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인생 나의 문학[8] - 뒤돌아 본 문학 반세기
스물한 살, 내 삶의 획기적인 변화, 선
생님이 되다
우리 집은 고향인 골지리에서는 부농이었다. 어려움이 없이 살았다. 내가 중학교 진할을 할 무렵, 아버님께서는 가산을 모두 정리하여 강릉에 집을 장만하셨다. 남은 돈은 친척에게 빌려주었다가 몽땅 띄었다. 그러면서부터 우리집의 생활은 매우 궁핍했다. 대학 1학년 때, 친구가 집에 왔지만 대접할 음식이 없었다. 감자밥에 물을 말아 먹었다. 아버지가 고향인 골지리에서 20여리 떨어진 갈전리의 고가를 사서 그대로 옮겨와 집을 지었다. 강릉초등학교 바로 뒤에 지었는데, 그 집터가 문제였던 것 같다. 그 집에 온 이후로 아버지는 가정을 일구고 활기차게 살아야 한다는 가장으로서 삶의 의욕을 잃으셨던 것이다. 그것도 썩 후에야 알게 되었다.
시골에 전답을 모두 팔아와 달랑 집 한 채를 옮겨 지은 후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 남은 돈은 시내의 한 친척이 문구사를 했는데 그 아저씨에게 빌려주었는데 그 집은 얼마 안가 부도가 났던 것이다.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그 후 집도 훌러덩 날아갔다.
그래도 제법 재주 있는 학생들이 간다는 경포중학교 시험에 합격하여 들어왔는데 중학 3년. 고등학교 3년이 거의 지옥 같은 생활이었다. 도시 생활에 대한 적응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탓일까? 중고등학교 아이들과 그렇게 친분을 가진 아이들도 별반 없었다. 늘 혼자 고독하였다. 다만 집에 돌아와 노는 게 재미였다.
방학이면 태어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왔다. 여름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타고 130리길 고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매달 시험을 보았는데 그게 죽을 맛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성적은 꼴찌였다. 담임선생님께 혼나고 집에 오면 부친에게 혼났다. 그때 강릉중학교에 다니는 고향 친구가 있었는데 그 녀석은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였다. 방은 나하고 같이 사용하였다. 그 녀석은 나보다도 공부를 썩 잘하였다. 매번 비교가 되었다. 그러니 아버지는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늙어도 그 친구에 대해서는 전혀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저렇게 학교에 다녔는데, 자주 가출을 꿈꾸었다.
고등학교 무렵이었다. 가을이 오면 지금의 삼척 쪽으로 가는 길이 신비에 쌓여 있었다. 저 도로를 따라 가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마을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 가을날은 삼척으로 가는 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다가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곳에는 박목월의 시 ‘나그네’처럼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 아름답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1973년 강릉교육대학을 2월에 졸업한다. 그러나 3월에 교사 발령은 나지 않았다. 물론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3월에 발령이 났다.
일용직 막노동을 닥치는 대로 하였다. 그러다가 양양 현서국민학교에 강사로 갔다. 때는 가을철, 운동회 할 무렵이라 아이들과 운동회 연습을 하던 중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랴부랴 짐을 싸가지고 돌아갔다. 삼척군 화전국민학교였다. 1973년 10월 13일자였다.
학교에 부임하여도 늘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가르치고 저녁에 돌아오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같이 글짓기를 하며 새로운 탈출구를 찾았다. 글을 읽거나 쓰는 일이었다. 1974년 아이들의 글을 모아 ‘나룻배’란 문집을 만들었다. 가리방으로 긁어 만든 작품집이었다.
스물세 살! 정신의 탈출구 ‘문학’을 향하여
‘아, 이거구나!’ 속으로 부르짖었다.
가르치는 일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창작의 불씨를 지폈다.
우울했던 내 정신의 탈출구는 문학이었다.
1975년 3월 처음 쓴 작품은 시조였다.
3월, 봄빛이 지붕위의 눈을 녹이고 있다. 조록조록 낙숫물이 떨어지고 흙 담장 밑은 햇볕이 내려앉아 자리를 틀었다. 온산의 눈들이 몰래 물기를 흘러 보내는 봄날의 한나절이었다.
햇빛과 낙숫물 하얀 눈, 흙 담장, 이런 사물들을 떠올리니 행복했다. 옛날 봄이 찾아오는 고향의 마을이었다. 싱싱한 과일을 앞에 놓은 듯 싱그러운 기운이 내 몸 속을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햇살이 눈을 밟고 달려오는 이 아침
지붕엔 토옥 토독 겨울이 헐리는데
볕 묻은 흙담 밑에서 봄은 자리 트는가.
