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환갑을 맞았다.
역술에서 말하는 사주팔자는 만 60세가 끝나면 그 사주도 끝이라는 이야기를 올해 초에 들었다.
사주에서 말년은 50세 부터 60세,
말년운이 좋다 함은 만 61세가 되는 날까지 란다.
충격!
그럼 61세 부터는 다시 초년으로 되돌아 갈까, 아니면 60까지의 말년운이 계속 이어질까?
어찌 알겠나...
아무튼 정해진 내 운은 완성되었고 남은 생은 여분으로 주어진 것이라니
선물받은 기분으로 더 가볍게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30대 중반에 새롭게 내 인생 계획을 세웠었다.
그 전까지는 단기 목표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학교 성적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대학은 이디를 가서 뭘 전공하고,
어떤 분야에서 내 역할을 찾아
얼만큼 성공적인 사회적 성취를 이루겠다는
아주 단순 무식한 목표.
사실 그것만도 벅찼다.
타고난 저질 체력에
거의 조울증에 가까운 심한 감정기복에
게다가 욕심은 많아서 항상 노력보다 많은 결과를 바랐으니까.
그러면서 서른이 눈앞에 다가왔다.
많이 우울했다.
서른이면 뭔가 대단한 성과를 이루고
내 인생의 윤곽이 잡혀져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난 그냥 허겁지겁 살아내느라 숨이 턱까지 찬 한심한 상태라니.
마음이 급해지면서
방향을 잃었고, 의욕도 상실되면서
깊은 우울감에서 오래오래 힘들었다.
그렇게 서른을 맞고 30대 초반을 보냈다.
아마도 30대 중반 어느 시기에
나는 행복한가? 행복했었나? 행복할 계획인가?를 자문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 여행동아리에서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떠울렸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일단 베낭을 둘러메고 청량리역이나 상봉터미널, 때로는 용산역 나간다.
동아리에 공지된 2박3일 산행이 계획된 건 이미 한달여 전.
그날을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시험준비를 했고,
아르바이트로 여행비를 마련하고
함께 갈 선배, 동기, 후배들과 예비모임과 역할 분담을 하고.
주로 [월간산] 잡지를 정독하면서 정보를 얻고, 지도를 구매해서 복사하고
어렵게 민박집을 수소문하여 전화로 예약을 한다.
주로 금요일 청량리역 밤열차를 이용하는데
그 완행열차 시간 30분 전에 대합실에 10명이나 15명이 출발 인원,
그러나 손에 간식을 들고 나오는 선후배 친구들의 배웅받기는
여행만큼이나 소중한 추억이다.
그시절 아날로그 여행은 얼마나 낭만 충만한 양식이었던가.
아무리 베낭이 무겁고 산행이 고약해도
통기타를 치며 야간열차 연결통로에서 밤늦도록 노래하는 시간은 포기할 수 없었고,
석유버너에 쌀, 감자, 양파, 당근에 때로는 무우까지 쑤셔넣고
남학생들은 소주나 캡틴큐를 한두병쯤 따로 챙기는게 필수였다.
학기 중에 이런 여행은 2박3일이거나 1박2일, 3박4일 이지만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엔 10박이상의 장기 여행이 학기 내내 준비되었다.
여름장기나 겨울장기를 함께 다녀온 우리들은
지금 60이 되어 만나도 너무나 생생히 그 날들을 이야기하고 그리워한다.
그 시절의 나는, 여행 속의 나는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던가!
학창시절 이후의 여행이나 산행 또는 해외 트레킹을 되짚어봐도
어떤 모임 보다도, 어떤 성취 보다도 나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시간은
역시 여행이었음을 확신했다.
나의 인생 후반기는 행복하기. 그러므로 여행하기, 장기 여행하기여야 했다.
가능하다면 그 나라 언어를 쥐꼬리 만큼이라도 익혀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소통하는 여행하기.
그러러면 너무 늦지 않게 은퇴하기.
55세가 적당하겠다.
그 전까지는 열심히 여행비를 모으고, 체력을 유지할 것.
이같은 계획이 나를 깊은 우울의 계단에서 건져 올렸다.
참으로 치열하게 중년을 보내면서도 그리 힘들지 않았고,
계획대로 55세에 은퇴를 했고
바로 장기 트레킹 여행을 시작했다.
그동안 스마트폰이 생겼고, 환상적인 지도 앱을 사용하게 되니
젊은 날의 여행과는 비교불가의 편리하고 알찬 여행이 가능해졌다.
첫 여행지는 캐나디언 록키
다음은 뉴질랜드 한달.
유럽 한달, 미서부 45일, 남미 45일, 조지아 한달, 터키,
스페인과 이베리아 반도, 알프스 일대, 북유럽, 아이슬란드와 페로제도...
그리고 이번 2024년 두달간의 남유럽 여행.
모로코 여행에서 바로 로마로 건너가서
자동차 리스를 하고 [남부 이탈리아]를 돌면서 트레킹을 즐겼다.
이탈리아 남서부 해안 여행은 아말피 해안과, 쏘렌토, 포지타노 등
깍아지런 해안 절벽의 아찔한 절경들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고
절벽 위 마을들의 개성있는 모습들은
이탈리아가 왜 유럽의 마지막 여행지여야만 하는지를 절감케하는
표현 불가의 아름다움이었다.
베수비오 산과 폼페이도 꼼꼼히 구석구석 돌아보고
다음 여행지는 오랜동안 그렇게도 기대했던
시칠리 섬.
35년 전 모습 그대로인 나폴리 항에서 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시칠라아로 가서 꿈 같은 5일을 보내고 이탈리아 본토로 돌아왔다.
아직은 청보리와 사이프러스의 초록이 시작되기 전이기에
토스카나 지역은 귀국 전 3주 동안 일정으로 남겨두고
좀 낯선 나라 [산마리노]에서 3박4일에 이어 본격적인 [아드리아 해]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