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편은 도움을 구하는 시로 분류가 됩니다. 시인이 어떤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다양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회개하는 시로 이해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7절에서 10절에 초점을 두고 원수들에게 박해를 당하는 상황에서 도움을 구하는 시라고 봅니다. 그렇게 보면, 1절에서3절에서 하나님이 징계하시고 책망하시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4절에서 7절에 초점을 두고 이 시가 심각한 병에 걸린 상황에서 지난 죄를 돌아보며, 자기의 아픈 것을 바라고 있었던 사람들을 원수로 이해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시편 6절에서 모든 구절들이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본격적으로 한절 한 절 살펴 봅시다.
먼저, 지난 시편들처럼 시인은 하나님을 부릅니다. 여호와여!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부름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주의 분노로 자신을 책망하지 말고 주의 진노로 자신에게 징계하지 마시기를 간구합니다. 1절을 다시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석을 하면, “주의 분노를 수단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진노로 화를 내셔서 시인에게 책망을 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얼마나하나님께서 무섭고 두려운 분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시인은 죄 때문에 자신에게 병이 생겼고, 하나님의진노로 자신에게 병이 생겼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대 사회에 일반적인 아주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욥이 병들었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죄를 회개하라고 옆에서 부지런히 말했던 것은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시인은 자신을 고쳐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본인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를 말하면서 하나님께 은혜를간구합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와 “나를 고치소서”라는 간청은 하나님이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치료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언약적인 고백에 호소하는것입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자가 없도다(신 32장29절).” 하나님이 모든 것은 주관하신다는 생각이 저번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2절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구원과 회복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이 될 때 구체화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시인을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너무 힘든 상황을 말합니다. 그것이 수척하였다는 말과 영혼도 매우 떨린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인의 절박함은 ‘어느때 까지니이까?’라는 말 속에 드러납니다. 아픈 사람들에게 이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언제나 나을까, 언제나회복되어 예전처럼 다시 살 수 있을까. 이것은 또한 시인의 고통이 육체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심각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 하나님께서 얼른 돌아오셔서 자신의 영혼을 건져 주시길 기대합니다. “돌아오소서”라는 간청은 회개나 회복,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의 건강을 회복하고, 지난 죄를 회개하고, 그래서 실제로 자신의 처지가 좀 더 나아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제 하나님의 사랑에 호소합니다. 이호소는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에 기초합니다. 여기서 주의 사랑은 지난 주에 보았던 “헤세드”라는 말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인애, 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과 자신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헤세드,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고 있는 사람이지요. 그것은 자신의 병을 고쳐주시고, 자신의 이 모든 상황을해결하실 분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일 오후에 말씀 드린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특별한 사랑입니다. 신자가 아니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하면서 우리의 상황을 놓고 기도하고 아픈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신자의 특권입니다. 이것을 다음 구절에 말해줍니다. 죄의 삯인 사망에서 하나님께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스올에서는 주께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은 죽은 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신자입니다. 살아있는 자이고, 스올에 내려가지 않는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자신의 비통함과 슬픔과 아픔을 하나님께 말합니다. 그는 밤마다 웁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고통 때문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고통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 자신의 쇠약함을 말합니다. 7절에 보시면 내 눈이 근심으로 쇠하여졌고, 원수들 때문에 눈이 어두웠다고 합니다. 눈은 사람의 전체적인 건강과 기질, 생각, 마음의 근원에 대한 은유로 많이 사용됩니다. 시인 자신의 힘이 바닥이 난 것이고, 육체의 쇠약함 때문에 그의 자존감도 떨어졌습니다. 마음도 낙심이 됩니다. 앞 길이 도저히 안 보입니다. 이런 기도를 볼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탄식과 기도에서 오랫동안 응답을 하지 않았던 같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병에 시달렸습니다. 기운이 완전히 다 빠질 만큼 빠졌고, 지쳤습니다.
그런데 8절에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주변에서 그 병이 너의 죄 때문이라고 계속해서 조롱하고, 혹은 그가 계속해서 아프기를, 또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원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원수들에게 자기를 떠나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울며 기도하는 자기의 기도를 다 들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끝이 안보이던 고난과 힘듦의 끝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인이병들기를 기다리고, 또 침상에서 아예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자들에게 대한 일종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승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원수를 갚아 주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앞의 구절들도 좀 다르지요. 앞에서는 하나님께 자신의 아픔과 쇠약해 진 것을 토로하다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이시고 주변의 원수들을 물리쳐 주심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오랜 기도 동안 시인이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고, 또 그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위해 움직이시고 그의 구원을 위해 행동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진 것입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기도가 상달 되었고 여호와께서 자기 자신의 어려움 가운데 임재하시고 역사하실 것을 기도하는 가운데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 확신이 8절에서 10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모든 원수들은 마침내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1절에서 시인의 뼈가 떨리고 그의 영혼도 매울 떨려서 두려움 속에 있었지만 이제 그 원수들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어느 때 까지이니까 라고 외친 고독한 그의 외침은 마침내 응답이 되었습니다.
오늘 시편 6편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애통하고 하나님이 주신 상황에서 하나님을 부르짖고 때로 하나님께 어느 때까지이니까 라고 호소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비천한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헤세드,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을 베풀어주시길 간절히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겟세마네 기도를 떠올립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에, 큰 슬픔과 고뇌에 차서 하나님 아버지께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한다는 사실에 애써 기도하셔서 땀이 땅에 덜어지는 핏방울 같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까지 예수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때까지니이까라고외친 시인의 외침이 십자가 위에 예수님께 메아리가 울립니다. 그럼에도 아드님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결국 죽음에서 부활시킴으로서 응답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멸시하고 부정하던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과 인내함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기도 제목을 가지고 오래 동안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계속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럴 때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나라고 원망 섞인 말이나올 때도 있습니다. 이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하나님을 더욱 구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기도의 응답을 늦추시고, 또 오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기도를 바뀌고생각을 바꾸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시인과 같이 오랫동안 병상에서 병과 사투하고 있을 때, 그 병이 마치 하나님의 진노와 같이 느껴지고,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 같이 느껴질 때에도 시인은 계속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원망이 섞인 것이라도 말이죠. 그 기도를 통해서 마침내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심을 경험한 것입니다. 아마도 몸이 차츰 좋아지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때 그의 원망과 탄식이 섞인 기도가 원수들을 향한 승리의 선포로 변하게 됩니다. 기도 가운데 힘들고밤마다 눈물 바다를 이루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고, 신뢰를 잃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응답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끝내는 응답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