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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세미나 2026. 7. 11. 발제문(관리되는 세계/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입니다.
관리되는 세계/ 제국주의적 자본독재
홍 승 용(현대사상연구소)
1. 문제는 주체적 조건이다
1. 1. 폴더인사는 영화 속 조폭들의 전유물처럼 각인되어 있지만 정치권에서 적절히 쓰이기도 한다. 최근 정청래와 이재명의 폴더인사는 인상적이다. 이재명을 향한 정청래의 폴더인사는 영화 화성침공에서 화성인들이 ‘평화’를 외치면서 광선총으로 지구인들을 순식간에 해골로 만들어놓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정청래는 친명을 외치며 반복적으로 이재명 정권을 흔들고 조롱하는 방식으로 집권세력 내부의 권력투쟁에 앞장서 왔다. 이로써 그는 권력투쟁에서 기만의 평범성 혹은 일반성을 투명하게 드러내며 정치적 위기를 자초해 왔다. 이재용과 최태원을 향한 이재명의 폴더인사는 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의 생화학적 결합의지를 공공연하게 밝히면서도 팬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점에서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결합은 4천7백조라는 압도적 투자액수 및 초격차 기술을 통한 독점이윤과 그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감으로 국가주의 쓰나미의 진원이 되고 있다. 국익과 속도전을 부르짖는 국가주의의 쓰나미 앞에서는, 정적들의 반발만 아니라 환경재앙, 양극화, 대량실업, 전쟁위기 등에 대한 우려도 적당한 수준에서 은폐되고 관리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급 기만은 지배에 꼭 필요한 만큼 피지배자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헤게모니전략 아니겠는가.
1. 2. 기술패권을 향한 질주가 미국과 중국의 틈새에서 견제와 경쟁을 뚫고 일정한 성과를 거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이유는 없다. 현재의 주체적 조건을 고려하면, 그 실패는 제국주의적 자본독재 너머의 대안체제 건설을 촉발하기보다 극우파쇼세력의 창궐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기술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성공과 국익의 확대가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민중의 권익 확대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 권익 확대를 위해서는 프로젝트 전반과 요소요소에 노동자민중의 합리적 요구들이 스며들게 할 범사회적 투쟁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 투쟁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물량과 속도 논리를 앞세우는 원천봉쇄의 벽에 부딪치고 있다. 이를 돌파하는 총력전으로 고용과 분배, 환경재앙, 타 산업들에 대한 압박 등 예상되는 제반 문제들과 관련해 국가 차원에서 최적의 타협안을 마련하고 실행할수록, 국가주의 및 자본헤게모니의 강화와 함께 한국의 제국주의적 발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전지구적 착취사슬 속에서 저발전 민족들의 노동자민중을 상대로 하는 독점적 초과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국제적 갈등⋅충돌⋅전쟁의 잠재력을 증폭시키고 인류문명의 종말을 앞당기는 데에 선두주자로 나서는 일이기도 하다.
1. 3. ‘일반적 이윤율 저하’와 ‘불균등발전’, ‘제국주의 전쟁’ 등은 자본을 향한 맑스와 레닌의 주관적 저주나 선동구호가 아니라, 그에 맞선 필사적 저항으로도 장기적으로는 막기 어려운 자본운동의 본질적 경향이다. 초과이윤을 통한 노동자계급 상층부의 매수와 분열책 또한 자본권력이 포기하기 싫어하는 효율적 지배수단이다. 이로써 비로소 노동자민중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지속적 지배, 즉 자본헤게모니가 관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극단적 양극화로 인한 불행을 매일 매순간 몸으로 겪고, 범지구적 재앙이 코앞에 밀려와도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을 남들의 비현실적 언어유희라고 밀어내는 다수 노동자민중의 현단계 의식⋅감각⋅욕구 상태의 주요 원천이다. 이러한 주체적 조건의 질적 변화 없이는 오늘의 인류 공멸 위기를 극복하고 공존과 공영을 위한 대안사회를 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 소망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아도르노는 ‘관리되는 세계’ 개념을 통해 이 문제의식을 극단으로 밀고간다. 서독이라는 당대의 복지천국을 겨냥한 그의 비판은 우리에게도 무의미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비판이 힘을 발휘한 조건과 실천적 한계를 인식하면, 이제 ‘관리되는 세계’를 ‘제국주의적 자본독재’로 바꿔 쓸 필요가 있어 보인다.
1. 4.‘관리되는 세계’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의미를 갖추기 시작해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아도르노의 글들에서 명시적으로 주요 비판용어로 쓰인다. 비판의 초점은 독점자본주의를 향하지만, 전통적 맑스주의의 틀을 넘어서 지배체제에 대한 피지배 대중의 순응 메커니즘에 압도적 비중을 둔다. 이는 ‘지배계급의 사상이 어느 시대에나 지배적인 사상’이라는 맑스주의 공리나, 노동자계급 상층부의 매수와 우경화에 대한 레닌의 비판, 그람시가 제기하는 헤게모니 문제, 맑스의 물신 비판 및 루카치의 사물화 비판 등 맑스주의 전통 내부에서 꾸준히 발효되어 온 문제의식을 극단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현실적 기능은 양가적이다. 특정 사회 노동자대중의 의식 및 욕구를 근거로 독점자본주의의 헤게모니 전략을 세밀하게 밝혀내면서, 또한 노동과 자본의 객관적 모순이 지닌 폭발력을 이론 차원에서 흐려놓음으로써 독점자본주의 너머 대안체제의 구체화에 장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맑스주의를 기초로 자본주의를 비판해온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노동자계급 중심의 변혁전망을 포기하는 데에는 F. 폴록의 국가자본주의론이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국가자본주의론은 관리되는 세계 개념의 정치경제학적 기초로서 검토할 가치가 있다.
