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 심지현
내가 글을 쓰기 싫었던 시점은 2024년 '일상의 글쓰기' 곡성 모임 때부터였다. 목포에서 선생님들과 만나서 곡성 글쓰기 모임에 가던 길에 사실은 화순에서 내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책을 읽어보는 게 좋겠다는 말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게된 지는 오래다. 검정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여백이다. 강의 듣는 것도 그렇다. 목사님 설교도 교수님 강의도 내가 집중해서 잘 듣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목사님은 저렇게 힘들다면서 목회를 어떻게 사명을 가지고 할 수 있을까? 교수님 수업에서는 왜 그렇게 아는 게 많지? 목소리도 좋고 잘 생겼네. 그런 생각만 하고 있다. 수업이나 예배가 끝나고 나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 새하얗다. 좋은 말을 많이 들은 것 같은데,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2024년 2학기에 막상 글쓰기 수업을 쉬니까 화요일 저녁에 공허함이 밀려왔다. 집 앞 놀이터에서 밤 늦게까지 머물다가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목대 평생 교육원 영어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다. 3주만에 그만 뒀다. 그 뒤로는 월요일마다 지인들과 밥 먹고 차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올해 마흔 하나가 됐다. 20년 전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나는 04학번인데 어문학부로 입학했다. 그 때 우리 학교에 내가 봤을 때 멋진 교수님이 세 분 있었는데, 이 교수님이 그 중에 한 분 이었다. 그는 늘 자애로웠다. 학생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정 공부가 하기 싫으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보라는 말씀도 수업 때 하곤 했다. 벚꽃은 어떻게 필까? 눈은 어떻게 올까? 수업 때 학생들한테도 생각해보라고 하며 한 몇 주 지나고 나면 멋진 글이 완성되어 교수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곤 했다. 감탄했다. 어느 날은 시는 한문으로 쓰면 말씀 언에, 절 사를 쓴다면서 언어의 사원이라고 설명해 준다. 1학년 어문학부 시절, 이 교수님 수업에 결석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이 내게 왜 지난 시간에 결석했는지 물어봤는데, 그냥 우물쭈물 거리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겨서 엄마의 부탁으로 피아노를 중고로 파느라 그랬다는 말이 안 나왔다. 오랫동안 가난한 생활에 지친 나로서는 이 세상에 저렇게 멋진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항상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교수님이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기대하며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재미없을 때는 졸기도 했다. 다른 교수님들은 대부분 근엄해서 농담도 잘 안하는데 한번씩 아재 개그를 해서 교실이 웃음 바다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국문과는 시험이 너무 어렵다. 내가 공부도 안 하긴 했지만, 답을 뭘 써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다. 국문과 수업은 더 이상 듣지 않기로 했다. 국문과 수업을 계속 들었다가는 내 학점은 엉망이 될 게 뻔해서다. 이훈 교수님은 우리 학부 교수님이 아니어서 한 번도 얘기를 나눠 본 적도 식사를 해 본 적도 없다. 졸업 후에 이렇게 다시 수업을 듣고있는 것도 참 아이러니다. 교수님은 나무를 좋아한다는데 나무를 닮은 것도 같다. 내가 교수님을 어렴풋이 안지 20년이 지났어도 그는 여전히 멋있기만하다.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문학을 사랑하는 게 한결같다. '일상의 글쓰기' 방을 지키며, 학자로서의 품위도 잃지 않는다. 내 회상은 뒤로 접고 2025년 조심스레 글쓰기에 발을 내딛어 본다.
첫댓글 처음으로 참석한 모임에서 실망하셨군요. 괜히 제 탓인 듯 미안해집니다. 지현씨 글 오랜만에 읽어요. 교수님과의 오랜 인연을 잘 그렸어요.
태은이 임신, 그리고 육아 중에도 글을 쓴 걸 보면 지현씨 열정도 교수님 못지않습니다.
글 좋네요.
제가 부족해서 저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말을 창피하게 받아 들였어요.
@심지현 그럴 수도 있죠. 뭐.
심지현 선생님 오랫만이에요. 역시 솔직한 글 좋습니다. 그 공허함 이해해요. 올 일 년도 열심히 달려봅시다.
선생님 오랜만에 뵙네요.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심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봄' 글 잘 읽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심지현 선생님 응원힙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솔직한 글쓰기는 용기입니다. 선생님의 용기 응원합니다.
글 이상해서 써 놓고도 걱정이 한 보따리입니다.
다시 봐서 반갑습니다. 많은 사연이 있었네요.
네. 반갑습니다.
저도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글쓰기는 참.. 어려운 거 같아요. 같이 힘내시게요.
넵, 우리 모두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