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월정(弄月亭)>
화림동 계곡의 압도적인 경관을끼고 있는 정자이다. 배산임수의 지형에 뒤로는 황석산을 아래로는 남강을 끼고 있다. 남강의 맑은 물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너럭바위 사이로 흘러간다. 최근에 다시 지은 정자라도 전체적인 아름다움이 반감되진 않는다.
1. 방문지대강
명칭 : 농월정(弄月亭)
위치 : 경남 함양군 안의면 농월정길 9-13(월림리 산 92-1)
전화 : 055-963-8141
입장료 ; 무료
방문일 : 202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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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개
박명부(朴明榑, 1571~1639)가 병자호란 강화 후 1638년에 지었다. 박명부의 자는 여승(汝昇), 호는 지족당(知足堂),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590년(선조2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진주대첩시 장렬히 전사한 함양 출신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세 사람이 지었다는 설도 있지만 박명부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614년(광해군 6)에 이이첨(李爾瞻)·정인홍 등이 광해군)을 종용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살해하고 인목대비(仁穆大妃)도 유폐시키자, 그는 직언으로 항소하다가 관직을 삭탈 당하고 축출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부수찬(副修撰)으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자 그 해 여름에는 대구부사(大邱府使)로 임명되었다. 그 뒤에 예조참판(禮曹參判)으로 재임 중에 병자호란을 당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강화(講和)를 반대하였다.
끝내 성하지맹(城下之盟)이 맺어지자 그는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농월정(弄月亭)을 짓고 은거(隱居)하다가, 1638년(인조 16)에 예조참판(禮曹參判)·한성좌윤(漢城左尹)·도승지(都承旨) 등에 연이어 제수되었다. 저서로는 『지족당문집(知足堂文集)』 3책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2) 농월정 현황 및 복원
2003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소실되어, 함양군에서 1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015년에 복원한 것이다. 농월정은 월연암 너른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농월정은 달을 희롱하는 정자, 달과 노는 정자라는 말이다. 아마도 달빛이 너른 바위에 반사되어 더욱 찬란하게 비쳤으리라.
농월정의 제자는 명나라 학자 주지번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화재 소실 이전의 제자 말이다.
정자 옆에는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라고 새겨져 있다. 지족당은 정자를 지은 박명부 선생이고, 장구(杖屨)는 지팡이와 짚신을 이르는 말로, 이름난 사람이 머무른 자취를 일컫는 말이다. 박명부 선생이 노닐던 곳이라는 말이다.
함양은 빼어난 인물과 경관으로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리웠다. 경관의 핵심은 바로 이 화림동계곡인데, 거연정, 군자정, 영귀정, 동호정, 람천정, 농월정, 구로정 등 7개의 정자가 남아 있다. 모두 '물좋고 정자좋은 곳'에 조성되어 있다.
특히 농월정은 뛰어난 경관으로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어 있다. 둘레길 '선비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환혼>을 촬영하여 널리 알려졌다. 단지 안에서 식사와 커피가 가능하다.
2) 농월정을 읊은 시
(1) 박명부(朴明榑)의 《지족당집(知足堂集)》 권1에 〈농월정에 적다.〔題弄月亭〕〉
길 옆에 있는 별천지의 그윽한 곳을 누가 알리오
산은 빙 둘러 있고 물은 머무는 듯하네
선돌을 비친 못의 물은 맑고도 가득차고
창에 찾아든 푸른 기운은 걷히다가 다시 뜨네
주린 아이 죽으로 입에 풀칠하여도 화내지 않고
손님이 와서 집에 머리를 부딪쳐도 싫어하지 않네
노는 사람들 일 없다 말하지 말게나
늙어서 멋대로 속세를 떠나니 또한 풍류일세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인용)
(2) 次朴知足堂 明榑 弄月亭韻 辛未
지족당 박명부 시 농월정에 차운하여 - 신미년(1871)년에
性齋先生文集 卷之一 / 詩 (성재선생문집 권지일 / 시)
성재 허전(許傳 1797~1886)
勇退故山卜築幽(용퇴고산복축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산에 가려 지은 집 그윽하니
高風逸韻百年留(고풍일운백년류) 고상한 품격에 숨은 운자가 백년을 머무른다.
樓臺得月懷中照(누대득월회중조) 누대에 달이 뜨니 품안을 비추어서
軒冕如雲夢外浮(헌면여운몽외부) 관직이 구름같고 꿈밖을 떠다녀 아득하다.
方丈蓬萊平地上(방장봉래평지상) 방장산 봉래산이 평지 위에 있고
角巾蒻笠貴人頭(각건약립귀인두) 각건 삿갓이 귀인의 머리에 있구나.
此間眞樂誰能識(차간진악수능식) 이곳의 참 즐거움 뉘라서 능히 알리오.
亭下悠悠水自流(정하유유수자류) 정자 아래 유유히 절로 물이 흘러가네.
(번역은 필자)
*일운은 지족당이 지은 <제농월정>을 말한다. 헌면은 높은 관리가 쓰던 관. 약립은 부들로 만든 삿갓
(2) 농월정에서 원운으로 읊다〔弄月亭用原韻〕
조긍섭 작, 암서집(巖棲集) 수록
현포와 요지가 멀고도 그윽한데 / 玄圃瑤池逈且幽
산천의 신령이 이 사이에 옮겨와 머물렀네 / 巨靈移向此間留
큰 물결은 맷돌처럼 지나 찬 깁처럼 미끄럽고 / 洪濤碾過氷紈滑
어지러운 폭포가 감돌아 눈이 날리는 듯하네 / 亂瀑瀠回雪乳浮
미친 듯이 부르짖고자 할 때 함께 손뼉 칠 만하고 / 狂叫可堪同拍手
억지로 시상 떠올리며 때로 다시 머리 긁적이네 / 苦吟時復爲搔頭
또한 알리라 달을 희롱하며 퉁소 부는 무리가 / 也知弄月吹簫侶
아마도 당년의 품격이 가장 뛰어났음을 / 合是當年第一流 (한국고전종합 db 인용)
원운은 지족당의 '제농월정'을 말한다. 조긍섭은 개화기의 인물로 박명부보다 딱 300년 뒤의 인물이다. <남명집> 중간에 참가하여 여러 문인들과 사귀면서 학문에 몰두했다. 합병 후에는 두문불출하며 집필하고 정산서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다. 1919년 3월에는 <일본총독과 동포대중에게 보내는 글>을 쓰다가 구속을 당하기도 했다.
이 외에 강수환, 김윤수, 최익현, 하겸진, 곽종석 등등의 농월정 시가 많이 있다. 현대 시인들도 농월정을 많이 노래했다.
농월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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