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r. 29(목) :
찌뿌린 날씨에 비마져 뿌린다. 식사 후 청력검사와 Dr. Strüven의 회진. 그저 OK라고만 한다. 청력검사는 왼쪽은 그냥. 오른쪽은 귀 뒤의 뼈에다 대고 했다. 오른쪽은 확실히 나아진 느낌이 든다. 어제 한국 간호원들에 의해 한 순경이 대량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들었다. 오후 2시경 Agent 영감님 오다. 아내가 보낸 책과 편지와 Tape도 가져왔다. U/Reefer호가 아니고 K/Freeze호였었다. 급히 대아와 집으로 보낼 편지, E/Reefer의 기관장과 일등항해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송부 의뢰했다. 더불어 Agent와 왼쪽 귀 수술 후 일주일 후부터 2-3주일간 Hotel에 머물면서 통원치료 받도록 합의했다. Prof. Münzel에게도 얘기 됐단다. Pine Crest에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댔다. 일단 현재의 상태를 Telex로 연락해주도록 부탁을 하다.
오후에는 마음처럼 날이 개이는가 싶더니 굵은 우박이 세차게 두 차례나 퍼부었다.
오늘 실밥을 따려고 했던 것을 내일로 미루다. 머리는 빗으로 긁고 수건으로 닦아내고 드라이로 말리기만 했다. 엊저녁 Frau 홍이 어떤 환자에게 받은 것이라며 갖다 꽂아준 카네이션 한 송이가 점점 피어난다. 한결 방안이 밝은 느낌이다.
정화가 공부를 잘 하는 모양. 정현이도 제법인 것 같다. 보고 싶군. 보냈단 신동아 4월호도, 보내란 카드와 사진이 없다. 경황이 없었나 보다. 서운했지만 그래도 당신의 입술이 더 없는 위안이 된다. 봇다리를 싸다니 천만의 말씀이다. 누구 맘데로-.
Apr. 30(금) :
4월의 마지막 날. 잔인한 4월이라고 했던가. 다시 날씨가 맑다. 그래도 이틀간은 꼼짝하지 않았다. 바깥을 훨훨 날아 보고 싶은 충동이 나가기만 하면 그대로 행동으로 나타날 것만 같다. 어제 저녁때 그 우박 속에서 공을 차던 운동장의 애들이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저녁에 내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다. 그 놈들의 무게가 더 한층 무겁게 느껴진다. 어서 가고 싶다. 아니 어서 가야 한다. 계속 신동아만 읽었더니 눈이 어질하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몰두하는 것이 있어야 자신을 잊을 수 있다. 내일부턴 다시 이곳의 휴일이다. 12:30시경 실밥을 따고 붕대를 뗐다. 그러나 귓속의 것은 그대로 둔다.
Dr. Strüven이 월요일 두 번째 수술을 하겠단다. 경과가 좋다고-. 좋아야지! 얼마나 염원을 하고 있는데-. 먹어 오던 노란 알약도 오늘 아침부터는 중지한다. 팔에 꽂아준 프라스틱 주사침을 아직도 그대로 둔채다. 아마도 수술이 끝날 때까지 그냥 둘란가? 매일 가끔씩 Helicopter가 교통사고나 혹은 응급환자를 운송해 온다. 14:00 다시 30분 가량 산보를 하다. 날씨는 여전히 변덕스럽다. 오전에도 한차례 우박이 쏟아졌다. Frau Nienke가 김밥을 만들어 왔다. 두 번째다. 일요일에는 자기 집에 초대하겠단다.
생각 외로 팔의 주사침을 떼낸다.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한다. 속이 시원하다. 기분부터 맑아지는 느낌이다. 머리나 좀 감고 목욕이나 했으면 살 것 같은 기분이다. 16:00시경 Herr. 고시종이 왔다. 자기 집에 가잔다. 역시 담당 Dr.의 허가 Sign를 받고 나섰다. 한적한 주택지구의 연립아파트이다. 아파트의 설계가 마음에 든다. 급히 만든 무우 나물에 초간장. 어린 돼지새끼를 통채로 삶은 것이 별미였다. 입안이 개운하다.
11시까지 지내온 인생살이의 잡담으로 보냈다. 자고 가라했지만 더 이상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억지로 나섰다. 교회의 집사이기도 하단다. 내외가 모두 간호원이다. 모처럼 포식 했다만 무리가 아닐는지?
