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자 / 최미숙
2024년 2학기 글쓰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벌써 9학기째다. 6월 1학기 방학을 마지막으로 두 달 넘게 글을 쓰지 않았다. 원래는 방학 중이라도 평소와 같이 몇 편이라도 쓰려고 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게을렀던 이유가 더 크다. 실은 이번 학기는 쉬어 갈까도 생각했는데 교수님이 내주는 과제라도 하지 않으면 글 쓰는 일과는 영영 멀어지게 될 게 뻔해 다시 수강 신청을 했다. 그래야 1주일에 한 편이라도 완성하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첫 수업이 설렌다고 했지만 나는 개강일이 늦게 왔으면 하고 바랐다. 글을 쓴 지 4년도 넘었지만 여전히 부담스럽다. 이런 내가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과 다를 바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 바람이 컸는지 9월 3일(화) 수업 시작하는 날인데도 까마득히 잊고 저녁에 산책하러 나갔다. 오전에 교수님이 고쳐보라고 카톡에 올린 문장을 들여다보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시원한 바람에 취해 한참을 걷다 단톡에 늦게 참석한다는 문우의 문자를 보고서야 아차 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요즘 들어 어떤 일을 하나로 연결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일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만큼 총총했던 나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그동안 아픈 허리가 7월 들어 더 심해졌다. 병원 가기가 무서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견디고 견뎠는데 더이상 앉고 서기가 힘들 정도다.
7월 마지막 주, 큰아들이 회사 일로 해외(태국, 일본) 출장을 간다며 1주일만 도와달라고 호출한다. 아들과 며느리가 오전 오후로 나누어 손자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왔는데, 며느리 혼자 출퇴근 시간에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마침 방학을 시작했던 터라 서울로 갔다. 새로 이사 간 집도 궁금하고, 10개월 된 손자가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름을 부르면 빙긋이 웃으며 쳐다보는 녀석을 생각만 해도 얼굴 근육이 저절로 풀리고 행복하다.
아픈 것을 참으며 손자 재롱에 빠져서 1주일을 보냈다. 주말에 집으로 내려오려고 하는데 아들 내외가 온 김에 병원 진료라도 받고 가라며 한사코 못 가게 한다. 할 수 없이 척추 전문 병원(강북 21세기 병원)을 운영하는 막냇동생에게 전화해 월요일 오전에 들르기로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동생은 입원해서 검사를 해 보자고 한다. 아들을 집으로 보내고 오후에 허리와 다리, 무릎까지 엠알아이(MRI)를 찍고 피검사, 통증 검사, 골밀도 검사도 했다.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결과가 나왔다며 부른다. 디스크가 터졌고 무릎 뒤 연골이 찢어졌단다. 동생은 무척 심하다고 했다. 이러고도 날마다 10,000보 넘게 걸었으니 미련곰탱이가 따로 없다. 다음날 수술 대신 시술(신경성형술)을 하기로 했다. 엉덩이 꼬리뼈에 특수 카테터를 넣어 디스크 주위에 약물을 넣는 치료법이라는데 겁이 덜컥 났다. 다행히 동생이 한다고 해서 안심은 되었지만 심란했다.
저녁에 병실 침대에 누워 있자니 별생각이 다 든다. 그까짓 텃밭 농사가 무엇이며, 다 늙은 나이에 공부가 뭐라고, 잠시도 쉬지 않고 아픈 것을 참아가며 몸을 혹사한 스스로를 나무랐다. 글이고 동화고 한 주 건너뛴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 안 하면 무슨 일이라도 날 것처럼 유난을 떨었다. 병원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나니 한결 움직이기가 수월하다. 집에 와서도 주로 누워 지내다 보니 글쓰기와 동화 공부에 손을 놓게 됐다.
60대 중반이니 인생 후반기다. 아프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지금껏 나름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는 놀면서 가도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데 장담할 수는 없지만 서두르지 않고 주변도 돌아보면서 천천히 가려고 한다. 그래도 내 성격상 글쓰기는 또 한 주도 빼먹지 않으려고 기를 쓸 텐데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지.
유별났던 더위도 처서가 지나자 한풀 꺾였는지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다. 새벽이면 가벼운 이불이라도 덮어야 할 정도다. 절기는 무시 못 한다는 옛말이 맞긴 하나 보다. 그래도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이르지만 바람에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감미롭다. (24. 9. 6.)
첫댓글 쉬어도 글쓰기 실력은 여전하세요. 하하. 건강 잘 회복하시길 바랄게요. 선생님 글 오래 보고 싶습니다.
24,9,6이라는 숫자가 귀여워요. 선생님 글도 그렇게 느껴지고요.
잘 읽었습니다. 아프지 마세요.
9학기째 글쓰기 강좌를 듣는다니 참 대단하십니다. 그 많은 글을 쓰면서 지금처럼 내면이 단단하신 분이 되신 것 같습니다.
글로 뵈니 반갑습니다.
아픈데도 이렇게 빨리 글을 쓰다니 대단하십니다.
얼른 낫기를 바랍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2학기를 1등으로 여셨네요, 건상하시고 아푸지마세요.
사람 바꾸기 어렵다는 말 맞는 말입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해야하는데 쉽지 않아요. 몸의 소리 잘 들으시고 빨리 낫기를 빕니다.
선생님, 아픈 걸 참고 견디신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노동은 금지! 게을러 지세요. 허리는 자세 바르게 하고 무리하지 않아야 낫는대요. 동생분이 의사라 다행이예요.
방학 동안 선생님께서 아프셨군요. 건강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선생님의 투철한 성품이 기어이 '쉼' 처방을 받으셨네요. 때론 모른척 게으름과 한쪽 눈 감기로 몸을 귀히 여기시지요. 에너지가 축적 되어야 빛나는 글이 탄생하지 않겠어요? 선생님의 건강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