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준(張元準, 1985년 7월 31일 ~ )은 한국 프로 야구 경찰 야구단의 투수이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대표적인 좌완 선발 투수로 활동 중이다. 2008년에는 12승을 거두며 처음으로 10승 투수 고지에 올라섰다. 140km 중반대의 빠르면서도 묵직한 직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주 무기다. 2011년에는 한층 발전하여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였고 4년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했지만 야구 월드컵 이외에는 국가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해 2011년 시즌 후 경찰 야구단에 입대하게 되었다. 입대 후 봉중근의 부상으로 좌완이 부족하게 되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비로소 인연을 맺게 되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성적이 들쑥날쑥해 팬들 사이에서는 장롤코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2007년에 주형광의 백넘버 28번을 받았다.
(위키백과 발췌)
지금 더그아웃 11호 (2012년 2월)에 담긴 장원준을 만나봅니다.
이번 DUGOUT PEOPLE의 주인공은 지난 시즌 롯데 자이언츠를 페넌트레이스 2위로 이끈 장원준 선수다. 2011년 최고의 한해를 보낸 롯데의 좌완 에이스 장원준 선수는 군 복무를 위해 경찰 야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앞으로 두 시즌을 1군 무대가 아닌 2군 리그인 퓨처스 리그에서만 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를 떠나보내 아쉬운 롯데 팬들을 위해 경찰 야구단 숙소에서 장원준 선수를 만나보았다.
PHOTOGRAPHY LEE YONG HAN EDITOR 전홍권
‘롯데의 에이스’에서 ‘이경 장원준’으로 사는 법
군인은 군인이었다. 식사 후 진행될 예정이었던 인터뷰에 다소 늦은 장원준. 이유를 듣자 하니 식사 후 식기를 세척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뷰를 위해 달려오는 모습이나, 인터뷰를 하는 동안의 모습 모두 속 ‘각 잡힌’ 모습이었다. 군 생활이 편한 신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기량을 유지하면서 군 복무도 해결할 수 있는 경찰 야구단과 국군체육부대 상무 야구단은 병역의 의무가 있는 선수들에게 ‘최고의 기회’이다. 장원준도 이를 잘알고 있었다. “8년 간 롯데 유니폼만 입었는데 경찰 야구단 유니폼을 입으니 어색한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며 군 생활에 적응 중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만감이 교차하는 군 입대지만, 장원준의 입대 소감은 차분했다.
군 생활은 나이순이 아닌, 계급 순이다. 올해로 스물여덟 살인 장원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후배였으나 경찰 야구단내에는 선임인 선수가 있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에
서 함께 뛰던, 장원준의 2년 후배 나승현 선수. 조심스레 경찰 야구단 내 그와의 관계를 물어보았다.
“군에 온 만큼 나승현 선수는 저에게 엄연한 고참이죠. 사실 어색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분위기는 프로에서의 선후배는 어느 정도 인정되는 듯 보였다.
경찰 야구단의 수장 유승안 감독은 장원준에 대해 ‘특별 관리’를 선언한 바 있다. “아무래도 제가 프로 1군 선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관리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시즌 이후 네 달 동
안 공을 안 만졌는데, ‘너무 급하게 몸을 만들지 마라.’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죠.” 유승안 감독의 ‘특별 관리’를 통해 거듭 나는 장원준을 지켜보는 것은 2012 시즌 퓨처스 리
그가 흥미로워 질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장롤코’에서 ‘좌완 에이스’로 거듭난 장원준 의 2011 시즌
장원준은 지난 시즌 180.2이닝을 책임지며 15승과 방어율 3.14를 기록하며 롯데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이 기록들은 국내 좌완 투수 중 단연 돋보였다. 알다시피 지난 날 장원준의 활약상은 그의 별명인 ‘장롤코’로 대표될 정도로 기복이 심했다. “사실 그 별명을 듣고 기분이 좋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에요.
다만 시간이 지나 무덤덤해졌죠. 투수는 게임 중간에 때때로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 무너진 밸런스를 재빨리 찾아내는 투수가 좋은 투수 인데 그런 회복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동안 부진했던 것으로 봐요.” 자신이 부족한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그였기에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객관적인 자기분석은 선수로서 한 단계 성장케 하는 중요한 실마리다.
장원준은 최근 5년간 799.1이닝을 책임지며 류현진 (884.2이닝) 다음으로 이닝이터로서 좋은 면모를 보여 왔다. 하지만 팬들이 장원준을 평가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은 ‘가장 저평가된 좌완 에이스’ 라는
말이다. 낮지 않았던 평균자책점(통산 4.13) 때문에 붙여진 평가이다. 그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롯데 투수로서 타선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다른 팀 투수들보다 승수를 쌓기 유리했죠.