2. 폴록의 국가자본주의론
2. 1. 오늘날 자주 거론되는 T.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이 소련을 주 비판대상으로 삼는 것과 달리, 폴록의 국가자본주의론은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겨냥한다. 폴록은 일차대전 이후 유럽이 사적 자본주의에서 국가자본주의로 전환해 간다고 진단한다. 그는 국가자본주의를 전체주의적 형태와 민주적 형태로 구분하면서, 민주적 형태는 경험적 자료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전체주의적 형태에 논의를 집중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자본주의는 사적 자본주의의 후계자이고 따라서 사회주의가 아니며 이윤관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가 사적 자본가의 주요 기능을 떠맡는다. 시장의 조정 내지 통제 기능은 국가에 귀속된다. 이로써 ‘경제법칙’도 부차적인 것이 된다. 전체주의 형태의 국가자본주의 하에서 국가는 강력한 기득권 세력, 즉 기업 경영의 최고위 인사, 군부를 포함한 국가 관료 상층부, 여당의 핵심층 등이 결합하여 이루는 지배집단의 권력도구다. 이 소수에 속하지 않는 다수는 지배 대상이다.(폴록201) 이 체제의 주요 목표는 ‘완전고용’과 ‘구사회 구조의 기본 요소 유지’다.(폴록203) 폴록은 내심 민주적 형태의 국가자본주의를 희망하는데, 여기서는 국가가 민주적인 제도를 통해 인민에 의해 통제된다.(폴록202)
2. 2. 시장을 대체하는 국가의 통제를 폴록은 경제 과정에 ‘필요와 자원의 조정’, ‘생산의 방향 설정’, ‘분배’ 등에 전반적으로 관여하는 ‘일반계획’의 실행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자본주의 하에서도 시장, 가격변동, 화폐, 이윤 동기, 수요와 공급의 관계, 개인의 창의성과 책임 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지배집단의 정치적 결정에 의한 일반계획에 종속된다.(폴록204-207) 시장법칙이나 경제법칙은 모든 경제 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기 위한 보조규칙으로 쓰인다.(폴록207) 이윤과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들의 동기는 인센티브를 위해 활용될 수 있다.(폴록211) 그러나 개별 이익이 일반 계획과 충돌하면 개별 이익은 양보해야 한다. “공익이 사익에 우선한다.”(폴록205) 사적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가 누려온 권력은 정부로 이전된다. 경영은 자본과 분리되어 정부의 몫이 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자본가는 단순한 금리생활자로 전락한다.(폴록209) 정부는 여전히 자연적 한계로 인해 제약을 받지만 ‘시장의 폭정’으로부터는 자유로우며, 이로써 역사적 시기 전체의 성격이 변화한다. 즉 ‘지배적으로 경제적이었던 시대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시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폴록207)
2. 3. 폴록은 국가자본주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가활동 및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과학적 관리의 원칙’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본다.(폴록206) 완전고용과 기술진보에 따른 확대재생산이 일반계획에 포함되고, 그 집행은 불확실한 시장을 위한 경제적 과제가 아니라 기술적 행정적 과제로 된다. 이는 현대의 거대기업 및 기업연합이 축적한 경험에 근거하는 총생산 통제를 통해 해결된다. 구체적 통제수단으로 그는 ‘현대적인 통계 및 회계방법’, ‘미래의 요구를 위한 노동자들의 체계적 교육’, ‘모든 기술적 및 행정적 과정의 합리화’, 은행의 정부기관화 등을 제시한다. 또 이러한 계획과 통제를 통해 과잉저축도 과잉확장도 오류투자도 대규모 교란을 일으킬 수 없다고 본다.(폴록208) 침체의 우려도 별로 없다. ‘실업이라는 채찍’ 대신 ‘정치적 테러와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보상의 약속’이 피지배 대중들의 개인적 노력을 자극한다. 지배집단에게는 ‘정치권력에 대한 의지’가 동기 부여의 중심이 된다.(폴록210)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도 각 산업의 ‘할당량 시스템’ 및 ‘시장 메카니즘의 부분적 활용’으로 해소된다.(폴록212-214) 소비자들의 선택 자유는 소득규모, 전통, 선전 등에 의해 대체로 평준화되고 제한된다.(폴록215)
2. 4.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반론, 즉 계획경제는 계산불가능성과 생산성 저하 문제에 부딪치며, 시장법칙이 작동하지 않아 투자가 둔화되고 기술발전이 중단되리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폴록은 경쟁적 군비증강이 지배집단의 핵심 이해관계로 되며, ‘온 세상이 하나의 전체주의 국가에 의해 통제되어 모든 잠재적 적들이 사라진 후에야’ 그런 문제가 부각될 것이라고 반박한다.(폴록215-216) 그는 원자재 부족과 낮은 생산력 발전으로 난관을 겪은 소련조차 자유기업 체제였다면 완전히 붕괴했을 조건 하에서 정부통제경제체제를 통해 생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폴록218) 그는 다음과 같이 단정한다. “국가자본주의의 기능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내재적인 경제적 힘, 즉 구식이나 신식 유형의 ‘경제법칙’도 발견할 수 없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공황의 경제적인 원인, 누적적 파괴과정,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실업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을 제공한다. 우리는 심지어 국가자본주의하에서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그 대상을 잃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모든 경제 활동의 조정이 시장의 자연 법칙이 아니라 의식적인 계획에 의해 이루어질 때, 낡은 의미의 경제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폴록217)
