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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집결지 : 2013. 03. 09일(토) / 도봉산역 (09:45)
▣ 산행코스 : 도봉산역-도봉탐방지원센터-광륜사-도봉서원-금강암-구봉사-성도원-용어천계곡-제6휴식처(시산제)-원점회귀-뒷풀이장소
▣ 동 참 자 : 17명 (갑무, 용우, 정남, 종화, 형채, 원우, 재홍, 경식, 원무, 삼환, 용복, 전작, 정한, 해황, 문형, 영훈, 근호)
▣ 동 반 시 : "달은 어둠 속에 집을 짓는다" / 임영석 < 32회 이오배 후배 사모님 낭송 >
▣ 뒷 풀 이 : 손두부요리, 해물파전, 모듬전에 막걸리 / '도들샘' (도봉산입구, 02-955-1558)
안개가 조금 낀 따뜻한 봄 날씨다. 지난주만 해도 시린 칼바람에 귓볼을 감싸고 다녔었는데, 경칩(3/5일)이 지나서인지 날씨가 완연히 따사롭다. 이제 두터운 겨울철 등산복은 장롱 속으로 들어가고 한결 가벼운 봄, 가을철용 등산복으로 갈아입었다.
지난해 4월초에 의식을 잃은 채 넘어져 뇌수술을 할 정도로 심각하게 건강을 잃어 그동안의 세월은 무척 힘들었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는 승용차도 폐차처럼 아파트 주차장에 그대로 방치하여 두었는데, 이미 배터리가 방전돼 운행을 할 수 없는지가 오래되었다. 때마침 개인사정상 외국에 가 있던 손아래 처남이 내 집을 방문, 승용차를 빌려 쓸 일이 있다고 하여 어제는 배터리를 교환, 처음으로 드라이브를 하였다. 내 건강은 산신령과 하나님의 보호인지, 산우들의 나를 위한 염원인지 많이 회복된 상태이다.
처남은 전철로 가지 말고 승용차로 본인이 살았던 도봉산역 근처에 태워 주겠단다. 처남의 개인적인 일도 있겠지만, 승용차를 어느 정도 움직여 봐야만 했었다. 교통체증을 예측, 7시 반경에 집을 나섰다. 약 3년 전까지만 해도 도봉산의 암벽에서 ‘릿지(ridge)’를 즐겨했던 처남은 지금도 70대 후반의 한 노인이 ‘도봉산’ 광륜사 뒤편의 암릉에서 ‘릿지 교육’을 강행하고 있을 것이라 한다. 연세가 많은 노인네가 건강에 욕심이 강한지? 아님 손가락의 힘이 산행에 꼭 필요한 것인지? 궁금한 일이다.
토요일이라 많이 막힐 것으로 예상했던 동부순환도로는 막히지가 않고 순조롭게 잘 운행, 도봉탐방지원센터 앞까지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광륜사 뒤편 집결지에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보다 너무 빨리 온 것만 같아 도봉산역으로 이동하였다. 7호선의 도봉산역(대합실)으로 갔었을 땐 용우 총장님이 대합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철 내에서 항상 보는 모양새 이지만, 대부분의 산우들이 도봉산역에 도착하기까지 스마트 폰을 활용, 좋은 글을 보내기도 하고 서로들 ‘어디쯤 가고 있다’며 심심함을 면하고자 카톡 채팅놀이를 하고 있었다. 조 총장님이 보냈던 집결시간인 09시45분까지 15명의 산우가 모였다. 임용복 산우는 길 건너 만남의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정남인 재경 광주고 산악회원들이 집결하기로 되어있는 광륜사 뒤편으로 먼저 가 있어 오늘 참석인원은 17명인 것 같다.
광륜사 뒤편에 도착 하였을 때는 20회를 기준으로 하여 선배님들은 제법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으나 21회 이하의 후배님들은 참석인원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우리들의 몇 년 전의 심정과 같은 현상일까? 나이 차이가 한참 많은 선배님들과 함께 산행하는 게 그리 달갑지가 않는 모양이다. 정남인 시산제를 지낼 장소를 안내하기 위해 이정표를 붙여 가며 용어천계곡(제6휴식처)으로 먼저 출발하였단다. 정남인 내년도부터 재경 광주고 산악회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금년도엔 시산제 장소를 당초 집행부에서 사패산으로 정하였으나 많은 인원이 식사를 하기에는 좁아 용어촌계곡으로 장소를 변경했다고 한다.
