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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헤베니케 이형규 회장을 조명하다
오늘은 하늘의 아들 (주)헤베니케 이형규 회장의 삶을 한 번 조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현재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으면 그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성공해서 나왔을 것이라는 착각을 잘 합니다.
(주)헤베니케 이형규 회장이 현재 참 잘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성좋고 인물좋고 창업 마인드 좋은 이회장이 처음부터 이렇게 잘 나갔을까요?
물론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잘 나가는 금수저들도 있습니다. 이형규 회장도 금수저였을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이형규 회장이야말로 오리지날 흙수저로 태어나 맨땅에 헤딩하며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이회장의 인생스토리와 성공스토리를 다루면서 여러번 언급한 바 있지만, 이회장은 1960년대에 전남 J군 00도란 풍광이 그림같은 조그만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람이 타고난 천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지요? 이회장은 천성을 곱게 타고났습니다.
아버지는 어부였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잡아온 고기를 시장에 내다파는 생선장수였습니다. 이회장의 부모님은 가난한 살림에 슬하에 8남매를 낳아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흔히 가난은 되물림된다고 하지요? 부모가 가난하면 자수성가할 때까지는 자식도 가난하게 삽니다.
1960년대는 먹을것 입을것 기타 모든 생활물자들이 참으로 귀하고도 귀했습니다. 그 시절엔 농어촌 아이들은 검정고무신을 신고 가방대신 책보자기를 등에 두르고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매우 경제적인 한국 타이어 말표 검정고무신은 고래 힘줄처럼 질기고 질겨 한 번 사신으면 족히 4년 신어도 잘 떨어지거나 찢어지지 않습니다. 그시절 아이들은 누구나 폼나고 멋진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 싶어 했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은 중학교 진학할 때까지 운동화 얻어 신기란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가방도 중학교 진학해야 겨우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가 오고 태풍이 불면 집이 통째로 날아가지 않을까, 떠내려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살았어도 이회장은 그 누구보다 부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이회장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태양보다 밝은 꿈이 불타오르고 있었으니까요.
'꿈(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성경 말씀 들어보셨지요? 사람은 꿈이 있는 한 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바로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고이 숨겨둔 꿈은 아무도 훔쳐갈 수 없습니다.
이회장이 단순히 꿈만 꾸는 몽상가에 불과했다면 오늘날 성공한 이회장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이회장은 꿈을 꾸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입니다.
이회장은 3년, 5년, 7년, 10년 단위로 꿈을 꾸고 계획하고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실천에 옮기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누구나 꿈꾸는대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자와 실패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꿈을 실천하느냐 실천하지 않느냐 그 차이에 있습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 이회장은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부자였습니다. 가난과 타협하거나 무릎꿇지 않고 묵묵히 꿈을 향해 달렸으니까요. 이회장의 유년시절과 쳥년시절, 30대 초반까지는 참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되는데 이회장은 비빌 언덕조차 없었습니다.
가진 게 있다면 젊음과 꿈과 의지밖에 없었습니다.
군 제대후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십전대보탕 세일즈맨으로 뛰었지요. 말이 쉬워 세일즈지 이 세일즈란 게 참 힘든 일입니다. 불특정다수 구매자들을 감동시켜 지갑을 열게 하는 일인데 여름에 아이스크림먹기 식으로 쉬웠을까요? 남의 지갑에 있는 돈을 내 지갑으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건강한 몸 외에는 가진 게 없는 가난한 청년 이회장은 날마다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태산보다 높은 사회와 싸우고 자기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왔습니다. 어느 회사든 어느 가정집이든 세일즈맨을 대환영하는 자비로운 곳은 없습니다.
어떤 한 집을 스무 번 거절해도 포기하지 않고 이회장은 찾아갔습니다. 포기를 해버리면 꿈을 이룰 수 없고 성공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한 가정집을 스무 번 찾아갔을 때 40대 남자가 물었습니다.
"이보게 청년, 내가 자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
"아닙니다 사장님. 사장님은 잘못하신 게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구헌날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가?"
"사장님께서 거절해주시는 게 너무 고마워서 찾아 옵니다."
