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러스 윈턴 경
니컬러스 윈턴 경(영어: Sir Nicholas Winton, (Kt.), MBE, 1909년 5월 19일 ~ 2015년 7월 1일)은 영국의 인도주의자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나치에 의해 억류된 아동들을 구출하는 데에 앞장섰고, 그에 의해 1939년 한 해 동안 669명이 안전하게 영국으로 옮겨졌다.
이에 따라 '영국의 쉰들러'라고 불렸다.
영국 공군에 복무하며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2008년 체코 정부는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생애 초기
니컬러스 윈턴 경은 1909년 5월 19일, 런던 햄프스티드에서 은행 지점장 루돌프 월트하임과 그의 아내 바바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일 유대인이었고, 2년 전 런던으로 왔다.
그들의 성은 원래 Wertheim이었으나, 런던으로 오면서 Winton으로 바꾸었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침례를 받았다.
1923년, 새로 개교한 스토우 스쿨(Stowe school)에 입학한 그는 미들랜드 은행(Midland bank)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밤에 공부했다.
서훈
1983년 대영 제국 훈장 5등급(MBE) 수훈
2003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
추가자료
‘영국의 쉰들러’라고 불리는 니콜라스 윈턴 경(Sir Nicholas Winton,1909.5.19 ~ 2015.7.1)은 1909년 5월 19일에 독일계 유대인 금융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자라난 니콜라스 윈턴은 성장한 후, 증권거래소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며 지냈다.
그의 인생을 바꾼 1938년, 크리스마스 휴가로 스위스에 스키를 타러 갈 계획을 세웠다.
마침, 체코슬로바키아 동부 유대인 수용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친구에게 ‘휴가를 취소하고 날 좀 도와 달라’라는 전화를 받았다.
니콜라스 윈턴은 친구가 근무하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유대인 수용소로 갔다.
난민캠프 현실을 본 그는 경악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었다.
탄압받던 유대인들은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러한 참상을 본 니콜라스 윈턴은 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는 전쟁이 코앞에 닥친 것을 직감했고, 수용소의 어린 아이들을 가장 걱정하였다.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입양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유대인 아이들을 나치로부터 구하기 위해 해외입양을 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그러한 방법들이 전혀 시행되지 않았다.
니콜라스 윈턴은 체코슬로바키아 수용소에서 탄압받던 아이들을 영국으로 입양시키기 위해서 영국 기관을 찾아가 수없이 설득하고, 사비를 털어 절차에 필요한 비용을 댔다.
광고를 내며 아이들이 영국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가정을 찾는데 몰두하였다.
마침내 비밀리에 준비한 열차에 아이들을 태울 방법을 찾았다.
체코에서 아이들을 도울 때, 수없이 나치의 위협을 받았다.
하지만 나치 장교들에게 사비로 뇌물을 주면서 위험한 상황을 넘겼다.
마침내 그는 아이들을 태워 보낼 열차를 마련했다.
여덟 번의 열차로 영국에 무사히 입양된 아이들의 수는 총 669명이었다.
아홉 번째 열차에 250명의 아이들을 태워 보냈을 때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열었다.
국경이 봉쇄되어 열차에 있던 250명의 아이들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수용소로 보내져 모두 사망했다고 추정할 뿐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뒤, 니콜라스 부인은 우연히 다락방에서 낡은 서류가방을 발견한다.
가방 안에는 그 당시 그가 입양 보냈던 아이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와 아이들이 보낸 편지가 들어있었다.
아내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니콜라스 윈턴은 BBC 방송프로그램에 초대받는다.
노신사는 자신이 왜 초대되었는지 모른 듯 아주 부끄러워했다.
아나운서가 다락방에서 찾아낸 자료를 보여주어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이었던 아홉 번째 기차를 탄, 250여 명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이었다.
방송 출연을 불편해 하는 니콜라스 윈턴을 보던 아나운서가 말했다.
“혹시 방청객 중에서 여기 있는 니콜라스 윈턴 씨가 생명을 구해주신 분이 있다면 일어나 주세요.”
그러자 윈턴 씨 주변에 앉아있던 모두 사람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 당시 아이들이, 윈턴 씨를 위해 그 자리에 모였던 것이다.
윈턴 씨가 구한 669명의 아이들은 현재 자녀와 손자들까지 두어 6,000명의 가족이 되었다.
그들을 ‘니키의 아이들’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