26회 김영록 후배의 사회로 산악회 회장님(19회 조성갑 선배님)의 인사의 말씀, 시산제 선물(등산용 양말)과 제물(시루떡, 막걸리)을 각각 제공받아 배낭 속에 넣은 후 선배님들부터 먼저 시산제 장소로 출발하였다. 날씨가 많이 풀려 따뜻해서 인지 산행길의 좌측 계곡에선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약 10여분을 오르니 서울시에 하나 밖에 없는 서원, '도봉 10대명소'중의 하나인 '도봉서원'이 공사 중에 있다. 서울시(도봉구청)에서는 기념물 제28호인 '도봉서원'을 내년까지 복원사업을 하고 있단다.
도봉산을 올라가는 산행코스 옆에는 자그마한 암자와 사찰들이 많다. 산행로 우측엔 여승만이 기거하는 조용한 '도봉산 금강암'이 있고, 더 올라 좌측엔 약사여래불을 모신 '구봉사'가 보인다. '구봉사'엔 무너져 가는 범종각과 대웅전, 그리고 정문에서 뒤편을 보면 큰 금빛 좌불상이 보인다. 사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박하기만 하다. '구봉사' 위쪽에는 작은 폭포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 이 곳 위 계곡의 육교명칭을 '폭포교'라 명하였나 보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조금 더 오르니 '성불사'로 향하는 육교(삼거리교)가 있고 바로 앞에 '성도원(成道院)' 이란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름으로 봐 처음엔 무슨 기도원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담한 절이라고 한다.
더위를 참지 못하고 우이암과 자운봉, 마당바위로 갈 길을 표시해 놓은 이정표의 옆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모두 겉옷을 벗어 배낭 속에 넣는다. 조 총장님은 캔디('달고나')를 드시면 피로가 풀린다고 하며 하나씩 나눠 준다.
'문사동(問師洞)'이란 안내문이 바로 곁에 있었다. 바위에 '문사동'이라는 조선시대 각자가 초서로 새긴 것은 계곡을 멋지게 표현, 문사동의 의미는 '스승을 모시고 시원한 계곡에서 스승이 강론을 하고 제자들이 뜻을 물어보는 계곡'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단다. 조선시대에 그 당시 깊은 산중이었을 이곳에 왜 이러한 각자가 새겨져 있을까? '군자(君子)의 도(道) 실현'을 가장 중시했던 조선시대 학자들은 군자의 도를 가르쳐 주는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이 아무리 깊은 계곡에 숨어 있어도 찾아 갔다고 한다.
이 글씨는 도봉계곡 내 도봉서원과 관련된 조선선비가 새겨 놓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그 선비는 굽이굽이 흐르는 도봉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멀고 먼 학문의 길을 떠올렸을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멋과 철학을 우리는 '문사동' 이라는 각자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도봉계곡의 바위에 초서로 새겨진 문사동 마애각자를 이해한 후 다시 땀을 훔치며 오른다. 우이암과 주봉, 용어천계곡으로 갈라진 이정표에 안내 표지가 붙여 있었다. 집행부에서는 광륜사 뒤편 집결지에서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잃을 것을 방지하기 위해 A4용지에 안내표를 각 기수별로 나눠 주었다. 용어천계곡은 여름철에 많은 피서 등산객들을 피해서 이곳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도봉산이 암반으로 형성된 산이지만 암벽에 소나무들이 그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멀리 앞쪽에 선인봉과 자운봉이 보인다. 용어촌계곡 입구에서 주봉 방향으로 약 20여분을 오르자 앞에 플랜카드들이 붙여져 있고, 확성기 소리도 들린다. 재경 광주고총산악회 뿐만 아니라 '열린토요산악회'외 2개의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있었다. 제경 광주고 총산악회 시산제의 장소는 맨 위쪽으로 정남이가 선정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높은 곳이 좋은 곳이다.
