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제미-07
체시로를 달래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네소타까지는 너무 먼 길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살아서 도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체시로가 동행을 하니 그나마 작든 크든 힘이 될 것이지만. 나는 차에서 나와 주변을 살폈다.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다 챙겨야 한다. 찦은 시동이 걸렸다. 깨스는 1/4정도 있다. 걸어가서 혼다 SUV를 찾아 타기에는 너무 멀리 있다.
"헤이! 사제미. 담배도 챙길까요. 이 사람 주머니에 담배가 있어요."
오~ 마이 갓. 탱큐다. 베리 탱큐다.
"그래. 조심해서 뒤져 있는 대로 다 가져와요. 내가 지금 고픕니다."
나는 체시로가 붙혀 준 담배를 입에 물고 깊이 빨았다. 물론 나는 토론토 다운타운이 인정한 뻐끔담배이다. 그래도 지금은 이 담배가 내 정신을 살리고 있다. 담배 피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 순간 피는 담배 한 개피의 효능을. 체시로는 그들이 사용했던 스나이퍼 용 텔레스코퍼가 붙어 있는 M16S 한 정과 탄약 4케이스, 그리고 무전기 한 대를 챙겼다. 나는 나이트비젼 망원경과 쓰러진 놈의 산소 마스크 연결 호스를 헬멧에서 떼어 내었다. 길이는 1미터 지름은 2센티 정도되었다.
후레쉬 2개와 구급대를 챙겼다. 그 속에는 패인 릴리프가 든 3개의 일회용 주사기가 있었다. 이 정도면 좋았다. 우리 둘은 이것들을 사용하지 않길 바라지만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마음을 든든하게 하였다. 찦에는 물과 약간의 비스킷과 져키가 있었다. 시각은 오전 11시. 우리는 출발 준비를 마쳤다.
"사제미. 우린 어느 길로 가는가요?"
그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돈이 안들거든.
"첫번째 길은 나이아가라를 건너 버필로를 경유하여 시카코로 가는 길과 다른 하나는 쏠트 메리를 지나 미국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가는 길이 있어요. 험할 수는 있지만, 두번 째 길로 갈 겁니다. 어때요?"
"사제미. 우린 미네소타(Minnesota)의 그랑 메라이스(Grand Marais)까지 먼저 가야해요. 그리고 Eagle Mountain으로 갈 텐데, 그런 길로 가면 되는가 요?"
"Grand Marais 그리고 Eagle Mountain? 맞아요?"
"예. 맞아요. 그런데 저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몰라요. 지금은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잖아요. 어떻게 찾아가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렙탑 컴퓨터가 생각났다. 그건 아마도 혼다 SUV에 있을 것이다. 그녀의 빽쌕에. 그리고 내 빽쌕도 그곳에 있을 것이고. 먼저 왔던 길로 가야만 했다.
"오케이. 먼저 SUV로 갑시다. 그랑 마레이스(Grand Marais)까지는 여기서 약 1400km 정도 거리이지만, 둘이서 운전하여 문제가 없다면 모레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전에 오하이오를 갔었는데 그리로 가서 버팔로로 돌아 온 적이 있어서 압니다. 랩탑은 있어야 다음 목적지를 찾을 수 있을거요. 할 수 있겠어요?"
체시로는 놀란 얼굴을 한 채 나를 보며 나에게 로 다가왔다. 나도 놀라 뒷걸음을 치며 소리쳤다.
"헤에이! 체시로.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요. 정신차려요."
"사제미. 이리 가까이 오세요. 그렇게 놀라지 말고. 저 좀 안아줘요. 당신 가슴이 필요해요."
그녀는 내게로 다가와 쓰러지듯 안겼다. 나는 꼭 안았다.
"갈 거예요. 이제는 당신과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저를 꼭 데려 가 주세요. 사제미. 저는 시카고 대학에서 학부를 마쳤어요. 그때 미네소타 주변을 여행한적 있어요. 국립공원도 가봤어요. 그곳을 찾는데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그는 안긴 채 고개를 들고 말했다. 진정성이 있었다. 나는 힘주어 체시로를 더 꼭 안았다.
"체시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나도 모르겠 오. 그러나 한국 속담에 '궁즉통(窮即通)'이라는 말이 있오. 우리는 달리 방법이 없잖오? 당신이 더 중요하니 꼭 당신을 살려 그곳까지 데려 가겠오. 됐지요?"
그녀는 말 대신 입술을 포개 왔다. 우리는 한참 그렇게 서로를 마음을 교환하여 느끼며 있었다.
"자. 어서 타요. 출발합니다."
우리는 찦에 타고 오던 길을 찾아 짐작으로 나아갔다. 한적한 오프 도로는 가을로 풍성하였다. 이곳 한적한 곳도 피난 차량들이 흩어져 있었다. 차 한 대에 서너 명이 타거나 밖으로 나온 채 쓰러져 죽어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보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우측으로 커버를 돌아 언덕진 길을 내려가니 바로 앞 도로 옆에 SUV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제미. 저기 우리 차! 아직 가지 않고 우리를 기다렸는가 봐요 ㅎㅎㅎ.