May. 1(토) :
노동절, 만인이 쉬는 날이다. 종일 비가 내렸고 찬바람도 몰아쳤다. 역시 신동아에만 시간을 앗기다. 오전에 견디다 못해 몰래 머리를 감았다. 몇일 만인가? 세상이 홀가분하다. 연립아파트 앞 게양대에 걸린 독일기와 함브르그 市旗가 펄럭이다 비에 젖어 축 늘어져 있다. 내 무엇처럼. 16:30시 Frau Nienke의 전화로 불야불야 그의 집을 방문했다. Herr. Nienke가 생각보다 점잖하고 젊고 성실해 보인다. 사는 것이 완전하다고 할까. 5살 나는 마티아스군이 제법 엄마를 닮아 까불기는 해도 귀엽다. 대개 동서양의 혼혈아가 그렇듯이 인물도 예쁘게 잘 생겼다. Here. Nienke와 언어가 통했으면 정말 좋았을 터인데 영어가 통하질 않는다. 김치에 불고기, 쌀밥, 된장국까지 있는 솜씨를 다 낸 듯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아무래도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기 있어야 할텐데-. 다시 승선하여 함부르그에 입항하는 날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한국에라도 나올 기회는? 아직은 없단다. 본명은 박혜숙. 강원도 홍천출신이랬다. 딸 일곱의 집 막내딸로 태어나 자기가 기억하는 한 새 옷. 새 교복 한번 입어본 적이 없었단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20대 초반에 낯선 독일에 건너와서 많은 갈등과 변화를 겪기도 했으며 독일사람과 결혼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이 마음 편히 산단다. 오직 바람이 있다면 빨리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만나보는 것이란다. 혼자라면 문제가 없지만 이제는 남편도 아들도 있으니 가족 전체가 다녀와야 하자면 그만큼 제약이 따른다고 했다. 이해가 간다. 가야하고말고-. 거기가 어딘데-. Herr. Nienke에게 잘 말씀드려 달라고 했다. 괜찮다고, 서로를 잘 이해하며, 독일의 풍습에 의하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면서 웃었지만 역시 Frau Nienke 자신의 향수가 짙게 배여 있음을 느낀다. 이국에서 그 땅의 사람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Frau Nienke.의 숨은 고충도 이해가 가지만, 앞날이 시원스레 밝아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디 그의 행복을 빌어 마지않는다. 먹다 남은 불고기, 김치 오이소백이, 밥을 몽땅 싸들고 ‘불모지대’ 책 1, 2권까지 얻어서 돌아오다. 부자가 따로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낮에 한 방에 있는 젊은 친구의 부모와 애인이 와서 날씨처럼 우울했던 기분이 말끔이 가신다. 일요일 밤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저녁을 남겼다 야식으로 해야겠다. 모래는 수술이니 내일은 굶어야 하니까-.
May. 2(일) :
날씨가 너무 변덕스럽다. 그래도 나무들의 색깔이 완연한 연록색을 띄웠다. 5월의 두 번째 날. 역시 일요일이라 조용하다. 오른쪽 귀에 약을 바른 솜을 넣는다. 내일 수술을 위한 준비 과정이랜다. 어떻게 기록을 해두고 지시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빈틈이 없는 것 같다. 내일을 위해 목욕을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해두기로 하자. 그전만큼 긴장은 되지 않으나 염려는 있다. 귀 뒤의 머리를 Frau Nienke가 깎았는데 피가 나고 따갑다. 보기는 안 그런데 왜 그렇게 우악스럽냐고 했더니 웃으며 사실은 자주 해본 일이 아니라나. 오후 5시경 어제 Nienke에게 받은 김밥과 김치, 불고기 등을 가지고 조용한 잔디밭에서 혼자 시원스레 포식을 했다. 마치 소풍나온 기분이다. 저녁을 굶도록 되어 있는데 이 꼴을 독일인 간호원이 보았더라면 두 눈을 부릅뜨고 ‘Oh! No!'를 연발했을 것이다.
6시경 전에 같이 있었던 Herr. Knoack 부부가 들려 주었다. 사과 쥬스랑 사과 3알을 들고-. 일부러 왔단다. 여기 또 마음의 빚을 지는 사람이 있군. 말이 안 통해 손짓에다 눈짓으로만 통했던 그였는데도 역시 사람의 감정은 흐르는가 보다.