2. 5. 그만큼 정치 문제가 중요해진다. 특히 전체주의적 국가자본주의의 경우, 지배집단 내부의 ‘통제 독점권을 둘러싼 투쟁’만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반대 압력’도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폴록218-219) 그러나 “정치적 지배는 한편으로는 조직된 테러와 압도적인 선전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핵심 집단을 위한 완전 고용과 적절한 생활 수준, 그리고 자발적이고 완전히 복종하는 모든 신민에게 제공되는 안보와 더 풍요로운 삶의 약속에 의해 달성된다.”(폴록223) 이때 대중은 ‘원자화’되고 ‘정신적 의존상태’에 빠진다. ‘기존 질서의 지속 가능성과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기회’조차 없다.(폴록219) 노동자의 여가시간까지 ‘위로부터 조직된다’.(폴록223) 따라서 이 시스템이 피지배자들의 동의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지배계급과 대중 사이의 적대적 성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폴록223) 반면에 민주적 국가자본주의는 이러한 적대관계를 극복하겠지만 전체주의의 침략 위협으로 인해, “모든 전체주의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될 때까지 철저하게 무장하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폴록220-221) 민주적 국가자본주의의 주요 장애물들은 정치적인 것이며 ‘정치적으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 폴록의 결론이다.(폴록225)
3. 관리되는 세계: 자본헤게모니의 한 극단
3. 1. 민주적 국가자본주의 모델, 즉 민주적 통제를 바탕으로 하는 계획경제는 망명지 미국의 제반 여건을 고려한 폴록의 사회주의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도르노는 폴록의 국가자본주의 개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도 전체주의적 국가자본주의의 주요 특징, 즉 완전고용과 복지, 조직적 테러와 압도적 선전을 통한 대중 통제 내지 대중의 자발적 복종 상태에 대한 폴록의 진단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는 특히 문화산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독점자본의 대중지배 메커니즘의 주요 특징들을 면밀히 밝히며 관리되는 세계 개념을 정립한다. 그리고 이 개념을 복지국가 서독에 적용한다. 1960년대 서독은 고속성장을 바탕으로 완전고용과 의료, 교육, 주거 안정을 보장했다. 동독과의 체제경쟁이 복지정책의 주요 동기였다. 자본의 주요 전략은 노동과의 사회적 합의주의였다. 이 시기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필요 없을 정도의 ‘황금기’였다. 이 ‘황금기’의 정체를 아도르노는 ‘복지국가’가 아닌 ‘관리되는 세계’라고 못 박은 것이다. 그리고 ‘부조리하게 존속하는 궁핍상태’, ‘확대재생산되는 야만’, ‘영속적 부자유’. ‘총체적 파국의 위협’ 등이 그 본질임을 명시한다. 주목할 만한 문제제기다.
3. 2. 노동과 자본이 적대적 모순의 괴로움이 아니라 차이의 즐거움을 생산할 수 있다면, 그럴 만한 물적 조건이 지속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자본증식 원리 따위가 아무 문젯거리도 되지 않는다면 자본권력에 맞서야 할 이유도 별로 없을 것이다. 서독의 ‘황금기’에는 그러한 물적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환각이 범람했다고 여겨진다. 고도성장은 어디서나 이 치명적 환각을 유발하기 쉬울 것이다. 아도르노는 ‘관리되는 세계’ 개념을 이 환각의 치유제로 쓰고자 했던 셈이다. 그러나 그가 ‘국가자본주의론’을 받아들여 독점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능력과 영속성 관념에 의지함으로써, 그 치유제의 효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즉 고도성장의 국내적 국제적 조건에 대한 인식에 근거하는 실질적 처방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일반이윤율 저하에 따른 자본축적 위기의 필연성, 초과이윤 획득을 위한 독점자본들의 국제적 결합과 경쟁, 불균등발전에 따른 갈등 및 전쟁 불가피성 등의 문제들과 매개되지 않은 ‘궁핍’과 ‘야만’과 ‘파국’에 대한 고발은 또 다른 환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황금기는 어떻게든 지속될 것이고, 독점자본은 인류의 숙명이라는 환각이 그것이다. 물론 아도르노 이론의 비판적 자극이 그러한 환각으로 무효화되지는 않는다.