"허허 참, 그래 도대체 청년이 내게 원하는 게 뭔가?"
"제 얘기를 딱 30분만 들어 주십시오."
"좋아, 뭔 얘긴지 해봐."
칠전팔기의 오뚜기 같은 정신으로 이회장은 이날 드디어 스무 번 거절한 남자에게 십전대보탕을 판매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싸움은 사실 이회장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 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웃어라 캔디야
들장미 소녀야
울면은 바보다
들장미 소녀야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하늘의 아들 이회장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이 있었습니다.
'난 하늘의 아들이야.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꿈꾸는대로 될 수 있어.
조금만 더 참자. 멋진 이형규, 고지가 눈앞이야.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노래방 삐끼 소년들이 세일즈맨 이회장을 무시하고 쫓아낼 때 이회장은 속으로 이를 악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 니들 눈에는 지금의 내가 아주 허접하고 하찮게 보이지? 그러나 3년 후에 보자, 5년 후에 보자, 7년 후에 보자, 10년 후에 보자. 내가 성공해서 나타날 때 나를 무시했던 너희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무시할 수 있을 때 많이 무시해라. 내 인생에도 쨍하고 해뜰날이 반드시 온다. 그때 보자.'
오기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청년 이회장은 사회와 사람들과 노래방 삐끼 소년들이 차갑게 냉대하고 무시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날그날 할당받은 방향제를 다 팔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쌍둥이 아들 우유값도 못 벌어다주고 돈다운 돈도 안갖다주면서 매일 늦게 들어가는 이회장을 보고 생활고에 지친 아내가 늦은 귀가에 대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당신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예요? 돈도 벌어다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맨날 늦게 들어와요? 당신 혹시 딴짓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죠?"
"인간 이형규 나를 믿고 나하고 살려거든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라. 나한테 다 믿고 맡겨라. 나를 정 못믿겠거든 지금 떠나라. 그러나 나하고 헤어지면 다시는 나같은 사람 못 만난다. 이것만 명심해라. 나는 집에 있을 때는 당신의 남자이지만,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남의 편이다. 어딨느냐, 뭐하느냐, 누구와 있느냐,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말아라. 반드시 오늘의 이 고생에 대해서 백배로 멋지게 갚아줄 날이 올테니 당신 그 때까지만 참고 기다려라."
그날 이후 이회장의 아내는 침묵한 채 이 회장을 믿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이 회장은 쌍둥이 아들 우윳값이 없어도 절대 누구에게 손을 벌리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으로는 날마다 이를 악물고 울고 다녔지만, 겉으로는 로또복권 당첨된 사람처럼 항상 싱글벙글 웃고 다녔습니다. 십전대보탕 세일즈, 화장실 방향제 세일즈, 리어카 행상 등 이회장은 안해본 게 없습니다.
머리에 쇠똥도 안 벗겨진 새파란 노래방 삐끼 아이들에게조차 개무시 당할 때도 '그래, 지금은 실컷 무시해라. 그러나 5년 후에 보자'하며 이를 악물고 참아냈습니다.
이회장은 항상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매일매일 눈물젖은 빵 한 조각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뛰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십전대보탕 세일즈에도 이회장은 항상 1등을 했습니다.
너무 열심히 산 나머지 어느 날 이회장의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십전대보탕을 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닐 수가 있는데, 허리가 아프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회장은 속수무책으로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다음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될 텐데 건강이 안 받쳐주면 어떻게 가정을 꾸려나가지? 내가 아파도 돈이 되는 사업은 뭐 없을까?'
이회장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23년 전, 돈 200만원을 빌려서 허름하고 조그만 사무실을 하나 얻어 '동우 씨엠'이란 간판을 걸고 방향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성공한 지금은 고난의 뒤안길을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살아온 길 가만히 뒤돌아보면 이회장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동우 씨엠을 창업하고 매일매일 돈때문에 피를 말리고 살았던 처음 5년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장실에 거는 자동 분사 방향제 한 개당 만 원에 사서 만오천에 판매를 했습니다. 방향제 열 개를 가지고 나가면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해 초반에는 방향제 사업도 참 어려웠습니다. 노래방 삐끼 소년들조차 텃세를 부리며 이회장을 무조건 쫓아내려고만 하니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고 성공한다는 게 참 멀고도 힘든 길이었습니다.