정화와 그의 딸 Sandra를 친구로 해주고 싶다고 하자 사진 한 장을 주고 간다. 남매를 기른단다. 아들 보려다 딸만 셋을 얻었다고 하자 그의 부인이 먼저 수긍을 하고 이해를 한단다. 어디가나 사람 사는 것은 다 꼭 같은 가보다. 야식은 저녁으로 준 빵으로 떼우고 늦게까지 불모지대를 읽다. 내일 다시 하루가 무사하길 빌면서 잠자리에 든다. 창문으로 오랜만에 상현달을 본다. 벌써 그렇게 됐나? 집 그리고 대아의 편지를 마무리 짓다.
May. 3(월) :
일찍 머리를 감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렸다. 기분이 묘하다. 처음도 아닌데 -. 09:10 주사. 09:15시 수술실 도착. 미리 전화했더니 수술실에 Frau Lee가 기다린다며 친절하게 위로의 말을 준다. 한결 안심이 된다. 역시 전신마취를 피하고 국부마취로 하기로 했단다. 수술 중에는 자다 말다 했지만 약간은 기억이 있다. 12:00 정각에 수술을 끝내다. 전번과는 달리 약간의 통증이 있다. 양 귀를 다시 싸맸다. 역시 종일을 가수 상태에서 헤매다. 전번같이 귀 뼈를 갈아내지는 않았다. 저녁에는 시장 끼가 있다. 수프라도 좀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단다. 제기랄 먹어야 병이 낫지. 곁에 있는 쥬스병도 간호원이 치워버린다. 못 먹게-. 입안이 바싹바싹 타는데도-.
May. 4(화) :
아침 식사를 두 배나 했다. 어질어질 하지만 허기는 면해야지. 붕대가 너무 조인다. Dr. Strüven이 진료. 소리굽쇠를 이마 한가운데 데 본다. 양쪽이 거의 같이 들린다. 청력이 나아 졌다는 것인가? 어제 수술 중에 Frau Lee도 물어보던데-.
역시 종일 잠만 자다. 같이 있던 젊은 놈이 내일 퇴원한다고 좋아한다. 흐린 날씨. 계속 불모지대만 읽다. Frau 홍이 출근. 세탁물 대 여섯 가지를 부탁하고 또 한참 앉아서 얘기를 했다. 자기 나라 말로 거리낌없이 지껄인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좋은 약이 될 수 있나 보다. Frau Lee도 올라 올거라 했는데 안 왔다. 바쁜 일이라고 있는가?
May. 5(수) :
종일을 비가 내렸다. 퇴원한 옆 젊은 친구에게 편지를 부탁했다. 계속 밖엘 못나가고 틀어박혀 있다. 지루하다. 벌써 20일째 아닌가. Prof, Münzel의 순회 진료가 있었다. 입원환자들의 대부분이 나갔다. 내가 가장 장기 입원환자가 됐다. 다시 들어온 옆 침대의 친구도 귀 때문이랬다. 이 지루함을 독일어 공부로 떼워 볼까 했으나 마음같이 잘 안 된다. 아직도 20여일은 더 있어야 할텐데-. 마누라와 애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다. 어서 가고 싶다. 먹는 것이 차츰 당긴다. 이것마져 잃는다면 그땐 정말 절망이다. 12시경 Herr. 고가 자기의 연립아파트 설계도면을 복사해서 가져왔다. 일전에 내가 부탁한 것이다. 오후 5시경 Frau Lee가 다녀가다. 신동아 5월호를 주었다. 부과장인 Dr. Enger가 집도. 상태가 좋다는 것. 뼈가 상하지 않아 청력회복이 가능하다는 것 등을 들려주었다. 저녁 후 비가 그치자 밖에 나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기운을 차리기로 하다. Frau Hong에게도 전화 다음에 올 때 책도 부탁했다. 저녁에 다시 Frau 홍, 이와 이웃의 여자 병동에서 근무한다는 밀양출신의 Frau. Siefken들과 잡담으로 웃음을 섞어가며 즐겁게 보냈다. Frau. Siefken도 간호원으로 독일 와서 현지인과 결혼하여 국적을 바꾼 사람이다. 덩치가 짚동 만하다는 시어머니에게 ‘나는 보시다 싶이 덩치가 작아 일을 많이 못하니 힘이 좋은 당신이 좀 해주시오’ 라고 했더니 아무 말 않고 하더란 얘기를 하고 모두들 박장 대소를 했다. 독일이니까 될 일이지 한국 같으면 봇다리 사들고 친정으로 쫒겨 갈 일이다. 모두들에게 출신지를 붙여 홍 여사에겐 진주댁이. 이 여사에겐 대구댁. Siefken에겐 밀양댁이라고 댁호를 지어 불렀더니 그것도 생소하지만 옛날 어릴 때 들어본 일이 있다며 괜찮다고 즐거워들 했다. 이젠 우리병동에 아무도 없을 때 이웃 병동에 가서 좀 신세를 지자고 했더니 얼마든지 오랬다.
