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여행기 <2007.11.29~12.2> 사삼여동회가 주관하는 금년도 두번째 여행은 대만으로 정했다. 중국여행은 많이들 가지만 대만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장개석 총통이 중국본토에서 대만으로 쫓겨갈 때 가져간 보물이 자그만치 65만점이나 되고 박물관에서 그 일부를 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관광의 핵심이 되고 있다. 20명으로 구성된 이번 여행팀은 예정대로 11월29일 12시에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2시20분에 인천을 떠나 타이페이로 향하는 면면들의 모습에서 행복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3박4일의 짧지만 알찬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대만은 국토 넓이가 36만평방KM로 경상남북도에다 제주도를 더한 크기와 같다고 한다. 모양이 마치 고구마처럼 길죽한데 남북의 길이는 392km, 동서가 144km이다. 인구는 2천3백만으로 좁은 땅에 대단한 인구이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두번째이다. 아열대지역으로 섬나라인지라 습기가 많고 태풍과 비가 잦다. 며칠전 27일까지도 태풍과 비 때문에 여행에 지장이 많았었는데 이번 팀은 큰 다행이라고 가이드가 일러준다. 서문정거리 예정대로 2시간40분이 걸려 타이페이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시차 한시간)였다. 호텔에 체크인 후 호텔식당에서 뷔페식사를 마치고 시내 서문정거리로 갔다. 서울의 명동과 같은 번화한 거리다. 타이페이 시의 서쪽, 타이페이역의 남서쪽에 있는 약 600m의 거리를 지칭하는데, 상점가와 영화관, 유흥가 등이 밀집되어 있다. 이곳은 특히 동쪽의 상점가에 비해 더 서민적이고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편이다. 가이드를 따라 몇군데를 들렀다. 쌀국수로 유명한 아쫑맨션(阿宗麵線)에서 시식을 하기 위해 네그릇을 시켜 길거리에 서서 한젓갈씩 먹어보는 기억은 새삼스럽다. 이곳 젊은이들도 한창 때는 줄이 수십미터나 된다고 한다. 아쫑은 한그릇에 작은 것이 40원 큰 것은 55원인데 우리돈으로는 1300원과 1800원이다. 서문정거리는 과연 젊은이들의 거리였다. 먹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다. 두부를 썩힌 초도후,굴지짐,장조림국인 루로우판, 술안주로 좋을 성 싶은 오리혓바닥,오리날개,닭날개조림이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용산사과 야시장 서문정거리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용산사에 들렀다. 용산사(龍山寺)는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2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불도교 절로서 못질 하나 없는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목조건축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입시철이나 명절 때는 수험생 부모 그리고 환자를 둔 가정에서는 병과 합격기원을 위한 기도가 대단하다고 한다. 대만에는 무려 3만5천개의 사찰이 있다고 하니--
용산사 건너편에 있는 야시장으로 갔다. 서민들의 실 생활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장이다. 이름대로 야시장은 야간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물품 중에서도 특히 뱀과 자라 등 보신을 위한 가게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야간관광을 마치고 타이페이 시내를 벗어나 담수강을 건너 도원시에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담수강을 건널 때 높다랗게 서 있는 원산대반점은 주위를 압도하면서 시선을 모으는 건물로, 송미령여사가 지은 호텔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다른 점도 특이하다. 호텔은 타이페이 시내와 거리가 떨어져 있어 좀 불편했지만 시설은 좋았다. 내일은 원래 일정을 변경하여 자강호 열차를 타고 화련으로 가서 테로각협곡을 관광하기로 하였다. 테로각협곡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창문으로 비치는 빗방울. 오늘 여행이 은근히 걱정이 된다.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가긴 하지만 그곳은 괜찮을까? 우산을 챙기고 옷을 껴 입었다. 