노래방 삐끼 소년들에게 개무시 당하고 문전박대 당할 때마다 이회장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래, 지금은 너희들이 나를 무시하지. 그러나 5년 후에 보자.'
이회장은 과거에 3년 단위, 5년 단위, 7년 단위, 10년 단위로 계획을 짜놓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현재도 변함 없습니다.
행운의 사나이 이회장이 방향제 사업을 시작했을 때 86아시아게임과 88올림픽이 개최됐습니다. '화장실은 문화인의 척도다'라며 화장실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외국인들의 취향에 맞춰 정부의 천연 방향제 화장실 문화 프로젝트와 이회장이 하고 있던 화장실 천연 방향제 사업과 코드가 딱 들어맞아 이회장의 사업이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어 이회장은 이때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 후 무시무시한 경제전쟁 IMF가 터지자, 수입하는 많은 회사들은 IMF직격탄을 맞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지만, 국내산 천연 원료로 제품을 생산해내는 이회장은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하늘의 아들 이회장은 30대 중반에 멋지게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시하고 차갑게 거절하고 가난한 자는 말도 못부치게 하는 정글같은 세상에서 작은 거인 이회장은 인동초처럼 살아남아 결국 성공했습니다.
흔히 보통 사람들은 30대에 성공하면 목과 어깨에 기브스를 하게 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뻣뻣하고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이회장은 달랐습니다. 잘나갈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이나 경로당, 또 양로원 어르신들이 만날 때마다 이회장을 붙들고 백 번도 더 한 얘기를 또 해도 이회장은 항상 처음 듣는 사람처럼 웃는 얼굴로 진지하게 잘 들어주었습니다.
같은 레파토리를 실컷 해놓고 하루는 동네 어르신이 물었습니다.
"아, 이 얘기 내가 자네에게 언제 했던가?"
"아이구, 아닙니다 어르신. 저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잘난체하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윗사람 얘기 잘 들어주고 아랫사람 잘 보살펴주니 가는 곳마다 인간성 좋고 인물 좋고 마인드 좋은 이회장을 좋아합니다.
사람을 얻는 것보다 더 큰 재산은 없습니다.
가난이 뭔지 눈물젖은 빵이 어떤 건지 뼛속 깊이 아는 이회장이기에 인사가 만사고 사람이 최고라는 걸 깨달아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이회장은 일찌감치 터득했습니다.
이회장이 힘들고 가난한 시절에 이회장을 무시했던 사람들이 상전벽해가 된 이회장을 보고 요즘은 다 놀랍니다. 이회장은 나눔, 배려, 이해, 사랑을 매일 실천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남들처럼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남과 달라야 성공한다는 생각으로 이회장은 항상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항상 겸손하고 행동거지 반듯한 이회장이 늘 솔선수범하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2016년 1월 헤나 블레싱 대표 최영서 이사와 빅딜(합병)해서 네트웤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면서부터 이회장은 네트웤 사업이야말로 내가 낮추지 않으면 힘들다는 걸 절감합니다.
나를 낮추고 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인간존중 안하면 안된다. 리더의 역할과 자격에 대해 이회장은 항시 강조합니다. 리더는 무한한 책임의식을 갖고 행동하며 자격이 안 되면 즉시 물러날 자세로 임해야 된다고 하며 내가 받은 사랑에 어떻게 보달할까 매일 생각한다고 합니다.
나누는 마음, 서로 배려하고, 매사 솔선수범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자고 이회장은 오늘도 리더의 자격과 역할에 대해 힘있게 강조했습니다.
3%의 소금이 전체 바다를 정화하듯 향기나는 남자 이형규 회장, 꽃보다 아름다운 남자 이형규 회장, 남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하고 사랑많은 이형규 회장,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하는 멋진 상남자 이형규 회장이 존재함으로 정글같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이 사회가 따뜻하고 살만하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이형규 회장 18번곡 마이 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