May. 6(목) :
적적한 하루하루가 연일 이어진다. 날씨가 풀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잔디밭을 산책할 수 있음이 유일한 낙이 된다. 독일어도 결국 시지부지 된다. 계속 ‘不毛地帶’만 잡고 늘어졌다. Dr. Strüven의 회진이 있었고. 오후 3시 40분 잔디밭에서 30여분의 책읽기를 마치고 돌아오니 책상위에 노란 국화 두 송이가 꽂혀있다. 누가 다녀갔을까? Frau Nienke가 아닌지? 한번쯤 올 때가 되긴 했다만. 그릇을 돌려주고 아직 전날 초대의 인사도 못했다. Mr. Kim의 전화로 Unity Reefer호가 10일. Execelcer Reefer가 12일 입항한단다. 반가움과 서글픔이 교차한다. 이게 뭔가. 다시 내일쯤 전화라도 한번 해야겠다.
왼쪽의 결과가 오른쪽만 못한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가끔 한번씩 통증이 있고 들리는 것도 오른쪽보다 약한 듯 하다. 처음에는 오른쪽이 더 나쁘다고 했는데-.
May. 7(금) :
다시 비. 이 병동의 수간호원이 60세로 정년퇴직을 하는 날이란다. 이 병동에서만 35년을 근무했다니 놀랍다. 퇴직 기념 Party가 너무 검소하고 간단하다. 60세라도 살결이 너무 곱고 젊어 뵌다. Frau 홍이 두 딸애를 데리고 오면서 세탁물도 가져다 준다. 애들이 겉은 국산인데 속은 완전히 독일 물로 찼다. 그래서 홍여사와 그의 부군의 의견 충돌이 가끔 있단다. 그의 부군은 빨리 한국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하고, 홍여사는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나, 독일에서 자라고 공부했으니 당연한 결과인데 독일에서 살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다. Frau. Nienke도, Lee도 모두 참석했다. Lee는 사과를 몇 알 사 왔다. 갈수록 신세를 더 지게 된다. 월요일 의사와 상의하여 신경관계를 다시 한번 진찰해보도록 하겠단다. 가능하면 신경외과와 접촉해보도록 부탁했다.
Nienke에게 그릇을 돌려주었다. 어제의 꽃은 역시 그가 놓아준 것이었다. 가슴이 찡하리 만큼 고마움을 느낀다. 오후 3시경 Agent 영감님도 다녀갔다. 예정대로 12-3일경 퇴원하여 부근의 호텔에 머물면서 통원치료, 6월말경 귀국키로 합의. Dr. Münzel과도 얘기가 됐단다. 귀국 후에는 적어도 2-3개월은 정양이 필요하며 또 귀국시 Medical Report는 만들어 주기로 했다. 내가 있던 E/Reefer가 10일 함부르그에 입항 예정(Unity/Reefer는 그때쯤 입항은 하나 Agent가 다르단다). 역시 Limon에서 Banana을 운송중인 모양. Capt.의 전보를 받고 답신을 쳐 달라고 부탁을 하다. Pine Crest에서도 Telex를 보냈다. 속히 귀국하기를 원하는 모양이다. 알만하다. 16:00시 집에 전화. Unity/Reefer 교대자 편에 편지와 책. 쥐포 기타 필요한 것을 보내 달라고 -. 오늘 오후는 그런데로 즐거운 시간이 된 셈이다.
May. 8(토) :
간밤에 어쩐일인지 잠을 설쳤다, 그럴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었는데도-. 비가 온 낮과는 달리 밤에는 휘영청 밝은 달빛이 창문을 채우며 들어온 탓만은 아니다. 아내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했다. 토요일인데도 Prof. Münzel이 회진한다. 월요일날 오른쪽 붕대를 떼어내고 검사하겠단다. 山崎 豊子의 不毛地帶를 일주일만에 독파했다. 작전력, 조직력, 결단력은 곧 무력 전쟁을 능가하는 경제전쟁이다. 덕분에 이 한 주일은 쉽게 보냈다. 오늘은 눈에 보이는 것이 한결 산뜻하고 명백하다. 많이 나아진다는 증거인가?
