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아일랜드 일주여행기
<2015.5.26~6.4>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 장거리코스 중에서도 한나라를 심도있게 탐방하는 코스도 요즘 인기가 있다. 유럽여행은 크게 서유럽,동유럽,북유럽과 러시아,이베리아반도(스페인,폴투갈)와 모로코,발칸반도 등으로 분류하여 많은 나라를 동시에 여행하는 패턴이 대세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태리일주,스위스일주,영국일주,남프랑스일주,발틱3국,베네룩스3국 등 새로운 패키지여행이 유행한다.
재작년 남프랑스여행에서 감흥을 받아 또 한번 장거리여행을 시도하면서 스위스와 영국을 놓고 결정을 미루다가 집사람의 최종결정에 따라 가장 시기가 좋은 5월말을 택해 일상을 덮고 떠나게 되었다. 영국은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4국으로 되어 있고 독립된 아일랜드도 포함해서 5개나라를 여행하게 되니 한나라라 하지만 역시 몹씨 바쁜 일정일 수 밖에 없다. 9박10일 중 오가는 시간을 빼면 8일 반나절 정도.
우리 부부를 포함해 대부분은 서유럽 여행이 아마도 유럽여행에서 첫번째로 다녀온 곳일 게다. 영국하면 런던이고 무척 오래전에 다녀온 곳이다. 런던의 기억을 되살리자니 당시의 기록도 사진도 남은게 없으니 허사--그리고 이번 스케쥴을 보니 런던은 아예 없다. 국회의사당,빅밴 등 고작 2시간여의 여정이다. 과거 이미 런던여행은 마친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제1일 런던에 도착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티켓을 받아 짐을 부치고 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시내면세점에서 산 물품을 인도받고 출입구 대기실에서 페이스북에서 해외여행을 알리고 가져간 책으로 시간을 달래었다. 정각 1시출발,고도를 높이고 속력을 올려 대륙을 횡단한 KAL기는 12시간이나 걸려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하는 동안 잠을 잘 수가 있으면 좋으련만 소원대로 되지 않는다. 영화를 연속 세편을 보았다. 국산영화 명량,고전영화 로마의 휴일,카사브랑카-- 오드리헵번,그레고리펙,잉그릿드버그만,험프리보가트--쟁쟁한 대스타들의 추억어린 영화를 다시 보는 느낌 좋았다. 시대가 변해도 미인은 여전히 예쁘다.
히드로공항에 도착하여 마중나온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버스를 타니 그곳 시간으로 6시50분이다. 12시간 비행에 8시간 시차가 있다. 서울보다 8시간이 늦게 간다. 시간을 번 셈이다. 물론 돌아갈땐 손해를 보지만--가이드는 나이도 들었고 경력이 많은 자로 가이드는 6년차란다. 베테랑급이다. 가이드가 여행에서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50인승 대형버스에 스무명이 타니 한사람이 두자리씩 차지해도 남는다.
영국에 관한 개괄적인 소개를 들었다. 영국은 비록 땅 크기는 한국(남북한)의 1.2배에 그치나 산이 거의 없는 평야지대로 가용면적은 한국의 4배나 된다. 평야가 많은 관게로 감자,유채,목초재가 많고-- 우리네 농부와는 개념이 다르다. 영국에서 농사꾼은 부자로 취급되고 최소한 33만평이상을 경작해야 농부라는 이름을 붙인단다. 영국은 스페인,폴투갈에 이어 해양국가로 전세계를 지배하고 산업혁명이후로 세계 최강,최고의 부국이 되어 아직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구는 5,800만명, 수도 런던은 인구 870만의 대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국제화된 도시로 인구의 49%가 이민온 사람들이다.
런던은 영국에서는 남부에 위치하지만 그래도 서울에 비해 위도가 15도나 북쪽에 있다. 그러니 백야현상이 영국 북부로 갈수로 심하다. 런던의 위도가 사할린보다 북쪽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나 대체로 기후가 온화한 것은 해양성 기후로 인한 것이고 건물이나 주택에는 방충망이 없다. 모기나 파리가 없기 때문이다. 런던은 일조량이 하루 평균 4시가밖에 안될 정도로 일기가 불순하다. 수시로 비가 오니 우산은 휴대필수품이고 날씨변화에 대비해 파카도 늘 준비해야 한단다. 예전에 런던여행 때 부실했던 호텔식사를 생각났는데-- 영국에서는 음식과 인물자랑은 않는다고 한다. 자랑할만한 맛있는 음식이 없고 인물 얘기는 겸손의 성품 탓일것이다. 영국에는 세계적인 유명 갤러리와 박물관이 10개나 된다. 과연 여행 중에 행운의 기회가 올까? 기대가 된다. 영국의 모든 박물관은 무료이다. 그래서 좋다. 런던은 약 400년전에 대 화재로 전 도시가 화마를 입었다. 그래서 병균도 죽었는지 전염병이 없어지고 도시도 새 건물로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물은 1급수로 식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역시 여행 중에는 생수가 인기이다.
시내를 버스로 관광이 시작되었다. 짧은 시간에 버스투어와 도보로 관광한다는 것은 시간상 제약이 많았다.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자연사박물관''나이트브릿지 패션거리'세계최초의 '해롯백화점' '메도디스트 감리교회와 센트럴홀'를 지난다. 또 버킹검궁전 담벼락을 지난다. 버킹검궁전은 280년 된 건물로 조지 3세가 부인 샤롯데에게 주었는데 이제는 왕이 거처하는 궁전으로 지금은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있는 곳이다.
하차하여 템즈강변에 있는 국회의사당과 웨스트민스터사원쪽으로 향했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 하는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영국 왕(37명의 왕)들의 대관식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표적인 건물이다.우측은 사립학교라고 한다. 국회의사당 건물이 높이 서 있다. 지금 의회가 개회중인 모양이다. 국기가 게양되어 있으면 개원중이라고 한다. 97.5M에 꼭대기에 시계탑이 서 있다. 빅밴으로 통하는 명물이다. 웨스터민스터 맞은편 의회 광장잔디에는 쳐칠,로이드 전총리를 비롯,로버트 필 전총리,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인도 간디수상,미국의 링컨 대통령 동상도 있었다. 그리고 워터루전쟁에서 나폴레온을 무찔러 승리를 이룬 웰링턴장군의 생가와 승전을 기념하여 세운 '웰링턴아치'를 보면서 호텔로 돌아왔다. 런던 시내관광은 아쉽지만 과거에 본 기억을 살릴수밖에-- 숙소는 라마다 런던 노스호텔이다. 다행히 와이파이가 된다. 매일의 관광내용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알리기 위해 무한 데이터용량을 며칠분 받아 왔지만 계속 호텔에서 와이파이가 제공된다면 추가로 데이터를 돈주고 받을 필요가 없겠다. 내일은 일정이 빠듯하여 아침 8시에 출발한단다. 첫날밤은 아무래도 잠이 설레게 마련이다.