3. 3. 아도르노가 ‘대중문화’ 대신 ‘문화산업’ 개념을 쓰는 것부터가 비판적 의도의 산물이다. 그것은 대중문화가 대중 자신에 의해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문화, 즉 민중문화의 현대적 형태라는 생각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문화산업이야말로 독점자본의 지배질서가 ‘정신의 가장 미묘한 혈관 속에까지’(미학82), 즉 대중들의 사유방식과 감각과 욕구 속에, 혹은 뼛속까지 파고들 수 있도록 해 주는 가장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문화산업이 대중의 욕구에 맞춰 생산하는 문화 규격품들은 다시 수요를 창출하는데, 이 순환고리 속에서 ‘체계의 통일성’은 점점 촘촘하게 합리화된다. 이 합리화 과정의 밑바탕에는 사회에 대한 ‘경제적 강자의 지배력’이 있으며, 기술적 합리성은 ‘지배의 합리성’이다. 따라서 문화산업 체계에 대한 대중의 선호나 자발적 소망은 체계의 일부이지 체계를 옹호할 핑계가 될 수 없다. 독점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사회적 조건의 산물인 현재의 지배적 욕구를 절대화하고, 사회적 조건의 변혁을 통해 그것을 바꿀 가능성을 부인하면, 지배질서에 순응하는 체념주의는 피할 수 없다. 아도르노의 불신은 이러한 체념주의 극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3. 4.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의 주요 메커니즘으로 ‘탈예술화’를 지적한다. 예술작품이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생산되는 상품으로 되는 현상과, 이로써 ‘주관적 투사를 위한 백지상태’가 되는 현상이 탈예술화의 양측면이다. 감상자는 예술작품이 말하지 않는 것을 ‘규격화된 자신의 메아리로 대체’한다. “문화산업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유발하여 우려먹는다.”(미학49) 예술작품 자체의 질, 특히 진리내용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예술작품을 옆에 두고 있다는 위신’이나 ‘작품의 상품적 성격에서 얻는 부차적 향유’가 작품의 사용가치를 밀어내는 것이다.(미학447) “그것은 상품으로서 그의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잃어버릴 것을 끊임없이 걱정한다. 예술에 대한 그릇된 관계는 재산에 대한 불안과 유사하다.”(미학39) 이 문화상품들은 관리되는 세계가 만들어놓은 대중들의 상태에 ‘항거’하지 않고 그 상태를 ‘확인’한다.(미학695) ‘경험적 세부에 대한 노예적 존중’ 역시 ‘이데올로기적 조작’과 결합될 뿐이다.(미학513) 확인이냐 항거냐, 혹은 현실적 문제의 단순한 징후냐 아니면 문제를 드러내고 극복의 가능성을 넓히려는 적극적 투쟁이냐 하는 척도는 문화상품을 비롯한 제반 이데올로기의 산물들을 평가하는 한 가지 기준이 될 만하다.
3. 5.문화산업과 떼어놓기 어려운 통속성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도 흥미롭다. 그는 통속성을 굴욕과 관련짓는다. 즉 예술에 나타나는 통속성은 사회적으로 볼 때 ‘객관적으로 재생산되는 굴욕과의 주관적 동일시’라는 것이다. 그는 저급 예술이나 오락의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것들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억압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타내 줄 뿐’이라고 본다. 그리고 (바람직한) 예술은 “굴욕당하는 형태의 대중에게 순응하는 대신 가능한 상태로서 대중을 대함으로써 대중을 존중한다”고 주장한다.(미학541) 이런 대중존중 방식은 대중들의 현재 욕구에 대한 불신, 현상태의 확인이 아닌 항거에 대한 강조와 함께 아도르노의 비판정신을 드러내 준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생각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전제하는 ‘통속작가’와 반대로, 그럴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보아 독자들을 근본적 인식으로 이끄는 ‘대중작가’에 대한 레닌의 전위주의적 문제의식과도 본질적인 면에서 겹쳐진다.그것을 운동주체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옹호 선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생산은 주체를 위한 대상뿐만 아니라 대상을 위한 주체도 생산한다”는 맑스의 테제도 함께 주체론으로서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3. 6. 관리되는 세계를 공고히 하는 데에는 수단의 합리성에 매몰되는 ‘도구적 이성’ 내지 개념과 대상을 동일시하는 ‘동일성사유’도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도구적 이성과 ‘객관적 이성’의 구분은 이성이 초래하는 야만성을 이성으로 극복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동일성사유에 대한 비판은 아도르노 철학의 주요 관심사다. 그는 사유의 전개를 위해 추상과 개념이 불가피함을 인정하지만, 대상의 무궁무진한 속성과 역동성을 도외시하고 대상을 특정한 개념적 의미로만 파악하는 사유방식의 폭력과 허위를 반성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이때 그는 반성의 수단도 개념임을 인정하며, 그래서 “철학은 개념을 통해 개념을 넘어서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부정70) 동일성사유의 극단적 형태로 아도르노는 위상학적 사유 내지 행정적 사유를 지적한다. 위상학적 사유는 대상이 ‘어디에 속하는지’만 알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 하지 않는 사유다. 이러한 사유는 ‘객체 경험과 차단된 편집광적 체계와 암암리에 친밀’하며, 세계를 흑과 백으로 나누고 ‘지배관계에 맞춰 정리’한다. 행정적 사유는 예컨대 어떤 행정적 결정을 위해 예 또는 아니오를 강요하는 사유방식인데, 아도르노는 그러한 양자택일을 타율적이라고 거부한다.(부정89)