Herr. 고가 다녀가다. 이번 주일은 토, 일요일도 근무랜다. 일과 생활이 꽉 짜인 하루하루가 어쩌면 너무나 따분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5월 중순이 가까운데도 날씨가 싸늘하다. 입은 옷들도 여름과 겨울용이 섞여 가지각색이다. 역시 북구란 생각이 든다.
오후 9시경. Mr. Kim에게 전화. Unity/Reefer의 입항과 Agent의 주소, 교대 예정 등 필요한 사항을 부탁하다. 체중 68.5-69Kg. 재선중보다 2-3Kg 줄였었는데 입원 후 다시 1-2Kg가 빠졌다. 자정부터 1-2시까지 잠이 오지 않는 것은 거의 매일 밤 한국인 간호사들과 노닥거린 것이 버릇이 된 모양. 그러나 오늘 내일까지는 아무도 없다.
May. 9(일) :
쾌청한 아침이다. 7시전에 일어나 30분 가량 산책을 하다. 괴로운 일요일이지만 또 참아야지. 내일을 기대하며-. 머리의 붕대를 벗기고 귀마개 형태의 덮개로 바꾸자는 것을 내일까지 그냥 두자고 했다. 벗기면 머리가 더 가렵고 비듬이 허옇게 들어나서 보기도 뭣하고. 내일 한꺼번에 벗고 기회 봐서 머리도 감아야지. 낮에 뜻밖에도 Frau Neinke가 왔다. 어제부터 내일 아침까지 계속 대기근무란다. 우선 얘기 상대가 있어 반갑다. 어제 부탁 받았던 Belt도 돌려주고-. 모처럼 이렇게 날씨 좋은 토 일요일에 주부가 집을 비워서 Herr. Neinke가 심술이 나겠다고 했더니 이제 습관화가 되어서 괜찮고 사실 독일 같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가 없단다. 꼬마 데리고 주말농장에라도 간 모양이라고 한다. 주말농장을 꼭 한번 구경시켜 달라고 했다. 그간 먹는 것을 너무 줄였나 보다. 점심때 조금 더 먹었는데도 부담이 온다. 차츰 조금씩 늘여나가자. 어제부터 한결 좋아진 증세가 눈에 띈다. 이 정도 같으면 월말경에는 충분히 귀국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치료만 완벽하다면. 해질녁까지도 오랜만에 맑게 개인 파란 하늘을 본다. 몇번인가의 하얀 줄기의 비행 구름을 보다. 저걸 타는 날이 언제 일거나? 무료한 하루였다. 내일쯤 Frau Lee가 책을 가져오려고 했는데 잊지는 않으려는지?
May 10(월) :
어제 이어 다시 해맑은 아침이다. 역시 30여분을 걸었다. 어제 좀 과다하게 걸은 탓인지 오늘 아침에는 약간 어지러운 증세가 있었다. 11시경. Herr. 고가 다녀가다. Der. Spigel誌를 주고 갔으나 그림의 떡이다. 12:00시 붕대를 풀고 왼쪽의 실밥을 끊어 냈지만 속에 든 것은 양쪽다 그대로 두고 검은색 붕대로 바꾸었다. 머리가 한결 가벼워 졌지만 꼴이 말이 아니다. 고개를 흔든 다음 안구의 움직임을 검사했다. 많이 빨라졌다고 했다. 사실 안구가 따라 움직이지 못해서 어지러움이 있긴 했다. 오후 6시경 느닷없이 유니티 리퍼의 송정남 선장과 통신장 그리고 Herr Kim이 왔다. 이렇게 빠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 1시간 반가량 이야기로 보내다 갔다. 역시 고마운 사람들이다. 집에서 보낸 쥐치포, 김치, 김, 인형, 사진에다 U/Reefer에서 보낸 사과와 신문까지 있었다. 부자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한번 집어 먹어본 김치가 너무 맵다. 오래토록 안 먹어서 그런가? 당신의 편지가 너무 짧아 서운했지만 근간의 애들 모습들이 싱싱하다. 은영이가 외탁을 하는 것도 같군. 새벽녘까지 신문을 읽다. U/Reefer호는 12일 밤 출항 예정이랬다. 송선장은 그대로 연장했고 기관장만 교대한단다.
May 11(화) :
Prof. Münzel이 직접 진찰. 오른쪽은 막았던 솜뭉치를 빼내고 치료 후 청력을 다시 Test. 많이 좋아졌단다. 저절로 웃음도 기운도 난다. 악수도 한번 힘차게 했다. 완전히 붕대를 풀고 심지만 넣는다. 아침 산보 도중 출근 중인 Frau Lee와 만나다. 오늘 틈 나는데로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연일 화창한 날씨와 더불어 기분도 맑다.