반면 작년을 제외하면 4점대의 높은 방어율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런 평가는 당연하다고 봐요. 그래서 지난 시즌 목표를 ‘자책점이 낮은 투수’로 잡았는데, 결국에는 통했죠. 무엇보다도 심리적인 여유
가 생겼어요. 군 입대 전 마지막 시즌인 만큼 마음을 비우고 던졌던 게 통했던 거죠. 특히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 있게 공을 던진 게 주효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이겨낸 투수 앞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런 그가 지난 시즌 최고의 순간으로 뽑은 경기는 바로 9월 30일 사직 두산 전. “사실 이날은 선발 등판일이 아니었어요. 몇 년 만에 중간계투로 나섰는데, 결과가 좋아 15번 째 승리를 챙기게 되었죠. 하지만 15승보다 더 값졌던 건 최동원 선배님의 영구결번식이 있던 날 롯데의 승리를 책임질수 있었던 점이에요.” ‘15승 달성’이라는 타이틀보다 자신의 우상을 추모하는 날, 팀의 승리를 지킬 수 있었던 기쁨이 더 컸다.
그렇다면 장원준에게 ‘2011시즌 플레이오프’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좌완 에이스 김광현을 상대로 나선 1차전에서는 다소 고전했지만, 중간계 투로 나선 4차전에는 호투를 펼쳤다. “1차전은 광
현이와 맞대결이었어요. 기선제압이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점수를 적게 주면서 이닝을 길게 끌고 가야한다는 마음가짐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오히려 독이 되어 마운드에서 더 긴장을 했죠. 공에 힘이 너무 많이 실렸고, 체력이 떨어지며 너무 쉽게 3점을 허용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부분으 로 남아요. 다만 4차전은 1차전에 비해 침착한 마음 으로 던졌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어요. 그래도 5차전 패배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긴 암흑기를 벗어나 이제는 ‘가을야구 단골팀’이 된 롯데. 하지만 우승뿐만 아니라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에 에이스로서 그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홀로 빛나는 별은 없다.
장원준은 롯데에서만 8년을 뛴, 훗날 전설이 될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이다. 특히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금강불괴’로 불릴 정도의 이닝 소화 능력인데, 그의 곁에 좋은 조력자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지
도 모른다. 그는 롯데의 장재영 트레이닝 코치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8년 간 풀타임 선발로 뛰면서 트레이닝 코치님께 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경기가 끝난 후 마사지가 필요할 때, 또는 아픈 곳이 있을 때 항상 도움을 청했던 분이죠. 지난 시즌도 장 코치님이 계셨기에 부상 없이 시즌을 마무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이에요.” 대부분의 운동 선수들이 겉으로는 일반인들 보다 건강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더 좋은 결과를 이뤄내기 위해 아픔을 참고 운동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홈구장이나 원정 숙소 내 트레이너실은 선수단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장원준도 긴 이닝을 던지는 선발투수인 만큼 트레이너실의 ‘단골손님’ 이었다.
항상 감사한 팬 여러분들, 하지만...
어떤 프로야구 선수나 마찬가지겠지만, 장원준의또 다른 조력자는 팬이다. 팬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운을 뗀 그는 “롯데 팬 여러분들 의 열정은 정말 남다르세요. 1군 선수들이 뛰는 사직구장 뿐만 아니라 2군 선수들이 뛰는 상동구장에도 자주 찾아오셔서 응원해주시는 열정을 보면 느낄 수 있죠. 원정 경기에도 홈팀을 압도하는 응원을 보여주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부산에서 야구한다는 것은 저에게 자랑스러운 일이었죠.
하지만, 과도하 게 사생이 노출되는 건 조금 아쉬웠어요. 경기가 이겼을 때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응원을 해주시지만, 경기에서 지거나 팀이 부진에 빠졌을 때는 동료 선수들과 밥을 먹는 것도 힘든 게 사실이었어요. 소수의 팬 여러분들께서 그 모습을 인터넷에 올리시면, ‘야구를 못하는데 밖에서 밥을 먹는다.’는 악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어요.
야구 선수도 사람인데 그런 모습까지 감시받는다는 생각을 하면 다소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사실 이는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악플’의 수위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물론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고 운동하는 프로야구 선수인 만큼 경기 결과에 따른 책임은 있다. 하지만, 팬들이 그들을 프로야구 선수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로 대한다면,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에게 보답할 것이다.
옆에 있던 그의 ‘경찰청 동기’ 장성우가 말을 이었다. “저는 밖에 나가도 팬 분들께서 못 알아보셨어요. 하하하. 보통 팬 분들께서 원준이 형이나 민호형 같은 경우는 잘 알아봐 주시는데, 저를 보시면
‘혹시 장성우 아니에요?’라고 여쭤보시는 정도였어요. 저는 항상 ‘닮았다는 소리 자주 듣습니다.’
