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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얘들아 안녕
지은이:벌마로(김윤식)
영우의 여고 2학년 시절은 가장 많은 이야기가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다. 이 시절은 같은 반 친구들과도 허물없이 친해지면서 서클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우가 다니는 학교에는 여러 써클이 활동하고 있어서 친구들은 자신의 성향에
맞는 써클에 가입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음성 써클도
많았다. 물론 음성 써클이냐 아니냐는 오로지 학교 선생님들의 기준에 의한 판단이지 학생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없는 경우도 많았어서 학교에 불만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영우가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서클이 있는데 흥사단이라는 단체이다.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동숭동에 있는 흥사단 본부에 모이는데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녀 학생들 수백 명 정도가 한꺼번에 모이기도 한다.
이 단체는 도산안창호 선생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이고
학교에서도 인정해 준 단체이다.
흥사단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우리 민족의 부흥과 민주사회 발전에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70년대 산업화시기에 접어들면서 학생 아카데미 운동을 활발히 펼쳤는데 건전한 인재양성과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흥사단에서 활동하는 친구들 중에서도 좀 더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름 하여 사군자라는 호칭의 모임이다. 영우 의숙 효경 연배 이렇게 네 명이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라는 각자의 예명을 지어서 부르며 자주 만나서 친분을
쌓고 여고생활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로 하였다.
영우는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를 예명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나중에는
성희라는 친구가 합류하여 포도라고 예명을 지어주고 다섯 명이 어울려 다니고
친하게 지냈는데, 사실 이들과 친해지게 된 동기는 따로 있었다. 흥사단 모임이
끝나면 헤어지기 전 윤회악수의 시간이 별도로 있는데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악수를 하며 서로 얼굴을 익히는 시간이 있었다. 1학년 때 부터 이렇게 친분을 쌓던 친구들이 2학년이 되면서 모두 같은 반이 된 것이다.
이 친구들은 각자의 개성이 강해서 한번 모이면 이야기 거리도 많고 얻어지는 정보도 많았다. 특히 난이라는 예명을 쓰는 의숙이는 약간은 마른 체형의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머리 평범한 성격이 알맞게 어우러져 눈에 띄지 않지만 소외되지
않으면서 남달리 풍부한 상상력으로 주위에 친구들을 모으는 재주가 있는 친구다. 간혹 심각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걱정스럽게 할 때가 있는데 사연인즉 혼자
짝사랑하는 남학생이 다른 학교 여학생과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과 맘에도 없는 못생긴 남자애가 자기를 쫓아다닌다는 것하며 세상의 고민을
혼자 다 안고 있는 것처럼 심각하게 속을 태운다. 그런 반면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흥얼흥얼 노래를 한다.
영우는 그런 의숙이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매력에 이끌려 여러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어울려 지낸다.
특히 의숙이 어머님이 매우 친절하셔서 친구들이 방문을 할 때면 언제나 상냥하게 맞이해 주셨기 때문에 의숙이네 집에는 친구들이 자주 놀러 가는 편이다.
의정부에 있는 보육원 아이들을 보러 갈 때도 하루 전날 친구들은 다 함께 의숙이네 집에 모인다.
의숙이 어머님은 “너희들 마음 씀씀이가 갸륵하구나” 하며 밤늦도록 음식을 장만해서 바리바리 싸 주시는데 마치 부잣집 잔치 음식만큼 푸짐하다. 친구들은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만한 노래와 춤만 연습해서 가면 되는데 다행히 노래와
춤은 친구들끼리 평소에도 틈틈이 연습을 했었고, 레크리에이션은 흥사단에서 배우고 익힌 실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영우친구들이
처음에 보육원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우게 된 동기도 생각해 보면 흥사단에서
배우고 익혔던 프로그램을 누군가와 함께 어울려 즐겼으면 좋을 것 같다는 발상이 시작이었다.
의숙이네 모인 친구들은 밤늦도록 계획을 세우고 연습도 하고는 다음날 아침 양손에 음식을 한 아름씩 들고 보육원으로 출발하곤 했다.
보육원에 가서도 의숙이는 자신의 노래실력을 뽐낸다. 그러나 아무리 잘 들어주려고 해도 그다지 잘 부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의숙이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는 영우의 따뜻한 손길과 다정한 보살핌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이곳에서 영우는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이 보여준 사랑을 아이들이 알아줬을 거라고 믿고 있다. 어쩌면 자신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국화예명을 쓰는 효경이는 몸이 마른 듯 한데 남학생들이 보면 좋아하는 체형이다. 틈만 나면 롤러스케이트장을 가는데, 친구들이 볼 때 효경이의 롤러장 출입의
진짜 목적은 남학생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것 같다.
롤러장을 함께 갔다 온 다른 친구의 말에 의하면 효경이의 주특기는 롤러를 멋지게 잘 타는 것보다 주로 넘어지는 것이 일상이라는 것이다. 여학생이 넘어지면
남학생들이 다가와서 일으켜 주는데, 효경이는 그런 분위기를 이용하려는 속셈인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다고 단순히 그런 정도의 사건으로 쉽게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효경이는 적당히 기회를 만들어서 여러 번의 넘어짐과 접촉을
반복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다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잘못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살짝 넘어지려고 했는데 바닥이 생각보다 미끄러웠던지 의도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효경이는 자신이 생각했던 거보다 심하게 다쳐서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던가? 그 일을 계기로 효경이는 자신이 원하던 남학생과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효경이는 목적을 달성한 것 같기는 하다.