그녀도 반가워 소리치며 웃었다. 나는 찦을 옆에 주차하고 에스유비(SUV)를 살폈다. 이상은 없는 것 같았는데 키가 없어서 문을 열수가 없었다. 내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체시로가 나에게 힌트를 주었다.
"사제미. 비상키는 어디에 두어요?"
아! 그렇다. 비상키. 나는 비상키를 검은색 테이프로 전파가 뚫고 나가지 못하게 완전하게 감아 싼 후 자동차 운전석 바깥쪽 밑바닥 타이어 옆의 서스펜션을 연결하는 타이로드 윗쪽에 붙여 놓았다는 생각이 떠 올랐다. 그곳이 가장 안전하였다. 착한 그 놈은 그대로 붙여 있었다. 이 넘은 전자키였다. 200미터 안에서는 모두를 할 수 있었다. 시동에서 비상등 발현, 트렁크 여는 것 등, 좋은 넘이었다.
"헤이. 체시로~ 여기!"
나는 환호하며 손바닥에 든 키를 보여 주었고, 체시로는 기뻐서 팔짝 뛰었다. 우리는 하이 파이브를 하였다. 그리고 찦에 있던 필요 물품들을 챙겨 에스유비로 옮겼다. 그녀는 빽쌕에서 랩탑 컴퓨터를 찾아 챙겼다. 체시로와 나는 여행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가 주는 즐거움을 느꼈다. 여행의 즐거움은 준비물을 챙기면서 시작된다 였다. 우리는 잠시 주변을 잊었다. 나는 창고같은 뒷 트렁크에 접이식 의자와 침낭, 그리고 라면 한상자와 일회용 버너와 3개의 부탄깨스와 알미늄 냄비와 커피 포드와 야전용 커피잔 그리고 한 번들의 나무 젓가락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내 삶을 짐작할 것이다. 아! 알미늄 매트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지난 밤에 체시로와 함께 덮어쓰고 걷던 길을 찾아 나섰다. 그건 얼마가지 않아서 발견했다. 내가 죽어 있던 광장이 멀리 내려 다 보이는 오솔길 나무 등걸에 걸려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필요할 것이고 당장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에스유비로 돌아오자 체시로가 반기며 말했다.
"사제미. 배고픈데요. 뭐 먹게 해줄 수 없어요?"
ㅎㅎㅎ 숫제 응석이다. 어떻게 이런 위중한 상황에서 저런 생각이 날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 배도 고팠다.
"오케이.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라면 맛있게 끓여 줄 테니."
우리는 시체가 즐비한 곳이 보이는 도로변 언덕에서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갈 길이 멀어서 더는 가을하고 놀 시간이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떠 산등성을 비추니 온통 붉은 색으로 가을이 불타고 있었다. 맑은 공기와 고즈넉한 분위기는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하였다. 이곳에는, 더 이상 쓰러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각은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이제 우리는 출발하여야 했다.
"체시로. 준비 되었지요?"
"예. 배는 되었고… 그런데 잠깐 이리 와 보세요."
"왜, 또?"
"ㅎㅎㅎ 그게 아니고요. 당신이 챙긴 물품 중에 페인 릴리프가 있더군요. 출발 전에 우선 한대 맞아야 해요."
"알았어요. 그리고 가다가 신발가게가 보이면 가서 당신 신발 한컬레 삽시다. 오케이?"
"ㅎㅎㅎ 어떻게 금방 눈치 챘어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신발입니다. 신고 딛는 신발이 편하고 안전하고 튼튼해야 움직이는 무엇이든 잘 할 수 있습니다. 자 출발합니다."
우리는 엘곤킨 입구에서 북서쪽으로 향했다. 도로 주변의 타운들은 이미 코바렉스 바이러스-19x의 행패로 락다운이 된 스토어들이 많았고 좀비처럼 쓰러져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흔하게 보였다. 우리는 자세히 보지 않으려 애썼다. 도로에 차들은 좌로 우로 지그 재그로 길을 막은 채 서 있었다. 나는 극도의 주의로 앞을 보며 그 차들을 피해 달려 나갔다.
"사제미. 왜, 저에 대하여 묻지 않아요? 관심이 없어서 인가요?"
나는 운전하며 그 말을 되새겼다. 시작이 준비되지 않은 채 였기에 중간도 물을 수 없었고 아마 예측도 못하며 끝이 날 것 같았다. 어젯밤과 같이.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려 체시로의 얼굴을 봤다.
"계속해요."
"뭘요?"
"하고 싶은 말."
"으흐흐 못 됐어. 정말."
"말해요. 잘 될 수도 있으니까."
"통증은 어때요? 그 페인 릴리프가 잘 작용해요?"
"좋아요. 말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말고…"
우린 잠시 침묵하였다.
"저는 요."
