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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문헌
중봉화상삼시계념의범문(中峯和尙三時繫念儀範文)
1706년(숙종 32)에 월저도안이 등서하여 간행한 불교의식집
1706년(숙종 32)에 월저도안(月渚道安)이 등서(謄書)하여 간행한 불교의식집. 목판본. 4권 1책. 모두 37장이다. 본래 중국 원나라 중봉화상(中峯和尙)이 편찬한 이 책은 하루를 3시로 나누어 염불하는 절차에 대해 서술한 의식집이다.
1권에는 거주(擧呪), 운집찬(雲集讚), 등좌게(登座偈), 제강(提綱), 축향(祝香), 축수(祝水), 거대비주(擧大悲呪), 아미타불 등 불보살에 대한 찬(讚), 정의(呈意), 연념(演念), 가양불호(歌揚佛號), 재불의식(齋佛儀式), 변식(變食), 공향화찬(供香花讚) 등 찬(讚), 회향소식(廻向疏式) 등 전반적인 염불의식의 절차를 수록하고, 2권은 제1시 불사(佛事), 3권은 제2시 불사, 4권은 제3시 불사가 제강(提綱), 강연(講演), 참회(懺悔)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제2시에는 발원문과 미타찬(彌陀讚), 미타예참의문(彌陀禮懺儀文)이, 제3시에는 삼발원(三發願)이 추가되어 있다.
그리고 권말에 권인염불(勸人念佛)과 염불정인설(念佛正因說)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간행처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월저도안이 말년에 주로 묘향산 보현사에 주석하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간행하였다. 동국대학교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韓國佛敎儀禮資料叢書(朴世敏 編 三聖庵, 1993)
증수선교시식예문(增修禪敎施食禮文)
연대 편자 미상의 불교의식집
연대 편자 미상의 불교의식집. 선·교 양가에서 행하던 시식과 육도중생에 법식(法食)을 공양하는 도량의식집이다. 1책. 목판본. 서양사문(瑞陽沙門) 덕이(德異)의 주가 있다. 내용은 시식관법의 취지와 그 개요·절차를 밝히고, 불보살의 가피력을 입어 불법에 귀의하도록 하는 절차가 서술되어 있다.
불법에 귀의하여 음식을 받을 때 그 시식이 법식이 되도록 하는 삼매야계진언(三昧耶戒眞言) 등의 진언절차를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식절차에 따라 영혼이 음식을 제공받게 되면 다보여래(多寶如來) 등 밀교의 7여래의 가피력으로 인하여 지옥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어 법식을 베풀어 받은 공덕을 널리 회향시키는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의 절차가 이어진다. 후편에서는 영혼을 의식도량에 청하여 반식(飯食)하도록 하는 의식절차를 수록하고 있다. 불교의 영혼관·지옥관·내세관·제사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梵音集
<<참고문헌>>作法龜鑑
진연의궤(進宴儀軌)
조선시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푸는 연회에 관한 전말을 기록한 책
조선시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푸는 수작(受爵)·진연·진작(進爵)·진찬(進饌) 등의 연회에 관한 전말을 기록한 책.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총 16종이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719년(숙종 45) 4월부터 9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숙종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게 됨을 경축, 진연을 베푼 기록인 ≪진연의궤≫ 1책이 있다.
진작에 관한 것으로는 1827년(순조 27) 왕세자 헌종이 대리청정하면서 부왕인 순조와 모후인 순원왕후(純元王后)에게 존호를 올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연회를 설행한 기록인 ≪자경전진작정례의궤 慈慶殿進爵整禮儀軌≫가 제일 처음 작성된 것이다.
