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방학 숙제 중 한 가지는 매일 줄넘기 250개씩 하는 것이다.
이는 여행지에서도 계속된다.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오늘은 과일에 토스트가 아침 메뉴이다.) 호텔 로비로 함께 나가 아직 내려오지 않는 식구들을 기다리며 오늘의 줄넘기를 시작한다.
장소만 평소와 다를 뿐이지 평소의 삶은 계속된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은 미세먼지가 위험 수준이라 실내로 목적지를 정한다.
경주국립박물관이다.
들어서자마자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우측에 보여 우리도 모르게 그쪽으로 들어선다.
771년 작.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333cm, 입지름 227cm.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원래 경주 봉덕사에 있던 것을 영묘사로 옮겼다가, 1915년 8월 경주박물관으로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완전하게 한국종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종의 몸체에 새겨진 긴 명문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하여 동(銅) 12만 근으로 주조를 시작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자 아들인 혜공왕이 뜻을 받들어 771년(혜공왕 7)에 완성했다고 한다.
(출처: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2s0693a)
우연히 해설사 님을 대동한 팀을 만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실을 귀동냥으로 듣게 되었다.
첫째, 종을 땅 밑에서 만들었다.
종의 외형틀과 내형틀을 하나로 조립하여 땅에 묻은 뒤 쇳물을 동시에 부은다.
당시에는 대형 도가니를 만들 기술이 없어서 여러 소형 도가니를 만든 후 동시에 쇳물을 부었다.
종을 만드는 데 쉽지 않아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30년 만에 완성했다.
둘째, 종을 매다는 부분의 쇠막대는 직경이 8cm 밖에 되지 않지만 흔들리는 종의 무게인 22t을 버티어야 했다.
종을 원래 있던 곳에서 이곳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포항제철에 쇠막대 부분의 새로운 제작을 의뢰했는데 그 당시 기술력으로도 불가능했단다.
그래서 결국에는 기존에 있던 쇠막대를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타종소리에서 맥놀이 현상이 일어난다.
맥놀이 현상이란 비슷한 주기의 파장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음파의 경우 소리가 전체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현상을 말한다.
(출처: http://tteggu.tistory.com/86)
종소리가 끊길 듯 말 듯 계속 이어지는 비결이 이 때문이다.
넷째, 에밀레종과 관련한 설화는 거짓이다.
실제 종의 성분분석을 한 결과 인체에 많은 성분인 인의구성 비율이 0%로 나타나 설화가 거짓임에 판명되었다.
다섯째, 종과 관련한 두 동물이 있다.
종의 상단에 고리를 용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용의 9명의 자식들 중 포뢰라는 놈은 고래를 두려워하여 고래만 나타나도 크게 운다.’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종소리가 더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해 당봉(범종을 치는 나무 막대)의 모양을 고래로 한다.
다음은 신라역사관이다.
여기에는 신라 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가지 유물이 있다.
바로 금관과 얼굴무늬 수막새이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금관의 반짝이는 모습에 우리 모두는 할 말을 잃고 한참을 서있기만 하였다.
그 당시의 훌륭한 금세공 기술과 찬란하고 화려한 문화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은 교과서에서 많이 보아왔던 ‘신라인의 미소’.
정식 명칭은 얼굴무늬 수막새.
보면 볼수록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저 작은 조각에 숨겨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그런 웃음을 이리 자연스럽게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신라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표현하기보다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이상적인 얼굴을 창조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신라 초상 예술의 오래된 기억이 되었다.
특별관에서는 ‘금령(金鈴), 어린 영혼의 길동무’라는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금령이란 아이의 허리에 찬 ‘작은 금방울’을 말한다.
아마도 이 금령을 찬 아이는 왕족이었을 것이다.
이 유물이 발견된 무덤의 이름이 금령총이고 여기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 고분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금령총 금관, 금제허리띠, 감옥팔찌(嵌玉釧) 등의 장신구를 위시하여 1993년 국보로 지정된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채화칠기, 유리용기 등 많은 유물들이 있었는데, 장신구가 대체로 소형인 점으로 보아 피장자는 나이 어린 왕족으로 추정된다.
(출처: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07738)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모든 게 금방울 한 쌍을 길동무로 삼아 멀고 먼 여정을 떠나야 했던 어린아이를 위한 것이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을 안고 모든 것들을 준비하고 챙겨 넣었을 부모의 마음을...
왕족의 어린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던 왕과 왕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말 탄 사람 모양 주자’는 흔히 주인상과 시종상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가는 시종상으로 알려진 사람은 오른손에 방울이 꽂힌 막대를 들고 있어 제사를 주관하고 무덤 주인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제사장 또는 무당일 수 있다.
저승길을 무사히 건넜으면 하는 마음, 어두운 공간을 무사히 지나갔으면 하는 부모의 걱정이 스며든 껴묻거리 인가보다.
내세에서라도 행복하라고 이렇게 다양한 유물을 무덤에 함께 담았나보다.
자녀들이 행복하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월지관은 월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엊그제 동궁과 월지를 다녀와서 그런지 들어서자 더욱 반가웠다.
들어서자마자 나무배가 보였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더라.
이 배는 동궁과 월지에서 그 당시 타던 그 나무배였다.
어제 들었던 설명을 여기 와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듣고 보니 더욱 잘 보인다.
경주 여행을 계획할 땐, 반드시 동궁과 월지를 먼저 하고 그 다음으로 경주국립박물관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말하지 않아도 더 잘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보인다.
모든 일에 순서가 이리 중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라미술관으로 향한다.
조각을 중심으로 하여 전시를 하고 있다.
신라 미술은 불교미술에 그 바탕을 두고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이 불교 관련 조각들이다.
작품관람 중 반가운 ‘반가사유상’을 만난다.
교과서에서 보던 바로 그 작품.
작은 크기의 부처님이 의자에 걸터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그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은 자세로,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 놓고 손끝을 뺨에 살짝 대어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표현하였다.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그리 생각하시는지요?
오늘은 신라의 역사를 다 살펴보았다.
아이들에게도 어른이 된 부모에게도 진짜 수학여행이 되어버렸다.
많이 보고 많이 생각했다.
[초3의 일기]
오늘 미세먼지가 나빠서 되도록 실내로 가자고 해서 경주국립박물관으로 갔다. 거기서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있는 쪽으로 갔는데 녹음된 소리가 나서 잘 들어봤는데 에밀레~ 에밀레~ 하는 소리는 안 들렸다. 박물관에 들어갔을 때 번쩍 번쩍거리는 장신구와 금관 그리고 토기와 멋진 검을 봤다. 다본 후에 특별전시관에서 말 탄 사람 모양 주자와 목걸이, 장신구, 금관이 정말 멋있었다. 다음엔 월지관에서 동물뼈, 창, 옥, 가위, 용머리 장식품, 멋진 암막새, 큰 나무배, 치미를 봤다. 그리고 신라미술관에서 국보인 반가사유상과 다른 부처님 석상을 봤다. 오늘 하루 동안 정말 즐거웠다.
[유치원생의 일기]
오늘은 신라역사관을 갔다. 신라역사관에 금관도 있고 금달개도 있었다. 처음에는 잘 걷고 잘 봤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힘들었다. 그 다음에 특별전시관에 갔다. 거기서는 금방울이랑 말 탄 사람 모양 주자도 봤다. 그 다음에 월지관을 갔다. 거기에 큰 배도 봤다. 그 다음에 신라미술관에 갔다. 반가사유상을 봤다. 그리고 밖에서 다보탑과 석가탑에서 사진을 찍었다. 끝.
#경주일기, #4일차, #경주국립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