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겨울숲바라보기 야외수업은 없었습니다. 영하의 찬바람이 몸속까지 파고드는 강추위와 적당히 눈발까지 흩날려야 겨울숲공부의 제격이고 제맛이건만, 반바지 차림으로 공원으로 산책을 나올만큼 봄날같은 겨울이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속속 도착하는 선생님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대체로 두꺼운 파커차림입니다. 수업 공지에서 강조한 ‘철저한 방한 준비’ 당부를 착실하게 따른 착한 학생들입니다. 날씨 탓인지 마치 봄소풍 나온 듯 가벼운 분위기입니다.
혹시 늦을까 허겁지겁 달려와 출석 사인 완료. 모든 확인이 끝나고 대망의 2023년 10기 겨울숲바라보기 첫 야외수업의 시작입니다. 날씨 탓에 안전산행을 위한 준비체조도 생략하고, 수업 세부 일정과 조별 담당 강사님을 소개합니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잔뜩 들뜬 표정에 귀기울이는 모습이 영락없이 모처럼 야외수업에 나온 학생들을 닮았습니다. 아무리 생략해도 단체사진 촬영은 생략할 수 없습니다. 모이세요. 하나, 둘 셋! 화이팅! 사랑해요! 기본 3종 포즈를 모두 취해야 끝이 납니다.
이제 부터 진짜 수업시작입니다. 조별 담당 강사님들이 교육생들을 모아 각자 적당한 장소로 이동합니다. 첫 관찰 수종은 칠엽수. 겨울 눈이 매우 크고 찐득한 수지로 둘러쌓여 있는 기초적인 관찰수종이지만 서울숲의 경우 눈높이 위치의 가지가 드물어 관찰이 쉽지 않습니다. 고심 끝에 강사님이 전날 미리 동네 야산에서 채취하여 준비해온 겨울눈으로 대신합니다. 강사님들은 수업대상지역뿐 아니라 동네 야산에서 살고 있는 나무까지도 꿰뚫고 있나봅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급반전됩니다. 조금 전의 가벼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진지모드로 돌변했습니다. 귀는 쫑긋, 눈은 반짝, 손은 강사님의 말을 놓칠세라 쉴새없이 노트에 받아 적습니다. 강사님들의 목소리에도 의욕이 잔뜩 들어가 있음은 물론입니다. 나름 수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주기 위해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강하십니다. 궁금해집니다. 잠시 들어봐야겠습니다. 난생 처음, 관찰표를 작성해봅니다. 보이는대로 적으라는데 괜시리 긴장됩니다. 그저 열심히 들여다보는게 최선입니다.
한참을 씨름한 후에야 다음 수종으로 넘어갑니다. 이번엔 나무껍질이 너덜너덜 벗겨진 복자기나무입니다. 공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익숙한 나무이지만 겨울눈을 이렇게 가까이 들여다보기는 처음일겁니다. 가지에 달린 겨울눈을 직접 관찰하고 표를 작성해야 합니다. 루페보는 법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 한참을 실랑이합니다. 교육생끼리 보기좋게 가지도 잡아주며 보고 또 봅니다. 드디어 보입니다. 아름답고 신비한 겨울나무의 신세계가 펼쳐집니다. 유레카!!!!
간신히 또 나무 한그루를 지나갑니다. 이번엔 수관부터 다릅니다. 떨기나무입니다. 작은 나무를 빙 둘러싸고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벌레 찾듯 강사님의 주는 힌트를 찾기에 열심입니다. “나무이름을 아느냐”는 강사님의 질문에 “물총나무요!” 신품종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머리속에서 뱅뱅돌던 이름이 물총새와 오버랩되며 튀어나왔다는 해명에 왁~~ 웃음이 터지며 지끈했던 머리와 팽팽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집니다. 단단할 것 같은 이름과 외관과는 다르게 지저분해보이는 가지 끝은 마르고 오톨도톨 피목에 가로덧눈에 세로덧눈까지 있어 아주 어지럽고 복잡한 나무지만 그 교육생은 아마도 평생 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런 신품종은 매년 겨울숲바라보기 수업기간중 어렴풋한 기억이 작용하여 드물지 않게 탄생합니다.
겨우 나무 세종류를 관찰했을뿐인데 1시간을 훌쩍 넘어버렸고 시작한 장소에서 10여미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순번을 기다려 한 그루뿐인 딱총나무와 눈맞춤한 후에야 길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다음 관찰 수종인 백목련과 산딸나무 여러그루가 광장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별로 흩어져 나무 한그루와 씨름합니다. 여럿이 나무를 에워싸고 가지를 이리 저리 들치며 살피는 모습이 마치 “오늘 너의 정체를 속속들이 파헤쳐볼테다˚하며 각오를 다지는 조사관같기도 합니다. 어느 열정 강사님은 수배전단 만들듯 밤새 겨울눈의 특수한 상황을 순서대로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며 수색(?)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계획의 절반도 하지못했는데 시간은 정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살짝 허기도 지고, 한 박자 쉬어갈 시간이 됐습니다. 한쪽에서는 간식타임을 갖습니다. 머리쓰는 공부가 실은 엄청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과정이라 중간중간 에너지를 보충해주어야 합니다. 계속 이야기해야하는 강사님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배낭에서 각종 보급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나눔의 의식이 진행됩니다. 떡,빵,계란, 과일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잠시의 휴식으로 충전합니다.