3. 7. 아도르노는 동일성사유에 맞서 비동일자를 중요시하는 변증법적 사유방식을 제시한다. 그는 객체에 다가갈 자유, 개념의 운동, 모순들의 추진력, 내재비판과 사유의 유동성, 분석과 종합의 통일, 부정의 부정,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승 등 변증법의 핵심 요소들을 헤겔, 맑스, 엥겔스, 레닌 등 주요 변증법적 사상가들과 공유한다. 하지만 그는 헤겔의 관념변증법이 절대지로 완결되는 닫힌 체계를 이룬다는 점을 비판하며, 역동적 대상의 무궁무진한 속성과 관계들을 전제하고 이에 어떠한 제약도 없이 다가가고자 하는 열린 변증법, 즉 유물변증법을 옹호한다. 비동일자에 대한 강조는 대상에 다가가려는 이 과정에서 비판과 반성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아도르노는 자본독재 하의 관리되는 세계만 아니라 현실사회주의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안사회의 전망을 구체화하기보다 ‘비동일자가 해방되고’, ‘정신화된 강압’이 사라지며, ‘다양한 것들의 다원성’이 열리는 화해된 사회를 추상적으로 추구한다.(부정60) 그 구체적 실현방안의 빈곤으로 인해 아도르노는 풍부한 비판의 무기들을 제공하면서도 근본적 변혁운동과 떨어져 ‘지옥 앞의 그랜드호텔’ 입주자대표 자리를 굳힌다.
3. 8. 피지배자들의 자발적 동의를 통한 지배, 즉 헤게모니의 확보와 행사는 영리한 지배자들의 포기하기 어려운 희망사항이다. “대중들을 자신이 몰아가는 대로 만들어놓고도 이를 대중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이는 지배자들의 생각에 딱 맞는 일”인 것이다.(미학541) 헤게모니를 위해서는 지배자들의 도덕적 지적 우월성만 아니라 그들을 멋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미감의 조작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들이 기대하는 생활수단의 분배가 가능해야 한다. ‘황금기’ 서독은 그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아도르노의 이론은 폴록의 국가자본주의론이 상정하는 것처럼 국가권력이 다양한 통제장치로 경제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특히 피지배대중들에 대한 통제방식들을 비판하고 통제 과정에서 축적되는 파국의 위협을 감지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위기의 본질은 아도르노가 회피하는 서독 경제의 제국주의적 성격, 즉 발달한 생산력을 통해 얻은 막대한 무역흑자, 자본 수출, 노동자계급 상층부의 매수와 노동운동의 변혁적 성격 소멸 등에서 찾았으면 더 명확해졌을 듯하다. 아도르노가 ‘관리되는 세계’로 일반화한 당대의 지배 상황은 자본헤게모니가 극단에 도달했던 하나의 역사적 국면인 것이다.
4.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에서 노동자 민주국가로
4. 1. 1960년대 황금기 이후에도 독일 경제는 앞선 생산력을 바탕으로 상당 수준의 복지를 보장하고 경제위기를 시장 논리로 해결해갔다. 소련 붕괴는 아도르노의 양비론에 힘을 얹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러우전쟁의 여파와 중국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한 국제경쟁력 약화, 곧 제국주의적 초과이윤 획득의 축소는 복지천국 독일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극우의 발호와 복지축소는 시작이며, 사활을 건 제국주의적 팽창욕구가 그동안의 선진성을 급속히 잠식해가고 있다. 관리되는 세계 개념에는 이런 위험에 대한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실명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대안사회를 향해 첫걸음을 떼는 데에 효과적일 것이다. 관리되는 세계는 제국주의 단계 독점자본세력이 경제권력을 바탕으로 정치권력 및 문화권력까지 독점하고 있는 강력한 지배체제, 한 마디로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체제였다. 한국사회도 그 지배적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이 지배관계를 만들어낸 주도적 힘은 독점자본권력이지만, 그것의 유지에는 피지배 노동자민중의 자발적 동의가 필수적이다. 체계적인 매수효과를 통한 피지배 대중의 자발적 동의 및 통제를 위한 물적 조건은 거대 독점자본의 생산력 증대와 제국주의적 초과이윤의 산물이다.
4. 2. 자본독재를 유지하는 데에는 파시즘보다 민주공화제가 더 효과적인 정치체제다. 절차상 법률에 따라 대중의 선출을 통해 국가권력을 차지한 정치세력이 본질적으로 독점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희귀한 현상이 아니다. 대중들의 의식과 욕구가 자본권력에 의해 주도되는 문화산업과 제도교육, 경제적 유인책 등에 압도되는 한, 자본권력에 실제로 맞서는 정치세력은 존립하기조차 쉽지 않다.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 노동자정치, 노동자국가 등의 개념을 스스로 금기시하고, 미래 노동자들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노동 개념을 지워온 한국의 현실이야말로 자본독재의 전형적 결과이자 원인이다. 절대다수 국민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생존할 수 있는 노동자들인데, 국가기구 어디서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할 정치세력의 존재감이나 효능감을 찾기 어려울 때, 국가권력이 독점자본권력과 한몸으로 움직일 때, 노동자민중이 그러한 지배관계에 별다른 의문 없이 기꺼이 동조할 때, 마침내 자본독재는 완성태를 향해 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재가 가시적 폭력에 더 의지하느냐(파쇼분파), 아니면 대중들의 자발적 동의에 더 의지하느냐(헤게모니분파) 하는 문제는 지배의 본질에 비하면 효율성과 관련한 부차적인 문제다.
