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상적인’ 사랑이야기나 멜로드라마를 규정하는 재현 가능성의 한계와는 대조적으로 포르노그라피는 그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한계를 침범함으로 포르노그라피는 언제나 너무 멀리 나가버린다는 것, 즉 ‘정상적인’ 러브 신에 은폐된 채 남아 있는 것을 놓친다는 것이 패러독스다.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의 한 구절을 참조해 보자. 만약 당신이 행복을 뒤따라 너무 빨리 달려간다면 행복을 지나쳐버려 행복이 당신의 등 뒤에 서 있을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그 지점을 향해’ 너무나 허둥지둥 서둘러서 나아간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뒤쫓던 것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 결과는 극도로 저속하고 우울한 것이다. ... ‘정상적인’ 러브 스토리가 접근은 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는 없는/금지된 대상은 오직 은폐된 채로, 암시된 채로, 위조된 채로만 존재한다. 우리가 그것을 보여주자마자 그 매력은 흩어져버리고 우리는 너무 멀리 가버린 상태가 된다. - 슬라보예 지젝 <삐딱하게 보기>
2.
살피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밀착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매몰되면 아예 시야가 없어진다. 내부자는 내부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도 잘 보지 못한다. 담은 경계를 위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움직임과 소리를 차단하고 살피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담을 쌓는다. 담이 만들어지면 내부와 외부가 생겨난다. 담 쌓기는 거리를 없애는 기술이다. 담이 둘러쳐진 집은 밀폐용기와 같다. 밀폐된 집에 들어간 사람이 살필 수 있는 것은 집주인이 보여주려고 한 것, 꾸며낸 것, 위장한 것, 연출한 것밖에 없다... 그러니까 살피려는 자는 집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 이승우 <사랑이 한 일> ‘소돔의 하룻밤’
3.
1200년대의 시인들은 그들 시에 핵심적인 요소, 시의 ‘거주지이자 피난처’가 되는 공간을 ‘행간(스탄차, Stanze)’이라고 불렀다. 시의 모든 형식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시의 유일한 대상이라고 여겼던 ‘사랑의 기쁨’을 행간이 간직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비현실적인 것의 차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차원을 공간적인 것 대신 공간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무언가로 인식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 제안했던, 하나의 순수한 차이점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로, 사실인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순수한 차이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 자체로 비현실적인 것, 소유 불가능한 것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줄 안다면, 그에게는 현실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에 접근하고 그것을 향유하고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가장 원대한 비현실을 붙드는 사람만이 가장 원대한 현실을 창조해낼 것이다.” - 조르조 아감벤 <행간>
4.
그녀는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올렸다. 햇살이 눈을 찔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우물이 보였다. 눈을 뜨면 보이지 않는 우물이 눈을 감으면 보였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아들을 안고 우물을 향해 달려갔다... 주인의 집에서 쫓겨난 하갈은 아들과 함께 광야에서 살았다... 신이 그들을 보살폈다. - 이승우 <사랑이 한 일> ‘하갈의 노래’
5.
“우리는 종종 변화를 현실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여기지만, 현실을 이루고 있는 것들의 재구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감각은 이런 재구성의 과정에서 출현하는 것이지요. 겉으로 단절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이지요.” - 랑시에르 인터뷰
첫댓글 '살피려는 자는 집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나와 연관된 사건의 경우 바깥시선은 어려운것 같습니다. 괜찬다고 생각되는 일도 내가 연류되면 안괜찮은 사건이 되는 것처럼....눈을 감은 채 아들을 안고 우물을 향해 달려간 하갈에게 신은 왜 그 지경까지 되어서야 보살폈을까? 그녀의 찢어진 마음이 느껴져 아픕니다.
6월부터 직장에선 근 두 달여 기간, 스퍼트를 내면서 지내야 했어요. 지난 8월 1일, 스퍼트 기간은 일단락 지었지만, 변함없이 빡빡한 일상의 루틴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소식 없던 외가 어른들을 만나는 일도 겪었어요. 바닥에 깔려있던 온갖 기억 속 찌꺼기들이 흔들리면서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어요. 몸과 마음이 같이 흔들리고 지치니까, 스스로도, 심지어는 곁에 있는 사람들도 죄다 싫어졌어요. 더위 때문인가 싶기도 했고요...
갈급한 마음으로 행간 카페에 와서 호흡하고 숨을 골라 봅니다. 눈은 감은 채 우물로 달려가는 방법이 뭔지, 막막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현실을 재창조해내는 눈을 뜨게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