시산제를 지내는 장소의 바로 옆에 우리 시산회의 휴식처를 정하고 인원파악을 해 보니 용우, 정한, 영훈 산우가 보이질 않는다. 한참 후에 상봉을 하게 되어 알게 되었지만, 좋은 날씨에 정신없이 오르다 보니 주봉 가까이에 까지 오르다가 일행을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어 되돌아 시산제를 지내는 곳을 찾아오는 못난 추억을 남겼단다. 영훈 산우는 간혹 앞만 보고 걷다가 잘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시산제의 자리를 만들고 조성갑 산악회장님의 맨 처음 제례와 선배, 후배님들의 순으로 산신령님께 산행의 예를 빌었고 우리 20회 시산회는 다음의 집행부로 선정되어 종,헌례를 지내다 보니 맨 마지막으로 정남과 전작 시산회 회장님, 조 총장님, 형채 전 회장님 그리고 몇몇 산우들이 대표하여 시산제 산행의 예를 표했다.
우리들이 만난 것은/ 우리들이 건강한 것은/ 우리들이 행복한 것은/ 바로 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을 통하여 우리는 삶의 진리를 배웠고/ 산을 통하여 우리는 겸손을 배웠으며/ 산을 통하여 우리는 봉사와 나눔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산에 대한 감사함과 경외심, 공경심을 표하고/ 산 사랑의 예를 올리겠습니다/ 안전하고 행복한 산행을 하게 해 달라고/ 산신령님께 정성을 다해 빌었습니다...
준비해 온 제물과 음식(홍어, 눌린 돼지머리, 묵은김치, 막걸리, 떡, 과일 등)을 맛있게 음복하고, 동반시를 낭송하는 시간이다. 나의 순서이기에 어제 정남으로부터 메일로 전송을 받아 몇 번 낭송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산우들은 오늘 시산제 음식 준비에 수고를 많이 하신 32회 이오배 후배님의 부인께 낭송을 부탁 하잔다. 처음에는 사양을 지극히 원했으나 마지못해 시 낭송을 하신다.
역시 시 낭송은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이 좋을 것 같다. 지난번 덕유산 산행 때도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산악회'의 총장님으로 수고하시는 성복용 조사관님께 동반시 낭송을 부탁하였었는데, 동반시의 낭송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듣기가 너무나 좋았고, 시적인 분위기도 또한 한층 감흥이 있어서 좋았다.
"달은 어둠 속에 집을 짓는다" / 임영석
까치가 은행나무 가지 사이를 파고 집을 짓는다
그 사이 달빛도 어둠을 파서 집을 짓는다
처음에는 손톱 같더니, 그 손톱 같은 사랑을 키우더니
치악산 소나무 위에 걸어놓는다
나, 하루 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바라보면
둥근 달, 치악산 솔바람소리를 껴안고
일 년 열두 달 허물고 짓고 허물고 짓다가
행구동 저수지 물속에 앉아 참선(參禪)을 한다
저수지 물고기 함께 참선을 하다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물 밖으로 뛰어 오르며 파문을 일으킨다
그 파문 속에서도 달은 너울너울 춤을 춘다
치악산 그림자 저수지 물속에 들어와 더위를 식히며
어둠 속에 집을 짓는 달을 내려다 본다
몇 년을 내려보았는지 치악산 눈빛은 능선 따라서 길이 나고
머릿결 같은 앉은뱅이 나무 구름 한 점 잡아두지 못하고
바위 곁에 앉아 어둠 속에 집을 짓는 달만 바라본다
나, 나는 바라만 봐도 현기증 난다
저수지 물속 치악산은 거꾸로 매달려 나무를 키우고
달은 그 치악산 머릿결 같은 나무에 달빛을 엮어 집을 짓는다
이 시는 임영석 시인의 '어둠은 묶어야 별이 뜬다(한국문학도서관, 2006.5.5)'라는 시집의 제3부('봄비는 푸른 희망을 잡아당긴다')에 실려 있다. 시집의 시에는 곳곳에 깊은 어둠이 배어있다. 이 어둠은 삶 속에서 겪게 되는 많은 고통과 상처로 세월이 누르는 무게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에서 이러한 어둠은 빛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며 빛을 존재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삶은 스스로의 진정성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시적 언어의 표현 기법이 두루 들어간 시 이었고, 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시를 추천한 정남이 산우는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시' 라고 한다. 함축과 모호성이 들어가고 극적인 은유와 상징, 의인(擬人)도 들어간 시이다. 이 시의 크라이맥스는 '치악산 그림자 저수지 물속에 들어와 더위를 식히며 어둠 속에 집을 짓는 달을 내려다 본다' 의 부분이다.