예명이 대나무인 연배는 눈이 크고 중간키에 예쁜 얼굴의 얌전한 친구다. 그 친구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어느 날 영우를 화장실로 불러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연인즉 아직까지 첫 생리를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영우도 고민을 들어주기만 할 뿐 뾰족한 방안을 찾아주지 못했다. 다행히 연배의 고민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여름방학이 되기 전에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연배는 고민을 덜었고 영우도 당연히 축하를 해 주었다.
포도의 예명을 쓰는 성희는 통통한 체형에 눈이 크고 차분해서 성희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언니가 동생에게 말해주는 것처럼 포근하고 편안해서 마음에 안정이
된다. 영우에게 고민이 생길 때 성희와 상담을 하고 나면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영우는 그런 성희가 언니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사군자 친구들 말고 또 한 명을 소개하자면, 혜순이라는,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이
남달리 개성 있게 생긴 친구가 있는데 장래 희망이 영화배우이다. 아버님이 대학교 교수이시라 집안도 안정적이고 어려움은 모르고 자랐을 법한데, 왜 영화배우를 하려는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부모님이 반대하시고 법관이 되라는데도 부모님 뜻과 어긋난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걸 보면 영화배우를 하고 싶은 것이 굳건한 의지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 친구는 종종 다른 친구들을 당황스럽게 할 때가 있다. 슬픈 영화를 보고 오는
날이면 친구들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루 종일 영화 얘기를 하는데 마치 자신이 비련의 여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슬퍼한다. 그러다 하이틴 영화를 보고 오는
날에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환한 표정으로 어제 본 영화얘기를 들려주는데 신바람이 나서 온몸을 다 써가며 표현한다. 반 친구들은 돈 안 들이고 영화 내용을 들을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혜순이가 걱정이 된다. 저러다 선생님한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처벌을 받거나 심하게 야단을 맞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어쩌다 영화 한편 보려면 골목에 숨어서 무슨 스파이 작전이라도 펼치는 것
처럼 주위를 살핀 연후에 선생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극장으로 들어가는데, 혜순이는 겁도 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아무 때라도 영화관을 출입한다. 그런 혜순이의 두둑한 배짱이 부럽기도 하다.
영우의 같은 반에 속칭 날라리라고 불리는 노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 그중에 정미라는 친구는 키가 크고 용모가 뚜렷하여 서구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정미는 가끔 목에 파스를 붙이고 오거나 붕대를 감고 오는 경우가 있다.
정미왈, 여자는 언제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려면 가방에 항상 콘돔을 챙겨 다녀야 한다든지, (정작 정미의 가방엔 콘돔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목에 붙인 파스를 떼어 봐도 의심될만한 흔적이나 궁금증을 자아낼 정도의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연애는 자유 결혼은 선택이라는 영화의 대사 장면을 마치 자신의 신념인 양 떠벌린다.
영우의 여고 친구들은 개성 있고 생기발랄하고 호기심도 많았다. 무엇을 하든 무엇을 보든 신기해했고 따라하고 싶어 했고 즐거워했다. 물론 영우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영우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석한 어느 날 첫 수업시작 전부터 혜순이 책상 주위에 친구들이 삥 둘러 모여서 시끌시끌 어수선하다. 호기심에 영우도 무리에 고개를 들이 밀고 들여다봤다. 해외펜팔 편지다. 혜순이가 영우네 반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학생과 펜팔을 시작한 거다. 역시 혜순이는 달랐다. 대학교 교수님이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영어도 잘하고 아버지의 미국 인맥 덕에 미국 학생하고 어렵지 않게 연결을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반에서는 몇몇 친구들이 미국 학생과 펜팔을 한다는 소식은 들어서 모두들 알고 있었지만, 영우네 반에서는 혜순이가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친구들은 영어로 쓰인 편지를 책상에 펼쳐놓고 번역을 하는 중이었다. 너도나도 사전을 보면서 내용을 번역하느라 서로 의견이 분분했고, 한편으로 신기한 듯 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해외펜팔도 신기하지만 편지지에서 향기가 났다. ‘어떻게 종이에서 향기가 나는지,,, 역시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 하고는 다르구나’ 하고 부러워했다. 이번 일은
영우네 반에 새로운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혜순이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고 다른 친구들한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2학기가 되기
전에 반 친구들 중 절반이 미국 학생들 하고 펜팔을 하게 됐다. 영우도 그중 한
명이다.(펜팔이 영향을 미쳤을까? 영우가 성인이 돼서도 영어를 곧잘 하는 정도의
수준이 됐다.) 해외펜팔은 겨울 방학이 되고 크리스마스 때까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으며 카드에 새겨진 다른 나라의 멋진 풍경사진을 보면서 잘 사는 외국을 동경하게 되었다. 여고생들은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첫댓글 등장인물과 이야기 전개가 매우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연재소설의 새로운 효시가 될 것으로 봅니댜.
인터넷카페는 때와 공간의 제약이 없어서 이야기 내용에 따라 길고 짧게 자유롭게 올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필을 비옵니다.
응원이 큰힘이됩니다
@벌마로(인천) 김윤식 이름에 감짝 놀랐습니다.
재주도 많으시고 관심도 많은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 작가로 자리잡으리라 믿습니다.
@한결 (예천) 작가도 아니고 그저 취미로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