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가 아담 샬 신부에게 보낸 편지
“어제 당신이 보내주신 천주상ㆍ천구의(天球儀)ㆍ천문서 및 그 밖의 여러 양학서(洋學書)등은 반갑
게 받았으며 이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먼저 그중 두서너 가지 책을 읽었습니다. 정신을 수양
하고 인격을 가다듬는데 관한 참으로 높고 먼 교리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로지 어둡고 깨지 못하여 이것을 모르고 있었으니, 이 교리는 우리들의 지식의 빛이 될
것입니다. 천주상은 벽에 매달아 놓았으니 보는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줄뿐더러 이 세상의 더러운 티
끌을 씻어 내리는 것 같아서 여러 가지로 느껴지는바 많습니다.
천구의와 여러 가지 책들은 이제까지 이 세상에 이러한 것들이 있었음을 몰랐습니다. 이런 것을 받으
니 꿈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것은 수백 년 동안 하늘의 움직임과 맞지 않아서 헛된 것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이제 참으로 보기 드문 물건을 얻었으니, 무엇이 이보다 더 반가우리요.
내가 우리나라에 돌아가면 궁중에서 쓰게 하고 책을 많이 박아서 글 보는 사람들에게 펴려고 합니다.
그리하면 사막과 같이 메마른 우리나라가 학문의 전당으로 화할 것입니다. 사랑과 은총을 받은 우리
국민은 서양 사람의 과학에서 배운 것을 모두 감사할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다 같이 외국인으로서,
큰 바다를 건너 낯선 땅에 와서, 서로 만나 즐거이 사귐이 핏줄기를 같이한 가족들과 같으니, 천리(天
理)의 깊고 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컨대 사람의 마음이란 비록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지식을 사랑함으로써 서로 알아내고 합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서양의 서적과 천주상을 우리나라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우
리나라에는 아직 천주교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릇된 나쁜 종교라고 천주의 높고 귀함을 더럽
힐까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천주상을 당신에게 돌려보내고 실수함이 없게 하고자 합니다. 나도 당신에 대한 감사의 뜻
을 나타내는 갚음으로 우리나라의 귀한 물건을 보냅니다. 그러나 당신이 베푼 은혜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못되옵니다. 삼가 말씀드립니다.”
註
‘여지구(輿地球)’
땅이 둥글게 생겼다는 사실을 조선의 지식층이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 중국에 와 있던
서양 선교사들과 접촉하면서 부터이다. 특히 서양 선교사들이 그린 세계지도가 전해지면서 땅이‘지
구(地球)’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와 함께 지구의 모양을 본 떠 놓은 지구의도 17세기에 이미 전해
지게 되었다. 1645년(인조 23년) 청에서 돌아온 소현세자는 독일 출신의 선교사 아담 샬(湯若望)로부
터 ‘여지구(輿地球)’를 얻어 가지고 들어왔는데 이것이 기록에 남은 첫 지구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