14:10시 Frau Lee가 왔다. Prof. Münzel의 얘기를 들려준다. 수술이 잘 됐고, 퇴원 Order는 아직 없으며, 어지러움증은 이비인후과로서는 그의 완전한 것 같은데 안과에 다시 의뢰해 보겠다고 했단다. 어지러운 증세를 좀 더 자세히 얘길 하다. 어포, 김, 사과 몇 알을 드리다. Herr. 고에게 유리를 규격에 맞춰 잘라 사다 달라고 부탁. 인형 상자를 만들었다. 42마르크가 들었다. Frau 徐도 두 아이와 함께 와 주었다. 오른쪽을 풀고 나니 한결 견딜만하다. 새로 넣은 심지에서 심하게 약물이 흘러나온다. 어제보다 더 뻐근하고 턱을 움직일 때마다 걸린다. Frau 홍 전화 왔었다. 내가 먼저 하려던 참이었는데-. 어포, 김 등을 주기 위해서 한번 들려달라고 했다. Nienke에게도 어서 줘야 할텐데-. 점심 저녁을 방에 가져와서 김치와 함께 먹었다. 한결 입안이 개운하다. 역시 제것을 먹어야 마음도 제것이 되나 보다.
May. 12(수) :
오전중 E/Reefer호 C/O 백무흠, 2타수. Saloon 배군이 다녀가다. 오후 1시경에는 Mr. Hagen. 송 선장, 강 국장, Agent가 왔다. Agent에게는 인형, Mr. Hagen 에게는 한국의 소형 병풍을 선사했다. 이상하게도 꽉 막히고 머리가 띵 하다. 입원 후 처음 느끼는 증세다. 아침에 30여분씩의 산책 이외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오늘 치료가 없었다. Prof. Münzel이 오후에 보자고 했는데? 오후 4시경이 되서야 Münzel이 찾는다. 심지를 완전히 빼내고 더 이상 넣지 않는다. 살만하다. 치료 후 곧 E/Reefer호에서 기관장, 통신장, 갑판장, 조리장 등이 Shipchandler의 안내로 왔다. 반갑고 고마웠다. 저녁엔 그들이 갖다준 김밥과 김치로 배부르게 먹었다. 함께 보내준 Banana는 약간 상했다. 공정영 기관장의 냉동사에 대한 Report를 했지만 회사에 한 번 더 잘 얘길 해달라고 했다. 수면제 1알을 먹고 잠을 청했으나 11시가 넘어서야 잠들다.
May 13(목) :
머리 감다. 그렇게 개운하고 산뜻할 수가 없다. 아침 산책길에 Frau Lee를 다시 만나다. 퇴원 일자를 오늘 의논하게 될 것 같다고 한다. Herr 고가 다녀가다 내일 금요일 자기 집에 가서 자고 토. 일요일 교외로 나가는 기회가 있으니 함께 가진다. 가고 싶다. 어디든지-. 훨훨 마음끝 움직여도 보고 싶을 뿐인 지금이 아닌가? 그러나 일단 오늘 오후의 결과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Frau Lee와 Prof. Münzel과 셋이서 앉았다. 다시 심지를 넣기로 한다. 계속 물이 나오는 것은 염려 말란다. 약이 녹은 것이랬다. 대신 오늘 저녁부터 주사 및 투약을 하겠다고 한다. 지금의 상태에서 퇴원은 해도 좋으나 하루 세 번씩 주사를 맞으러 통원해야 한단다. 그러면 퇴원할 필요가 없질 않은가? 내일 Agent와 다시 상의해 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Hotel비와 입원비의 차이 때문일 것 같다.
Frau Nienke와 함께 그이 주말 Garten에 가서 두서너시간 놀다 왔다. 오랜만에 녹음 짙은 숲속을 거닐기도 했다. 쥐포. 오징어포. 바나나 사과 등을 Frau Lee와 나누어 주었다. Herr 고에게는 Banana를 주고-. Frau 홍만 남은 셈이다. 앞을 3-4주일은 더 있어야겠다고 한다. 아득하지만 할 수 없는 일. 내 평생의 짐이었던 귀였으니 완전히 치유만 된다면 참을 수 있을 것이다. Frau Lee, Nienke와 함께 Prof. Münzel에게 한국 인형을 선사할 것을 의논했다. 괜찮겠단다. 유리상자를 만들기를 잘했다.