더울 것이라 생각하고 엷은 못을 주로 준비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밥을 먹고 버스에 오르니 비가 개었다. 여행은 날씨가 반부조라 하는데 여태껏 사삼여동회가 다닌 곳은 언제나 날씨가 좋았었다. 역시 오늘도 다행히 개이기 시작했다. 타이페이역은 규모가 제법 컸다. 열차를 기륭쪽으로 북상했다가 산악해안을 따라 남하하는데 우리의 목표지인 화련역 바로 앞역인 신성역에서 하차하였다. 오랫만에 기차를 타고 단체여행을 하니 마치 수학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창가로 바다가 보이기도 하고 깎아지른 듯한 바위도 시선을 끌었다. 기차에서 내리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옥.비취공장에서 나온 버스란다. 먼저 옥공장에 들러 전시된 작품들을 구경했다. 비취,옥,대리석으로 만든 작품들은 가격이 대단했다. 아홉마리 용이 새겨진 580만원(원화로 1억8천만원)의 옥 조각장식품은 보기만해도 고가인 줄 알 정도로 대단했다. 몇몇 회원들이 집안에 비치할 장식품을 샀다. 매장에 오면 반드시 물건이 팔리는 걸 보면 신기하다. 이 공장은 정부에서 40%의 주식을 가진 반관반민회사라고 하는데 버스는 물론 점심식사까지 제공한다고 하니-어쨋든 공장 안에 있는 큰 식당에서 점심대접을 받고 옆에 있는 고산족 쇼를 보여 주었다. 아미족이라는 고산족은 키도 눈도 큰 잘 생긴 소수민족으로 풍습이 많이 달랐다. 전통춤과 노래 그리고 결혼풍속을 재현해 주었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관광온 손님들 중에서 가수, 신랑,신부를 뽑아 같이 공연에 참가시켰다. 우리는 대표가수로 이대희회장이 출연하여 박수를 받았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테로각(太魯閣)협곡으로 들어갔다. 테로각은 옛 추장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험준한 산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대만은 동쪽으로 치우쳐저 남북이 긴 산악지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3천미터가 넘는 산만해도 220여개가 된다고 한다. 산 중간중간에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장관이었다. 사삼여동회가 지난 6월에 북유럽여행을 하면서 놀웨이의 엄청난 폭포관광을 한 후라 그렇게 놀라운 구경은 아니었지만 깎아지른 바위벽이며 폭포가 닮은 점이 많았다. 다만 계곡물이 석회를 풀어놓은 듯 흐린물이라 아쉬움이 많았다. 놀웨이에서는 폭포물을 그냥 마시곤 했는데--
산 높은 곳에 앉은 장춘사, 제비집 모양의 구멍이 많이 뚤린 연자구, 칼치처럼 모양을 내면서 쏟아지는 칼치폭포,아홉 구비의 창자모양을 한 구곡동,어머니의 사랑 전설이 담긴 자모교를 눈으로 사진으로 담으면서 감상하였다. 녹수까지 갔다가 되돌아 왔다. 구곡동에서 15분간 걸어서 버스 있는 곳까지 오면서 절경의 바위와 물소리에 마치 신선세계에 온듯 착각에 빠졌다.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오는 도중 한국인들 관광객 중에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승객이 있어 여행기분을 상하게 했다. 아직도 여행에티켓이 모자란 사람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열차에서 차내방송까지 했다니 국가적인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다음날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가리는 야구시합이 이곳 대만에서 있다고 한다. 한국과 대만경기가 내일 있어서 무려 700명의 응원단이 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한국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2시간 40분이 걸려 타이페이에 도착했다. 사흘밤을 한 호텔에서 숙박을 하니 짐을 싸는 일이 없어 아주 편했다. 내일은 고대하던 중국 황실의 최고의 유물들로 가득찬 국립고궁박물관을 관람한다는데 벌써 가슴이 벅차 오른다.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보니 화창하다. 정말 다행이다. 8시에 호텔릉 떠나 충열사를 찾았다. 9시에 문을 여는데 교통이 막힐 수도 있어서 일찌감치 도착하였다. 충열사에서는 9시 근위병의 교대식이 있었는데 많은 관광객이 운집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서민정 거리 야간 산책
쌀국수로 유명한 아쫑맨선
용산사
옥비취공장
테로각 협곡
충열사/근위병 교대식
