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은 '거시적 우주의 무심함'과 '미시적 인간 세상의 비극·윤리'가 만나는 지점을 그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출판은 1994년으로 60세 저작》에서 이 관점이 절정에 달합니다.
칼 세이건은 인간이 벌이는 전쟁과 승리, 사악함과 패륜을 우주적 관점에서 "빛나는 점의 한 구석에서 벌어지는 부질없는 소란"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주가 이렇게 무심하다면 인간의 선악이나 연민은 아무 의미가 없는가? 세이건은 오히려 반대로 결론을 내립니다.
칼 세이건에게 인간의 정복욕, 전쟁, 패륜 등은 "우주 속 자신의 미미함을 깨닫지 못한 인간의 오만함과 환상이 만들어낸 잔물결"이었습니다.
그는 우주가 인간의 선악에 무심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야말로, 비로소 인간이 신이나 초월적 권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서로를 어루만지고 다정하게 대해야 할 '미시적 의무'를 얻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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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대한 존재(신이나 우주)가 특정한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전쟁, 패륜, 불행을 "일어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이런 비극을 기획했다면 그 존재는 지극히 악독하고 잔인한 존재일 것입니다.
미시적 세계의 이 모든 비극은 '서로 다른 욕망과 조건들이 부딪히며 생기는 마찰과 충돌의 부산물'입니다.
자연 세계에서 지진이나 태풍이 누군가를 벌하기 위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지각과 기류의 물리적 충돌이듯,
인간 세상의 악과 비극 역시 개개인의 오만, 이기심, 무지,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욕망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정신적·사회적 마찰'입니다.
즉, '누가 무엇을 위해 일으킨 목적극'이 아니라, 자유와 욕망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들이 얽히며 터져 나오는 자연스러운(그러나 처참한) 결과인 것입니다.
우주와 자연 법칙은 '무엇을 위해'라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주는 그저 존재하고 작동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무심한 우주 속에서 "이것은 악이다, 이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은 불의다"라고 분노하고 비판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입니다.
우주는 패륜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패륜에 분노합니다.
결국 '무엇을 위해'라는 답은 우주나 신이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그 비극을 목도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가 됩니다. 악과 고통이 일어나는 연유는, 인간이 그것을 깨부수고 더 나은 질서를 세워가야 하는 '치열한 당위'를 자각하게 만드는 유일한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어차피 지나갈 테니 참아라, 포기해라"라는 무기력한 체념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방귀나 다름없는 허탈한 소리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의 진짜 무게는 '아무리 강대한 악도, 아무리 치명적인 고통도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폭군도, 전쟁도, 패륜을 저지른 자의 권력도 결국 시간이라는 우주의 법칙 앞에서는 반드시 무너지고 지나갑니다.
그렇기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포기의 언어가 아니라, 악의 영원함을 부정하고 현재의 고통을 견뎌내어 마침내 바로잡을 시간을 벌어주는 '소극적 투쟁의 언어'일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이런 비극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참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입자들이 부딪히듯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가 부딪쳐 만든 이 처참한 균열 속에서, 오직 인간만이 연민을 느끼고 분노하며 '더 나은 가치'를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우주는 무심할지라도, 그 안에서 고통받고 분노하는 인간의 마음만큼은 결코 허접하거나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ㅡㅡㅡㅡ2026년 현재ㅡㅡㅡㅡ
칼 세이건이《Pale Blue Dot)》을 출판 1994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60세. 2026년 현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