7년을 송사에 휘말려 지내온 시간들이 정남 산우에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단다. 극적으로 합의는 했다고 하지만, 결과는 이익은 제3자가 가져가고 양쪽 모두가 패자란다. 순간의 욱한 감정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지만, 대신 인생 공부를 많이 했으므로 큰 손해만은 아니란다. 이제는 다 털고 시 공부를 열심히 하시게나. 또한 산 지킴이나 숲 해설가 등 좋은 취미생활도 겸하시어 건강한 삶을 사시길 바라네.
단체 증명사진 촬영은 26회 김영록 후배님에게 부탁하였다. 매년 재경 광주고 산악회의 행사 때마다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고마움을 전했다. 카카오스토리에 가끔 산행사진을 올리고 있는 김영록 후배님께 따뜻한 격려의 말도 전하였다.
산행의 즐거움을 여러 산우들과 함께 따사로운 봄볕을 느끼며 하산할 시간이다. 산우들은 시산제 때에 사용했던 쓰레기 봉지들을 자진해서 들고 내려간다. 얼마나 착실하고 모범적인 산우들인가. 도봉 주능선과 보문능선, 또한 용어촌계곡에서 흘러 합치는 도봉계곡의 물은 깨끗하고 가슴 속 깊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서 부터는 등산객들이 시골의 5일장의 시장길처럼 복잡하기만 하다. 뒤풀이 장소를 계곡수가 보이는 한적한 곳을 잡으려다 말고 메뉴가 다양한 '도들샘'이란 식당으로 들어섰다. 손님은 팀당 2~4인으로 몇 팀밖에 없었으나 조금 후 광고 22회 후배님들이 사모님들과 함께 곁의 좌석을 메운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시산회와 재경 광주고 산악회의 산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안산, 즐산을 위해 수차례 건배를 하였고, 정남 왕회장의 뜻 깊은 협조에 축하를 겸하였다. 특히 근호 산우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근호 산우가 뒤풀이 비용을 치렀다. 고마운 일이다. 경조사에 참석하는 것을 보아도 우리의 모임은 진정 알차고 보람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산우는 없다.
지난 2월27일(수), 한민족독도사관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독도음악회가 세종문화회관(대극장)에서 있었다. 독도사랑협의회 회장인 시인 박정순(호 난설) 님께서 표를 구해 드릴 테니 우리 시산회 회원 중 뜻이 있는 분들이 함께 감상하실 것을 원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를 포함하여 두 산우밖에 참석하지 못하여 결국은 귀중한 표가 사장되었기에 ‘난설’님께는 결례를 저지르고 말았었다.
금년의 겨울은 춥고 외롭기만 하다. 하루빨리 따뜻하고 꽃 피는 봄이 왔으면 좋겠다. 다음 산행은 당초 정선의 소금강에서 설악산(울산바위, 권금산성)으로 변경하였나 보다. 장거리 산행의 기금 충당과 원활한 집행을 위하여 조 총장님께서는 자동차보험 등의 보험가입 협조를 부탁하신다. 지금까진 산우들의 협조가 전반적으로 잘 되어 왔으나 우리가 벌써 노년에 들어서인지, 개인적인 사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협조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아무쪼록 산우들의 건강과 협조를 기대하며, 재미있고 즐거운 산행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시산회 파이팅!
2013년 3월 13일 김종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