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목포 문학 기행 Ⅰ) / 정희연
계획된 시간은 결국 오게 되어있다. 내가 멈추거나 관련이 없어서 스쳐지나갈 뿐 세상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상의 글쓰기>도 오늘이 마지막 수업(야외수업, 목포 문학 기행)이다. 아침에 곽주현 선생님에게 문자가 왔다. 갑자기 감기가 심해 참석이 어렵다고 했다. '내 청춘의 비밀 노트'의 이야기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불참 소식이다. 선생님의 건강 걱정 보다는 이건 반칙인데 하는 아쉬움이 먼저 다가온다.
편의점에서 커피 두 병을 들고 시청으로 향했다. 열시가 되기 전, 최종호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시간 전인데 역시나 준비가 빠르신 분이다. 하늘빛이 온통 뿌옇다. 한바탕 뿌려댈 기세다. 기상청 레이더를 보니 서해에서 만들어진 눈구름이 모니터에 가득했다. 내심 눈이 왕창 와주기를 바랐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문학기행이 되었으면 해서다. 만남의 장소는 신안 압해도에 있는 ‘천사 신안 아구찜’이다. 광주-무안간 고속도로가 뚫리고 무안에서 압해도로 이어진 다리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해졌다. 옛날 같으면 국도 1호선을 타고 목포로 돌아가야 하고, 도로도 지형대로 만들어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아 눈 오는 날이면 약속을 취소해야 하나 하는 걱정도 많았는데 지금은 다리를 만들고 터널을 뚫어 큰 경사가 없어 운전이 쉬워졌다.
시청에서 고속도로가 가까워서 쉽게 접어들었다. 자동차가 시원하게 4차선 도로를 달린다. 설렌다. 일상의 글쓰기 벗은 대부분 교육계에 몸담은 분들이 많다. 초등학교 교장, 교감, 국어 선생님, 교사, 교육계에서 정년 하신 분 그리고 전)전라남도 교육청 교육연수원장 등 모두 쟁쟁한 분들이다. 그 속에 생뚱맞게 내가(토목쟁이) 끼어 있다. 줌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야외수업이 아니면 얼굴을 볼 수 없다. 첫 모임 때 많이 부담스러웠다. 해 낼 수 있을까?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현장에서 철근, 자갈, 콘크리트처럼 까칠하고 투박한 것들만 접하다가 문학의 길을 가는 내가 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얼마나 잘못된 글을 써 왔는지 바로 알게 되었다. 교정지를 받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살면서 자존감을 지키려 애쓰는 내가 한 순간에 무너졌다.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고 싶었으나,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를 쥐구멍 밖으로 내 놓기로 했다. 야외 수업은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두 번째의 과정이었다.
주제를 받고 그 자리에서 빠른 시간에 맥락을 잡지 못하면 금세 이삼일이 훌쩍 흘렀다. 그나마 주말부부라 저녁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주말이면 시간이 더 없었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했고, 농장도 가야하고 시골 부모님도 봬야 해서다. 이번 학기에는 어느 때 보다 글쓰기에 노력했다. 그렇게 놓지 않고 해온 것이 이제는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겼다. 일상의 글쓰기는 글을 배우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색깔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더 좋았다.
최종호 선생님의 그림책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반갑고 낯익은 얼굴들이다. 목포에서 배로 세 시간 반이 걸리고 하루에 두 차례 운행하는 낙도에서 뭍으로 올라온 교감선생님, 초등학교를 산 넘고 물 건너다니고 어린 나이에 입학해 무덤가를 지나는 게 무서워 며칠 만에 그만두었다는 작가 선생님, 아빠랑 헤어지면 다시 결혼할 것이냐고 딸이 묻는데 그런 일을 맞게 된다면 얼마나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이야 하며 “진짜 소설책 한 권은 뚝딱이겠는데”하는 예비 작가 선생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졌다.
내 생활의 작은 부분으로 시작했던 일상의 글쓰기가 점점 나를 점령해 가고 있다. 하면 되는 사람, 할 수 있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아구찜과 최고의 보양식 낙지 탕탕이가 나왔다. 글을 잘 쓰려면 잘 먹어야 한다.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유리창 너머 세상은 함박눈으로 가득하다.
첫댓글 화이팅!! 문학기행 2에도 제 이야기는 없겠네요. 이야기를 한 마디도 못 나눴네요.
하하하! 그러니까요. 커피숍에서 나오는 길에 만나고 헤어져서 인사만 하고 말았네요. 다음을 기약해 보겠습니다.
@정희연 공감대가 있어야 나눌 얘기가 있을텐데요...
@심지현 찾아보면 많겠죠! 일상의 글쓰기 동기 아니었던가요? 하하하!
그날, 꼭 참석하려고 했내요. 열이 많이 올라서 병원에 갔더니 독감이래요.
그래서 '안 가길 잘 했구나.' 했습니다. 반칙해서 미안합니다.
모두가 선생님의 뒷이야기에 목 매고 있었습니다. 현명한 선택 이셨습니다. 앞으로도 재미난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눈오고 바람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글이 날로 좋아지네요.
함박눈이 와 좋아라 했다가, 북풍한설 칼바람을 온전히 맞은 후 들렸던 참새 방앗간이 새록새록합니다.
희연님은 어떤 분일까? 상상해봅니다.
맛깔스러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젠틀맨이세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곽주현 선생님처럼 연재하시는 건가요? 하하하.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어요. 고맙습니다.
쥐구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용기.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 공감 100프로입니다.
2024년 잘 부탁 드립니다.
제 이야기도 나오네요. 하하! 그 눈보라를 잊을 수 없겠네요.
역시나 일등으로 쓰시네요. 세상 밖으로 나오신 걸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같이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작가님!
'나를 쥐구멍 밖으로 내놓기로 했다'
선생님 정말 멋지세요.
제 얘기 나오니 기분이 진짜 좋네요. 하하.
고맙습니다. 2024년 멋진 글 기대 하겠습니다.
'쥐구멍을 찾아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겠다는' 대단한 생각에 감탄했습니다.
선생님 차를 타고 모임갔던 생각 납니다.
고맙습니다.
함께하지 못 해 아쉬웠는데, 선생님 글로 그 시간을 보내네요. 2부도 기대할게요.
너무 추웠어요. 그래서 더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에는 꼭 봬요.
선생님, 역시 기록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또 느끼네요. 재밌게 쓰신 글 덕분에 이제는 가물가물한 그날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잠시 행복했어요. 선생님 글이 점점 좋아져서 잘 읽혀요.
선생님들 따라가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처럼 공부 할때마다 쥐구멍을 찾고 싶은 일인이랍니다. 힘내시게요. 제마음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듯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글 너무 좋습니다. 글 잘 읽고 있어요. 쉬엄쉬엄 하세요. 글도 그리고 일도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