영국 일주여행 루트
의사당과 빅벤
런던아이(London Eye)
제2일 아침 - 가뿐히 일어나서 상쾌한 기분으로 관광길에 나섰다. 하늘이 쾌청하다. 오늘 스케쥴은 스톤헨지와 바스 그리고 버밍엄으로-- 스톤헨지 관광버스 기사는 70대의 죤이다. 노인기사라서인지 오랜 경험과 캐리어거 보인다. 그러나 장거리를 계속하면 과연 스테미나가 견딜수 있을까 싶지만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어 보인다. 오늘 스케쥴이 바쁘다. 바스와 스톤헨지-순서를 바꾸어 스톤헨지부터 찾았다. 스톤헨지가 바스로 가는 도중에 있기 때문이다. 버스길 양쪽에 하얀 마가렛이 반갑게 손짓한다. 기온도 아주 적당한 15도에서 20도 까지.고속도로 표시판이 보인다. 영국의 고속도로 표시는 M이고 국도는 A란다. 또 지방도로는 B로 표시하니 표지판이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영국의 역사공부를 가이드로부터 듣는다. 인터넷을 찾아 다시한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듣는다. 마침내 스톤헨지에 도착했다. 수많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주차장을 메우고 있다. 입장료가 우리돈으로 5만원이라고 하니 너무 비싸다. 물가가 비싼 영국이라지만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계7대불가사의라고 하는 스톤헨지. 5,500년전(BC3,100년)부터 1,2,3기의 유적을 통해 종교적인 숭배의 표현물로 추정되는 50톤 크기의 돌이 세워져 있고 매년 춘분과 추분 해가 떴을 때 이 돌의 중앙을 비친다는 신기를 보게 한다. 수없이 많은 무덤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많은 신비스런 의문을 남기는 미스테리의 유적으로 세계7대불가사의의 하나로 지목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스톤헨지 내의 셔틀버스로 전체를 돌아보며 도중에 내려 걸으면서 관찰하고 다시 버스로 돌아왔다, 박물관에서는 많은 자료와 사진으로 보충설명이 있었다.
바스(Bath) 스톤헨지 관광이 끝나고 버스로 한시간반 가량 서쪽으로 달려 바스에 닿았다. 바스에도 코츠월드지역이다. 누런 돌건축물의 특징을 갖는 코츠월드 마을을 지나 바스(Bath)에 진입했다.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대중목욕탕이 있는 관광지이다. 2,000년전 양치기 소년이 물에 빠진 양을 구하기 위해 웅덩이에 들어갔다가 뜨거운 온천물을 발견 나중에 보니 피부병이 나아져 유명해 졌단다. 로마시대 병사들의 휴양지화 되고 지금의 대중목욕탕으로 되었다. 치료와 휴양지로 활용되었으나 지금은 순수한 관광지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온다. 줄지어 대중목욕탕을 거쳐 수영장,여러 종류의 탕을 거쳐 컵으로 물을 마셔 보기도 했다. 입욕은 금지되어 순전히 관광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광용품 샾을 통해 바깥으로 나온다.
바스를 관광한 후 에이븐 강 다리 위에서 강을 따라 산책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행에서 특징은 자유산책 시간을 준다는 점이 좋았다. 바쁜 스케쥴에도 약간의 리렉스한 시간-수로를 따라 노를 젓는 가족들 모습도 좋아 보인다. 우측에 입장료를 낸다는 바스 성당이 보인다. 다음 행선지인 버밍엄을 향해 출발한다. 도로 옆으로 전개되는 목초지 평원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들, 그리고 말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며 여기가 과연 영국인가? 혹 뉴질랜드가 아닌가 착각을 일으킨다. 버밍엄에 도착 숙소로 향한다. 버밍엄은 영국 제2의 대도시이다. 제3일 어제밤 버밍엄에 도착하여 숙소로 바로 들었다. 버밍엄은 영국 산업혁명의 발상지이다. 맨체스타,리버풀과 함께 산업혁명을 일으킨 중심지이다.런던에서 버밍엄까지는 우리나라 대전에서 대구의 거리이다. 맨체스타와 함께 축구의 고장이고 세계소비재 전시회로도 유명하다. 상쾌한 드라이브-파란 하늘에 양 옆으로 펼쳐지는 소,말,양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체스터로 향하는 수로도 보인다. 리버풀을 오른쪽에 두고 체스터로 향해 달린다. 세계 최초의 여객철도가 만체스타-리버풀을 달렸다. 영국은 문명국의 최첨단이라 무엇이든지 세계 최초가 많다.
체스터에 도착하면 오늘은 세계문화유산의 아름답고 고풍스런 체스터 시내관광을 먼저 한다. 그리고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배를 타고 건너는 일정이다. 버스를 타고 근 두시간 이상을 달렸다. 아름다운 풍경이 좌우로 펼쳐진다. 골프장도 많이 보인다. 영국은 3천개의 골프장이 있다. 골프 종주국답다.웨일즈로 진입하면서 가이드가 웨일즈 음악CD를 틀어준다. 음악과 함께 전원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노란 유채꽃밭이 계속된다. 목가,숲속의 집이 그림같다. 닭과 고양이도 보인다. 닭은 어떻게 울까? 영어로 울까? 영국 닭은 쿠쿠라고 운다. 우리 닭은 꼬꼬댁이다. 고양이도 영어로 운다. 한국 고양이와 의사가 통할까?
리버풀은 바다와 산이 같이 있고 풍차가 많아 운치가 있다. 한국에서 풍차의 벤치마킹을 하러 이곳을 온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웨일즈스노도니아 국립공원이 전개된다. 영국에서 세번째로 큰 국립공원이다. 코니(CONWY)가 웨일즈의 경계를 막고 있다. 켈트족의 독립된 보존지역이었다. 광물도 많고 아름다운 산맥이 이어져 축복받은 땅이다. 웨일즈에서는 자기 고유의 언어를 잊지 않기 위해 간판에 영어와 같이 병기하고 있다. 도로나 산비탈에는 노란 "고스(Gorse):한국이름 가시금작화"가 뒤덮고 있다. 산에는 나무가 별로 없다. 도로 옆 풀밭은 하얀 마가렛 일색이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잠을 잘 수가 없다. 시선은 창밖으로 고정되고-- 체스터(Chester) 체스터에 가까워지니 건축물이 특색이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 600년된 건축물이다. 이를 맥켄토시가 발전시켜 아름다운 구조물을 계승했다. 지금의 건축 패턴은 대략 100년전의 건축형태라 한다. 체스터는 성곽도시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곽은 사암으로 건축되어 있다. 2,000년전 로마의 병영지로 말발굽 모양의 성을 쌓고 주위에 해자를 만들었다. 대개 800년전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곽밟기를 했다. 성곽을 따라 전체의 1/4쯤 걸었다. 옆으로 수로가 흐르고-- 식사후 체스터 성당을 구경했다. 체스터 성당은 660년에 건축된 이래 증개축을 거치면서 중서부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채플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5시15분발 배를 타고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야 한다. 배를 타기 위해 홀리헤드 항(Port of Holyhead)으로 달린다. 섬으로 다리를 건너 간다. 다리 우측을 보란다. 작은 섬 안에 예쁜 집이 있었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림같은 집이다. 버스도 같이 건넌다. 파도를 가르며 아일랜드를 향해 달린다. 배 난관에 나가 멀어져 가는 홀리헤드항을 바라본다. 바람이 세다. 두시간 반이 걸려 켈트어로 '검은 물 웅덩이'라는 이름의 "더블린"에 도착했다.
가게,호텔,카지노,주택 모두 흑과 백의 조화로 아름답다.
