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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에서 발견한 속도
— 서울둘레길 16기 100인원정대 7차시, 후미는 길을 느낀다
선두에 섰던 지난 6차시에 이어, 7차시는 대열의 맨 끝에서 시작했다. 같은 길이지만 위치가 바뀌자 전혀 다른 경험이 펼쳐졌다. 선두는 방향성을 보고, 속도를 만든다. 반면 후미는 다르다. 따라가는 자리지만, 그만큼 자신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선두가 반보로 길을 열었다면, 후미는 완보로 길을 느낀다.
이번 7차시는 석수역에서 가양역까지, 안양천을 따라 이어지는 구간이다. 평소 차로 스쳐 지나던 길을 두 발로 걸으니,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뒤에서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위치가 아니라 ‘시간의 여유’를 의미했다. 대열 선두는 화장실을 선점하고, 휴식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후미는 이러한 유리한 점은 없다. 대신에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다시 뛰어 대열에 합류하는 리듬이 가능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걷기는 한결 편안해졌다.
안양천 벚나무 길에서는 대장이 ‘수간 기피’를 설명했다. 나무도 서로의 생장을 위해 거리를 둔다는 이야기였다. 그 설명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 안양천 벚나무 터널에서 잊고 있던 단어가 떠올랐다. 햇빛이 물결 위에 부딪히며 반짝이는 것을 ‘윤슬’이라 하는데 그 단어가 떠올랐다. 정확한 표현은 ‘볕뉘’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쳐들어와 숲의 바닥에 닿는 빛이 볕뉘다. 일본어에서는 이러한 나뭇잎 볕뉘를 木漏(こも)れ日(び) 코모레비라 한다. 볕뉘는 태양 원반과 같은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으며, 햇빛이 통과하는 틈의 모양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것은 바늘구멍 사진기와 원리가 같다. 그럼에도 바다나 강에서만 보던 풍경이 아니라, 도심의 황톳길 위에서 만난 이 볕뉘를 ‘윤슬’이라 우겨본다.
빠르게 지나쳤다면 제대로 보지 못했을 장면과 단어를 기억한다. 계절 또한 발걸음 위에서 또렷해졌다. 4월임에도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신록(新綠)’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늦봄의 색이 이미 길 위에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걷는 속도가 느려질수록 계절은 더 선명해진다. 천천히 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한다는 노시인 말이 옳다.
처음 참가한 뒤풀이 자리에서는 또 다른 ‘연결’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완주 이후 한 코스를 깊이 있게 걷는 모임을 이어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단순히 걷는 것을 넘어, 먹거리와 볼거리를 함께 경험하자는 이야기였다. 더불어 한 참가자는 사과를 고르는 요령을 알려주며 직접 과일을 골라 주기도 했다. 걷기에서 시작된 관계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서울둘레길 16기 100인원정대는 이제 4차시를 남겨두고 있다. 선두에서 걷는 사람과 대열 후미에서 따르는 사람, 그 위치는 매 차시 바뀐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맞추는 법, 함께 걷는 방법을 배운다. 길은 앞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후미에서도 온전히 느끼며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구동성으로 다음 차시가 기다려진다고 한다. 즐기는 조, 복 짓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