라고 넘기곤 했죠. 그런데 같이 다녔던 원준이 형이나 민호 형이 워낙 인기가 많은 선수다 보니 밥을 함께 먹고 싶어도 당당히 먹지 못하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보통 사람이 없는 식당이나 혼자 사는 민호형네 집에서 시켜먹었어요. 그래도 경기하는 순간에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들을 보면 감사하고, 항상 힘이 나요. 프로야구 선수는 관중이 있어야 야구
할 맛이 나거든요.” 프로라는 이름에 ‘팬’이라는 요소를 빼면 무의미하다. 프로야구 선수는 팬의관심과 사랑을 통해 야구선수로서의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때론 사랑하는 팬들에게서 받는 과도한 비난이나 사생활 노출은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아쉽게 이루지 못한 ‘노 히트 노 런’
프로 입단 이후 아쉬웠던 경기를 묻는 질문에 장원 준은 주저 없이 2005 시즌에 있던 ‘잊지 못하는 경기’를 떠올렸다.
“광주에서 열렸던 KIA전에 선발로 뛰었던 경기였어요. 사실 신인이라 선발 경험이 별로 없어서 긴장이 많이 되었죠. 결국 전 날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엉망이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마운드에 올랐는데 이상할 정도로 제구가 너무 잘 되는 거예요. 그렇게 타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느새 9회 말이 왔고, 전광판을 보니 피안타가 0이었어요.
원 아웃을 잡고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요. 속 으로 기록에 대한 의식을 하고 있었던 거죠. 바로 이종범 선배님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1루 쪽으로 강습 타구가 날아왔어요. 베이스 커버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1루수 용병이었던 라이언이 공을 던지는 것을 멀뚱히 보고만 있었어요. 그 사이 이종범 선배님은 베이스의 절반 이상을 가셨죠. ‘아차’싶더라고요. 결국 저의 베이스 커버가 늦어 내야 안타를 허용해 노히트 노런에 실패했습니다.
그 다음날 코치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베이스 커버
연습만 시키셨던 기억이 나네요.”
장원준, 장성우, 강민호, 세 남자의 삼각관계. 이번 인터뷰에는 장원준의 경찰 야구단 입단 동기이자, 롯데 시절 절친한 후배였던 장성우가 함께했다. 논산 훈련소에서 장원준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장성우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끈끈함을 느낄 수 있다. “민호 형 덕분에 원준이 형이랑 훈련소 생활을 같이 했어요. 민호 형이 4주 훈련 받으러 갔을 때 저희 팀의 (이)상화 형이랑 같이 입대했는데, 둘이 같이 붙어 있으려고 양 옆으로 서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둘이 찢어졌죠.
입대 순간까지도 저에게 앞뒤로 붙어 줄을 서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결국 장성우는 178번 훈련병으로, 장원준은 179번 훈련병으로 함께 훈련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날 민호 형 차타고 (전)준우형, (이)재곤이 형과 함께 했는데, 논산이 난리가 났었어요. ‘논산에 강민호 떴다.’고 말이죠. 하하하.” 장성우에게 강민호는 좋은 선배이자 넘어야 할 산이었다. 하지만 국내 최고 포수 반열에 오른 강민호가 있어 장성우가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었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다른 팀에 갔어도 주전 포수 자리가 보장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저는 고향 팀 롯데 자이언츠의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죠.
그리고 민호 형은 국내 프로야구 최고의 포수 중 한명인만큼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되었다고 봐요.”
그런 그의 목표는 ‘경찰청 주전 포수’다. 경찰 야구단에서의 2년을 통해 ‘경찰 야구단의 성공 사례’ 가 된 두산 베어스의 양의지처럼 말이다. 또한 그의 곁에는 프로야구 초기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불리
던 유승안 감독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프로에서 한 시즌 동안 200타석에 들어서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경찰 야구단에서 주전 포수 자리를 지키면서 500타석 이상을 책임진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유승안 감독님께 많은 조언을 받고 싶어요. 이게 경찰청에 입단하게 된 가장큰 이유죠.”
장원준도 장성우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성우는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동생이에요. 롯데에서 워낙 친한 선후배 관계였고, 저의 볼도 많이 받아봤으니까요. 2년 동안 성우 덕분에 좋은 공을 많이 던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장원준, 그리고 장성우. 둘의 우정은 외롭다는 군 복무 기간 동안 서로를 가장 잘 달래줄 수 있는 파트너다.