4. 3. 공식적 식민지가 사라진 후에는 제국주의도 역사책 속으로 퇴장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레닌에 따르면 식민지와 제국이라는 주요 집단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금융적⋅외교적 그물에 갇혀 있는 다양한 형태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의 전형”이다. 미국에 대한 의존관계를 근거로 한국사회의 성격을 (신)식민지라고 규정하고 민족해방을 변혁운동의 주요 과제로 삼아온 것은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러나 자본집중과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을 통해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 군사력은 5위권에 도달했다. 이 성장과정에서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낮은 지대나 저임금 노동력 활용도 결정적 요인이 되어 왔다. 이 점을 직시하면 한국 경제성장에서 제국주의적 초과이윤이 차지하는 비중, 이를 통한 노동자계급 상층부 특히 이데올로그들에 대한 매수효과, 그에 따른 자본독재체제 강화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관리되는 세계 개념의 비판적 핵심을 활용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실천적 과제설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대미 종속관계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의 제국주의적 자본독재 극복을 함께 추진하는 복합과제를 해방운동의 주요과제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4. 4.제국주의적 자본독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인류가 파국의 위협과 부조리한 궁핍의 야만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인류 전체의 생산력은 이미 노동 가능한 인구 전체의 2~3시간 노동일만으로도 모두가 충분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아도르노 역시 지금 당장 지구를 낙원으로 바꿀 만큼의 생산력이 현존하며 문제는 생산관계라고 보았다.(미학84) 맑스는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해방운동의 목적 영역에 포함시켰다. 이 풍요로움의 의미를 자본독재체제가 부의 편중과 넘치는 상품들을 통해 우리 몸에 새겨넣은 욕구를 기준으로 편협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 풍요로움의 주요 척도는 기본적 문화생활의 물적 조건을 갖춘 가운데, 절대다수 노동자민중을 궁핍과 불행으로 내몰아온 사회적 관계들을 얼마나 극복하고, 필요노동시간을 최소화하며 자유시간을 얼마나 확대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생산력 발전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본질은 노예노동을 통한 자본증식이 아니라, “연합한 생산자들이 자기들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최소의 노력으로 인간성에 가장 알맞고 적합한 조건 아래” 그 물질대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4. 5. 사적 소유에 기초한 자본독재체제 속에서 생산의 양적 증가는 노동자민중의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극단적 양극화의 참상과 과잉생산 및 과잉욕구의 늪으로 연결되는 것이 필연이다. 서열의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 어느 위치에 있든 불만과 불안을 인간의 조건으로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다. 평등은 풍요로운 삶의 전제조건이다. 자본독재의 극복은 평등사회를 위한 정치체제 건설과정이기도 하다. 평등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어긋난다, 평등사회는 실현될 수 없는 몽상이다, 현실사회주의체제의 역사적 몰락을 보라는 등의 선동은, 자본독재가 노동자민중의 의식적 단결과 해방운동의 성장을 막겠다고 반사적으로 취하는 전형적 편집반응이다. 현실사회주의체제가 제국주의세력에 맞선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패배했다고 해서, 인류를 궁핍과 야만과 절멸로 내몰고 있는 근본 원인, 즉 제국주의적 자본독재를 끝없이 절대자로 떠받들 수는 없다. 대안체제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이성적 존재들의 포기할 수 없는 권리이자 의무다. 이 대안체제의 정치적 본질은 아무도 사회구성원들 위에 군림하며 멋대로 지배할 수 없는 사회, 지배관계의 불가역적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평등사회가 될 것이다.