체스터 대성당
체스터 성곽
차창 밖 전원풍경
아일랜드 행
제4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Dublin) 아일랜드는 1937년 영국 식민지에서 완전 독립하였고 아일랜드섬의 북쪽 1/3은 북아일랜드로 영국령으로 남아있다. 즉 1922년 이래 정치적으로 남북으로 분열, 북단부(北端部)의 얼스터(Ulster) 지방은 영령 북아일랜드, 나머지 남부의 대부분 지역은 영국지배를 벗어나 아일랜드 공화국(1937~1949년에는 에이레 공화국이라 칭했음)을 형성하고 있다. 수도는 더블린이고 섬은 남북으로 486km, 동서로 275km가량 뻗어 있다 북아일랜드와의 국경선 이외의 경계는 해안선뿐이며 북쪽·서쪽·남쪽으로 대서양과 만나고, 동쪽으로는 영국과의 사이에 아일랜드해와 세인트조지 해협이 있다.인구는 400만명인데 한때 850만명이던 것이 1845년부터 감자 뿌리마른병으로 대기근이 계속되어 300만명이 굶어죽고 100만명이 이민을 갔다.GNP는 43,000불로 유럽중 가장 안정된 나라이다. 영국은 화폐단위가 파운드인데 반해 여기서는 유로가 사용된다.
수도 더블린은 아일랜드 중동부 아일랜드해와 접한 더블린 만의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아일랜드의 주요항구이자 금융·상업·문화 중심지이다. 동쪽으로 흘러가는 리피 강이 이곳을 가로지르고 있다.한때 모직·면직·견직·포플린 등과 같은 섬유산업으로 이름이 높았다. 맥주와 흑맥주 생산업체인 '기네스브루어리회사'는 아일랜드에서 제일 큰 기업체이자 수출업체다. 그밖의 산업으로는 식품가공·유리·담배·조선 등이 있다.
구시가지 구경에 나섰다. 성패트릭성당과 트리니티 대학을 본후 크라이스트 처치를 외관만 보기로 했다. 더블린 시내를 동서로 흐르는 리피강을 버스로 지나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한다. 하프 모양의 다리와 둥근 무지개 다리는 단연 시선을 끈다. 버스에서 내리니 중심가가 온통 팝 술집이 즐비하다. 가장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템플바 지역을 거닌다. 문학과 예술의 도시,낭만의 도시답다. 길에는 거리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중심지에 높다란 첨탑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코넬 스트리트에 높이 120M의 은색 기둥이 서 있다. "스파이어"라고 하는데 일명 '대못' '뜨개바늘'이라고도 한다. 사진을 담기에 너무 높다. 2003년 영국의 국민소득을 넘었다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오코넬 스트리트는 더블린에서 쇼핑몰들이 밀집한 넓고 번화한 거리이다. 오코넬 거리의 주인공은 역시 오코넬 동상이다. 20세기 민족주의자들의 리더였던 오코넬을 기리는 동상이다. 동상 머리에 갈매기가 앉아서 마치 모자 장식인양-- 옆에 짐 라르킨(노동운동가) 동상도 중심가에 서 있다.
또 인상적인 건물들이 몇 있다. 국립 Irish Bank, 아일랜드 중앙우체국 등이다. 중앙우체국은 1916년 독립투쟁의 부활절 봉기 총사령부로 사용된데서 유명하다. 혁명의 성지인 셈이다. 유별난 동상이 단연 시선을 끈다. 아일랜드 출신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이다. 아일랜드는 많은 문필가를 배출했다. 조이스를 비롯,버나드쇼,예이츠,오스카와일드 등 대문호들이 많은 것도 아픈 역사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일랜드 민요가 슬픈 곡조를 띄는 것과 같이--
이어서 트리니티 대학을 찾았다. 정문에 들어서니 맞은편 종탑이 우뚝 서서 반긴다. 종탑 옆에는 학장이었던 죠지살먼과 역사학자 윌리암 렉키의 동상이 양 옆에 자리했다. 본부를 찾아 화장실도 이용하고 자유롭게 둘러 보았다. 도서관에는 긴 줄이 시선을 끌었다. 특별전시전을 보러온 사람들이다. 트리니티 대학은 세계10대 명문대로 뽑히는 저명 칼리지이다.영국의 절대주의 전성기를 이끈 에리자베스1세 여왕의 명에 의해 1592년 옥스포드와 캐브릿지대학을 모델로 만든 대학이다.
대학 구경을 하고 아일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소인 성.페트릭 성당을 찾았다. 6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화려한 스텐그래스가 시선을 끈다. 또 많은 성인들의 조각상이 성당의 장엄함을 보탠다. 바깥 정원도 무척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St. Patrick은 4세기 초반 로만-영국계 집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이리쉬에 의해 납치, 노예로 팔려갔으나 하느님의 도움으로 프랑스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아일랜드로 돌아와 기독교교화 전도를 하였다. 방법으로 샴록(세잎클로바)으로 삼위일체를 설명- 아일랜드의 대성인으로 받들어졌고 성 패트릭스데이의 축제가 열린다. 그의 무덤이 성당 안에 있는데 그의 애인도 같이 묻혀 있다고 하니 --성패트릭 성당은 걸리버여행기를 쓴 조나단스위프트가 이 성당 신부로 재직 중에 여행기를 썼기 때문에 더 유명하다. 이웃에 있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크라이스트쳐치는 외관만 구경하였다.
아일랜드 대표기업인 기네스 흑맥주공장을 방문할 차레다. 기네스 하면 기네스북- 세계 최고의 기록물관리만 생각하는데 이번에 새사실을 알았다. 기네스북 사업은 부대사업이라고 한다. 흑맥주공장 발효와 주정과정을 견학했다.그리고 박물관을 찾아 흑맥주 550cc를 시음용으로 마셨다. 술을 못하지만 공짜니까? 아내보고 맛을 보라고 하고 나머지를 다 마셨더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집사람은 오렌지쥬스를 택하고--7층 시음실은 원형건물로 사방 통유리로 시내를 전망할수 있게 꾸며져 있어 한눈에 시내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과연 아름다운 도시다. 기념품도 많이 팔고 있다. 등산용 캡과 물잔덮개를 하나 샀다. 여행중 모자 캡은 계속 애용했다.
아일랜드 관광을 끝내고 북아일랜드로 향했다.근 3시간이나 걸려 북아일랜드에 진입했다. 북아일랜드는 같은 아일랜드중 1/3을 차지하는 북쪽 어셔지방을 말한다. 아일랜드는 독립을 하였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이고 수도는 벨파스트이다. 종교문제와 대부호들의 독립반대 의사로 독립에서 이탈된 것이라 한다. 국경을 넘어서도 무슨 표시도 제재도 없어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국경을 넘으니 차량 번호판 색갈이 다르다. 영국은 앞 번호판 색갈은 흰색,뒷 번호판은 노란색이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앞,뒤 모두 흰색이다.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이니 자연 앞뒤 색상이 다르다. 또 간판에 사용하는 언어가 두가지로 사용하고 화폐도 영국돈 파운드만 사용한다. 아일랜드는 파운드는 불통이고 유럽 유로를 사용하기에 여행객들은 좀 불편했다. 내일 구경할 예정이던 벨파스트성을 먼저 구경하기로 했다.
리피강을 사이로 아름다운 하프 모양의 다리가 있다.