시상이 떠오르고 한수를 써내려갔다. 샘터지에 시조 작품을 투고하였다.
1976년 4월이 끝나갈 무렵 샘터사로부터 책을 한 권 받았다. 샘터 5월호였다. 거기에 내 작품 ‘늦겨울아침’이 게재되어 있었다. 난생 처음 원고료도 받았다.
이 작품을 춘천에서 보고 반가와 소식을 전해준 여인이 있었으니 지금의 아내가 된 김정자 여사, 소라 엄마이다. 결혼 후에 대순이와 소라 두 아이를 낳았지만 딸 아이 이름이 예뻐서 소라 엄마라고 자주 불렀다. 부드러운 느낌이 나기 때문이었다.
그 해 여름 아내가 처음 보는 나를 만나러 친구와 내려왔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오자마자 식사준비도 하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 해에는 동시도 썼다. 1975년 처음 써 본 작품이 ‘호수’였다.
호 수
쑤욱 쑥 나무들
누구 키가 더 크나
들여다보고
울긋불긋 나무들
누가 더 예쁜가
들여다보고
볼 때마다
커지는
나무들의 꿈
클 때마다
보고 싶은
나무들 마음
그때마다
빙그르
바람 따라 웃고
그때 마다
방글
해님 따라 웃는
나무들의
꿈이 크는
호수
(강원아동문학 제3집. 1975)
위의 작품을 75년 강원아동문학 3집에 수록되었다. 문학지에 게재된 첫 작품이었다. 이 동시를 쓸 때에는 경포의 호수를 떠올렸다. 호수 속에 거꾸로 잠긴 물상들이 보였다. 여기에 상상력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날마다 자라고 싶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호숫가에 서 있는 나무들로 여겼고 그 모습을 그대로 거울처럼 보여주는 호수는 인자한 선생님이나 어머니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도규 형이 보고 강원아동문학 3집에 실었다. 이로써 나는 1975년 강원아동문학회에 가입하였고 첫 발표 작품은 ‘호수’였다.
순전히 강원아동문학회의 가입은 최도규 선생님 덕분이었다.
당시 교육전문 잡지 ‘교육자료’와 ‘새교실’이 있었는데 유명한 시인께서 시평과 함께 문예작품을 뽑아 추천을 하였다.
나는 그 시평과 작품을 읽으며 문학 공부를 했다. 1년 내내 투고를 하였다. 작품을 보내고 나서는 내 작품이 추천되어 작품이 활자화되어 나오는 상상에 늘 빠졌다. 기다릴 때마다 찾아오는 것은 실망 뿐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아내가 될 소라 엄마를 데리고 최도규 형을 따라 정선의 어느 시골마을에 갔다. 아주 퇴락한 시골집인데 젊은 새댁이 늙은 시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나이는 스무 살 정도 되었는데, 18살에 시집을 왔다고 했다. 농촌에서 일을 하여 얼굴이 타고 꾀죄죄하여 안쓰러워 보였다. 젊은 새댁과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보면서 늦도록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하늘에 총총총 별이 유난히도 빛났다. 고향 마을의 밤에 멍석에 누워 보던 별처럼 아름다웠다.
황지 화전초등학교 관사에 돌아와 ‘여름밤’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리고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작품이 되지 않았다. 쓰고 지우고 쓰고 버리고 무수히 파지가 생겼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제법 그럴 듯하게 된 것 같아 ‘교육자료’지에 투고하였다. 아마 10월 말 쯤으로 기억되었다. 그리고는 추천이 되지 않아 무능한 재주를 탓하면서, 까맣게 잊어버렸다.
1976년, 지금 생각해 보니 평생의 반려가 될 아내를 알게 되었으니 가히 나쁜 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참 힘들었던 해였다.
‘산사’라는 단시조도 썼다.
山寺
남진원
태고적 님의 자태
고요 속에 심어두고
목탁에 옥 굴리며
몸 헹구는 독경소리
빈 세월
마음 바늘로
빛을 깁는 산사여
(1975년 작)
이 작품을 토대로 동요 한 편을 2015년 10월에 썼다.
동요
- 산사가 좋아요
남진원
고요한 산속
푸른 숲 사이로 걸어가면
목탁소리 또그르르
맑은 친구 얼굴처럼 달려 나오는 곳
아름다운 산사
스님의 독경소리 낭랑히 번지는
산사가 좋아요. 산사가 좋아요.