4. 6. 평등사회가 인간의 다양성과 차이를 말살한다는 주장은 모든 것을 자본증식을 위해 교환가치의 원칙 아래 획일화하는 자본독재의 적반하장이다. 평등사회는 사회적 생산의 계획⋅실행⋅결과처리에 대한 의사결정에 당사자들 모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생산방식을 토대로 한다. 또 고도의 생산력을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공간을 유례없이 확장한다. 이로써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생산하는 활동, 특히 예술과 철학의 비중이 획기적으로 커질 것이다. 교육의 본분도 변화한 사회적 요구에 따라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체제 재생산을 위한 기능인 양성을 넘어, 타인과의 지혜로운 공존공영 방식들, 역사 속에 누적된 억압의 잔재들과 인간의 존엄을 위한 투쟁전통들, 자연과의 좀더 평화로운 관계 형성 등등과 관련한 과학적 인식과 정치적 판단력을 기르는 일이 그 주업무가 될 것이다. ‘축적된 고통에 대한 기억’을 담은 ‘역사 기술로서의 예술’(미학586)에 대한 미메시스적 반응도 모두의 기본소양이 될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다양성을 의미 생산의 에너지로 활용하는 인간관계 형성이 일상화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철학자⋅예술가⋅정치가⋅경제주체로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4. 7.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에 대한 비판의식이 해방운동의 출발근거로서 의미 있는 것 못지않게, 풍요로운 평등사회라는 장기적 목적의식 또한 운동의 방향설정과 긍정적 동력 생산을 위해 불가피하다. 하지만 출발점과 목적지를 연결할 현실적 경로가 없으면 양 극단은 실천적 의미를 얻기 어렵다. 이 연결 경로도 본질적으로 미래를 향한 운동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으므로 관념론이니 목적론이니 하는 의심과 비방을 초래하기 쉽다. 그러나 실현 가능한 정책 및 그 해방적 의의에 대한 이론 차원에서 대안사회의 모습을 구체화하여 대중적으로 검증받고 널리 공유하지 않고는 대중들의 적극적 동참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해방적 잠재력, 해방운동의 전통들, 기존의 반-자본독재 모델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바탕으로 대안모델을 종합해내는 열린 작업이 해방적 실천이론의 주업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두 개인⋅연구소⋅정파의 역량을 넘어서는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공동작업이 가능하려면 다수가 최대한 동의할 만한 원론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론 차원에서 자본독재 너머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일차 관문, 즉 노동자 민주주의국가의 건설을 공동의 당면과제로 설정할 수 있을 듯하다.
4. 8. 여기서 민주주의는 자본독재를 포장하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민중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뜻한다. 사회의 주인이라는 말이 공문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 역할을 떠맡아야 할 것이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공허한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 실체로 등장한 바 있다. 파리코뮌은 노동자 민주주의의 본보기로 빛을 발했다. 그 정치적 요체는 사회의 심부름꾼이 주인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한 데에 있다. 보통선거와 소환제, 공직자들의 특권 배제 및 노동자들과 동등한 보수 지급, 위계구조 배제, 코뮌 관련 모든 정보 공개, 무장한 인민으로 상비군 대체 등등이 당대에 가능했던 조치들이다. 파리코뮌은 아도르노가 추구하는 탈권위주의적 평등사회와도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을 것이다. 두달이라는 짧은 존속기간으로 인해 코뮌의 생존능력은 충분히 검증될 수 없었지만, 그만큼 현실적 타협으로 왜곡되지 않은 모델적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맑스는 파리코뮌을 착취 종식을 위한 궁극적으로 발견된 정부형태라고 평가했다. 적어도 지배관계의 궁극적 소멸로 가는 출발 모델은 될 수 있을 것이다.
4. 9. 관리되는 세계 개념은 노동자민중의 주관적 의식상태를 주요 근거로 삼는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생산수단의 소유로 인한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모순이라는 객관적 조건에 근거해 노동자민중의 해방적 잠재력 혹은 폭발력을 활성화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다. 관리되는 세계 개념을 뒷받침한 국가자본주의론은 국가권력 자체를 악마화하는 데에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계급지배적 본질을 바꾸는 문제를 회피할 경우, 자본독재체제의 부분적 개선을 통해 그 지속가능성과 유연성을 높여주는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부분적 개선도 무의미하지는 않다. 또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파괴하는 자본독재의 파쇼분파보다는 자발적 동의를 얻고자 복지를 활용하는 헤게모니분파가 노동자민중의 삶에 조금은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체제가 축적위기 타개를 위해 결정적인 순간마다 불가피하게 자행하는 복지회수, 양극화, 환경재앙, 제국주의 전쟁 등 범지구적 파국의 위협을 극복하려면 자본증식의 원리를 생명중심 공존⋅공영의 물질대사 원리로 대체할 대안체제의 건설이 불가피하다. 그 기본조건은 국가권력의 계급지배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실질적 민주국가인 노동자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5. 인류사적 해방전쟁
5. 1. 오늘날 절대다수 노동자민중의 사유방식⋅감각⋅욕구와 관련해서는 아도르노와 레닌의 비판이 뼈아프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자본독재의 분열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고 서열구조의 덫에 걸린 채, 자본독재 너머의 노동자 민주주의나 풍요로운 평등사회에 대해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의 주요 매수 대상인 지식노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근거로 노동자정치, 노동자민주주의, 노동자국가의 불가능성을 앞장서 선전하기도 한다. 해방운동의 어려움을 불가능성으로, 심지어 불필요성으로 바꿔놓는 적극적 패배주의,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의의를 애써 지우는 청산주의,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모순을 흐리고 전략적 사유를 비웃는 반-노동중심주의적 다원주의 등이 선전의 골자다. 아도르노의 비타협적 현실비판은 이러한 태도들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다. 자본독재가 인류사의 결론이 될 수 없듯이, 반-노동중심주의적 사유방식들이 해방운동에 대한 최종 심판관은 아니다. 그저 자본독재 유지에 쓰이는 고효율 무기들일뿐이다. 모순 극복의 장기전망 속에서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내는 일은 인류사적 해방운동의 신경중추 중 핵심부를 이룬다.
