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6 ㅡ 운이 좋은 사람 (사소)
그녀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홈쇼핑 사은품이나 시청자 사연을 생각없이 넣었다가 뜻하지 않게 당첨이 되곤했다. 또 숨이 꼴딱 넘어가 뛰어 기차를 탈 수 있게 된다든지, 더구나 기차 시간을 놓쳤지만 그때마다 무슨 조화로 연착이되서 탈 수 있었다. 이런 소소한 것들 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저절로 풀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억대 사기를 당할 찰나,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이 혹시, 하고 일러준 덕분에 손해를 모면했던 적도 있었으니, 그녀는 가끔 어쩌실려고 이러시는지 그 하나님의 사랑이 쬐금 부담스럽다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건 어릴 때부터 워낙 무엇에 대한 기대가 없었으니 잃을 게 없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어쩌다 좋은 걸 만나는 건 행운이란 생각때문이기도 했다.
처녀적 신림동 깔끄막 생활 때부터 시련으로 힘들더라도 밤에 늘 짧은 기도를 하고 잠드는 오랜 습관도 한 몫했을 거란 생각도 했다.
어느날 아침도 그녀의 운은 작동했다.
전 날 오후 사고가 난 자동차를 정비소에 수리를 맡기면서 키를 가져와 버렸기에 아침 일찍 서울로 출발하기 전 공업사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차 키가 없어서 수리도 못할 뿐만아니라 다른 차들을 막고 있어서 당장 키를 주고 가라는 것이었다. 이미 계산된 시간이 있는데 전철을 타기 전 공업사에 들러야했고, 어긋난 시간에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
전철로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없던 계획이 끼어들어 이미 연남동까지 디지털 드로잉 수업 가기를 포기하든지 묵직한 하양이를 움직여 혼잡한 도심 체증을 뚫고 가야했다. 평소 같으면 드라이빙은 그녀의 즐거움, 하지만 그날은 왠지 운전이 번잡하게 느껴졌고 호화롭게 택시를 이용하든지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했다. 그런데 차 키를 주고 하양이를 끌고 공업사를 막 빠져나오는데 내비가 안내한 곳은 기차역 뒷편 오랫만에 온 동네다. 순간 그녀의 머리가 바쁘게 움직이고 손은 코레일을 검색했다.
'영등포까지 가는 기차! 거기서 전철을 타면 평소보다 40분이상 절약되고 에누리된 시간을 보상 받을 수 있다.'
그녀는 예의 민첩함으로 재빨리 모바일 티켓을 끊었다. 이런 교통 편이 있는 줄 미처 찾아보지 못했고, 집 가까이 있던 srt나 전철만 이용하곤 했는데 숨겨진 지름길을 발견한 것 같으니 갑자기 오진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역에 있는 공용 주차장에 하루 종일 차를 세워두면 지출이 발생하는데, 그날따라 좀처럼 찾기 어려운 역주변 골목 사이에 주차 공간을 딱! 발견한 것이다.
기분 좋게 주차를 하고 골목을 빠져나와 CU에가서 담배를 사서 나오다가 내친 김에 월드콘도 하나 샀다. 가볍게 신은 운동화, 하얀 면바지, 계절이 바뀌면서 꺼내 입은 하늘색 레이온 셔츠도 하늘 하늘 맘에 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에 오르며 오늘따라 상쾌하고 가볍다. 늦지 않게 기차에 타서 달콤한 월드콘을 먹으며 기차 밖 풍경을 감상할 생각을 하니 작은 행복감이 밀려온다.
'먹고나면 맨 아래 바삭한 삼각 콘 비스킷.
아! 어쩜 냉동고에서 나와서도 그렇게 바삭하지? '
벌써 비스킷을 입에 문 것처럼 뽀송한 생각에 혼자 히죽거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만 이런 가벼운 기분인 건가?'
순간 에스컬레이터에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차!'
그런데 상쾌한 기분이었던건 그녀만 마스크를 안했기 때문이었고 순간, 당황이 밀려왔다. 급히 손을 가방에 넣고 휘저어도 마스크가 도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분명 가지고 나왔는데 어디갔지? 흐 어쩌지? '
마구잡이로 몇 번이니 뒤져도 없다.
기차올 시간은 1분도 채 남지 않았고,
승차 거부될 게 뻔하고,
편의점에 들어갈 시간 여유는 없다.
'어쩌지?'
역무원 사무실이 보인다.
그녀는 뛰어가 문을 열자마자 다짜고짜,
"저기 죄송한데요. 마스크 하나만 주실 수 있으세요? 지금 기차를 타야해서요"
다급한 여자의 외침에 역무원 둘은 놀라 허둥지둥 서랍을 뒤지고 마스크를 찾는다. 낚아채듯 마스크를 건네 받고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그녀는 하얗고 도톰한 역무원표 마스크를 쓰고 뛰었다.
간신히 출발하기 전 기차에 오를 수 있었기에 다시금 안도하며 오늘도 운은 통했다 생각하며 좌석을 찾아 앉았다. 새로운 노선 발견. 시간 단축. 무료주차. 마스크 급조달. 기차 놓치지 않기 등 그녀는 이렇게도 필연적일 수 있음에 다시금 감격했다.
'휴! 됐다. 히히! 아슬아슬하지만 된단 말야'
생각하며 아까 가방에 급히 넣었던 월드콘을 꺼내려다가 그녀는 목줄에 달랑거리며 꼭 붙어있는,
집에서부터 걸고 나왔음직한 핑크색 마스크를 포착하고 이내 실소했다.
'하나님이 오신다면 다소 헐렁하고 비스듬히 열린 문을 통과하시기가 더 편하시지 않을까?'
그녀의 어리버리함을 정당화시키는 어느날.
첫댓글 너무 재미있어요 ㅎㅎ
우리 글쓰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반짝 반짝 기쁜 빛을 선사하시는 사소님♡
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분이 여기 또 한 분 계시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