 그들의 지론적 교리이다.
(3) 디아포라(중요한 점)에 의한 이단판별
상술한 이들은 정통교리인 디아포라를 명백히 위반했다. 정통적 삼위일체 신관과 기독론을 그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 곧 중요한 점에서 그들은 성경과 전통, 예수의 유일한 구원성을 위반했다. 이는 명백한 이단으로 판별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 대한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 그리고 프로파간다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들과 담론(디스꾸르)의 길을 열어놓아, 언제든 그들을 설득하여 정통 진리의 길로 인도해야 할 책무가 정통 기독교에 있다. 물론 그들과의 담론 형성은 차이점을 노정시킬 뿐이지만, 그러한 접촉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 그리고 디스꾸르를 거부하는 전근대적 태도가 될 것이다. 정통 기독교가 이러한 개방적 방식을 채택할 때, 정통 기독교는 타자에 의해 개방과 관용을 받을 수 있다.
6. 근대후기교회 시대: 연대(Solidarity)와 관용(Tolerance)
(1) 신종교운동과 뉴에이지운동의 발흥
신종교(new religion) 혹은 신종교운동(new religious movement)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전후로 등장한 새로운 종교 현상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이 운동들은 주로 서구 지성사회를 개혁하려는 운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과학종교(Scientology), 통일교회(Unification Church), 창가학회운동(Soka Gakkai International),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운동 등에서 확인되듯 미국·한국·일본·인도를 비롯하여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캐리비안 등까지 널리 확산되는 등 범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종교운동이다.
기독교의 맥락에서 형성된 신종교운동들에는 전술한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몰몬교),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외에도 문선명의 통일교, 노엘 스탠톤의 예수군대(Jesus Army), 데이빗 버그의 국제가족회(The Family International) 등이 포함된다.
이슬람의 맥락에서 형성된 신종교들로서는 바하올라의 바하이신앙(Bahai Faith), 파드 무함마드의 이슬람국가회(Nation of Islam), 미즈라 아흐마드의 아흐마디야운동(Ahmadiyya),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의 와하비즘(Wahhabism) 등이 있다.
동양 철학과 사상에 영감을 받은 신종교들은 박티베단타 프라부파다의 국제크리슈나 의식회(International Society for Krishna Consciousness), 마하리쉬의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데니스 링우드의 삼보불교회(Triratna Buddhist Community), 마끼구찌의 창가학회 등으로 대별된다.
미확인 물체(UFO)와 관련된 신종교들에는 라엘의 라엘리안 운동(Raelian movement), 보니 네틀의 천국의 문(Heaven’s Gate), 조지 킹의 에테리우스회(Aetherius Society), 이보 벤다의 우주의 사람들(Universe People), 노만 부부의 우나리우스 과학회(Unarius Academy of Science) 등이 있다. 자아수련과 관련된 신종교에는 호세 실바의 실바 마인드 콘트롤(Silva Mind Control), 헬렌 슈크만의 기적수업(A Course in Miracles), 마이클 머피의 에살렌 연구소(Esalen Institute), 우명 우승철의 마음수련, 일지 이승헌의 단월드 등이 있다. 뉴에이지 관련 신종교운동들로는 엘리자베스 프라핏의 보편승리교회(Church Universal & Triumphant), 헬레나 불라바스키와 헨리 올코트의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 아일린 카디의 핀드온재단(Findhorn Foundation) 등을 들 수 있다.
신종교들은 다양한 시간적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주로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등장하여 영향력을 크게 성장시킨 종교공동체들이다. 이 공동체들의 창시자나 지도자는 독특한 교육이나 계시를 통하여 신종교의 기초를 형성했고, 점차 신자를 늘려나갔다. 대부분 신종교운동들은 주류 사회와 구별되는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하며 독특한 신념과 의례 방향을 제시했다.
따라서 이전에 주류 종교들 안에서 형성된 전통적 흐름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혼합적·절충적 성격을 보여준다. 신종교운동의 가르침에는 현대사회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돼 온 지나친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정신이 담겨 있거나, 급속한 세속화에 대한 영적 대응과 재생 분위기가 강조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신종교운동은 개인의 자립적 영적 성장을 도모하며 새로운 공동체적 삶의 회복과 통합을 모색하고, 나아가 마약과 술로부터 도덕적 자유를 준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 생활방식을 혁신하고 대체하는 혁신적 삶의 방식을 표방한다.
신종교운동 일부인 뉴에이지운동은 종교보다는 문화운동으로 더 각광받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의 근원은 1875년 뉴욕에서 러시아인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에 의해 창설된 신지학협회에 있다. 신지학의 기본명제는 “모든 종교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통 논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뉴에이지운동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뉴에이지 사상의 출현 배경은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세계관, 과학만능주의로 대변되는 모더니즘의 몰락에 있다. 즉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에 근거한 과학발전을 통해 인류가 영원한 행복과 번영을 이루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과학만으로는 세계 도처의 홍수와 가뭄, 태풍 등 자연재해와 기아와 전염병 등의 사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고, 오히려 과학만능주의는 생태계 파괴와 핵전쟁 위협, 인간성 상실 등의 폐해만을 가져다줬다는 것이다.
