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 간다 / 곽주현
뒷산을 오른다. 매일 아파트 아래 광주 천변을 걷다가 오랜만에 이곳에 왔다. 한 달쯤 되었나 보다. 아파트에서 산 입구까지 20여 분 걸어와야 오를 수 있어서 얼른 내키지 않는다. 바로 집 앞에 걷기 좋은 천변길이 있어 더욱더 그렇다. 평평한 길을 걷는 것보다 무등산 자락을 걷는 게 운동 강도가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몸은 가깝고 편한 길로만 가라고 해서 이곳에 자주 못 온다. 오르는 길의 중간 구간은 많이 파이고 굵은 돌이 많아 발길을 어렵게 했다. 그런데 그전보다 등산로가 잘 다듬어져 있다. 굵은 매트를 깔아 평탄하게 만들어서 걷기가 편하다. 빨리 걸었더니 땀이 난다. 모자를 벗고 가는데 뒤따르던 아내가 머리가 많이 길었다며 미용실에 다녀오란다.
내 머리를 다듬는 곳은 아파트 정문 건너편 미용실이다. 가까운 곳에 있어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곳에서 이발한다. 남자가 미장원에 다닌다고? 언제부터인가 그곳은 남녀 모두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장소가 되었다. 처음 몇 번은 선뜻 들어가기가 쑥스러워 주변을 빙빙 돌다가 아무도 없으면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스럼없이 문을 두드린다. 20여 분이면 머리를 손질할 수 있어 이곳을 이용한다. 이발소에 가면 피부를 부드럽게 한다며 뜨거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한참 동안 덮어 놓는 게 싫다. 비염이 심할 때 그러고 있으면 숨쉬기가 아주 불편해서다. 또한, 턱수염을 면도할 때 피부를 벗겨 내는 것처럼 깊게 해서 그곳과 멀어졌다. 미용실을 쳐다보니 빙빙 돌아가는 간판이 멈추어 있다. ‘어, 원장님이 외출했나? 몸이 아플까? 일요일이 아니면 문을 닫는 일이 없는데…….’ 걱정이 앞선다. 출입문 앞에 조금만 쪽지가 붙어 있다. “코로나 예방주사를 맞아서 하루 쉬려고 합니다. 내일 와 주세요. 미안합니다.” ‘그랬구나.’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인다. 주인과 손님 사이지만 오래 만나다 보면 친지처럼 가까워진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한 후 계속 여기만 이용했다. 헤아려 보니 벌써 12년째다.
그런데 이발소나 미용실 표식은 움직이는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그것의 유래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어느 것이나 빨간색과 푸른색 그리고 흰색으로 디자인되어있다. 붉은색은 사람의 동맥, 청색은 정맥, 백색은 붕대를 상징한다. 맨 처음 머리 손질을 담당했던 이발사는 외과 의사였다고 한다. 수술과 이발이 칼과 가위를 사용하는 기술이라 그랬다는 설도 있고 의사들이 수술하는 것을 꺼려서 밥벌이 수단으로 머리 다듬은 일도 함께했다는 말도 있다. 삼색으로 둥근 간판을 만든 건 프랑스 외과 의사인데 응급 환자가 빨리 찾을 수 있게 가게 문 앞에 높이 달아 놓았다고 한다. 이것이 어느 나라나 공통으로 사용되는 이발소의 상징이 되었다. 무심코 보아온 간판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놀랍다. 그렇지만 미용실 간판은 삼색이 없고 쭉쭉빵빵한 두 미인이 마주 보고 서서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아간다. 그 가게 옆 미용실로 들어가서 머리를 자를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손주 육아로 목포에 있다가 일주일 후에 다시 들렸다. 원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지난주에 왔는데 불이 꺼져 있어 걱정했다고 말하니 “아, 사인볼이요.” 불빛이 돌아가는 미용실 간판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머리 모양을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주문이 필요 없다. 단골손님이라 다 알아서 잘라준다. 가위를 쥔 손이 부지런하다. 40년 넘게 미용 일을 해서 그런지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예방 접종 후 몸살을 앓았다며 백신 종류에 따라 이런저런 부작용이 있다고 마치 자신이 전문가인 양 설명한다. 아는 것이 많은 분이다. 우리 동네 소식도 훤히 꿰고 있어 이곳에 오면 동네 소식을 대충 들을 수 있다. 지난해 6월,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학동 건물 붕괴 참사 해결 과정도 빼놓지 않는다. 아직 보상이 안 이루어졌고 어제는 시민단체가 위령비를 세워야 한다고 시위를 했단다. 그러면서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그런 것을 세우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냐는 비판도 잊지 않는다. 동네에 이비인후과 두 곳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저쪽 의사는 환자에게 냉랭하지만, 이 쪽분은 친절하고 치료도 잘한다는 평이 있다는 소문도 들려준다. 겨울철에는 농장 일을 안 하니 이때 기력을 보충해야 한다며 시내 어느 한의원(韓醫院)이 용하다며 권하기도 한다. 내 손주들 안부도 꼭 묻는다.
미용실이 깨끗해서 마음에 든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안 보인다. 자를 때마다 쓸어 내고 다음 손님을 의자에 앉힌다. 어느 머리방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머리 모양의 사진 한 장도 붙어 있지 않다. 빛이 잘 들어오는 창문에 작은 화분을 20여 개나 매달아 놓았다. 대부분 다육식물이고 요즈음 제철인 시클라멘도 활짝 피어 있어 마치 꽃 화분으로 만든 커튼 같다. 대기석 앞 탁자 위에 몇 개의 사탕과 신문, 시집 한 권이 놓여있다. 이런 단순하고 깔끔한 이런 분위기가 좋아 단골이 되었나 보다.
거울 속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든다. 매번 그랬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건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문을 열어 배웅한다.
첫댓글 좋은 단골 미용실을 두셨네요. 적어도 일 년에 열두 번은 만나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겠군요.
그래요. 인연이지요. 늘 편하게 이용합니다.
어디나 미장원은 동네 사랑방이군요.
저는 그런 수선스러움이 또 싫더라구요.
다섯 명이 모두 미장원이야기를 써서 정말 신기하네요. 하하.
이번 글은 모두 약속한 것 마냥 미용실 글이네요. 미용실이 동네 소식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