다리 건너 시가 중심
무지개형 다리
오코넬 동상
120m의 스파이어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
기네스 흑맥주 공장
기네스 7층 옥상에서 본 더블린 시내
북아일랜드와 벨파스트성 북아일랜드는 인구 350만이고 수도는 30만 인구의 벨파스트이다. 영국령이고 종교는 영국과 같은 기독교이다.(아일랜드는 천주교). 조선업이 발달하여 타이타닉호도 여기서 건조했다. 2차대전시 해군작전본부 연합군 사령부도 이곳에 있었다.조선업은 우리나라를 비롯 동북아시아 3국에 빼앗기고 폐허가 되어 버렸다. 북아일랜드로 가는 길에도 목초들의 연속이고 양떼들,소와 말이 평화스런 풍경으로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케 한다. 남산 같은 언덕길을 차로 오른다. 마치 동화속에서나 보는 아름다운 성이 나타났다.
벨파스트성은 1611년 Chichester 경에 의해 건축되었고 100년뒤 화재로 소실된 뒤 1870년 도네갈 경이 재건하였다. 이후 이성의 주인이었던 Shaftesbury 가문이 성과 정원을 벨파스트 시에 기증하여 현재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제2차대전 때는 작전본부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결혼식 장소로 유명하다. 건물도 아름답지만 정원도 아름답게 잘 관리하고 예쁜 꽃들이 곳곳에 피어 있어 관광객들을 즐겁게 한다. 이 가문의 상징이었던 고양이를 조각이나 장식품(돌,나무풀)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데 몇마리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가이드말로는 9마리라고 하며 찾아 보란다. 고양이 찾는 재미도 솔솔하였다. 겨우 6마리까지는 찾았지만-- 예쁜 집과 정원이다 보니 사진찍기에 모두들 여념이 없다. 아이들처럼 즐거운 놀이를 마치고 내일 일정을 위해 숙소로 들어가 쉬었다. 내일은 북쪽의 해안선 따라 산책을 하는 자이언트코즈웨이를 방문한다. 대서양 해안의 주상절리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날이다.
벨파스트성
벨파스트성 정원
제5일 어제 오후 이미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로 들어와서 동화 속의 그림같은 벨파스트성을 구경했고 오늘은 서북쪽 대서양 해안의 자이안트코스웨이로 가서 주상절리를 관광할 차례다. 길이 멀기 때문에 아일랜드 민요 "오 대니 보이"를 CD로 틀어주며 분위기를 맞춘다. 여가수의 아름다운 노래가 잠시 영혼을 맑게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따라 부르느라 저절로 흥얼거리게 만든다. 차창 밖으로 분위에 맞는 양떼와 소떼들의 한가롭고 평화스런 정경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오대니보이"를 여행기 배경음악으로 넣어야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그러나 저작권 때문에 요즘은 아예 배경음악을 넣을 수가 없으니-- 가이드는 무료하지 않게 이곳의 위스키에 관해서 설명이 길어진다. 난 술을 못하기에 별 관심이 적었는데 들으니 참고가 되었다. 곧 지나갈 부쉬밀 지역의 위스키 공장에 관해서도 같이 설명한다. "부쉬밀(Bush Mill)"에서 1608년 세계최초의 위스키 공장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곳의 청정수(물)이 좋아 증류주가 일찍 개발된 것이다. 물이 검은데 비트가 녹아서 그렇다며~ 청정수에 사는 송어가 많아 송어 플라잉 낚시가 성행한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는 모처럼 아일랜드 쇠고기를 먹게 되었다. 기름과 심줄이 전혀 없는 부위의 스테이크--거기에 요크셮푸딩(기름틔긴)과 푸짐하게 많이 넣은 삶은 감자,죽순,당근이 입맛을 돋구어 포식했다. 아이스크림도 두개씩이나, 커피와 차까지--입맛대로 먹고 나니 혹 배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자이언트 코즈웨이(Giant's CauseWay) 벨파스트에서 한시간반 가량(96km) 차로 가면 스코틀랜드의 거인을 만나러 간다는 북아일랜드의 '자이언트 코즈웨이'를 만날 수 있다. 천만년전 자연의 걸작품인 북아일랜드의 거대한 주상절리 '자이언트 코즈웨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북아일랜드 북쪽 해안을 따라서 펼쳐진 코즈웨이 주상절리는 벌집 모양으로 모여있는 돌들이 4만개 이상의 육각형 기둥 모양으로 생긴 현무암(직경 30~90cm), 벼랑에 있는 것은 높이가 120m가 된다고 한다. 웅장한 주상절리(pillar-shaped joint, 柱狀節理)를 품고 있으며, 이것은 5~6천만년전 발생한 화산 폭발로 인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제주도와 경주의 주상절리와는 규모나 크기가 비교가 안된다. 입구 PR관에서 영상물과 사진을 먼저 보았다.
샤틀버스를 타고 10여분 가서 일단 하차하고 해안선을 따라 가는 코스도 있고 능선 위로 가는 코스도 있다. 우리는 해안선 바위를 걸으며 바닥돌도 보고 의자처럼 생긴 바위에 앉아 사진촬영도 하였다. 갈수록 주상절리의 양상이 웅장해지면서 놀람을 넘어 경악의 연속이다. 모양도 가지가지이다. 바위산 전체가 곧 무너질듯 경사진 것도 있고 마치 고층 아파트촌을 연상하는 모양도 있다. 가장 신비한 것은 100m가 넘는 마치 로마의 원주형 기둥이 수백개가 달라붙어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곳곳에 피어있는 들꽃- 어떻게 이런 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꽃이 필까? 신비롭기만 하다. 갈수 있는데 까지 가니 끝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돌아와서 바위 위 능선을 따라 걸었다. 멀리 대서양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반대편을 보니 초록의 초원에 소와 양떼가 한가롭다. 노란 고쉬(Gorse:가시금작화)가 무더기로 피어 있다. 엄청 오래된 고목이다. 이 꽃나무는 뉴질랜드에 울타리용으로 가져갔다는데 작년 뉴질랜드에 가보니 집안 울타리 뿐만 아니라 온산에 번져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약 5km에 걸쳐 있는 육각형의 암석 작품을 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입구로 오니 약간의 시간이 남아 쇼핑타임을 가졌다. 선물은 역시 손자들 생각이 앞선다. 예쁜 아이들 목도리 두개를 샀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주상 절리
