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앞집 형수가 찾아와 중요한 부탁이 있다고 하신다. 무엇인가 했더니 마을 회의 소집을 했는데 참석해 달라고 하는 말씀이다. 간이 상수도 가입을 위해 오늘 내가 참석하여 도와 달라는 부탁이다. 마을 공동 간이 상수도 식수 연결 문제로 동민 전체 동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간이상수도 설치 때 개인 우물 샘이 있는 가정은 가입하지 않았던 일이다. 마을 인구가 늘어나 개인 우물도 오염 걱정 때문에 뒤늦게 상수도 가입하려는 일이다. 지하수라도 지하 100m 아래 수질이 좋아 간이 상수도로 허가 난 때문이다.
마을 회의에 참석하여 형수님 부탁대로 간이상수도 부담금 70만 원 납부와 함께 가입 허가를 부탁했다. 혹시라도 반대가 많아 가입하지 못하는 일이 걱정되어 자세한 설명과 함께 건강하게 동참이 되도록 각별한 선처를 빌었다. 나의 도움이 필요했는지는 몰라도 참석자 가운데 딱 한 사람이 반대했다. 유독 혼자만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 의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원인은 형수님 살고 있는 집터를 잘라 자기에게 팔아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지나간 감정으로 쌓인 앙심이 아직도 남았던 일이다.
마침 교회 이 장로님이 참석하여 반대하는 사람을 보고 '가물어서 마을 공동우물 물이 말랐을 적에 이 집 우물로 견딘 일은 잊었냐?' 하고 나무랐다. 참석자들이 맞은 말씀이라며 가물 때마다 이용한 이야기로 수긍하여 쉽게 가입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평소 베풀며 사는 일이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반대했던 그 사람은 코로나 팬데믹 감염 시기 회갑 좀 지난 나이로 불행하게 죽었다. 좀 더 너그럽게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에는 디딜방아가 있었다. 목질이 야문 나무로 특별히 선택하여 이름난 목수가 다듬어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에 디딜방아가 있는 집은 드물었다. 그래서 방아는 마을 공동기구처럼 누구나 와서 사용해도 무료로 사용하는 관행이다. 이웃들이 매일 방아 찧으러 와서 마을 뉴스를 전해주어 반가움을 느끼는 계기고 즐거운 기회였기도 하다. 내가 집을 새로 지을 때는 디딜방아도 쓸모없어 버렸다. 마을에 정미소가 생겨 어려운 노동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방앗간 호박돌은 아직도 기념 삼아 보관하고 있다. 지금도 절구로 사용할 수도 있고 돌이라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1970년대 TV가 방송되면서 TV를 보유한 농가는 어린이들이 놀이터보다 더 반겼다. 이웃 어린이가 모여오면 반가워서 TV를 아예 마루에 내어놓고 마루가 혼잡하면 다른 방이나 바깥에서도 보게 했다. 마루 밀창 네 개를 밀어젖히고 마당 평상에 앉아서도 함께 본다. 동네 애들이 귀여워 모두 우리 집 애들 같은 느낌이다. 어린이를 많이 만나는 기회가 나를 즐겁게 하는 행사다. 마을에는 이 장로님과 우리 집에만 TV가 있어서다. 아이들 호기심을 외면할 수 없는 일이고 반갑게 맞는 좋은 기회다. 그런 일로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로부터 호감을 받아서 더 고맙게 느낀 일이다.
다른 사람의 호감을 내가 채워 줄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즐거워지는 마음이다. 즐거운 마음을 느끼면 밥맛도 좋아지고 건강에도 도움을 주게 된다. 반대로 걱정이 생기면 밥맛부터 떨어지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병도 생기는 법이다. 디딜방아가 보리알 껍질을 벗겨내듯 사람의 불편을 덜어주는 일이 곧 자기 사명이다. 남을 즐겁게 하면 스스로 더 호감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인생이다. 매일 한 번이라도 남을 위하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런 습관은 결국 자기를 위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글 : 박용 2023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