나는 운전대를 꼭 잡고 앞을 보며 오른쪽 귀로 그녀의 말을 들었다.
"노스욕 얼헤이츠 고등학교를 마치고 시카고로 갔어요. 아빠 엄마는 영국 사람이어서 아이비 대학에 가기를 바랐지만, 저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물론 유티(UofT)를 갈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시카고에서 학부를 마치고 MIT에서 정보. 통신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나는 놀라서 속력을 줄이고 그녀를 봤다. 그녀는 꿈꾸듯 먼 앞을 보며 말하였다.
"그리고 미국 C.I.A.에 들어 갈 수 있었지만, 캐나다로 왔어요. 그리고 C.S.I.S.의 제의가 와서 6개월의 훈련과정을 거친 후 쟈스틴과 같이 근무하게 되었고, 다음 해에는 그들을 위한 대학의 교수가 되기로 하였어요."
"와우~ 정말 대단하군요. 체시로. 그런데 결혼은 생각 안 했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그리고 침묵하였다.
"말하기 힘들지요? 하지 않아도 되니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내가 말했다. 무슨 이야기라도 들어야 숨을 쉬니까.
"아니요. 말하기 쉬워요 ㅎㅎㅎ. 그런데 사제미. 당신은 왜 혼자 그렇게 살아요? 말 좀 해봐요. 이제 저의 정체를 아셨잖아요. 스스로 말하기 어려우면 제가 물을까요?"
고속도로는 한가하였다. 간간이 부작위로 길가에 정차된 차량들이 있었으나 인적은 없었다. 원래 이 길은 코바랙스-19x 펜데밐 상황이 시작된 후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았다. 듣기에는 어딘가 이 타운 부근에 캐나다 육군이 주둔하고 공군 비행장도 있다 하였다. 지금은 긴급한 사정을 가진 사람이 탄 차량만 국경을 건널 수 있기에 미국과 캐나다 국경 부근의 모든 도로는 운행이 통제되었고 움직임을 자제한 사람들에 의하여 한가하였다. 이 길을 텅 빈 생각으로 달리고 있었다. 한쪽 귀로 들은 이야기는 미안하게도 다른 쪽 귀로 빠져 나갔다. 그걸 눈치 챈 체시로가 큰 소리로 물었다.
"사제미! 제 얘기 듣고 있어요? 왜 말 없어요?"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큰 눈 속에 눈물이 거렁 거렁하였다. '제기랄! 내가 울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지가 왜 울려고 그래.'
"다 듣고 있어요. 계속 말해요."
"당신은 운전한다는 핑계로 앞만 보며 내 이야기를 흘러 듣고 있어요. 왜, 그러죠? 말해봐요."
"체시로. 나는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하여 전에도 현재도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한 적도 없어요. 나는 그냥 생각없이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어쩌다 이 사건에 들어왔지만, 땡스-기빙데이 전 보통 때는 다가 올 겨울을 대비하여 컨테이너를 고친다 거나 컨테이너 앞에 앉아 하늘을 보며 커피 마시며 담배를 필 때란 말이요. 그게 내 생활이니까."
나는 말하며 괜히 내 신세가 처량하여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 생전에 MIT 출신이고 CSIS 요원인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태우고 여행같은 드라이빙을 하리라 생각이나 했었나. 그런데 현실은 그것을 실행케 하며 아픔을 주고 있었다. 눈물은 이유 없이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요?"
체시로는 뭐가 재미있는지 얼굴에 미소를 띈 채 나를 보며 채근하였다. 나는 침묵하였다. 입을 열면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지켜보던 체시로가 입을 열었다.
"참, 그런데… 한국의 육군 장교 출신이라 하였잖아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하잖아요?"
참 끈질겼다.
"아니요. R.O.T.C. 장교 출신입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대학에서 국제법을 공부하였지요. 변호사가 되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오. 중위가 되어 전역한 후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와서 배운 것없이 이렇게 지내고 있오. 됐지요?"
"안됐는 데요? 미안하지만, 캐나다로 오게 도움 준 분은 요?"
"내가 캐나다로 온 후 2년만에 돌아가셨어요."
"미안해요. 그런 말 듣게되어서."
"다 하라고 했잖오."
"화나셨어요. 사제미?"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우울해서는 운전하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때 써드베리(Sudbury) 시내가 보였고 길가에 늘어 선 가게들이 보였다. 나는 제너랄 스토어(General Store)라고 간판이 붙은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사제미. 무슨 일이에요?"
나는 잠깐 선 채 주변을 살폈다. 약 17만명이 사는 지역의 이 타운도 역시 조용하였다. 나는 권총을 허리에 꼽고 M16S를 든 채 차에서 내렸다. 앞 뒤 사방이 고요하였다. 시각은 오후 6시10분이었다. 나는 일단 인심하고 체시로를 내리게 하였다.
"자. 어서 저 가게로 들어가서 신발과 필요한 것들을 삽시다."
"문이 다 잠겼어요. 어떻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