스코틀랜드(Scotland)로~ 다시 벨파스트항으로 돌아왔다. 배를 타고 스코틀랜드로 가기 위해서다. 배는 오후 3시반 출발이다. 페리호 StenaLine이다. 2만톤급이라 흔들림이 없어 배멀리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2시간15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배 안에만 있기가 지루하여 바깥으로 나가보니 어찌나 바람이 센지 몸이 날라갈 것 같다. 간혹 나처럼 바깥출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서로 "와~ "하고 놀라서 웃고는 배안으로 들어간다. 여인들끼리는 어느새 친해져서인지 수다가 한창이다. 한국의 여러가지 일들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편한 마음으로 여행에만 몰입되니 그야말로 심신의 힐링이다. 나중에 귀국해서 알게 되었지만 메르스 때문에 온나라가 걱정과 불안에 떨었는데-- 예정된 시간에 항구마을 케인라인(CairnRyan)에서 하선하여 어바인(Irvine)으로 가서 멘지스호텔에 들었다. 완전 시골마을이다. 가는 동안 박상민이라는 탈렌트를 모델로 하여 가이드가 협조하여 촬영한 mbc의 "세상의 모든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스코트랜드를 배경으로 한 박상민의 여행소개 프로그램이다. 우리팀의 가이드와 가이드의 딸이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다고-- 여기서 스코틀랜드에 관해 요약편이라도 알고 넘어가야 할듯. 영어로 스코틀랜드(Scotland)라고 하나 게일어로는 알바(Alba)라고 한다. 영국의 네 지방(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가운데 하나이다.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북쪽 1/3을 차지하며 남쪽으로는 잉글랜드와 마주하고 있고, 동쪽에는 북해에 면해있으며, 북쪽과 서쪽은 대서양에 면해있다. 로마군이 철수후 독립국가로 있다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1707년 연방법을 통해 합병할 당시 서로의 자치권을 보장하며 합병하였다. 국교도 잉글랜드는 성공회, 스코틀랜드는 장로회로 엄연히 다르다. 자체적인 의회와 행정부, 국화(엉겅퀴)와 비공식적인 국가(플라워 어브 스코틀랜드)가 있으며, 잉글랜드와 대등한 관계에서 영국 연방을 구성하고 있다.스코틀랜드는 유럽연합에서 석유매장량이 가장 많다. 인구는 아일랜드와 같은 5백만명이다. 정치적으로 영국에서 독립을 시도하나 작년에도 반대표가 많아 실패했다. 북서쪽 고원지대는 하이랜드라 하는데 민둥산이 많다, 남동쪽 로우랜드는 평야지대이다. 스코트랜드 하이랜드의 하얀벽과 검은 지붕의 주택 건물의 특징은 잘 알려져 있고 멋이 있다. 스코트인은 대체로 생활력이 강한 반면 짠돌이로 소문나 있다. 스코트산 양모는 유명하며 수출산업의 주력제품이고 스코트 전역에 풍차가 많은 것은 전형적인 모습으로 전력생산에 큰 기여를 한다. 주 산업의 하나가 잘 아는 위스키이다. 한국의 위스키 소비가 많아서인지 한국인을 무척 좋아한다고--스코틀랜드의 수도는 에든버러이며, 영국내에서 두 번째, 유럽에서 여섯 번째로 큰 금융도시이다. 또 다른 도시 글라스코는 영국 세번째의 큰 도시이다. 에딘버러는 전세계 건축학도들이 이곳을 찾아 학회를 하면서 건축을 연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글라스코는 철강,조선,유리가공을 중심으로 원래 에딘버러보다 큰 도시였으나 지금은 에딘버러에 뒤쳐진다. 의학계와 약학계의 학회가 많이 열린다.
제6일 에딘버러 칼튼힐(Calton Hill) 숙소 맨지스어바인호텔은 길고 넓은 대신 많이 걸어 좀 불편했다. 아침 식사에 양식 뷔페에 특별한 것이 있다고 가이드가 권한다. 양 내장을 구운 것이라는데 맛은 좀 이상하다. 스테미너에 좋다고--오늘은 에딘버러행이다. 벌써 6일차이다. 반이 지나면 시간은 가속도가 붙는다. 여행에서 얻은 교훈이다. 알뜰하고 유익한 여행을 다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씨도 부조해야겠지만 무엇보다 건강이 뒤따라야 한다. 밤에 잠을 잘자고 잘 먹어야 한다. 역시 잠은 시차로 문제가 많다. 그러나 다행히 감기나 설사 등 건강 문제는 전혀 없다.
식사도 잘 먹고 소화도 잘되고-화이팅을 속으로 외쳐본다. 우선 에딘버러 시내를 보기 위해 칼튼힐(Calton Hill)로 갔다. 서울 시내구경을 하려고 남산으로 오르는 것과 같다. 겨우 해발 110m라고 하지만 꽤나 높다. 차에서 내려 계단길을 오른후 한참 걸었다. 입구에 안내판이 서 있다. 언덕에 오르니 마치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을 닮은 탑이 보인다. 워터루 전쟁에서 나폴레온과 싸우다가 전사한 병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추모기념탑인데 미완성이란다. 옆에 우뚝 선 탑은 넬슨제독 기념탑이다. 가운데 둥근 지붕의 큰 집은 천문대이다. 또 스코틀렌드 철학자 듀칼드 스튜어트의 기념탑도 웅장하다. 돌과 흙으로 아름다운 문양의 집이 있어 보니 에딘버러 신도시를 설계한 James Craig의 250회 생일을 맞아 기념으로 지은 집이다. 칼튼힐은 시내 전경을 골고루 볼수 있는 멋진 곳이다.여행객이면 누구나 꼭 와봐야 할 곳이다. 곧 찾을 에딘버러성이 손에 잡힐듯이 보인다. 맞은편 헐리우드힐도 ,아더힐도 보인다. 에딘버러는 화산 지역으로 이런 7개의 언덕으로 시작된다. 칼튼 힐에서 하산하여 에딘버러성으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마라톤이 이 부근에서 열리나 보다. 운전기사가 이 지역 교통을 잘 알아서 우회하여 시간에 맞춘다.
에딘버러성 에딘버러성의 역사는 곧 스코트랜드 역사라 할 수 있는데 성주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900년 경인데 기원후 600년 부터는 딘 에이든(Din Eidyn)요새로 불렸다.그러나 기원후 638년, 앵글로족에 의해 성이 함락되면서 에딘버러로 성의 이름이 바뀌었다. 1292년에는 영국의 에드워드 1세가 성을 침공했고, 18년 후에는 스코틀랜드가 다시 성을 빼았았다. 그러기를 여러번 반복했는데, 지금과 같은 성의 완전한 모양을 갖춘 것은 1574년 ~ 1617년 사이였다. 1650년에는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에 의해 성이 함락된 후 1707년, 대브리튼 왕국으로 통합됐다. 에딘버러성은 시내 구시가지에 자리잡고 있다. 바위 위 높은 에딘버러성은 자연을 최대한 이용한 요새이다.
성 정문을 거쳐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은 로열 펠리스(Royal palace), 대연회장(The Great Hall), 세인트 마가렛 예배당(St. Margaret’s Chapel), 크라운 룸(Crown Room)전쟁박물관( The Scottish National War Museum), 군인감옥(Military Prison) 등의 건물들로 이루어졌다. 대연회장에는 천정 높은 곳에 명화도 볼만했고 각종 철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대연회장 안에 있는 운명의 돌(The Stone of Destiny)은 스코틀랜드의 왕이 왕관을 받기위해 무릎을 꿇던 돌이다. 700년전 잉글랜드의 왕(에드워드 1세)이 빼앗아 간 것을 1996년 되돌려 받은것이다. 에딘버러 성도 모두 사암으로 건축되었기에 오래 될수록 시커멓게 얼룩져 있다. 역사를 간직한 유물이지만 보기에는 너무 우중충하다. 검은 떼를 벗기려면 엄청난 돈과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전시관을 차례로 보고 건물위로 오르니 대포가 놓여 있다. 매일 오후 1시면 대포를 쏜다고 한다. 에딘버러 성을 나와 헐리우드 궁전까지 이어진 로얄마일은 또 유명하다. 로얄마일은 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에서부터 왕궁이 있는 홀리루드 수도원(Holyrood Abbey)까지의 약 1.6 Km 거리를 말한다. ‘마일’이라는 단어의 기원이기도 하다.이 거리는 이른바 구도심의 한복판이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인 에딘버러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중심 공간이다. 중심가에 빨간 간판 엘리펀트카페가 보인다. 'the elephant house' 라는 이 카페는 헤리포터 작가 죠앤.k.롤링이 작품을 쓴 장소로 유명하다. 죠앤 롤링이 대학 졸업 후 교사로 일하던 중,어머니 죽음과 실직을 동시에 겪고 포르투갈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현지 기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생후 4개월짜리 딸을 안고 영국에 돌아온 롤링은 여동생이 사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정착하고 보모를 구할 돈이 없어서 아기를 직접 길렀고, 그러다 보니 직장을 잡지 못해 1년여 동안 생활보조금으로 연명했다.
