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황색 비망록
김영탁(金泳卓)
새로 부임한 시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바쁜 업무 중일 터인데 전화를 하다니, 관변 고위층으로부터 받는 전화라 긴장이 되었다. 서론이 좀 길었다. 내용인즉 두 가지 요청인데, 저쪽 생각은 어떨는지 모르겠으되, 받는 쪽에서는 좀 복잡한 사안이구나 여겨졌다.
간추리면 이렇다. 특별자치도 승격의 잔치로 대대적인 문화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은 2가지였다. 첫 번째가 우리 시(市)에 주소지를 둔 문인의 명단이 필요하다는 것, 두 번째는 고서(古書)나 희귀 서적(稀貴書籍)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계획이 거창했다. 서적 전시는 반년간이고, 주소록은 문인비를 세우기 위한 기초작업이라 했다. 문인 비석은 입석까지 2개월을 잡고 있었다. 솔직히 두 가지 모두가 마음에 드는 일이기에 최대한 협조를 하겠다고 했다.
위선 서책부터 모아봤다. 고서는 필사체 위주로 하고, 일반 출판물은 이북의 연변가(延辺街)에서 간행한 잡다한 서적물에서 골랐다. 이쪽저쪽 열권씩 모두 20권이다. 필사물은 연대순을 기준으로 했고, 조선족의 서적은 몇 가지 조건을 세워 거기에 따랐다. 사상성이 강하게 내재 되어 있거나, 아부성이 담긴 글은 열외 시켰다.
이를 기본으로 『금산사창업연기(金山寺創業連記)』 『천기대요(天機大要)』. 『중용집주(中庸集註)』 『조선고금명현전(朝鮮古今名賢傳)』 『사천년문헌통고(四千年文獻通考)』 『명가필보(名家筆譜)』 『대동사강(大東史綱)상하권『 『산술(算術)』 『육조대사(六祖大師)』 『심지관경보은품(心地觀經報恩品)』등 10권을 선정하고, 조선족 도서로는 『노루골의 비밀』 『짐승들이 세운 기념비』 『어미쥐의 눈물』 『괴상한 벽시계』 『황소의 후회』 『뽈귀신 아버지』 『용팔이와 참새』 『마음 속의 열쇠』 『식당집 아이』 『아리랑』 등 10권을 가렸다.
특히 「금산사창업연기」는 내가 아끼는 고서였다. 갑진년 중춘(1674년)경에 필사된 듯하니 전시의 가치가 충분하다 싶었다. 350여 년 전에 필사된 진본이다. 발행지, 발행처는 알 수 없다. 126p 12행 분량이다. 4𐩃6배판 크기다.
이 ‘금산사창업연기’는 「금화사몽유록」의 이본으로 한(漢), 당(唐), 송(宋), 명(明)의 창업주의와 그 신하들이 모인 연회에 중국 역대 제왕과 그 신하들이 초대되어 유교 이념에 입각한 이상적인 정치 구도를 가상, 조각을 통해 구현해본 몽유록계열 소설이다. 작자는 미상이며 단정한 해서체로 쓰여 있다. 현전하는 필사본과 같은 계열인바 당대 독자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짐작은 가능한 자료다.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유통된 이 작품의 독자수용 태도나 향유 양상 등을 탐색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족 아동 물로는 「노루골의 비밀」이 첫손가락에 꼽혔다. 문학성이 짙어 보였다. 박영철이 쓴 중편소설이다. 1991년 5월.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박영철은 동화작가였고, 50세 초반에 요절했다. 작가는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오봉탄광 마을 아이들과 토비들과의 투쟁을 쓴 내용이다. 경호는 폐광 안에서 살해된 현 지주의 개화장 속에 있던 괴상한 지형도 한 장을 얻게 된다. 토비들은 왜놈들이 패망하면서 비밀리에 감춘 군수물자를 찾기 위해 지형도를 애들 손에서 빼앗으려고 갖은 수단을 다한다. 하나 용감하고 슬기로운 아동 단원들은 왕정위와 공작대 차 대장의 인솔하에 민주련 군과 함께 토비들을 일망타진한다. 그리고 지형도의 비밀을 밝혀내고 왜놈들이 노루골에 파묻은 군수물자를 몽땅 찾아낸다. 묘사에 능하고, 문장이 비교적 완벽했다. 한국의 자칭 중견 소설가의 문장보다 월등했다. 모르는 낱말이 더러 박혀 있었다.
그 외 장영태 리은실이 지은 『소학생 글짓기 공부』도 재미있었다. 소상하게 집필된 역작이었다. 3,4,5,6학년 교재다. 각 학년 공히 기본내용과 보충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3학년의 경우 ‘토막글 짜기’와 ‘인물의 말 쓰기’에 눈이 갔다. 4학년의 경우는 ‘독후 감상문 쓰기’와 ‘단락 나누기’에 눈이 갔다. 5학년의 경우는 ‘사실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와 ‘글의 순서를 바꾸기’에 눈이 갔다. 6학년의 경우는 ‘사상 감정을 쓰기’와 ‘연상, 상상이 있는 글쓰기에 눈이 갔다.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가 1988년 11월에 발간한 『중학생 작문』은 손에서 내려놓기 싫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조선어문학습지로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4가지 능력을 전면적으로 키워주는 보조물로, 개혁 정신에 따라 다채롭게 꾸몄다. 지식성, 실용성, 취미성 있는 글들을 실어, 외국 중학생들의 어문학습 길잡이 역할도 하고 있다.내용면에서 참으로 다양했다. 실기와 실습 위주의 교재였다.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에서 출간한 제14호를 중심으로 메모한 내용이다. 인정세태, 외국 작문, 수상 작문, 중학생 론단, 승학작문지도, 문학서클활동 등의 덕목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시장 비서가 시장을 대역하는 전화였다. 책의 내용을 요약 정리를 해서 보내 달라는 것이다. 아크릴판에 옮겨, 관람객의 눈을 끌 수 있도록 작업을 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특별히 소책자를 만들어 관람객이면 누구나 소지가 가능하게 할 것이라 했다.