국립 고궁박물관 드디어 고대하던 국립박물관에 입장하였다. 타이완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국립 고궁박물관이다. 65여만 점에 이르는 중국 최고, 최대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나 전시시설의 한계로 인해 한번에 1만,5000점밖에는 보여주지 못한다고 한다. 유물은 3개월에 한번씩 교체 전시되며, 1년에 모두 6 만점 정도가 전시된다. 소장품 전체를 다 전시하려면 최소한 10년이상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시품은 역대 중국 황제들이 개인 소장품이 주류를 이루는데, 대부분 옥, 금, 칠기, 자기 등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한자문화를 알 수 있는 많은 책과 서화등도 있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3층에서부터 주요 전시품에 관해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2층을 거쳐 1층으로 내려 왔다. 몇가지 꼭 눈여겨 보라고 강조한 문화재로는 비취,상아공,청동기,수공예조각인 올리브씨,원석 돼지고기 장조림 등이다. 3층에는 옥기(玉器),청동기,도자기,아골(牙骨) 그리고 고고(考古),비취옥배추 전시가 신석기에서 한(漢)나라 까지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2층에는 회화, 서예와 특별전시실이 있다. 그리고 도자기 옥석,법랑칠기,죽목 아(竹木牙)조각 작품등으로 육조~청나라시대에 걸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관람시간이 짧아 아쉬웠지만 전체일정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길가의 광고간판이 이채롭다. 사람이 간판을 들고 서 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식사는 샤브샤브- 2인1테이블로 소고기와 해물 야채류를 푸짐하게 넣어 직접 요리하면서 먹는다. 배부르게 먹었다. 식사후 기륭에 있는 야류(野柳) 해양지질공원으로 갔다. 지진으로 생긴 각종의 동식물 모양 특히 버섯모양의 암석이 이채로웠다. 마치 터키의 카파토키아에 온 느낌이다. 코끼리바위,상아바위,생강바위,여왕봉바위 등 이름도 다양하다.
해양공원을 떠나 유황온천욕을 하기 위해 온천마을로 갔다. 유황냄새가 강한 온천으로 실내온천을 하였 다. 남여 야외혼탕의 경우 수영복이 필요하다고 준비를 했지만 모두들 남여 별도의 실내탕을 원했다. 미끌미끌한 물이 온천수의 질을 증명하는 듯 했다. 실내탕이지만 야외로 연결되는 실외탕은 수온이 높 아 추운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동안의 여행 피로가 다 날아간 듯 개운한 기분이다. 더구나 온천욕을 한 후의 맥주 한잔이 이토록 맛날 줄은 미처 몰랐다.
석식을 하기 전에 옵션으로 전원이 가기로 한 '타이페이 101 빌딩'을 찾았다. 대만은 소득이 18,000불로 17년전이나 같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중국 본토와는 전혀 다른 문화수준을 갖고 있다. 질서나 공중도덕이 잘 지켜지고 예술을 즐기는 편이란다. 101빌딩이 있는 시누구지역의 땅값은 평당 120만원(3천8백만원)이라 고 한다. 고급 샾들이 즐비하다 101빌딩은 이름대로 지상 101층빌딩인데 5층 까지는 고급샾으로 구성되어 있다. 101빌딩은 전망대도 유명하지만 저층의 쇼핑센터로 유명하다. 다양한 세계의 명품들이 줄지어 있는 관계로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명소이다. 101빌딩의 CEO는 놀랍게도 30대의 젊은 독신 여성이라고 한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가 있는 89층까지 오른다. 분속 600m의 초고속으로 5층에서 89층까지 45초가 걸린다. 전망대에서 이어폰을 끼면 우리말로 장소마다 설명이 이어진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타 이페이 시가지 모습은 한마디로 형형색색의 불 빛 찬란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석식은 타이페이시내의 몽고리안 바베큐 전문점에서 가졌다. 규모도 컸지만 손님이 너무 많아 마치 시장터 같았다. 소,돼지,양,닭고기 중에서 먹고 싶은 고기를 선택하고 다양한 야채와 소스를 갖고 가서 주방장에게 요리를 맡기면 즉석에서 요리를 만들어 준다. 특색있는 요리의 경험이라 기억에 오랫토록 남을 것 같다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 밤이라 호텔 식당에서 쫑파티를 열었다. 서울에서 다시 모인다는 것이 연말의 바쁜 일정을 감안할 때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술과 안주 그리고 과일을 준비했다. 술은 역시 금문도 고량주가 최고였다. 58도의 독주이지만 뒤가 깨끗한 고급술이다. 과일은 대만의 특산품인 과육이 많은 대추,연우,바라 등 처음 먹어보는 것 들이다. 내일은 마지막 관광을 마치면서 귀향하는 날이다.