95년 겨울 어린 딸을 위해 동화를 쓰기로 결심한 롤링은 집 근처 이곳 카페에 자리를 잡고 몇 년 동안 다듬어온 해리 포터의 모험담을 종이 위에 옮긴 것. 눈치를 주지 않은 카페주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첫작품에 사인을 해서 준 것이 20억원으로 변했다나? 대박이 난 셈. John Knox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ST. GILES 교회를 본후,종교개혁을 선포한 장소이지만 순교자들의 처형 장소도 길바닥에 표시되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개 동상이 시선을 끈다. 14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John Grey라는 이곳 출신의 경관을 충성스럽게 섬겼던 Greyfriars Bobby라는 개 동상이다. 동상 앞에는 가게가 있고 관련 기념품을 필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역사가인 흄 동상 앞에서는 그의 발가락을 만지려는 사람들이 줄서 있다. 자식들의 공부를 염원하면서--
중앙역에는 높다란 시계탑이 서 있다. 시계를 보니 5분이 빠르다.기차역을 찾아 떠나는 손님들이 지각을 하지 않도록 일부러 5분을 빨리 가게 한 배려란다. 역 앞에 높이 솟은 마치 성당건물같은 탑이 눈에 띈다. 랜드마크 같은 건물이다. 바로 영국의 대문호 스코트경을 기리는 스콧기념탑이다. 불에 탄 시커먼 건물로 중압감을 준다. 보너스로 로슬린 채플을 가고 있다.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다빈치코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소 중 하나로 등장한 로슬린 성당(Rosslyn Chapel)으로 가는 길은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유명세를 탄 탓인지 관광객이 엄청 많고 내부 사진을 찍지못해 아쉬웠지만 외관 모습이 아름답다. 영화 때문에 영국과의 내전 때 크롬웰 철기군에 의해 부서진 것을 완전 재건했다고 한다.
스코트랜드의 마지막 경치 시닉투어를 즐기며 이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스코트랜드와 잉글랜드의 국경에 블랙스미스라는 대장간이 있었다.영국은 18세,스코트는 16세가 법적 결혼허가연령. 영국에서 스코트 국경으로 넘어와 대장간에서 결혼식을 한 것을 계기로 국경넘어 첫 마을 그레트나(Gretna) 마을은 유명해졌다. 한해에 5천명이 여기서 결혼식을 한다고--어쨋든 결혼식이 급한 어린 남녀쌍들도 많은가 보다.
화장실도 갈겸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마다 쇼핑이 가능하니 구경은 필연. Moffat Mill 가게다. 유명한 브랜드 Harris Tweed 상표의 겨울용 모자를 하나 샀다. 올 겨울은 머리가 따뜻해질 것 같다. 구름이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녹색 평원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양떼와 소떼 그리고 말들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한국의 소와 말은 한없이 노동을 하는데 이곳의 소와 말은 그냥 먹기만 하고-- 좀 공평치 못한 것 같다. 심심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지금 서울은 30도가 넘는다는데 이곳은 온도차가 무려 15도까지 난다. 아침은 영상5도 정도라 추워서 혹시나 하고 가져왔던 페딩도 꺼내 입고 거디건도 속에 입었다. 마치 피서여행을 온 기분이다. 들판의 유채꽃은 아직 다 피지는 않았지만 노란 색감으로 물들인 황금벌판이다. 날씨 변화도 많다. 그렇게 파랗던 하늘이 금새 가랑비가 오기 시작한다. 여우비니,야시비니,호랑이 오줌비니 지방마다 이름이 다르다. 비 그친후 하늘에 쌍무지개가 계속 드리워져 있다. 모두 창밖으로 카메라를 내민다. 희귀한 쌍무지개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열을 올린다.
원드미어(Winder Mere) 어느듯 오늘 숙소인 호수가 있는 원드미어 지방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의 구들장 같은 건축자재돌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담위에도 이런 돌들이 올려져 특이한 담장을 이룬다. 집집마다 꽃밭이 없는 집이 없다. 호텔에 입숙절차를 밟았다. 350년된 호텔이란다. 시설에 좀 불편하더라도 양해 하란다. 그런데 만족할만 했다. 밖으로 산책을 나가 보았다. 가게들이 즐비하다. 가게의 장식이 너무 아름다워 별천지에 온 기분이다. 호수까지 걸어서 가 보았다. 가랑비가 내린다.
칼튼힐은 서울의 남산 같은 전망대 역할 /James Craig의 250회 생일때 지은집이 특이하다.
에딘바라성
철학자 흄 동상/발가락이 하도 만져 노랗게 닳았다.
헤리포터 작품이 여기서
에딘바라 중앙역
로스린 교회 원드미어의 예쁜 가게
350년 된 숙소 호텔
원드미어호수 숲속의 별장
제7일 다음날 아침 식사를 일찍 마치고 짐은 버스에 실어 이동케하고 우리는 크루즈배를 탄다.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배를 타기전에 아름다운 원드미어호수 주변의 예쁜 가게에서 쇼핑도 하고 산책도 즐겼다. 영국 최대의 담수호인 원드미어호 주변,엄밀히 말하면 원드미어 보네스 마을이다. 이곳은 휴양지로 유명하여 부호들의 별장도 많고 관광객도 많아 마치 스위스의 산장 마을에 온듯한 느낌이 든다. 10시반에 보네스에서 승선하여 40분간 크루즈배로 가면 앰블사이드에 내린다. 여기서 다음 행선지인 하워드로 향하게 된다.
하워스 폭풍의 언덕 오늘과 내일은 영국 문학 산책에 들어간다. 하워스에 도착후 바로 "폭풍의 언덕"의 저자 에밀리 브론테,그의 언니 "제인.에어"의 작가 샤롯 브론테 등 세자매의 생가로 향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폭풍의 언덕의 현장을 가니 현실감나게 비가 내리고 있다. 자매 생가 내부를 들러보고 아버지 브론테 목사가 집도했던 하워스 교구교회를 견학했다. 마지막으로 폭풍의 언덕으로 산책을 했다. 그런데 웬일일까?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쳐 우산 살이 부러질 정도이다. 비옷을 갖고 왔는데 차에 두었으니 무슨 소용인가? 결국 원래 코스보다 단축하여 돌아와야 했다. 제대로 폭풍의 언덕을 걸어본 셈이다. 세자매 모두 세계적인 문학인이라 사랑을 받았지만 모두 폐렴으로 일찍 요절했다. 아마도 이런 기후 탓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그녀들 아버지는 장수하셨다고 한다. 목사니까 기도 영향이겠지? 하워스 마을은 참으로 예뻤다. 특히 점심을 먹은 호텔은 408년이나 된 고풍스런 호텔이었다. 주변 가게에서는 앤틱 가게나 선물 가게가 많았는데 우리는 도자기 차 주전자,찻잔세트를 샀다. 점점 손에 들고 갈 짐이 많아진다.