이 가운데 〈연설 筵說〉에 소개된 것에 따르면, 진연 또는 진찬의 연회는 그 이전에 자주 있었으며, 헌작례도 그때마다 행하여졌으나, 진작의 예는 이 때 처음으로 새로운 의식에 따라 거행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진작은 진연 또는 진찬의 일반적인 연회에서보다 헌작례에 중점을 두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또한, 진찬은 연회의 규모나 의식·절차 등으로 볼 때 진연보다 간소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작이라는 용어는 1765년(영조 41) 왕세손(뒤의 정조)의 간청으로 영조의 71회 생일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푼 기록인 ≪수작의궤 受爵儀軌≫에서 사용되고 있을 뿐인데, 의식이나 절차에 있어 별다른 특징이 없으며, 다만 연회의 목적상 축하받는 당사자인 왕을 기준으로 하여 수작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수작·진연·진작·진찬 등 4종의 연회에 관한 의궤는 내용 및 체재면에서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1828년에 만들어진 ≪진찬의궤≫를 예로 들면, 권수에 총목이 있고 이어 택일·좌목(座目)·도식(圖式), 권1에 예소(睿疏)·영교(令敎)·연설(筵說)·악장·치사(致詞)·전문(箋文)·예제연구(睿製聯句)·의주(儀註)·절목·계사·달사(達辭)·사목·이문(移文)·내관(來關), 권2에 품목(稟目)·감결(甘結)·찬품·기용(器用)·수리·배설·의장·의위(儀衛), 권3에 진작참연제신(進爵參宴諸臣)·내외빈·공령(工伶)·악기풍물·상전(賞典)·재용 등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도식에는 명정전진찬반차도(明政殿進饌班次圖)·회작반차도(會酌班次圖)·야연반차도(夜讌班次圖)·명정전도(明政殿圖)·자경전도(慈慶殿圖)·정재도(呈才圖)·기용도·의장도·악기도·복식도·채화도(綵花圖) 등이 있어, 복식·기물·악기·무용 등 당시의 다양한 궁중의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택일에는 외진찬(外進饌)·내진찬(內進饌)·야진찬(夜進饌)의 일시·장소와 진찬습의일 등이 명시되어 있고, 좌목에는 진찬소 당상(堂上)·낭청(郎廳) 등으로 차출된 사람의 직책 및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당상은 병조판서 등 7인, 낭청은 부사과(副司果) 등 6인으로 되어 있다.
권1의 예소·영교·연설은 진찬의 발의와 결정에 관한 내용이다. 악장·치사는 음률에 관계되는 악부·사령의 무가문(舞歌文), 전문은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으로 임금에게 올리는 축하문, 예제연구는 왕세자가 제진하는 시문인데, 모두 의례의 거행을 찬미한 내용이다.
권2의 찬품에는 진찬 설행시의 각종 물목이 각 상(床)별로 세주(細註)와 함께 수록되고, 의위에는 각 처소와 유사의 명단이 첨부되어 있다. 권3의 진작참연제신에는 진작례에 참석한 사람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 의궤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궁중연회는 상당한 의식과 절차에 따라 거행되었다.
진연의 경우 참석인원 및 규모가 방대하였는데, 특히 1719년에 거행된 진연에는 종친 및 의빈 34인과 제신 이하 79인이 입참하였고 불승전자(不陞殿者)도 59인이 되었다.
1744년(영조 20) 대왕대비 인원왕후(仁元王后)를 위하여 진연을 거행할 때는 시·원임대신(時原任大臣)과 기로소의 제신, 정2품 이상의 실직에 있는 문신, 동반의 군직(軍職)이라도 70세 이상이면 모두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서민으로 80세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미육(米肉)을 하사하였다.
또한, 각 도에서 차출된 기생들의 이름과 나이까지 의궤에 수록되어 있다. 의궤의 내용 및 체재로 볼 때, 1기는 정조 이전, 2기는 순조 이후 1894년 갑오경장 전까지, 3기는 갑오경장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1기의 것에는 각종 도식이 없을 뿐더러 모든 업무를 각 방(房)에 분장시키고 있는 데 반하여, 2·3기에 만든 것은 각종 도식이 상세히 그려져 있고, 모든 의전에 관한 업무를 진연청 또는 진찬소 등에서 총괄하여 관장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갑오경장을 전후로 해서는 의궤에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바뀌었음을 보게 된다. 모두 규장각도서에 있다.
진작의궤(進爵儀軌)
조선시대에 왕·왕비·왕대비 등에 대하여 작위를 높일 때 행한 의식을 기록한 책
조선시대에 왕·왕비·왕대비 등에 대하여 작위를 높일 때 행한 의식을 기록한 책.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 등에 대한 진작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진작을 행한 의식절차를 기록으로 남긴 예는 그리 많지 않다.
1827년(순조 27) 왕세자(뒤의 헌종)가 대리청정하면서 부왕인 순조에게 ‘연덕현도경인순희(淵德顯道景仁純禧)’, 왕비인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金氏)에게 ‘명경(明敬)’이라는 존호를 올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9월 10일 자경전(慈慶殿)에서 진작의식을 설행한 기록이 있다.