번잡한 도시 속
발걸음 뒤로 하고 찾아가면
범종소리 댕그러엉
우리 엄마 숨결처럼 평화로운 곳
아름다운 산사
법당의 부처님이 빙그레 웃음 짓는
산사가 좋아요 산사가 좋아요.
- 2015년 솔바람 회지에 발표 -
추천작품에서! 배우다
1975년 무렵을 전후하여 권오삼의 ‘오월’, 김학선의 ‘군창터에서’, 노원호의 ‘바다를 담은 일기장’, 김사웅 ‘꼬까신 기다리며’, 윤일광 ‘아가의 나이’ 등은 모두 괄목상대할 만큼 새롭고 대단한 작품들이어서 읽고 또 읽으면서 시 공부에 힘썼습니다. 이 분들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1] 윤일광, 김사웅 시인의 작품들
[추천 1회]
아가의 나이
윤일광
- 아가야
너 올해 몇 살이니 -
아가가
펴 보인 손바닥
나무 잎사귀
그건
미술시간에 주워온
빨간 단풍 잎사귀
- 아가야
너 올해 몇 살이니 -
아가가
펴 보인 손가락
고추잠자리
그건
자연시간에 잡아 온
빨간 고추잠자리
- 아가야 두 살? -
- 으응 -
- 아가야 세 살? -
- 으응 -
- 아가야
너 올해 몇 살이니? -
아가가
펴 보인 손에는
별이 앉는다
깜박 깜박
아기별
아가의 나이
아가에게 몇 살이녀고 물을 때, 아가는 대답대신 주먹손을 펴 보입니다. 아기가 펴 보이는 손, 얼마나 귀엽습니까? 엄마 등에 업힌 채 아가가 펴 보이는 손은 천사의 손보다도 아름다울 것 같다고 여겼습니다. 윤일광 선생님의 동시를 읽으며 아가의 천진한 모습과 손이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가장 즐거운 상상이었습니다.
1975년을 전후하여, 윤일광 시인이 경남 거제 하청국민학교에 계실 때 「교육자료」에 추천 받은 작품입니다. 아기의 귀여운 손을 이렇게 재미나게 표현한 작품은 보기 드믑니다. 몇 번을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손을 펴 보이는 아기의 귀여운 조막손과 손가락이 눈에 보이는 듯하지 않습니까?
아기 손을 나무 잎사귀라 생각한 점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또 아기 손가락을 빨간 고추잠자리라 여긴 것도 신선한 충격입니다. 40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신선한 감각에 마음이 끌리는 작품입니다. 특히 대화법을 사용한 점은 동시의 흐름을 더욱 자연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아가 손 – 단풍 잎사귀
아가 손 – 빨간 고추잠자리
아가 손 – 별
이런 대비가 아주 적절하여 오늘도 읽으며 미소를 짓습니다.
[추천 2회]
꼬까신 기다리며
김사웅
(대구 내당국민학교)
영 너머
장터에 가신
엄마
땅거미가
밀려와도
오시지 않네.
또르르
또르르
나뭇잎 굴리는 소리
바르르,
바르르,
문풍지 울리는 소리.
영너머
장터에 가신 엄마는
오시지 않고
코록 코록
꼬까신 꿈꾸며
잠이 드네.
김사웅 선생님이 대구 내당국민학교에 계실 때 추천을 받은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주 어릴 때의 일입니다. 고향마을에서 30리 떨어진 곳에서 장이 섰습니다. 5일마다 마을 어른들은 장을 보러가셨습니다. 당시에는 자동차가 귀하였기에 대부분 30리길을 걸어서 임계장을 다녀왔습니다. 하얀 고무신을 사오셨을 때엔 얼마나 기뻤는지….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습니다.
김사웅 선생님의 동시 ‘꼬까신 기다리며’를 읽으면 어릴 때 장에 가신 어른들을 기다리던 일이 그리움처럼 떠오릅니다. 이 동시는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어서 더욱 정이 갑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동구 밖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어릴 때의 일이, 행복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위의 작품에서 어린이는 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립니다. 엄마가 꼬까신을 사가지고 오실거라는 희망을 갖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직 엄마는 오시지 않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문풍지가 떨리도록 바람이 붑니다. 아마 늦가을이나 초겨울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는 기다리다 기다리다가 꼬까신 꿈을 꾸며 잠이 듭니다.