다시 나무 앞에 모였습니다. 이번엔 낭창낭창 가지가 휜 국수나무입니다.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이 나무는 세로덧눈이 있는나무입니다. 세로덧눈을 찾으세요. ” 모두가 달려들어 보물찾기하듯 가지를 훑습니다. 하지만 공원이라는 제약된 환경탓인지 쉽게 찾아지지 않습니다. 한참만에 드디어 찾았습니다. 모두가 돌아가며 확인합니다. 국수나무의 세로덧눈 확인. 미션 클리어!
뒤늦은 다른 조는 바로 앞의 작은 나무로 몰려 갑니다. 쉬나무 유목입니다. 딱봐도 국수나무와는 가지의 굵기와 성긴 정도가 확연히 다릅니다. 당연히 겨울눈의 모습도 다릅니다. 아린이 없는 맨눈입니다. 주먹쥔 겨울눈의 모습이 재미있게 생겼습니다. 잎떨어진 흔적과 관속흔도 뚜렸하게 보입니다. 겨울숲 수업기간중 종종 만나게 될 맨눈입니다. 그때 딱 동정해낼지 궁금합니다.
다시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깁니다. 남은 수업 시간은 1시간 남짓. 그 시간 안에 5종의 나무를 관찰해야 합니다. 전망대가 있는 언덕을 오릅니다. 또 관찰입니다. 어디에선가 많이 봤던 나무같은데 선뜻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벚나무입니다. 팥배나무와의 겨울눈 비교가 이번 관찰의 핵심입니다. 앞 뒤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두 나무를 번갈아 살피며 강사님의 설명을 부지런히 받아적습니다. 머리는 이미 포화상태로 어쩌면 내일이면 잊을지 모르지만 이 순간은 안간힘을 다해 머리 속에 담아두어야 합니다.
알듯모를듯 이제는 강사님의 설명이 스쳐 지나갑니다. 기계적으로 받아적고 의무적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집에 가서 차분히 정리하고 공부하리라 각오를 다지는데 다시 또 이동입니다. 이번 나무의 관찰 포인트는 가시, 그리고 은아입니다. 아까시나무가 그런 놀라운 생식의 비밀을 갖고 있는지 이제 알았습니다. 산사나무 열매가 탕후루의 원조인지, 그리고 품종이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엽침, 경침, 피침. 가시도 탄생의 기원이 다릅니다. 새록새록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관찰 수종과 만났습니다. 플라타너스, 양버즘나무. 거리에서 흔하디 흔하게 보는 이 나무가 갖고 있는 비밀은 또 뭔지 궁금합니다. 잎이 엄청 크고 늦게까지 잎을 달고 있는게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맞았습니다. 엽병내아, 잎자루 속에 겨울눈을 감추고 있다고 합니다. 떨어진 양버즘 잎을 주워들고 잎자루를 들여다봅니다. 제법 큰 홈이 뚫려 있습니다. 어느덧 겨울눈 관찰표가 꽉 찼습니다. 전부 기억하지는 못해도 뭔가로 꽉 채워진 충만한 기분에 뿌듯해집니다. 강사님께 배꼽인사로 감사를 표하고 기념촬영으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아쉬움은 바로 이어진 뒷풀이에서 ‘짠’ 건배로 해소됐지만요. 봄날 같은 겨울, 겨울나무와의 따뜻한 만남이 알자반 선생님들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빌었습니다. 겨울나무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합니다.
첫댓글 "지금까지 이렇게 따뜻한 날씨의 겨울숲바라보기는 없었다"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놀라운 후기도 처음봅니다
내년 11기 후기는 누가 쓰게될지 심히 걱정됩니다~ㅎ
첫시간,
조근 조근 용어 설명해 주시는 강사님들 훌륭하십니다.
열공하시는 알자반 선생님들도,
조력하시는 부강사님들도 멋지시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 멋진 후기임니다♡. 각조마다 다니시며 사진 찍으시며 기록하시느라
수고 많으셨네여
개인사정으로 결석했는데 자세한 후기,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니 김성철 부강사님께서 공부는 제일 열심히 하신듯 합니다. 어찌이리 학생들 보다도 더 자세히
세세하게 후기를 써주셨는지 감복하였습니다. 복습을 해볼까 해서 들추어 보았는데 한나도 기억이
나지않았는데~~~ㅎ
덕분에 다시 복습하고 기억하게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후기가 너무 멋져 댓글을 안 달 수가 없었습니다^^
실속 있는 수업에 재미나고 상세한 후기까지.. 겨울숲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기대 많이 됩니다ㅎ
고백합니다. 물총의 주인공이 접니다.
나름 수강생 중 기수가 앞선관계로 보고 들은것이 있어, 오늘 공부한 나무들의 수형과 아직까지 달려있는 열매, 수피등을 보고 미리 정답을 거의 맞췄지만, 입이 삐뚤어져서(?) '딱총나무'라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만 '물총나무'라고 하여 잠시 강사님을 당황케도 하고, 모두를 웃게도 만들었답니다.
자연에서 힌트를 얻어 디자인한 종류에는? '물총새와 신간센기차'.....
유아숲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니 그만....
오래 기억할 나무 한개를 더 만든 셈!
재미난 후기를 써주신 부강사님 덕분에 다시한번 속으로 웃었지만요.
강사님의 열정에 보답키 위해 집에와서 다시 정리해보았답니다.
앞으로 10기 알자반 후기를 못보신 분은 계실지 몰라도
한 번만 보시는 분은 안계실꺼 같네요~
정성 가득하고 유쾌한 후기 감사합니다 ^^
겨울 따뜻한 날씨 만큼 따뜻하신 글에 감동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서울숲 겨울눈들이 사흘만에 하얀 도화지가 되었는데
이렇게 학구적인 후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품종 물총나무 등극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