그 이듬해 순원왕후 김씨가 40세가 됨을 기념하여 2차의 진작의식을 행한 기록과, 1873년(고종 10) 고종에게 ‘통천융운조극돈륜(統天隆運肇極敦倫)’의 존호를 올린 의식의 기록이 있다.
이 책은 대부분 2권 2책으로 되어 있고 정리자인 활자본이나 이본으로 필사본도 여러 종 있다. 필사본은 완질본과는 달리 기록한 사람에 따라 부분별로 누락된 부분이 있다.
이 책은 진연도감(進宴都監)에서 작성한 것으로, 권수에 총목록·택일(擇日)·좌목(座目)·도식(圖式)이 있다.
권1에 영교(令敎)·연설(筵說)·악장(樂章)·치사(致詞)·전문(箋文)·의주(儀註)·사목(事目), 권2에 찬품(饌品)·기용(器用)·수리(修理)·배설(排設)·의위(儀衛)·내외빈(內外賓)·악기풍물(樂器風物)·공령(工伶) 등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좌목〉에는 진작의식을 주관한 관원들의 직과 성명을 기록하였는데, 이때는 도감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호조와 예조에서 주관하였음을 밝혔다. 〈도식〉은 세밀히 묘사되어 내용이 다양하였음을 알리고 있다.
진작반차도(進爵班次圖) 3편, 진작회도(進爵會圖) 3편, 왕세자소차도(王世子小次圖) 1편, 정재도(呈才圖) 9편, 채화도(綵花圖) 13편, 기용도 56편, 의장도 36편, 악기도 29편, 복식도 34편 등, 도식의 내용을 소상하게 기록하여 당시에 사용된 의장과 기구를 알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영교〉·〈연설〉 등은 진작에 관한 논의를 전반적으로 수록한 것이며, 〈찬품〉·〈기용〉 등은 진작의식에 사용된 음식물과 기구를 총망라하여 설명하고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진연의궤
진찬의궤(進饌儀軌)
조선 후기에 왕·왕비·왕대비 등에게 진찬한 기록
조선 후기에 왕·왕비·왕대비 등에게 진찬한 기록. 조선시대의 진찬의궤는 현재 7종이 있다. ① 1828년(순조 28)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순조에게 진찬한 기록으로, 3권과 권수·부편 등 3책이며 필사본이다.
② 1848년(헌종 14) 대왕대비인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金氏)의 육순을 축하하기 위하여 베푼 진찬의절을 기록한 책으로, 3권 권수 합 3책이며 필사본이다. ③ 1868년(고종 5) 12월 6일 대왕대비인 신정왕후 조씨(神貞王后趙氏)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하여 베푼 진찬의식에 관한 기록으로, 2권 권수 합 3책이며 필사본이다.
④ 1877년 12월 6일 신정왕후 조씨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하여 베푼 진찬기록으로, 3권 권수 합 4책이며 신활자본이다. ⑤ 1887년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신정왕후 조씨의 팔순을 축하하기 위하여 베푼 진찬기록으로, 3권 권수 합 4책이며 신활자본이다.
⑥ 1892년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고종의 41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베푼 진찬기록으로, 3권 권수 합 4책이며 신활자본이다. ⑦ 1901년 5월 13일 명헌태후 홍씨(明憲太后洪氏)의 71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베푼 진찬기록으로, 3권 권수 합 4책이며 신활자본이다. 7종의 내용이 서로 대동소이하다.
총목(總目)에 따르면, 권수에 택일(擇日)·좌목(座目)·도식(圖式), 권1에 전교(傳敎)·연설(筵說)·악장(樂章)·치사(致詞)·전문(箋文)·의주(儀註)·절목(節目)·계사(啓辭)·계목(啓目)·이문(移文)·내관(奈關), 권2에 품목(稟目)·감결(甘結)·찬품(饌品)·기용(器用)·수리(修理)·배설(排設)·의장(儀仗)·의위(儀衛), 권3에 진작참연제신(進爵參宴諸臣)·내외빈(內外賓)·공령(工伶)·악기풍물(樂器風物)·상전(賞典)·재용(財用) 등이 수록되어 있다.
