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몸치의 댄스일기4 [연습 삼매경]
2003년 4월 20일. 일요일. 계속 내리는 봄비
마음도 울적하고 머리도 띵한 것 같았지만, 도시락을 사무실에서 까먹고, 오후 12시30분쯤 필라에 도착했다.
댄스화를 학원에 두고 와서 신발도 없이 맨몸만 달랑....
거기서 한 달에 1만원하기로 하고 댄스화를 대여하기로 했다.
이젠 신발주머니를 안 들고 다녀도 된다.
(들고 다니기 귀찮고, ㅉ팔렸는데... 잘 됐지 뭐...ㅋㅋ)
오늘은 오후 4시까지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넓은 홀이 내 세상이었다. 나 혼자 달랑...
내 마음대로 개폼, ㄸ폼, 이것저것 내 마음대로 설쳐댔다.
좋았다.
여러 가지를 섞어서 몸 좀 풀고, 본격적으로 왈츠 베이직에 몰두했다.
무려 4시간 이상을 기본 베이직만 연속적으로 연습했다.
제 자리에서 하지 않고, 구석 거울에서 입구 쪽까지 앞으로 전진 했다가...,
뒤로 후진했다가...,
무쟈게 열심히, 쉬지 않고, 반복했다.
CD가 다 돌아가서 음악이 끊길 때까지....,
글구 음악이 끊기면 다시 돌리고, 그렇게 연속적으로 하니까, 마치 큰 산을 오르는 것 같이 힘들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됐다.
셔츠는 온통 물에 빠졌다 건져 올린 생쥐새끼 꼴이었다. 머리 얼굴은 샤워하는 것보다 더 땀으로 푹 젖어 버렸다.
눈이고 입이고 찝찔한 땀방울이 아무리 털어내도 스며들었다.
나중에는 양팔이 석고처럼 고정되어 버렸다. (사실은 통증을 잊을 정도로 마비된 상태.)
선생님께서 매번 가슴과 어깨가 오므라졌다고 꾸중 들었는데, 펴지 말라고 해도 그냥 펴진 상태, 꼿꼿한 자세가 유지되었다.
처음에 아프던 다리, 발목도 가뿐한 느낌이었다.
나중에는 그 매혹적인 왈츠의 박자도 그냥 몸이 따라가 주어서 리듬감도 자연히 탈 수 있었다.
대단한 희열감을 맛보았다.
어느 순간에 난 자신도 모르게, 깃털처럼 몸이 가벼워졌음을 느꼈고, 자아도취의 경지까지 도달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저 구석에 보이는 앞 거울에 비친 음률을 타는 한 사람이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래서 스스로는 왈츠 음악에 몸을 맡겨 버릴 수 있었다.
너무 좋았다.
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방법으로 연습을 해야겠다.
단순한 베이직 한 가지라도 집중적으로 미친 듯이 몰두하니까, 어떤 알지 못할 도의 경지에 근접하는 느낌이 다가오는 듯 했다.
난, 댄스를 연습하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 나 자신에 대한 승리감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 되었다.
난, 오늘 대단한 걸 발견한 셈이다.
가장 단순한 논리, 이론, 선생님들의 말씀, 별거 아니었다.
기본을 열심히, 단순히 말로만 아니라 아주 집중적으로 하면 된다는 가장 간단한 법칙을 알아낸 것이다.
다음에는 베이직만 계속 10시간 연속적으로 도전해볼 계획이다.
하고 나니까 무쟈게 재미있었다.
스텝, 루틴, 별거 아닌 것 같다.
베이직에만 자신 있으면 모두 해결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무언가에 스스로 이렇게 도취되고 열정에 빠진다는 건 느껴보지 않고선 말할 수 없을 게다.
등산할 때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와 동일한 이 순간의 느낌은 가장 간단한 무언가에 집중적으로 몰두해도 느낄 수 있다는 이 사실, 해보면 알 수 있다.
난, 오늘 너무 귀중한 걸 배웠다. 댄스보다 그 무엇인가 말로도, 글로도 나타낼 수 없는...
5시쯤 되어서 두 쌍의 커플이 연습하러 들어왔다.
한 팀은 젊은 층이었고, 다른 팀은 중년이었다.
난, 너무 허기도 지고, 맥이 끊겨서 6시 30분에 철수해버렸다.
전철입구에서 오뎅 두 개 먹고, 김밥 한 줄 사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