맨체스터 이제 아랫쪽 맨체스터로 가기 위해 이곳 요크무어지방을 떠난다. 맨체스터 시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임스왓트가 세계최초로 증기기관차를 발명하고 맨체스터에서 리버풀로 연결되는 49km의 산업용 철도가 세계 최초로 가설되어 바야흐르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맨처스터 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박지성이 소속되었던 맨유 축구팀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용 축구장을 꼭 봐야 한다. 내일 아침에 들릴 예정이다. 독일이나 스위스 여행 때 많이 샀던 쌍둥이칼 못지않은 쉐필드칼은 이곳 특산품이다. 쉐필드 수제 칼과 가위는 전세계인이 알아주는 일류제품이다. 저녁식사는 모처럼 중국식이다. 맨체스터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의 중국집이다.
브론테 세자매상
폭풍의 언덕 하워스 거리
제8일 다음날 아침 맨유 축구장을 보기 위해 축구장 입장을 했으나 축구시합이 없기에 또 시간제약상 한바퀴 돌아보고 많은 스타들 사진을 보면서 아쉽게 떠나야 했다. 7만5천명을 수용하는 대운동장이다. 원 계획에 없던 스케쥴이 가미되어 시간이 바빠졌다. 세익스피어 생가가 있는 "스트렛포드어폰에이번"으로 달린다.
쉐익스피어 생가/스트렛포드어폰에이번 쉐익스피어가 태어난 곳 스트렛포드어폰에이번. 이름이 길어 지명 외우기가 어려웠는데 알고보니 쉽다. 스트렛포드가 원 지명이고 에이번 강이 흐르고 있어서 '에이번강가의 스트렛포드' 란 의미이다. 인도와도 안바꾸겠다는 윌리암 쉐익스피어. 영국의 대문호, 그는 어떤 인물인가? 참으로 미스테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태어났던 4월23일,생을 마감한 날도 4월23일이다. 초등학교밖에 안다녔지만 그가 쓴 단어들은 전세계의 백과사전에서 정의를 내린다. 런던 밖으로는 안나가 봤는데도 베니스 상인을 썼고 ,베로나를 "로미오와 쥬리엣"의 배경도시로 삼았다. 또 결코 왕실에는 가본 적도 없이 왕궁내의 표현이 기가 막히다. 당시는 여성에게는 참정권도 안주던 남성 우월시대인데 부인에게 그가 쓰던 침대를 유산으로 준 것도 화제이다.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나는 잉글랜드와 결혼했다"면서 영국을 최강의 국가로 만든 엘리자베스1세 여왕의 국민문화정책과도 밀접하다. 먼저 세익스피어의 처가가 있는 곳부터 찾았다. 처 앤헤스웨이의 집이다. 갈대로 지붕을 이은 초가집 동네. 단연 시선을 끄는 초가집이다. 정원이 너무나 아름답다. 집도 예쁘고 정원도 예쁘니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늦어진다. 세익스피어 생가와 가까워 마차로 빈번 하게 처갓집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어 세익스피어 생가로 이동. 세익스피어 박물관, 생가,기념품 점을 차례로 둘러본다. 그가 살았던 생전의 침실,주방,서재 등. 근처 에이븐 강가에 무덤도 있다고 한다. 세익스피어 박물관 주변에서 자유시간을 갖고 쇼핑시간도 즐겼다.
코츠월드(COTSWOLD) 이번 여행에서 꼭 가고 싶었던 코츠월드 지역의 순서가 되었다. 처음에는 코츠월드가 지역 이름인지 개념이 잘 서지 않아서 헷갈렸다. 뜻으로 보면 양떼와 구릉지대의 합성어이다. 영국인들이 스스로 가장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는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민속마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300개나 되는 그 크기도 우리나라 충청북도 크기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중 이미 바스지역을 거치면서 코츠월드를 알게 되었고 오늘도 3개지역의 코츠월드를 가게 된다. 백과사전의 코츠월드는 영국 잉글랜드 중남부 글로스터셔 주 동부에 있는 행정구로서이곳은 고도가 305m에서 185m로 서서히 낮아지는 코츠월드 구릉지대 동쪽 비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14~18세기에 코츠월드종(種) 양의 방목으로 모직물 교역업자들과직물상인들에 의해 크게 번영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의 촌락과 도시로는 중부에 부르턴온더워터·스토온더월드·바이버리·로어슬로터·노슬리치, 북쪽에 치핑캠프던, 남쪽에 구청소재지인 사이런세스터 등이 있다. 이들 도시의 옛 가옥들은 모두이 지역에서 나는 황색 석회암으로 지어져 있으며, 돌이나 타일로 된 박공 지붕으로 덮여 있다. 건축물들이 황색의 석회암으로 지어져 코츠월드지역의 주택이나 건축물을 금새 알아볼수 있다.
먼저 간 곳은 스토우온더월드(Stow on the World).시내를 관통하는 내를 중심으로 주택과 가게 경찰서 조합 등이 오밀조밀 예쁘게 구성되어 있는데 한결같이 황색 벽돌로 건축되었고 꽃장식과 꽃밭,돌담장으로 전체가 아름다운도시였다. 상점가는 카페나 앤틱 가게도 있고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선물가게도 있다. 다음 찾은 버턴온더워터(Bourton on the World)는 훨씬 활기가 찬 곳이었다.유럽의 노인네들이 관광으로 많이 온 것 같다. 역시 시내 중심으로 수로가 흐르고 송어가 있었다. 물오리가 한가롭게 헤엄을 치는 모습도 특징이었다. 쇼핑가게도 활기를 띄었다. 마지막으로 원래 없던 코스를 기사가 덤으로 안내한 바이버리(Bibury)코츠월드는가장 예쁜 마을이었다. 주민 700명이 합심하여 가꾸는 동네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여기를 안 왔으면 후회할뻔 했다. 집도 수로도 정원도 너무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수로에는 송어가 많고 물오리 거위가 헤엄쳐 다닌다. 송어양식장도 있다. 집집마다 정원 경연장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반지의 제왕을 촬영한 길도 있었다.사진 안찍는 집사람도 여기서는 부부사진을 찍었다. 모두들 고맙다고 기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차로 지나면서 소개하는 버포드(Burford),위트니(Witney) 코츠월드 마을도 지난다. 일로 옥스포드를 향해 달린다.내일 옥스포드대학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는 이 대학에 관해서 많이 공부해야 한다며버스에서 학습을 했다.
옥스포드대학 도시 내일 옥스포드대학 구내를 방문할 예정으로 우선 시내구경에 나섰다. 옥스포드(Oxford)에는 옥스 강의 지류 개천이 흐르는데 옥스포드란 소가 건너는 낮은 개울이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옥스강은 템즈강으로 연결 350km에 이른다. 1200년경 옥스포드에는 수도원이 있고 조용한 도시였으나 당시 영국의 인재들은 프랑스나 이태리로 유학을 가는 안타까운 실정이었다. 1250년 옥스포드대학이 개설되어 강의가 시작될때는 신학과 철학이 첫 강의였다. 현재는 45개 칼리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39개의 칼리지와 6개의 폴로 모두 45개 연합으로, 칼리지가 많이 떨어져 있어 학생들은 자전거로 수업을 다닌다. 영국 최초의 옥스포드대학은 교내 규칙이 엄하여 학생감옥까지 있었다. 50년후 캠부릿지에 대학이 설립되어 많은 교수가 이동되고 특히 캠브릿지가 이과에 강해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는 등 명성을 올렸다. 옥스포드대학 내에서도 자성론이 일었다. 학생들은 기숙사에 1년한으로 있을수 밖에 없어서 자연 방을 얻어 나온다. 곳곳에 B&B라는 집단 반하숙 형태의 집 광고가 많이 보인다.
