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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말씀: 글 속에서는 번거로운 존대법을 쓰지 않으니 양해 바랍니다.
조상을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공(公)>이라는 경칭(→'공호公號')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호로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은 관함(官銜: 관직명)인데 실직(實職)ㆍ증직(贈職)ㆍ허직(虛職) 등이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관직이 지방 수령(守令)인 경우에는 관할 지역명을 공호로 사용하였습니다. 또 시호(諡號)나 봉작(封爵)이 있으면 매우 명예롭게 생각하고 그것을 사용하였습니다. 한편, 시호나 봉작, 또는 관직 유무와 상관 없이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개인의 아호(雅號)를 공호로 쓴 예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대과(大科)나 소과(小科)에 급제 또는 입격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그와 관련된 사실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경우에는 선비나 공부하는 유생이라는 의미를 공호에 담기도 하였습니다.
병술보(1766)의 <반남박씨세파도>에 등장하는 상대(1세~9세) 선조님들의 공호를 보면 위에서 언급한 예들이 거의 모두 발견되고 있습니다. 호장공(1세 응주應珠)ㆍ밀직공(4세 수秀)은 관직에서 유래하였고, 급제공(2세 의宜)ㆍ진사공(3세 윤무允茂)은 과거 관련 신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문정공(5세 상충尙衷)ㆍ평도공(6세 은訔)ㆍ세양공(7세 강薑)은 시호를 사용하였습니다. 경주공(7세 훤萱)ㆍ장단공(8세 숭엽崇燁)ㆍ상주공(9세 임종林宗)ㆍ숙천공(9세 임정林楨)ㆍ남평공(9세 노輅)ㆍ양지공(9세 은垠)ㆍ토산공(9세 한垾)ㆍ파주공(9세 기基)ㆍ성천공(9세 감/함?堿)ㆍ신계공(9세 연堧)ㆍ단양공(9세 계로季老)은 지방 수령을 지낸 지역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금성공(9세 용墉)은 봉호(封號)(군호君號)를 사용한 예가 되겠습니다. 지방 수령인 현감(縣監)을 지낸 사실은 확인되지만 지역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지역명을 쓰지 않고 현감공(6세 여위汝爲)이라고 쓴 예도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개인의 관련 정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는 그냥 학생공(9세 장墻)이라 표기하였습니다. 세보에 휘(諱: 이름)만 전해져 오는 인물은 그냥 공호 없이 휘자만 그대로 쓰기도 하였습니다(예: 영창永昌ㆍ자성自成).
공호는 '1인 1공호'제가 아닙니다. 즉 1인이 복수(複數)의 공호로 호칭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7세 경주공(萱)은 '부윤공'으로 호칭되기도 합니다. 다만 '부윤공'보다는 '경주공'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해 줍니다. '부윤공'이라 하면, 어느 지역의 '부윤'이었는지 알 수 없는 반면, '경주공'은 경주부(慶州府)의 장관인 윤(尹)을 역임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세보에는 '경주공'을 선호하고 있는 듯합니다.
공호에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자호(二字號)' 관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인명(名ㆍ字ㆍ號 포함)이나 지명을 두 글자의 한자로 표기하는 것이 관습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을 따라 공호 역시 두 글자를 사용하는 관례가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는 '첨추(僉樞)', 사헌부 대사헌은 '대헌(大憲)'으로 줄여서 각각 '첨추공', '대헌공'이라 불렀습니다. 지방 수령인 온양 군수를 지내신 분이라면 '온양공' 또는 '군수공' 하는 식으로 줄였습니다. 또 (부원)군에 봉해진 경우, 예컨대 '금성부원군'은 '금성공'으로, '반성부원군'은 '반성공'으로 줄여 표기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 두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즉 공호는 조상을 호칭(또는 지칭)하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살짝 바꾸어 말하면, 공호는 조상의 관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조상을 어떻게 호칭할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승정원 좌부승지를 역임하신 선조를 호칭(지칭)할 때 휘자(이름)로 부를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나>를 기준으로 '9세조'라고 하면 보편성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후손들이 보편적으로 부를 수 있으며, 벼슬한 선조를 드러내고, '이자호(二字號)' 관례도 준수하는 '승지공'으로 호칭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좌의정ㆍ우의정을 구분하지 않고 '의정공'이라 한다든가, 좌찬성ㆍ우찬성을 구분하지 않고 '찬성공'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심지어 증직인 경우에도 그렇게 이자호로 부르는 경우가 흔히 나타납니다. 나아가, 실제 관함은 '부사직(副司直)'이지만 '부(副)'자를 떼고 '사직공'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속이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벼슬한 조상을 드러내면서 이자호 관례를 따른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가령 평도공의 장손 (휘)병문(秉文)을 '사직공'으로 부르면서도 세보의 방주에는 '관수의교위중군부사직(官修義校尉中軍副司直)'이라고 밝혀 놓았으니 애초에 남을 속이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군공(護軍公)'의 경우도 유사한 예가 발견됩니다. '護軍'이 들어간 오위(五衛)의 관직으로는 부호군(종4품)ㆍ호군(정4품)ㆍ대호군(종3품)ㆍ상호군(정3품 당하) 등 4계가 있지만 일괄하여 모두 '호군공'으로 부르는데 이는 이자호 관례에 따른 호칭으로 이해됩니다. 물론, 실제로는 '부호군'이면서 호군공으로 불리는 경우(예: 9세 塤)와 '상호군'이면서 호군공이라 불리는 경우(예: 8세 秉中)가 있는데, 여기서 8세 호군공(과 그 후손들)은 부당(또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관직에서 유래한 공호는 관직 그 자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조상을 품위(!) 있게 부르는 경칭(존칭)일 뿐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역대 세보 편찬에 참여했던 8세 호군공 후손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8세 (휘)병중(秉中)의 후손들께서 "오랜 세월 有傳하는 記事를 외면하고 선대로부터 定하였다 하여 근거도 없이 호군공 할아버지, 또는 호군공파로 거리낌없이 稱하여 선조를 비하함은 후손으로서 도리도 아니며 불경스럽다"고 자책하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전통적 관례에 호응하여 '상호군'을 '호군공'으로 칭하는 것이 선조를 '비하'하는 일이 될 수 없으며 결코 '불경'한 행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상의 공호는 품격을 갖추면서도 이자호 관례를 따라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 지은 경칭(존칭)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호군공을 비롯하여 의정공ㆍ찬성공ㆍ승지공ㆍ 호군공ㆍ사직공 등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족말 근기
추기:
오늘날 대학에서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을 '교수'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교수'는 조교수ㆍ부교수ㆍ(정)교수ㆍ석좌교수(학교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음) 등을 포괄적으로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갑>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어떤 위계에 속하는 교수이든 우리는 그를 '교수'로 호칭합니다. 이때의 '교수'는 위계를 나타내는 <(정)교수>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라는 명칭이 들어간 모든 위계의 교수들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된 용어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뒷날 후손들이 경칭을 쓴다면 '교수공'이라고 하지, 그걸 세밀하게 구분하여 '조교수공'ㆍ'부교수공'ㆍ'정교수공'ㆍ'석좌교수공' 등으로 호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해당 인물의 방주(이력 사항)에는 정확한 위계 명칭을 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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