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사>
광동성 내 진씨 일족의 사당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과거 시험 준비의 서원도 겸했던 곳인데 현판처럼 <진씨서원>이라고도 불린다. 진씨서원은 한림원 등의 직분을 맡았던 陣伯陶 등의 48위의 진씨 성을 가진 紳士를 모시기 위해 건설한 곳이다.
신사는 벼슬급제자를 士, 관료등용자를 紳이라 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관료로 등용된 사람을 일컫는 명칭이다. 이것을 일본이 가져다가 영국을 미화시키면서 '영국신사'라 하던 것을 우리도 사용하자, 본래의 의미를 잃고 영국 신사의 이미지와 의미만 남아 의미가 사실상 변질된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통치하면서 가장 많이 모방한 대상, 일종의 멘토가 영국이었으므로 영국의 모든 것은 미화대상이기도 하였다. 더 큰 관점에 일본의 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감)가 있다.
광동 각현의 진씨 종족은 일정액의 금액을 균등하게 부담하여 사당을 만들고 선조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올렸다. 또한 진씨 내의 자제들이 광주에 도착하여 과거를 준비하거나 일을 볼 때는 진씨서원에 머물 수 있었다.
건물은 1888년에 착공하여 1893년(1894년 바이두)에 완공되었다. 1905년 과거 폐지 후에는 진씨실업학당으로 개칭하고 문범학교, 체육전문학교와 취현중학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1959년에는 광동민간공예박물관이 되었는데 2017년에 국가1급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
입구 외관에서부터 현란한 장식이 눈을 압도한다. 안으로 들어가도 같은 수준으로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으로 꽉 차 있어 감동을 넘어 멀미가 날 지경이다. 이 지역은 공예품이 발달한 지역인데 특히 목공예품은 세계 어디서도 보기 드문 수준의 다양함과 정교함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용마루 위를 빽빽하게 장식한 다양한 조각들에 현혹되는데, 불산 조묘를 비롯하여 광주의 다른 건축물에서도 이런 양식을 볼 수 있다. 그중 이곳 진가사가 가장 화려하고 정교해서 특히 이와같은 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 광주의 백운공항에도 진가사가 특히 크게 소개되어 있다.
실제로 진가사는 광동민간건축 장식예술의 집대성으로 알려져 있다. 목조, 전조, 석조, 회소, 도소, 동철주, 채색장식 예술이 망라되어 있다. 제재도 광범위하고 조형도 생동하며 색채가 풍부하고 기예가 정교하여 민간장식 예술의 가장 찬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청나라 귀족들의 경제 규모와 공예 발달 수준 및 조각품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로 이들의 경제와 예술, 정신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 신선이 많고 용, 기린 등 상상 속의 동물이 많은 것 등등은 가문의 복록을 빌고 사후에도 좋은 곳에서 많은 것을 누리기를 바라는 기복신앙과도 관련이 되어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여러 자료를 찾아봐도 이처럼 엄청난 건물이 광동에서, 진씨 가문에서 청나라 말기에 건립된 배경을 알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여러 자료에도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기술만 있다. 그 배경을 알아내는 것이 과제다.
지금까지 접한 자료로 고구해보자. 신사 48명을 한 집안에서 배출하였다는 것은 대단한 명문가가 틀림없다. 리완공원 옆의 문탑 옆에는 과거급제자의 명단이 벽에 새겨져 있다. 이 지역 급제자가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니다. 진씨 집안은 권력을 가진 집안이고, 공예품 전시장같은 진가사로 보아 재력도 상당했고, 예술을 중시하던 집안임을 알 수 있다. 청말 남방 유력 집안의 권력, 재력, 예술의 수위를 함께 접할 수 있다.
방문 2019.12.21.
입장료 : 10원, 60세 이상 무료(내외국인 모두 해당, 신분증 제시 필요)
*참고
중국 바이두사전
광주시여유국, 신광주행, 광주여유출판사
취현당은 진씨 가문에서 봄가을로 제사를 드리고 회의를 하던 공간이다.
조당과 대청 삼칸은 조상 신위를 놓고 제사를 드리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