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그리고 다시 시작
박현주
오늘, 석 달 동안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다고 아주 끝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오늘은 또 다른 시작점인지도 모른다.
석 달 전, 오카리나 2급 지도자 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수료식과 함께 실기 자격 연주를 마쳤다. 그동안의 시간을 생각하니 무사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과정을 밟는 동안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무릎 인대가 파열되어 한 달 동안 외출을 할 수 없었다.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오카리나 수업만큼은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때마다 남편이 나의 다리가 되어 주었다. 데려다주고 기다려주고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일을 묵묵히 해주었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도 없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아픈 시간도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다른 데 마음 쓰지 말고 연습이나 실컷 해보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외출을 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오카리나를 손에 잡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시험 준비에 최선을 다해보자 싶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다리는 아프고, 손주들이 와 있을 때면 마음이 쉴 틈이 없었다. 힘들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견디다 보니 몸에 수포까지 올라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즐거웠다. 아픈 가운데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연습해야 할 곡이 있고 기다리는 수업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번에 함께 공부한 분들은 광주에서 김선생님께 지도를 받아온 분들이었다. 모두 아홉 명, 그중 외부인은 나 혼자였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그것은 내 기우였다. 모두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다리가 불편한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분들의 친절 덕분에 나는 어느새 그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김민전 선생님의 열정이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한 달 동안 우리나라 오카리나계의 거장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이선생님께 배울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가까이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영광이었다.
이선생님은 좋은 연주를 위해서 기본기를 충실히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연주 전에는 충분한 스트레칭을 통해 몸과 손의 긴장을 풀어 주어야 하며, 안정적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올바른 호흡법을 익혀야 한다. 또한 음을 정확하고 또렷하게 표현하기 위한 텅잉 연습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기본기는 한두 번의 연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반복 연습을 통해 익혀야 한다. 결국 좋은 연주는 특별한 기술보다 바른 자세와 호흡, 정확한 텅잉, 그리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이어가는 성실한 연습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좋은 연주는 단순히 곡을 많이 연습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본기를 얼마나 충실하게 익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몸과 손을 풀고 바른 자세와 호흡을 먼저 점검하는 습관을 들여야 겠다. 또한 텅잉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기초 연습을 꾸준히 반복하고, 어려운 곡을 잘 연주하려고 서두르기 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규칙적으로 연습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겠다.
무엇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기본을 지키며 꾸준히 연습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주자가 되어야 겠다.
수료 연주회를 위해서 김선생님은 무대를 아름답게 꾸미고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정성을 쏟았다. 제자들을 위해 애쓰는 그 마음이 무대 곳곳에서 느껴져 참 감사했다. 배현숙 선생님은 소중한 시간을 내어 한 컷 한 컷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 올려주었다. 그 덕분에 우리의 추억이 한층 더 빛날 수 있었다. 또 자칭 '꽃순이'라 부르는 선생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꽃을 전하며 축하해 주셨다. 관객은 많지 않았어도 사랑만큼은 가득 채워진 날이었다.
오늘 우리는 각자 준비한 독주곡을 연주하고, 아홉 명이 함께하는 7중주도 연주했다. 혼자 연주할 때와 달리 서로의 소리를 듣고 기다리고 맞추어야 비로소 하나의 음악이 되었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인연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 소리만 크게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숨을 들으며 함께 가는 것 말이다.
연주가 모두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부족한 점도 있었고, 연습한 만큼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그동안 각자 쏟아부은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조금은 달래진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이번 인연을 여기서 끝내지 말고 팀을 만들어 계속 연습하자고, 언젠가 우리의 연주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찾아가 멋진 음악을 들려주자고 한마음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참 신기하다. 한 달 동안 나를 꼼짝 못 하게 했던 아픈 다리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 오래 오카리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 작은 악기에 매일 숨을 불어넣으며 오늘까지 왔다.
오카리나는 숨을 불어넣어야 비로소 소리를 낸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힘든 순간에도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마음을 불어넣으면, 멈춘 것 같던 삶에서 또 다른 고운 소리가 시작된다.
오늘 나는 석 달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그 마침표 옆에는 벌써 새로운 음표 하나가 놓여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