이성과 합리성을 전제로 한 과학만능주의의 한계는 모더니즘의 한계점을 드러낸 것이었고, 이러한 대안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했다. 이와 더불어 종교와 문화 현상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적 뉴에이지운동이 나타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뉴에이지 사상은 1960년대 중반 미국이 아시아인들에 대한 이민법을 개정한 후, 힌두교 정신적 지도자였던 구루들이 미국에 건너오면서 동양 신비주의 사상들이 서구의 합리주의, 과학주의와 결합하면서 형성됐다.
이러한 뉴에이지 사상은 현대문명에 염증을 느낀 현대인들, 특히 서구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현대를 위기와 기회의 시대로 평가한다. 지구의 위기 원인은 인간이 자신의 내면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있지만 무지와 망각으로 사용되지 못했으며, 그 원인은 인류 사상과 종교를 지배했던 기존 전통적 종교 가치관들이 인간 스스로를 나약하고 유한하며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복종관계가 인류를 위기에 직면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오쇼 라즈니시는,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가 원죄설로 인간을 가장 낮은 곳으로 끌어내렸고, 하나님을 가장 높은 영광의 장소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가치없는 존재로 평가돼 스스로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시켰는데, 이는 초대교회 펠라기우스적 견해, 곧 인간의 자유의지와 능력을 주창한 인본주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기독교의 굴레를 벗으면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시대가 된다는 주장이 뉴에이지 주장의 핵심이다. 그들은 기독교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함을 주장한다.
뉴에이지 혁명은 지구상 모든 인류를 하나로 묶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이기심을 떠나 진정 행복한 세상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아숭배를 통해 자신에 대한 지식이 심화되면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전지구적 사회문제가 해결되리라 본다. 따라서 뉴에이지 운동에는 인간의 잠재력 계발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초능력, 심령술, 두뇌개발 등 다양한 신비주의적 성격이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뉴에이지 운동은 초대교회의 혼합주의적 영지주의(헬라철학과 밀의종교, 유대교, 기독교, 마니교 등의 결합)와 중세 신비주의를 한몸에 담은 현대판 혼합주의 종교이다.
또 신과 우주가 하나이며, 한 인간의 영혼이 우주의 핵심이고, 우주의 핵심은 곧 인간의 영혼이라는 범신론이 뉴에이지운동의 출발점이다. 명상을 통한 신인합일 경험, 각 종교의 신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다원주의 사상, 인간의 존재가치를 어떤 것보다 우위에 두는 인본주의, 인간이 여러 방법을 통해 점차 신으로 진화해간다는 영적 진화론(인간이 신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환생을 규정했으며, 환생을 거듭할수록 영적으로 신에 가깝게 진화한다고 주장함), 신성을 깨닫기 위한 의식개혁 강조(초월명상, 강신술, 동양종교, 영지주의, 심령과학, 무속신앙, 투시, 점복, 최면술, 점성술, 요가, 관상, 수상, UFO에 관한 것들, 마녀숭배, 윤회설, 범신론적 학문운동, 인간의 잠재력 계발운동, 초혼 곧 영매를 통한 접신행위, 텔레파시와 정신동력 등의 사용), 영화와 음악 및 대중 영상매체와 도서 등 대중문화를 통한 뉴에이지 사상의 확산 등이 뉴에이지운동의 내용과 방법들이다.
상술한 바대로, 신종교운동과 특히 거기 속한 뉴에이지운동의 핵심은 정통 기독교의 원죄론적 인간관을 거부하고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극도로 고조시킨 데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전세계의 불행이 불식된다고 이들은 본다. 이들의 근원은 초대교회 영지주의와 중세 이후의 신지학에서 찾을 수 있으며, 비록 정통 기독교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사상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와서 스스로 전지구적 위기의 대안이라 자처하는 이상, 탐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들과는 솔리다리티와 똘레랑스가 불가능한 것 같아 보여도, 다른 차이점을 확인하고 이에 대처하려는 타자성의 철학정신, 곧 디스꾸르(Discourse)를 형성하여 상호간 존재와 인식론적 차이를 점점 더 자세하게 확인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곧 정통 기독교가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에 앞서, 거대한 혼합주의 종교사상인 그들로부터 정통 기독교를 보호하는 적절한 수단이 될 것이다.