May 14(금) :
오전 중 Agent 영감님 다녀가다. 다음 주 월, 화요일쯤은 일단 퇴원하기로 하다. 어제 저녁부터 다시 주사를 하루 3번 맞기 시작했다.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Dr. B. Horst가 순회진료. 역시 좋은 날 봐서 퇴원하고 하루 3번씩 지정해주는 시간에 주사 맞으러 오라고 한다. 시키는 데로 잘 할테니 빨리 좀 갈 수 있게 해 달랬더니 옆에서 Prof. Münzel이 웃는다. Agent Herr. Belokoubek 영감님께 인형을 선물했더니 그 답례인가 자기 회사의 Mark가 찍한 Necktie를 하나 갖다 준다. 월. 화요일쯤 퇴원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했다. 저녁 식사 후 TV보는 데 Frau Lee가 왔다. 오늘밤 대기조 근무라고-. 1시간 가량 얘기하다 갔다. 여자의 힘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를 따라 이비인후과 수술실을 잠간 구경했다. Prof. Münzel의 개인 고객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 Herr 고에게 전화, 그의 초대에 응하지 못하게 됐음을 알리다. 서운하고 미안하다. 모처럼의 기회였는데 -. 지루하고 따분하다. 좋은 수가 없을까?
May 15(토) :
역시 좋은 주말이다. 옆에 있는 Herr. Vessli가 퇴원했다. 벌써 네 번째로 왔다가는 사람이다. 나도 2-3일 후면 퇴원은 한다만 갈 곳이 없는 이상 나그네의 신세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대부분의 환자들이 휴가를 갔다. 기분 전환을 겸해 식전에 머리를 감고 빗었다. 이발도 해야 하는데-. Prof. Münzel이 진료. 계속 일일 세 번의 주사. 오후 병원 밖 도로에서 벌어지는 자전거 경기 구경을 했다. 산뜻하고 가벼운 자전거, 간편하게 접었다 폈다 하면서 승용차 트렁크에 넣기도 하고 차 위에 달기도 한다. 무엇보다 남, 여 어린 국민학교 학생들의 발랄한 모습들이 탐스럽고 부럽다. 오후 4시경 Frau 홍의 차로 그의 집에 갔다. 그의 부군인 申씨와 인사를 나누다. 얘길 들었다며 고생이 많다고 위로의 인사를 들었을 땐 가슴이 찡해왔다. 충청도 출신. 점잖고 재미있다. 이곳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뎄다. 300여평의 대지위에 50평의 건평을 가진 개인 주택. 자기 자금이 20%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한다. 주위의 환경도 좋다. 부자가 부럽지 않을 것도 같다. 쥐포와 김 4개를 가져갔다. 오랜만에 양념 간장에 찍어 먹은 두부, 김치 상치에다 갈비도 뜯었다. 여기 사는 한국사람들 끼리는 피차 초청이나 내왕이 드물지만 내 같은 일시적인 사람들과는 가끔 초대를 하고 식사를 나누며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그 심정들을 이해한다. 역시 근심거리는 두 딸들의 교육과 장래 문제라고 한다. 아직은 우리 사고방식의 잣대로 본다면 당연한 일이다. 자전거 경기장에서 본 고적대 학생들의 모습이 떠 오른다. 같은 학생들이면서 정말 어린애 같기도 한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턱수염이 텁수룩한데 검은 안경까지 버티어 쓰고는 쉬는 시간에 깡통 맥주를 마시면서 여학생과 스스럼 없이 포옹도 하고 뽀뽀도 한다. 거기다 담배까지 척 빼무는 것을 보면 역시 우리의 정서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장면들이기도 하다. 혼자뿐인 병실에 밤 9시경 역시 홍 여사의 차로 돌아오다.
May. 16(일) :
아침 산책 30분. 오늘도 자전거 경기가 있다. 오늘은 장거리인 모양이다. 이젠 화창한 날씨가 많아진다. 이런 날의 일광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양식과 같은 것이다. 곳곳에서 웃옷을 벗어 제치고 일광욕을 하고 있다. 오전에 Prof. Münzel이 진료. Agent가 오면 퇴원에 대한 얘길 하겠다고 했다. 장거리 자전거 경기를 구경하고 오니 옆자리에 초로의 Herr. Bhom이 입원했다. 멀리 Hanover에서 왔단다. 이 병원이 이비인후과로는 독일에서도 이름난 병원이랬다. 어제 저녁 Frau 홍에게 얻어 온 소설책에 오후를 앗겼다. 무엇보다 자신을 잊고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하체에 습기가 찬다. 드물일인데-. 목욕을 않은지도 오래 됐다 근질근질하고 때도 밀린다. 주사에 대한 거부반응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무슨 형벌이란 말인가? 다시 오른쪽의 청력 Test를 받다. Prof. Münzel이 ‘Good’이라고 했다만 아직도 멍멍한 느낌이다. 수술 후 세 번째의 Test이다.