나는 저쪽의 요구대로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한데 도록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자꾸만 찜찜했다. 도난 문제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를 방지할 대안이 서 있는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문인비 세우는 일도 간단히 보면 아니 된다. 가나다순으로 색인하면 되겠지만 정식 공원이 아닌 근린공원에 문인비를 세워보겠다니 이게 어디 마음에 닿겠느냐는 것이다. 하던 무엇도 멍석 깔면 멈춘다고, 숫자가 많고 보면 별의별 의견이 나오게 마련일 터이다. 역대 회장 중에는 건립비용을 내더라도 자기 이름을 돋보이게 하겠다는 열사도 있을 것이다.
시 녹지과 직원이 내 집으로 찾아왔다. 내가 청해서 이루진 것이다.
비석이 세워질 자리와 비석 모양을 도면화해서 왔기에 서로의 생각을 쉽게 교잡할 수 있었다.
“비신(身)의 높이는 얼마로 잡았나요?”
“아! 네, 2m정도 입니다.”
“옥개석과 하대석은 일반적인 문향으로 점잖게 조각하심이 좋습니다.”
“……….”
“장소 결정은 하셨나요?”
“중앙공원에 세울 것입니다. 어제 간부 전체 회의에서 두 건은 보고가 되었습니다.”
“……….”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기분이다. 서울의 청계천이 폐수로 신음할 때, 이 땅의 세천(細川)은 오염으로 숨이 막혔다. 청계천 일대는 시민의 기피 대상이었고, 고을의 세천은 농수(農水)로도 부적합했다. 한데 어느 마음씨 따뜻한 진정한 애국자가 나타나서 청계천에 물고기 집을 지어놓자, 이름 모를 민물고기가 모여들고, 백학이 춤을 추자, 대한민국 고을고을의 세천은 저절로 1급수가 되어 흐르고 있다. 우리 시에서 먼저 문학비를 세운다면 대한민국의 놀이동산엔 하루아침에 문인비가 세워질 것이다. 그래 봐야 1만 2천여 명이 전부다. 어느 한 문인이 있어 국정에 간섭하던가. 연 1회 펴내는 동인지 출판비 일부를 보조 받는 돈이 세금 축내는 뒷돈의 전부이다.
우리 시에 거주하는 문필가가 많은 수는 아니다. 임시 임원회를 열어 의사를 타진하고 뜻을 모아야 한다. 분명 노 하는 무더기가 있을 터이다. 어느 단체든 반대를 일삼는 동지들이 있다, 굳이 싫다면 비문에 이름을 끼워 넣지 않으면 될 일이다. 고문의 입장에서 왈가왈부 앞자리 나설 일은 아니지만 찬조 의견을 낼 수는 있다.
비석을 세운다는 게 학문적으로 파고들면 복잡하다. 비석 세우는 일이 우리 풍속이 아니었기에 그렇다.
고인(故人)의 사적(事蹟)을 칭송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문장을 새겨 넣은 돌이 비석이다. 주로 돌아가신 분의 행적을 칭송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문장을 새겨 넣은 돌이기에 그렇다. 비석의 시초는 옛날 중국에서 묘문(廟門) 안에 세워 제례(祭禮) 때 희생으로 바칠 동물을 매어 두던 돌말뚝에서 비롯되었다. 또 장례식 때 귀인(貴人)의 관을 매달아 광내(壙內)에 공손히 내려놓기 위하여 묘광(墓壙) 사방에 세우던 돌을 말하기도 한다. 하여튼 중국의 문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1주일의 말미를 얻고, 녹지과 공무원을 돌려보냈다. 위선 폰의 힘을 빌려 전직 회장 몇 사람에게 물어봤다. 다를 좋다고 했다. 됐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듯했다. 회장의 요구대로 사무국장과 삼인이 만났다. 활동 명단에 올려 있는 회원이 100명 정도였다. 사무극장의 제언 대로 이사회를 열기로 했다. 이사회는 3일 뒤에 열렸고, 몇 가지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한글로 각자(刻字)하고, 가나다순 색인에 따랐다. 비석의 명칭은 고문단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단 한국문인협회에 성함이 올라 있는 문인으로 한정했다. 뒷날의 후배들을 위하여 각자할 자리를 넉넉하게 비워 두기로 했다. 그리고
연1회 문인 비석이 있는 중앙공원에 모여 의미 있는 문화행사를 하기로 했다.
새로 부임한 배성찬(裵成贊.가명) 시장을 명예 고문으로 모시기로 했다.
‘삼국연(三國聯)석재공장’에서 전화가 왔다. 마침 자연석을 구해 놓았다고 했다.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다. 시민이 즐겨 찾는 공원에 문인들의 문학비를 꼭 세우고 싶었었다.
밤늦은 시간이다. 폰 소리가 요란했다. 사무국장 張基宇의 이름이 떴다. 어쩐지 예감이 좀 이상했다.
“고문님 늦은 시간 미안합니다. 배성찬 시장님의 당선이 무효랍니다. J신문사 편집부장의 전언입니다.”
나는 얼떨결에 창문을 열어젖혔다. 구름 없는 하늘에서 천둥이 울고 있었다.
김영탁(金泳卓)
소설: 『연리목에 핀 무궁화』 『三作 노리개』 『마지막 전쟁』
수상: 강남문학상. 서울특별시문학상. 박종화문학상(月刊文學)
등단: 월간수필문학(1989). 이메일: yt03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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