‘택일’에는 외진찬(外進饌)·내진찬·야진찬(夜進饌) 등으로 구분하여 일시와 장소를 지정하였고, 진찬소와 당상·낭청 등이 지정, 거명되었다. ‘도식’에는 진찬반차도(進饌班次圖)·야진찬반차도·익일회작반차도(翌日會酌班次圖)·익일야연반차도·통명전도(通明殿圖)·진찬도·야진찬도·익일회작도·익일야연도·정재도(呈才圖)·채화도(綵花圖)·기용도·의장도·정재의장도·악기도·복식도 등이 있다.
또한 ‘전교’·‘연설’에는 이 진찬례를 베풀게 된 경위와 사정, 그리고 그 준비과정에서 있었던 논설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진연의궤
책례도감의궤(冊禮都監儀軌)
조선시대 왕세자·왕세손·왕세제·빈궁 및 왕비 등의 책봉에 관한 의식·절차를 기록한 책
조선시대 왕세자·왕세손·왕세제·빈궁 및 왕비 등의 책봉에 관한 의식·절차를 기록한 책. 1610년(광해군 2) 이후 조선 말기까지 저궁책례(儲宮冊禮)에 관한 의궤 17종과 후비책례(后妃冊禮)에 관한 의궤 11종이 있다.
저궁책례의궤류에는 왕세자·왕세손·왕세제의 책봉 기록 외 대비전(大妃殿)·왕후의 존호를 올리는 기록, 중궁이나 저궁의 책봉 기록, 세자의 관례(冠禮) 기록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책례도감의궤≫는 대개 권두에 목록이 있고 이어 좌목(座目)·전교(傳敎)·의주(儀註)·전문(箋文)·이문(移文)·내관(來關)·감결(甘結)·미포식(米布式)·상전(賞典)·일방(一房)·이방(二房)·삼방(三房)·별공작(別工作)·상의원(尙衣院) 등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좌목〉에는 도제조 1인, 제조 3인, 도청(都廳) 및 낭청(郎廳) 6∼7인으로 된 도감의 구성 명단이 수록되고, 〈전교〉에는 책례의 거행 일정이 기록되어 있다. 〈의주〉에는 책례·조알(朝謁)·수책례(受冊禮)·진사전의(進謝箋儀)·백관하왕세자(百官賀王世子) 등이 있는데 ≪국조오례의≫의 책례원의(冊禮原義)를 따르고 있다.
〈전문〉은 왕세자 등 책봉 당사자가 대전·대비전·중궁전에 진사(進謝)의 뜻을 표현한 것과, 백관·내각·태학유생(太學儒生)이 대전 등에 진하(進賀)의 뜻을 표현한 것 등으로 구분, 대개 사륙체로 되어 있다.
〈내관〉에는 상급 또는 동급 관청으로부터 도착한 공문, 〈감결〉에는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내린 공문, 〈이문〉에는 동등한 관아 사이에 오고간 공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미포식〉은 각 관아의 원역(員役)들에게 나누어주는 곡류나 포목의 출납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일방〉에는 교명(敎命)·교명궤(敎命櫃)·교명배안상(敎命排案床)·죽책(竹冊)·죽책갑(竹冊匣)·죽책내외궤(竹冊內外櫃)의 채색도가 있으며, 교명문, 교명의 직조식(織造式)·회장식(繪粧式)·봉과식(封裹式)·죽책문·죽책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방〉에는 옥인(玉印)·인통(印筒)·주통(朱筒)·인록(印盝)·주록(朱盝)·호갑(護匣)의 채색도가 있으며, 옥인봉과식이 있다. 〈삼방〉에는 연여(輦轝)·평교(平轎)·인마(印馬)·요여(腰轝)·채여(彩轝) 등의 채색도가 있고 책 끝에는 채색된 반차도(班次圖)가 있다.
저궁책례도감의궤류 가운데 1645년(인조 23)에서 1667년(현종 8) 사이에 만든 5종의 의궤에는 채색반차도가 없으나, 1610년에 엮은 의궤와 1690년(숙종 16)에서 1875년(고종 12) 사이에 엮은 12종의 의궤에는 채색반차도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후비책례도감의궤류에는 조선 말기에 만든 3종의 의궤에만 채색반차도가 있을 뿐, 그 이전에 만든 의궤 8종에는 채색반차도가 없다. 이 의궤들은 모두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國朝五禮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