(2) 기존 종교들의 공존시대
현대의 기독교는 내부적 문제인 이단문제와 함께 외부적 해결 과제인 종교간 대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디스꾸르와 똘레랑스를 필요로 하는 상호소통적 아젠다이다. 이제 각 종교는 교리적 정통성을 보존하는 일과 더불어 타자와의 연대도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곧 모든 종교들은 인류애의 보편성과 이성, 자연법과 양심 등에 근거하여 각 종교들의 공통 지향점을 모아 이 세계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양극화현상(국가와 집단과 개인 단위), 환경오염으로 인한 전지구적 생태계 파괴, 엄청난 핵무기와 가공할 파괴무기로 인한 전쟁 위협, 인종 및 종교분쟁, 인권탄압과 인종학살 등의 근원을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모든 종교와 분파는 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시대가 됐다.
(3) 정통기독교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솔리다리티와 똘레랑스
모더니즘 시대는 동일성의 철학으로 인한 종교분쟁과 공격적 선교 행태로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의 국면을 노출시켜왔다. 그러나 상대주의적 문화관과 다원주의적 종교관에 입각하여 전지구적 대립과 투쟁을 불식시키고자 한 타자성의 철학은 종교들의 대화를 추동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기독교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제 우리는 분리와 격리를 주로 했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이전 관행에서 벗어나, 모든 종교와 이단에 대해서도 똘레랑스와 디스꾸르 정신으로 솔리다리티를 추구해야만 한다. 기존 자세로 접근하면 기독교는 다시 그렇게 혐오했던 유대주의적 기독교와 맥을 같이하는 게토화로 전락할 것이다.
7. 나가는 말
초대교회 시대는 ‘디아포라’(중요한 교리)를 근거로 이단판별을 시행했다. 성경에 근거한 정통 삼위일체 신론과 기독론이 이단판별의 중요한 잣대였다. 그러나 이단판별 형식은 중세의 무지막지한 극악한 종교재판 방식이 아니라, 장기간 디스꾸르를 통해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종교개혁 시대 이단판별 역시 ‘디아포라’ 원칙에 입각해 역시 그러한 방식과 일맥상통했다. 특히 깔뱅의 제네바교회는 ‘꽁지스뜨와’를 통해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행한 후 신중하게 이단을 판별했으며, 그 목적 역시 회개를 위한 권징이었다.
세월이 흘러 근대교회 시대에 접어들수록, 이단의 행태와 주장은 심각한 경지에 도달했고, 이는 정통 기독교 신학사상과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도저히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가 불가능한 정도에까지 치달았다. 심지어 포스트모던 시대인 오늘날 발생한 신종교운동과 뉴에이지 등은 도저히 정통 기독교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의 이단판별 자세와 태도에서 엿볼 수 있는 바는, 바로 신중한 이단판별 행태 즉 ‘아디아포라’(중요하지 않은 곁다리 교리나 사상)가 아니라 ‘디아포라’(중요한 핵심적 교리, 즉 삼위일체 신론과 정통 기독론 교리 등)에 근거해 장기간 디스꾸르적 이단정죄 자세를 가졌다는 점이었다(디스꾸르는 타자와의 차이점을 확인하지만 배타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고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의미).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연 한국교회는 그러한 초대교회 담론의 질서 전통, 그리고 중세교회의 악폐를 극복하고 초대교회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 정신을 전승한 종교개혁 교회의 신중한 디스꾸르적 이단판별 태도를 한 번이라도 지녔던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물론 한국교회 내 이단들 중에서도 도저히 똘레랑스와 솔리다리티를 할 수 없는 극렬한 이단들, 예컨대 자칭 재림 예수라 참칭하는 이단종파들이 존재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옳지 못한 정치적 생태에 의해 교권쟁탈전적 이단정죄와 감별이 있어온 것도 엄연한 현실이고, 지금 현재도 그런 형태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 교세가 감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계속 정통교회에 도전하는 이단 운동들은 우후죽순처럼 계속 태동하고 있으며, 기존 기성 종교들과 새로운 신흥 종교들이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을 방불케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나아갈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물질주의와 성공주의, 대형주의와 찰나주의, 매너리즘과 허무주의 등에 의해 이리저리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상황이 캄캄하여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암흑천지 속에서 빛나는 빛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우리가 형평한 신학적 시각으로 모든 종교현상에 대해 공명정대하게 대처할 수 있을 때, 우리 정통 기독교의 정신과 사상은 더욱 순결하고 고매하게 프로파간다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모든 악을 제어하고 선을 세상에 대해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내하면서 똘레랑스 정신으로, 노력하는 자세의 디스꾸르 정신으로, 솔리다리티와 프로파간다 정신으로 무장한다면, 그래서 지피지기 백전불패의 기상으로 타종교와 이단종파에 대한 담론의 질서를 형성한다면, 더 이상 우리의 지평과 밭은 두더쥐나 들짐승에 의해 훼손당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훼파당한 우리의 터전이 풍성한 옥토밭으로 변개되는 그날이 반드시 오고 말 것이다. 그들과의 대화는 우리의 한계점과 단점을 부각시켜 주고, 진리를 프로파간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이단을 판별하고 그들과의 담론질서를 형성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