아마 아이는 엄마가 사 온 꼬까신을 신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나이 스물세살, 윤일광 선생님의 ‘아가의 나이’, 김사웅선생님의 ‘꼬까신 기다리며’ 등의 시를 공부하며 문학의 꿈을 다졌습니다.
[2]김현승(金顯承)시인의 시 선후평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 달 시평에서,풍작이 있은 다음 달에는 으레 흉작이 되고 마는 공식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웬일인지 이 공식은 되풀이 되는 듯하여, 지난달의 풍작과는 달리 이번 달에는 내어놓을 만한 수작(秀作)이 없다. 그러므로 이번 달에는 투고되는 원고들의 일반적인 경향에서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여 오던 점을 지적하여, 참고에 이바지 하기로 한다.
응모작 중에는 여러 가지 결점이 있지만 그 중에는 사실을 시실대로 매우 단조롭게 표현해버리는 시들이 적지 않다.
이번 달의 응모작 중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들판을 걷는 마음
마음이 우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조용히 들판을 걷는다.
석양의 노을이 깔린
저녁 이슬이 채이는 논둑길로
안개 속에 잠긴
먼 산을 바라보며
들판을 걷는다.
이러한 시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실 뿐이다. 그러나 사실을 기술하듯 표현하는 것이 시라고 하면 시와 과학은 구별되지 않는다. 사실에 엄밀한 것이 과학이라면 진실에 엄격한 것은 시다. 그러면 사실과 진실은 무엇이 다르냐?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진실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시에서는 객관적인 사실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가 문제 아니고, 그 사실을 작자가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 되는 것이다. 이 주관적인 관점을 진실이라 하고, 이 진실을 표현하는 것을 시라고 한다. 표현이라는 말은 자기의 주관을 나타낸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기술이라는 말과는 전연 다르다.
그런데 자신의 주관을 보다 선명하고 독특하게 표현하기 위하여는 상상력의 도움이 필요하다. 풍부하고 참신한 감정도 필요하지만 상상은 더욱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상상의 산물이라고도 말하게 된다. 앞서 인용한 시는 사실의 기술이지 사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시라고는 할 수 없다. 다른 작자들의 다른 경우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와는 반대로 응모작 중에는 불필요한 기교에 몰두하는 작품들도 있다. 특히 아동을 상대로 하는 시에 있어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는 것은 금물이다. 인간의 일생 중 가장 자연스럽게 자라는 시기가 소년 소녀의 시절이 아닌가? 그러므로 소년 소녀를 대상으로 하는 시에 있어서는 시상이 매우 자연스러워야 할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기교(技巧), 그것도 조잡한 기교로써 소년 상대의 시를 해치는 것은 작자들이 재고삼성(再考三省)해야 할 일이다. 좋은 시가 없는 달이므로 이론으로나마 좋은 시를 보여주고자 했다.
- 김현승(金顯承) -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를 쓰는 일도 각고(刻苦)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시를 쓰는 일도 다반사인 것입니다. 다음의 천료소감을 읽어 보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었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천료소감을 쓰신 노원호 선생님은 한국동시문학회 회장을 지낵시고 현재 [새싹문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윤석중 선생님이 만들어온 아동 문학 전문잡지였습니다.
[천료 소감]
밤을 위한 잉태
노 원 호
밤마다 나는 내 언어의 몸부림을 느낀다. 칠흑의 밤에 간혹 번짝이는 빛을 볼 수 있으니 참을 수 없는 곤혹을 겪는 셈이다. 그럴 때마다 밤을 새우면서도 시의 작업장에 삽질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 속의 천성(天性)이 풀리는 것이다.
이만큼 키워 주신 박화목 선생님께 조그만 보답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잉태해야 겠다.
늘 살펴주신 김지도 선생님께 안부드리며 교육자료사의 발전을 빈다.
☆1946년생 ☆대구교육대학 졸업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입선(1972년) ☆매일신문신춘문예 동시당선(1974년) ☆대구아동문학회 회원 ☆경북 울진 부구 국민 학교 재직
바다를 담은 일기장
-노원호-
지난여름
해변을 다녀온 일기장에
동해의 퍼런 바다가 누워있다.