5. 2. 자본독재 극복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한다고 해서 곧장 운동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식이 운동에 따른 개인적 손해와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강력한 욕구로 이어져야 하며, 이 욕구가 어떤 형태로든 지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자본독재는 노동자민중의 해방적 각성과 단결을 방해하는 천태만상의 왜곡된 정보들과 심오한 거짓말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온갖 방법으로 쏟아낸다. 무엇보다 가성비로 무장된 상품들 자체를 통해 해방적 인식과 욕구에 자본절대주의의 바이러스를 심어 놓으며, 개인과 현실이 일차로 마주치는 감각 영역에서부터 자본의 명령을 거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떤 대상들을 멋있다 혹은 추하다고 판단하는 미감은 욕구를 결정하고 욕구의 복합상태는 다시 인식의 방향과 범위를 제한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대체로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이 현상의 조건들에 대한 비판적 자각 없이 자본독재로부터의 해방은 요원하다. 미감의 해방 없이 인간해방도 없다. 주체들의 무의식적 감각 방식을 흔들어 미감의 해방을 돕고 자본독재 너머에 대한 욕구를 북돋울 수 있느냐도 예술작품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만하다. 인식⋅감각⋅욕구의 가속적 선순환을 통한 주체들의 변화가 해방운동의 출발동력을 만든다.
5. 3. 자본독재에 맞서는 개인들이 연대⋅단결하여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할 경우, 객관적 위기가 격화되더라도 위기 극복을 위한 이성적 운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기보다, 사회적 약자들을 적으로 낙인 찍어 박해하는 극우 배타주의 내지 파시즘, 혹은 절망적 테러리즘 따위의 야만이 창궐하기 쉽다. 자본헤게모니가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자본독재체제 속에서 대중의 자발성에 순진하게 의지하면 아도르노의 비타협적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가장 진보적인 형태’의 정신을 강조하는 점에서(미학529) 레닌의 전위주의와 친화적이다. 하지만 대중의 자발성을 현재 상태로 묶어 두지 않고 ‘가능한 상태’로서 존중하고자 하는 점에서는(미학541) 룩셈부르크와도 결합될 수 있다. 레닌도 대중적 지지 없이 전위만으로 결전을 벌이는 것은 범죄라까지 비판하는 점에서 룩셈부르크의 대중노선과 근본적으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대중과 전위의 바람직한 관계는 전위의 대중화 를 통해 노동자민중이 자발적으로 해방운동에 동참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노동자국가 건설과 풍요로운 평등사회 구현은 제국주의적 자본독재 세력과의 사활을 건 전쟁이며, 변혁주체세력의 대중화는 성공의 전제조건이다.
5. 4. 이 해방전쟁이 장구하고 지난한 과정임은 두말할 것 없다. 해방주체들의 조직적 단결부터가 화기애애한 친목활동이 아니라, 이미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서는 일이다. 단결을 저해하는 요인들이 자본독재의 산물들인 한에서 단결의 확대는 승리하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반대로 분열은 패배의 지표다. 단결은 국내 차원에 머물 수 없다.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세력은 다국적으로 묶여 있으며, 이에 맞서려면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단결, 즉 노동자국제주의의 양적 질적 성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국 노동자들의 단결’은 평등사회를 위한 해방전쟁의 정언명령이자, 이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해방전쟁의 동료전사로서 이주노동자들, 외국인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은 국가주의 극복의 좋은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국제주의보다 국가주의가 더 강력히 작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는 노동자민중 세력의 분열과 제국주의 세력의 강화 혹은 세계대전으로까지 귀결되기도 했다. 이러한 위험을 실천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그 역사적 실패만 아니라 성공 사례들도 참조하고, 현실적 필요성에 근거해 가능성을 넓히고자 노력하는 것도 해방전쟁의 어렵지만 필수적인 과제에 포함된다.
5. 5. 한국은 군사강국이자 전쟁산업의 선두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대규모의 첨단 AI 반도체산업의 핵심 고객들은 군산업체들이다. 전쟁특수 기대와 함께 국제사회의 살상력⋅파괴력 총량을 늘이는 가운데, 경제영토를 넓힌다는 제국주의 원리가 정권의 지지율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진보⋅좌파⋅노동자정치 세력은 아직 노동자민중이 공감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안의 구체화가 절박하게 필요하다. 한동안 다수 노동자민중이 ‘대한제국 만세’를 부르며 노동자 국제주의를 뒤로 미룰 가능성도 크다. 그만큼 해방전쟁은 지난하다. 그러나 자본독재에 맞선 인류사적 해방전쟁의 생명력은 자본독재의 파괴력을 능가한다. 제국주의적 자본독재가 총체적 지배를 영구히 유지하리라고 믿을 필요는 없다. 그 극복이 인류의 공존과 공영의 결정적 조건으로 되었음을, 일상화된 제국주의전쟁, 생산력 증대로 인한 대량실업과 양극화 심화, 가속화되는 환경재앙 등에서 직접 목격한다. 아도르노의 이론이 지닌 실천적 제약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의 비판적 통찰들 가운데에는 현재의 당면과제들을 푸는 데에 효과적인 것들도 적지 않다. 그것에 담긴 독소들을 해독하는 노동을 거치면 해방전쟁에서 꽤 유용한 무기로 쓸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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