May 17(월) :
일찍이 Agent 영감님이 왔다. 함께 부근의 3군데 호텔을 둘러 봤으나 빈방이 없단다. 제일 먼 곳인 ‘Lindtner Hotel'에 예약. 내일 오전 10시경 오기로 하다. E/Reefer호에 USDA Certificate에 대한 전보 문의에 답신하다. TV, 그리고 밤 11시가 넘어 Herr 고에게 가서 1시간을 놀다 오다. 내일 일단 퇴원을 한다니 착찹한 심정이다. 한결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염려도 있다. 갑자기 오는 발병에 놀란 탓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빨라도 3주일은 버텨야 한다. 이를 물고서라도. Pine Crest. Diaship에게도 Telex해달라고 Agent에게 부탁하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May 18(화) :
Dr. Enger가 잠깐 만나잔다. 오른쪽은 Prof. Münzel이 시술했고 왼쪽은 자기가 했다면서 왼쪽도 붕대를 떼내고 반창고를 붙인다. 한결 편하고 우선은 꼴이 사람꼴이다. Prof. Münzel도 오른쪽을 진찰. Frau Lee를 불렀다. 계속 물이 나와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주사도 바늘을 꽂은 끝 부분이 약간 부어오르고 붉게 되어 오른쪽 팔에다 옮겼다. 잘 되어 가다가 왠일인가? 걱정이다. 11:00경 짐을 꾸리고 퇴원. Texi로 호텔 Lindtner의 106호로 옮기다. 생각보다 좁으나 1인용으로는 깨끗하고 충분하다. 목욕탕까지 달렸으니까. 오후 2시에 주사를 맞은 후 함브르그 시내를 나가다. 얼마만인가? 운동화, 먼지털이를 사다. 이제부터 제법 용돈이 들것만 같다. 그래도 승선 중 한푼 두푼 아껴쓰고 모아 두었던 것이 천만 다행이다. 저녁 8시 다시 병원에 가면서 Hotel의 식단을 가지고 갔다. 혹시나 먹어서는 안 돼는 음식이 있을까 해서다. 11시경 Frau Lee와 Hong에게 Menu에 대한 설명도 듣고 자정까지 잡담으로 깔깔거리다 호텔로 오다. Frau Lee는 그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적은 거인으로 뵌다. 정치학 박사학위를 가진 그의 남편이 한편으로 술꾼이랬다. 한 번 만나 기분껏 한잔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웃었다.
May 19(수) :
7시에 병원가다. 퉁퉁한 할머니(그래도 60세 랬다) 간호원이 웃으며 반긴다. 8시인데 왜 7시에 왔냐고-. 7시로 정정되었음을 보여주니 몰랐다며 얼른 챙겨준다. 자기도 금년말에 정년퇴직한댔다. 아직도 정정하다니까 그렇다고 좋아한다.
오전에는 그냥 잠만 잤다 엊저녁에 잠이 모자란 모양이다. 아침부터 비가 뿌렸기에 호텔에서 우산을 빌려서 갔다. 점심 식사는 엊저녁 연필로 표시해 둔 것을 참조해서 청하였더니 맛은 괜찮은 편인데 만드는 시간이 1시간이나 걸린다. 오후 2시에 다시 주사. 3시에 Prof. Münzel이 진료. 다시 심지를 갈아 넣고 내일은 12시에 오랬다. 오후 호텔에서 목욕하고 세발을 하다. 불편하고 무리가 있지만 할 수 없는 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내 한 몸의 문제가 아니고 늘 타인 앞에도 서야하니까. 이발을 할 때도 너무 지났다. 겉때만 대강 벗겨냈지만 한결 시원하고 가볍다. 저녁때엔 날씨가 개인다. ‘서독의 한국인’을 읽다. 외국인에 대한 현지민들의 편견, 편파적인 대우, 그리고 흔히 보아온 외국에서의 고된 생활을 읽은 것이다. 지금 여기서 기반을 잡은 사람들의 초기 고생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밤 10시 주사 후 Herr. 고에게 들려 놀다가 자정쯤 돌아오다. 내일을 함부르그 시내에 나가서 영화나 서커스라도 구경하고 와야겠다. 너무 적막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