깨알 같은 글씨
바다를 읽으면
골골이 담겨진 바다의 비린내
한 잎
갈피를 넘기면
확 치미는 파도소리
갈맷빛 바위위에서 울어대는 물새소리
바다가 들어와
누운 그자리
눈을 감아도
팽팽히 일어서는
파도소리 우루루
장마다 미친듯 신이 들려
파랗게 넘치는 바다의 살점들
이제는
바다를 멀리 두고서도
바다를 껴안은듯
일기장
구석구석 줄줄이 읽으면
바닷물이 어느새
바닷물이 어느새
몸에 와 찰싹인다
[3]이석현 시인의 선평(選評)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 그것은 시인의 눈이다. 투시. 관조하고 상상한 심적체험이 복합으로 심화하여 마음 바닥에 축전(蓄電)되었다가, 충동(발상)에 따라 정서의 날개 타고 비상할 때 낳아지는 열매가 곧, 시이다.
이때 유형(모방)을 벗어난 독특한 작품은 저다운 각도(안목)에서 저만이 엮을 수 있는 수법으로 각고를 거듭하는데서 비로소 가능하다.
군창터에서(김학선) - 눈이 번쩍 뜨이는 우수작이다. 손댈 데 없는 완벽한 시, 이분은 시의 눈을 가졌다. 저만의 시를 다룰줄 안다. “우리 것 재발굴”이란 점에서도 훌륭한 착안이다. “삽루리에 찍혀 / 살아나오는 함성”과 백제 망국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4연은 보다 인상 깊다.
오월(권오삼) - 야무진 시어선택이나 재치로운 마무리는 없지만 시로서 넉근히 익혀내었기에 추천하였다. “잎사귀에 푸르게 피어난 햇살을 병아리가 물고 종종인다.” “버드나무 가지는 / 햇살을 감아 / 보리밭으로 던진다.” 라는 대목은 얼마나 실감나게 시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는가.
버리기 아까운 동시들 – 아기바람(여영애), 시상을 잘 잡았으나 군데군데 미숙하게 엮어져서 흠이다. 이 시상을 가지고 다시 다듬어 보기 바란다. 삼월에(이옥희) - 기교보다 상(想) 잡기와 응결시키는 끈기가 앞서야 한다. 연 나누기와 줄떼기의 맛을 터득했으면 싶다. 버리기 아까운 작품이니 다시 손대 보기를 권한다.
그밖에 풋고추(김사웅)는 너무 서술적이고 마무리가 약했고 봄비(김석호)는 연나누기의 미숙과 독백 투의 쉬운 처리가 불만이고, 철봉에 휙 오르면(허대영)은 상의 약함이 허물이고 자화상(김이균)은 성인시인데 이상이니 회의니 고독이니 하는 술어를 표면에 부각시키면 시가 생경(生硬)해진다. 저변에 깔고 심화시키는 기술이 요구된다.
수필에서는 산아침(김영희)을 기꺼이 밀어올린다. 서정문 같이 율동미 감도는 문장과 재치있는 묘사로 마음 속살을 숨김없이 노출시킨 진실성이 호감을 준다. 남과의 대조와 반성 – 거기서 제 나름의 미를 가슴 그 속에서 가꾸어 나가려는 차분한 자세가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주석(酒席)딜레머’(장문식)와 ‘은반 위에서’(박광정)는 각각 특징이 없지 않으나 문맥의 질서정연한 정리만 다시 하면 수작이 될, 버리기 아까운 글이다.
[동시 추천완료]
군창터에서
김학선(강원 춘성 오동 국교)
흙속에서
백제를 찾는다.
천년 빛이 쌓인
흙을 헤치면
삽부리에 찍혀
살아 나오는 함성들
묵은 깃발이
하늘을 덮고
발자국이 일어서고
안개 속의
황산벌을 흔들며
짓밟아 오는 말밥굽 소리…
태양이
깊숙이 가라앉은
백마강 위에
하얗게
꽃잎이 진다.
함성은
골짜기에 묻히고
찢어진 깃발이
말밥굽에 밟히고
불더미 속에 타버린
육백 팔십년의
긴 세월.
나는 지금
까맣게 타버린
백제를 보고 있다.
[1회 추천]
오 월
권오삼
(경북 영천, 영천 국교)
오월의 햇살이
연초록의 잎사귀에서
푸르게 푸르게 피어나다
병아리의 부리에 앉으면
병아리는 햇살을 물고 종종거린다.
아직도
손끝이 차가운 시냇물
5월의 햇살은
송사리를 간지럽히다
수면 위로 뛰어오르고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는
햇살을 감아
보리밭으로 던진다.
보리밭에서 뒹구는
5월의 햇살.
-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