사림관저와 중정기념당 12월2일. 아침 날씨를 보니 햇빛이 찬란하다. 마지막까지 날씨가 좋아 여간 다행이 아니다. 8시에 호텔을 떠나 마지막 관광길에 올랐다. 오전에 관광할 첫 코스는 사림관저(士林官邸)이다. 장개석 총통이 1950년 송미령과 주거한 저택과 정원으로 1996년 타이페이 시장이 개방할 때 까지 완전히 비밀의 정원이었다. 아직도 저택은 개방되지 않고 있다. 사림관저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각종 꽃 전시회,서화전 등이 열리곤 하는데 지금은 국화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장미원은 계절이 좀 지났지만 아직도 여러 색갈릐 장미를 볼 수 있었다.
이어 장개석총통의 기념관인 중정기념당으로 갔다. 장개석(蔣 介石)총통이 국부인 손문 선생의 유지를 계승하여 공산당 소탕 및 군벌,토벌,그리고 8년 동안의 기나긴 항일투쟁등을 영도하며 끝없는 투쟁과 노력으로 한 평생 부강한 나라를 위해 매진 한것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본명은 중정(中正). 저장성(浙江省) 평화연(奉化縣)에서 출생,1906년 바오딩(保定) 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다음에 일본에 유학 1918년 손문(孫文)의 휘하에 들어가 1923년 소련을 방문 적군(赤軍)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1927년 상하이 쿠테타를 일으켜 공산당을 탄압,1928년 베이징을 점령하고 난징(南京) 국민정부 주석과 육, 해,공군 총사령관을 역임하였다. 1976년 10월31일 장개석 총통 90세 탄신 기념일을 맞아 시공, 1980년 4월5일 정식 개방하였다. 총 면적 25만㎡,기념물 높이는 70m이며 중화 문화의 품격을 잘 나타내고 있는 건축물의 하나이다. 90개의 계단은 열반의 나이에 맞추었고, 청색과 흰색은 자유와 평등을 상징한다. 외곽 담장벽에는 808개의 창문모양이 시선을 끄는데 어느 것 하나도 같은 모양이 아니라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청취옥백채
해양공원 / 버섯모양의 암석
온천마을의 온천욕
101빌딩
101빌딩 전망대에서 본 주변 야경
사림관저 정원 중정기념관에서
중정기념관 장개석 총통 집무실
중식은 해패왕(海覇王) 식당에서 사천식 요리로 거나한 식사시간을 가졌다. 소,돼지,닭,양고기와 오리알 까지를 함께 넣어 요리한 불도장,소동파 이름을 따서 만든 돼지고기 요리인 동파육, 스팀새우, 전복냉채 등 많은 요리가 나왔고, 58도나 되는 금문도 술도 좋은 안주와 같이 마시니 술의 강도를 순화시켜 주는 듯 술맛도 났다. 이로써 관광일정은 모두 끝난 셈이다. 3박4일의 알차고 즐거웠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했다. 20명의 전 회원들이 한 마음으로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협조하여 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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