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3 주일설교
기적이라도 일으켜 주옵소서
마태복음 17:24~27
[필요 없는 의무, 지킬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제가 25살 때 처음으로 주일학교 어린이를 섬기는 교육전도사 되었습니다. 상가 4층에 있는 개척교회였는데 그 교회에는 주일학교 부장으로 섬기는 이 집사님 부부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집사님 댁에서 정성껏 식사를 준비해서 동생 같은 전도사에게 대접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교역자가 되고 처음 대접받은 음식이었습니다. 학교 기숙사 음식만 먹던 제가 그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려고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이실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집사님에게는 두 가지 특이한 면이 있었습니다. 첫째, 자가용 차가 흔하지 않던 시대에 이 집사님이 차를 사면서 승용차가 아닌 승합차를 샀습니다. 사람들을 전도해서 교회에 태워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교회 올 때 양복을 입지 않고 점퍼를 입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주일학교 부장 집사는 매주 어린이 예배 사회를 해야 했고 성도가 많지 않은 교회였으므로 대 예배 대표기도 순서도 자주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 집사님에게 제발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오라고 했지만 이 집사님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자가용 차를 살 수 있는 분이니까 가난해서 양복을 안 입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사님의 말이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넥타이를 매야 정장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점퍼 입고 예배 사회도 하고 대표기도도 하면 왜 안 되냐는 것입니다.
주일에 양복을 입지 않는 이 집사님의 행동, 잘한 걸까요? 잘못한 걸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집사님은 지금쯤 70세 전후, 딸 소라는 40대 중반이 되었을 텐데 이동영집사, 허숙희집사 부부와 딸 소라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만날 길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집사님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는데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속에 좋은 지침이 담겨 있습니다. 그 지침은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도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이 집사님을 다시 만난다면 이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지만 전해드리지 못하는 이 교훈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때 세금을 받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네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않습니까?”
여기서 ‘반 세겔’은 헬라어 성경에 반 세겔이 아니라 ‘두 드라크마’라고 되어 있습니다. 드라크마는 헬라 화폐로 로마 화폐 데나리온과 같은 가치입니다. 세겔은 이스라엘 화폐 단위인데 <1세겔=4드라크마=4데나리온>입니다. 그러므로 반 세겔은 2드라크마가 맞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글개역성경은 왜 2드라크마를 반 세겔로 번역했을까요? 혹시 어떤 영어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을까요? 하지만 NIV와 NASB는 2드라크마라고 번역했습니다. KJV는 tribute(헌물, 공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직 개역(개정)성경만 이를 반 세겔로 번역했습니다. 참고로 한글 성경 가운데 공동번역과 쉬운성경, 새번역은 친절하게도 ‘성전세’라고 의역을 했습니다.
<출애굽기 30:13>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성전세로 반 세겔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이 2드라크마를 반 세겔로 표현했을 때 우리는 이 돈이 성전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을 번역하는 분들은 이런 구약의 배경 지식을 가져와서 “반 세겔”로 번역했으니 정말 특이한 현상입니다. 어쨌던 우리는 이 돈이 국세가 아니라 성전세임을 이해하고 성경을 계속 보겠습니다.
성전세로 내는 반 세겔은 히브리어로 “세겔 하코데쉬”(거룩한 세겔)라고 부르는데 전 국민이 예외 없이 내야 합니다. 그래서 매년 마지막 달에 세금 공지를 하고 마을마다 거룩한 세겔을 걷는 상자를 마련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세겔을 거두던 그 시기는 유월절을 앞둔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유월절 만찬을 드시고 다음 날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이었습니다.
[너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드라크마(=데나리온)는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까 2드라크마는 그렇게 큰돈이 아닌데 베드로가 그 돈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 내용을 보고하려고 집에 들어가자 예수님께서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왕들이 세금을 자기 아들들에게서 거두느냐, 일반 국민에게 거두느냐?” 너무 뻔한 질문이었습니다.
“일반 국민들에게서 받지요.”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맞아. 왕의 아들은 왕에게 세금을 안 내지.” 예수님께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셨을까요? 지금 요구받은 세금은 일반 국세가 아니라 성전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26절에서 “그렇다면 아들은 세를 면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제자들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어서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성전세 거부 운동을 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순간을 이용해서 제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한 번 더 가르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여러 가지 답이 있습니다. 교회의 목사입니다. 대학교 학생입니다. 가정의 주부입니다. 이 회사의 팀장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대답은 이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방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만 예수님은 성전세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해마다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24절에서 “너희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라고 했을 때 25절에서 베드로가 “내신다”라고 즉시 대답한 이유는 예수님은 전에도 성전세를 내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은 돈이 없어서 아직 안 내고 있을 뿐입니다.
드라크마는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노동자 하루 일당이 15만 원이라고 한다면 2드라크마는 30만 원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성전세는 60만 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베드로는 그 돈이 없어서 성전세를 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당장 50만 원이 없어서 쩔쩔매는 때가 있습니다. 어디 가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요. 돈을 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요. 그런데 살다 보면 벌어 오기도, 빌어오기도 곤란한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성전세를 안 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게 됩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성전세를 내지 않는 사람을 잡아다 때릴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죽으러 오신 분이지만 성전세 안 내서 잡혀가서 매 맞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갈릴리바다에 낚시를 던져서 첫 번째 올라오는 물고기 입속에 1세겔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세겔은 2인분의 세금으로 딱 맞습니다. 물고기 입속에 왜 1세겔 짜리 동전이 들어 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로 여행을 가면 한번은 베드로 고기라는 물고기를 기름에 튀긴 요리를 먹고 옵니다. 그 물고기 이름은 “무쉬트”입니다. 무쉬트는 알을 낳아서 부화할 때까지 3주 동안 입속에 물고 다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새끼가 부화해서 나간 뒤에는 허전해서 바닥에서 동전이나 반지나 반짝이는 것이 있으면 입에 물고 다닙니다. 그래서 갈릴리 어부들이 무쉿트를 잡으면 종종 횡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흔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베드로가 낚시는 한번 던져서 첫 번째 물고기가 정확히 1세겔 동전을 물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예수님의 기적입니다.
[두 가지 결론]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는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제가 서두에 던질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지킬 필요가 없는 의무를 지켜야 할까요? 거부해야 할까요?
교회에 올 때 양복을 입어야 할까요? 점퍼를 입고 사회, 기도는 물론이고 설교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이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성전세를 낼 의무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성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으므로 성전세를 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오해받을 행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성전세를 내셨듯이 사회나 기도 맡은 분은 양복 입고 오는 것이 맞습니다.
둘째로, 기적이라도 일으켜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실 돈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도 일으켰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적을 일으켜 베드로의 첫 번째 낚시에 올라온 무쉬트 고기가 1세겔을 물고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단돈 50만 원이 부족한데 구할 길이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 예수님은 이 모든 상황을 다 알고 계십니다. 지상에 계실 때도 모든 것을 아셨으니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님이 모르실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시고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믿으시면 이렇게 노래합시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해결을 구하면 하나님은 기적이라도 일으켜 해결해 주십니다. 제가 월세를 내기 어려워서 기적이라도 일으켜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기적은 아니지만,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100만 원을 줄 사람이 아닌 사람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여러분에게만 알려드릴게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응답해 주셨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기도를 더 잘 들어 주십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기적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있습니까? 오늘 믿음으로 기도하세요. 그리고 다음 주에 와서 응답 받은 것을 간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