장원준의 입단 동기이자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한강민호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롯데 최고의 패션 테러리스트는 내 친구 장원준’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하하. 패션에 관심 있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무난한 옷을 선호해요. 그러다 보니 민호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민호도 옷 을 썩 잘 입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뭐, 저보다 조금 더 잘 입으니까 인정해주죠.” 그렇다면 두 선수 가 뽑는 ‘롯데 최고의 패셔니스타’는 누구일까? 장성우는 어떤 옷을 입어도 멋지다며 공익 근무 중 인 박기혁을, 장원준은 옷맵시가 남다른 이승화를
꼽았다.
그러나 사실 두 선수도 나름대로의 개성을 바탕으로 옷을 잘 입는다. 특히 장원준은 ‘유니폼 을 입기 위해 태어난 야구선수’라는 말을 들을 정 도로 유니폼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로 꼽힌다.
사실 이번 인터뷰가 재미있게 진행된 데에는 장성우의 기여가 크다. 장성우는 롯데 선수단 내에서 손용석과 함께 ‘분위기 메이커’로 유명했다. 장성우는 이에 대해 다소 쑥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원준이 형과 민호 형 등의 선배 분들이 저를 잘 대해주셔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두 형들이 저를 잘 다독여줬죠. 그런데 다른 후 배들은 민호 형이 롯데 선수단 내의 ‘군기반장’
으로 통하기 때문에 많이 어려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원준이 형은 낯을 많이 가리긴 하는데, 친해지고 나면 말수가 늘어요.” 유머감각이 남다르고 팬 서비스도 뛰어난 강민호에게 ‘군기 반장’의 이미지
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독자 여러분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장원준의 터닝 포인트가 될 ‘퓨처스 리그 마운드’
이제 장원준은 2년 간 1군 마운드에 오를 수 없는 퓨처스 리그 소속 선수이다. 하지만 2년 후 1군 무대에 멋지게 복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지며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장원준에게 경찰 야구단은 그의 야구 인생에 있어 ‘터닝 포인트’가 되기 충분하다. 그도 이런 점을 잘 알기에 2년간의 목표를 어렵지 않게 밝혔다. “프로에 있는 8년 동안 바깥쪽 제구력이 안 좋아 주로 몸 쪽 승부 를 통해 승부를 봤는데, 그러면서 볼 개수가 많아지고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경찰청에서 뛰는 2년 동안 바깥쪽 공 제구를 완벽하게 연마할 생각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프로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일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좌완 투수에게 바깥쪽 공 제구는 효율적인 투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무기이다. 원래 몸 쪽 승부에 능한 장원준이 바깥 쪽 승부에도 능력을 갖춘다면, 입대 전보다 더 두려운 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원준은 2군 출신은 아니었지만, 롯데의 성공적인 유망주 육성을 이루게 해준 상동구장의 건립의 산증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상동구장의 성 공요인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야구를 하 다보면 외적인 유혹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상동구장은 그런 부분을 철저히 방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여러 가지 훈련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서 야구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교외에 시설을 지으면 이동에 대한 불편함은 있다.
하지만,상동구장의 건립은 성장이 필요한 2군 선수들에게 찾아올 유혹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롯데 2군 시스템의 개선을 불러왔다. 이에 2군 경험이 풍부한 장성우가 ‘원준이 형에게는 2군에 대해 물어보면 안 된다.’며 거들었다. “한 시즌도 2군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엘리트에게 그런 질문은 실례죠.
하하하. 제가 2군에 있을 때 상동에서 경기를 하 다보면 많은 롯데 팬 분들께서 찾아와 주셨어요, 그 만큼 관심을 받고 야구를 해왔기 때문에 비록 2군 무대일지라도 즐겁게 야구할 수 있었죠. 입대하기전에 트위터로 입대를 알리는 멘션을 남겼는데 많은 팬 여러분들께서 답 멘션으로 벽제에서 꼭 보자고, 시즌이 개막하면 꼭 찾아오시겠다고 하셨는데
요. 그 분들이 꼭 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무래도 2군에서부터 응원해주셨던 팬 분들이 나중에 기억이 남거든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렵거나 주목을 받지 못할 때 찾아주었던 사람을 절대 잊지 않는다. 아니 잊지 못한다. 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던 1군 무대에서 야구했던 시간과 비교했을 때 퓨처 리그가 다소 ‘외로운 순간’일 수는 있다. 하지만 팬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이 이어질 때 외로울 수도 있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믿어본다.
야구선수로서 중반기를 맞아, 훗날 “화려하지는 않은 선수지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이뤄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장원준. 비록 2년 동안 프로야구 1군 무대에서 볼 수 없다. 그러나 이에 좌
절하지 않고 최고의 좌완 에이스로 재평가받기 위해 담금질을 하겠다며 구체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밝혔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니 진중하고 우직한 성격이 경찰 야구단을 만나 그의 남은 야구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퓨처스 리그 무대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2012 시즌 퓨처스 리그의 화두가 될 것이다.
촬영장소 경찰 야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