페니실린을 발명한 플레밍도 옥스포드대 출신이다. 쳐칠과 얽힌 스토리- 말보르공작댁의 아들로 윈스턴 쳐칠이 스코트랜드 여행중 작은 호수에 빠져 수영중 쥐가 나서 죽은 목숨을 가드너 플레밍의 아버지가 구해 주었다.처칠 부친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 하니 플레밍 공부를 부탁했다. 플레밍을 옥스포드에 입학시켜 공부하던 중 푸른 곰팡이에서 우연히(졸다가) 페니실린을 발견했고 쳐칠이 프리미어 회의에서 폐렴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새로 발명된 페니시린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두번의 생명을 살린 은인이 되었다.
만체스타 전용구장
세익스피어 처가집과 동네
세익스피어 센터
코츠월드 마을
옥스포드대학 탄식의 다리 크라이스트 교회
애쉬몰리언 박물관
제9일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옥스포드 졸업장을 따기 위해 옥스포드 대학구내로 들어갔다. 가장 유명한 세곳을 알지 못하면 졸업이 인정될수 없다며 가이드가 안내한다. 중앙도서관,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s) 그리고 세인트메리쳐치(St.MerryChurch) 이다. 8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앙도서관 그리고 탄식의 다리는 시험을 끝낸 학생들이 이 다리에서 탄식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국 감리교의 시초인 크라이스트처치대학(Christ Church College)은 부자대학으로 유명하다. 크라이스트처치대학은 최초 학생이 101명으로 출발했다 해서 9시 정각에 101번의 종을 울린다고 한다. 학생들 수업을 독려하는 의미이다. 카펙스타워(Carfax Tower)는 사거리 라는 의미로 옥스포드 시내 중심에 위치하는데 타워에 오르면 전망대가 있다. 뭐니 해도 옥스포드는 헤리포터의 촬영장으로 유명해졌다. 클라이스트쳐치의 헨리포터 연회장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리니--또 클라이스트쳐치 대학 옆에 있는 쳐치메도우(Church Meadow)는 풀이 자라는 초원으로 여기서 헤리포터의 촬영이 있었다고 해서 관광객이 들린다. 시내 시장구경을 하고 미술박물관앞에서 자유시간을 한시간 받았다.
아내와 나는 바로 앞에 있는 애쉬몰리언 박물관(Ashmolean Museum)에 들어갔다. 알고보니 영국 최고령의 공립박물관이다. 깜짝 놀랐다. 런던의 대영박물관 축소판이다. 고대 이집트로부터 대륙별 고고학 유물,그리스 로마의 조각, 유럽의 화려한 도자기,피아노,바이얼린 현악기,중세유럽의 미술품들,중국 일본 동남아의 유적과 도자기들이-- 마지막 중국관 도자기에서 한국 도자기 한부스가 있었다. 큼직한 달항아리를 비롯 5-6점이나마 전시품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영국의 모든 박물관은 무료이다. 어떻게 보면 모두 약탈품이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공로는 인정. 대영박물관을 보는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 이로써 아쉬움이 사라졌다.
윈저성(Windsor Castle) 옥스포드 관광을 끝내고 윈저성으로 갔다. 윈저성에 들기 전에 템즈 강변을 거닐었다. 물오리,거위,백조떼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많은 여행객들,학생들이 풀밭에 앉아 재미있게 놀고 있다. 윈저다리를 건너 중국집 양쯔(楊子)에서 중식을 하고 마지막 코스 영국여왕의 여름 별장인 윈저성입구로_
'윈저성(Windsor Castle)'은 런던 서쪽 약 36 km 지점 템즈강변에 위치해 있고, '윈저성(Windsor Castle)'은 '버킹검 궁전(Buckingham Palace)'과 함께 900년동안 '잉글랜드 왕의 성'으로 사용되어 왔고 현재는'여왕의 공식 거주지'이다.1070년 '노르만 왕조(Norman dynasty) '를 정복한 '윌리엄 왕(William the Conqueror)'이 수도의 서쪽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목조의 성채로 설계하였는데, '에드워드 4세(Edward IV)'에 의해 증축되고, '헨리 8세(Henry VIII)'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과 함께 '왕실의 묘지'나 '여왕의 개인 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안으로 드니 높은 언덕위에 둥근탑(The Round Tower)건물이 단연 시선을 끈다. 성 안에는 집무를 보던 중심지역이었던 '스테이트 아파트먼트(The State Apartment)', '고딕 양식의 성 조지 예배당(St. George's Chapel)'과 '메리 여왕의 인형의 집(QueenMary's Dolls' House)', 유명 화가들의 회화와 양탄자, 도자기 등을 전시해둔 '갤러리(The Drawings Gallery)' 등이 있다. 1992년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성 죠지 홀(St. George Hall)'을 비롯해 '스테이트 아파트먼트(The State Apartment)'의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현재는 완전히 복구된 모습으로 개방되고 있다.화려한 왕의 침실,다이닝룸도구경했다. 또 Queen's Ballroom의 은거울,교자상,옷장등은 너무나 화려했다. 그랜드 리셉션룸의 천정은 금과 은의 꽃무늬로 장식되었고 초대형 샹데리아가 3개나 걸려 있다. 별도 건물인 성 죠지 채플과 알버트 채플을 차례로 구경했다.
알버트는 빅토리아여왕의 남편이다. 헨리7세의 왕능으로 지은 예배당을 빅토리아가 복구,남편을 추모하는 의미로 남편이름을 붙였다.성 죠지 채플는 에드워드4세가 1528년에 완공한 웨스트민스트사원 다음으로 웅장한 왕릉으로 많은 영국 왕들이 묻혀 있다. 헨리8세와 여섯 왕비중 오직 제인세이모어 왕비만이 같이 묻혀 있다. 윈저성 안은 촬영이 금지되어 사진이 없어 아쉽다.윈저성은 평소엔 영국기가, 여왕이 들때는 왕실기가 꽂힌다.윈저성을 나와 윈저 그레이트 파크로 갔다. 사슴공원으로 길이가 5km나 되는 롱워크가 직선으로 뻗어 있다. 롱워크를 따라 마차를 타고 여왕이 오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멋있다. 윈저성 주변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윈저로얄쇼핑센터를 중심으로 마지막 선물을 준비할 시간이다. 여인들은 쇼핑이 필수이다.
템즈강 윈저브릿지
윈저성 윈저 그레이트파크 롱워크
귀국하기 위해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일찌감치 움직였다. 까다롭다는 런던공항이지만쉽게 수속을 마쳤다. 11시간의 비행하는 동안 지루하지만 역시 기다리는 나의 집이 있어힘들지 않고 견딜 수 있다. 잠시 영국 일주여행을 차례대로 영상물을 돌리듯이 회상해 보았다. 9박10일의 많은 추억들이 머리와 가슴에 남아 맴돈다. 이번 영국일주여행은 단순한 역사여행이 아니라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함으로써 영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장거리여행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몇군데가 남았으니 그 도전의 날까지 아름다운 희망으로 살까 한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이 가장 행복을 느낄 때가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갖는 것이라고--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기분좋은 자위의 말인 것 같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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