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강 안디옥교회 사건(2:11-14)
1. 예루살렘의 지도자 베드로
안디옥교회는 이방선교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리아 전체로 본다면 여전히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이 절대 다수입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아직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이 소수였습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으로 건너 온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온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의 주인공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오순절 설교(행 2:14-36)는 3000명의 새로운 신자를 더하게 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아주 유명한 사건이 등장하는데, 가이사랴에서 베드로가 이방인 백부장에게 전도하는 내용과, 베드로의 환상체험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잡아먹으라.”라는 소리와 함께 내려온 보자기 안에 든 동물들은 율법규정에 먹지 못하게 규정된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속되고 부정한 것을 절대로 먹지 않겠다는 베드로에게, 하늘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행10:15)
그때 만나게 된 이방인이 고넬료였고, 온 집안이 성령을 체험하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얼마 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돌아오자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은 사실로 추궁 당하게 되었고, 베드로는 욥바성에서 기도할 때 겪은 환상체험을 설명한 후에, 고넬료의 회심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예루살렘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행11:18)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을 때, 바리새파 출신 유대 그리스도인들 몇몇이 찾아와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준수해야한다는 강요를 할 때에, 베드로는 중재하였습니다. 어쩌면 베드로는 그 당시에 예루살렘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 선교활동에서 얻은 강한 체험도 있었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의 설득은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에 의해서 추가된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더러운 음식”을 피하라는 제안이었습니다.(행15:20)
2.안디옥의 베드로(2:11-12)
안디옥으로 베드로가 건너와서 바울과 더불어 동역할 때 발생한 문제가 있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일이 안디옥교회에서는 보편적인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공동식사는 성만찬을 나누는 것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친교를 넘어선 예배의 현장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음식준비 규율이 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코셔”(Kosher) 음식입니다.
눈으로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예루살렘의 맥도널드에는 치즈버거를 팔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치즈버거는 소고기와 소젖으로 만든 치즈를 함께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출23:19)는 율법규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을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들어오자,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났다.”고 말입니다. 마치 이 이야기는 실시간으로 본 것처럼 드마라틱합니다. 이방인들과 함께 유대인들에게는 금지된 음식을 먹다가 들켜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실상은 그런 급박함이 벌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야고보가 사람들을 보낸 것은 이미 베드로가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이 준비한 식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고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보낸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예루살렘 회의 때에 베드로는 이미 바울의 편을 들었습니다. 회의결과 할례는 안 받아도 된다고 합의했지만, 야고보는 음식 먹는 문제를 조건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 율법에 어긋난 음식을 먹고 있다니 예루살렘교회는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을 향하여 “이것이 무슨 문제냐?”고 항의했다면, 바울은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들의 공격이 두려워서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비겁해서 그랬을까요? 감추고 싶었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다 드러난 일이어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 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3.바울의 비난 이유(2:13)
베드로가 자리를 피하자 나머지 유대 사람들도 자리를 피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위선”(hypocrisy)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동역자였던 바나바도 그 위선에 끌려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하여 다른 사람보다는 베드로에게 비난을 집중합니다. 왜 그럴까요? 베드로의 위선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보였던 베드로의 태도는 이방인들과의 이방인의 식사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라는 체험을 한 사람인데, 순간의 두려움으로 그 자리를 피한 것이, 여태까지 바울의 사역을 무위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화가 났던 것입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세우려던 바울의 안디옥 선교는 여기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소수였는데, 그들마저도 설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유대인 율법규정에 따른 식사를 준비해서 먹어야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갈라디아교회에 대한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당신들 이방 그리스도인 교회 역시, 슬그머니 들어온 거짓 교사들의 말을 따라, 할례를 받거나, 율법에 따른 음식교정을 따르게 된다면, 결국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4.베드로에게(2:14)
바울은 베드로에게 공개망신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이방사람처럼 살면서, 이방사람들에게 유대사람처럼 살라고 강요합니까?” 여기서 핵심 단어는 “강요”입니다. 베드로는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슬쩍 그 자리를 피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가 강요하였다고 비난합니다. 베드로의 잘못은 할례당의 눈치를 본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정도 되는 지도자가 진리를 알면서도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서 “슬쩍 피한” 것 같은 행위가 야기한 연속적인 사건들의 여파는 “강요”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공동식자 자리는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부터 유대식 코셔 음식을 준비해야만, 유대인 크리스천들과 함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강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율법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확신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다르게 불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실상 “그리스도인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실상은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민족적 한계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만 그렇게 살겠다면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러 충분히 불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도 율법규정을 반드시 준수해야한다고 “강요”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14절 처음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라고 말입니다. “똑바로 걷는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정통”이라고 부르는 ortho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베드로에게 바울이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이 똑바로 걸으면, 뒤를 따르는 사람들도 똑바로 걸을 것”이라는 말이었겠지요. “당신이 위선적으로 살면, 그것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경고를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이방선교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는데, 바울은 안디옥을 떠나야만 하였습니다.
바울이 어떤 확신으로 베드로를 비난하였는지, 이제 다음절부터 등장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2024년 5월 19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