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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의 문학사
남진원
1978년은 내 문학에 대한 열기가 한창 오를 때이다. 삼척군 황지읍 화전리에 햇수로는 6년을 몸 담고 있던 때였다.
1978년 4월 11일 자로 조규영 선생께서 깨알 같은 글씨로 간곡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보내주셨다.
강운회 선생의 타계로 매우 깊은 슬픔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강운회 선생께서 내 작품을 현대시학에 추천하려 했다고 했다. 물론 조규영 선생께서 강운회 선생께 부탁하셨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까지 생각해 주시는 조규영 선생의 고마움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춘천에서 심우천, 박유석, 함종억 선생들을 만났다고도 하였다. 이 분들 중에 심우천 선생만 지금 생존해 계시고 다른 분들은 모두 별세하셨다. 참으로 무상한 세월임을 또 한 번 느꼈다. 글 끝에는 4행시 한 편을 보내셨다. ‘화전국교’란 말을 넣어 지은 시였다. ‘그리움’에 대한 내용이었다. 얼마나 정감있고 따뜻한 분인지를 알 수 있었다.
화: 화로 앞에 둘러앉아 감자 굽던 동무 마냥
전: 전에도 지금도 생각나는 님의 모습 .
국: 국화꽃 피는 가을 시심으로 그려보며
교: 교문 없는 세월 속에서 호드기만 붑니다.
( 조규영 시백 作 )
나는 1976년 샘터 시조상을 받고 『교육자료』와 『새교실』에서 3회 씩 추천을 완료하여 큰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나는 큰 문인이나 된 듯 행세하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상당히 오만한 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시는 거침 없이 써내려 갔다. 그러니 좋은 작품이 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무슨 최고의 작품을 쓰고 있는 냥 거들먹거린 것 같았다. 참으로 치기(稚氣)어린 모습과 행동이었다.
1978년 4월 30일자로 발행한 글벗문고 『슬기의 샘』(김한룡 선생)이 발간되었다. 103쪽에 [글벗, 글짓기 교실]란에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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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의 실제와 지도
남 진 원
글을 왜 쓰느냐? 글을 왜 짓느냐?
글을 지으면서 또는 남의 글을 읽으면서 어린이 여러분들은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적어도 글짓기에 취미를 가진 아린이들은 꼭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남이 축구 선수가 된다고 하니 나도 덩달아 축구 선수가 된다는 생각은 우습지요.
글이란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쁜 어린이는 글속에서도 나쁜 마음이 나타나고 마음이 착한 어린이는 글 속에서도 착한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쁜 마음을 가진 어린이도 자꾸 글을 쓰다보면 착한 어린이가 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 할까요?
첫째, 거짓없이 써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써야 된다는 말입니다.
둘째, 남의 작품을 흉내내거나 일부분을 베껴 쓰면 안 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도둑질이지만 무릇, 남의 고운 마음을 훔치는 일도 도둑질 중의 으뜸가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 쓰던 못 쓰던 남의 작품을 제것인냥 하거나 베껴써도 안 됩니다.
셋째, 남의 작품을 많이 읽어 봐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린이 여러분들은 글도 잘 쓰고 마음도 착한 어린이들이 꼭 될 것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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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0년대에는 줄곧 글을 쓰면서 아침’에 관한 이미지와 봄에 관한 이미지에 빠져 있었다.
1978년 2월이 되자 봄의 숨결이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마음은 푸른 봄의 출렁이는 숲에 와 있는 듯 하였다. 그 마음을 시로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경향신문에 ‘봄’이란 시를 보냈다. 1978년 2월 25일자 신문에 작품이 발표되었다.
봄
남진원
넘어질 듯 바람소리
가지마다 출렁이면
가득히 귀 연 하늘
참빗 빗는 황금 소리
풀잎은 햇살에 젖고
물소리가 크는 처마
설레는 발걸음이
내닫는 강둑 너머
송사리 송사리들
물줄기를 운전하고
먼 산엔 꽃눈을 엮는
눈이 아린 아지랑이
넋나간 아름다움
진달래로 피어나고
새파란 불바다인냥
한길에선 빛무리들
하늘은 강산을 잡고
귀를 모두 열었다.
( 1978. 2. 25. 경향신문)
1977년 12월이 끝나갈 무렵, 도규 형은 또 서한을 보냈다. 1978년 <기독교교육연합회>에서 하는, 문학 작품 공모를 하라는 것이었다. 도규 형은 이미 1977년에 당선하였다. 주소와 공모 내역을 적어 보내셨다. 나는 그 공모에 무엇을 쓸까? 하고 생각하다가 또 고향 마을을 떠올렸다. 고향 마을을 커다란 함지로 생각하여 그 속에 고향의 미적 모습을 이미지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함지’로 하여 공모하였다. 당선은 삼척에 사는 김진광 선생이 하였고 나는 가작으로 뽑혔다.
시상식에는 몸이 아직 편치 못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표창패가 왔는데 [동시 동요 부문 가작 입선]이라는 표창패였다. 1978년 6월 6일자였다. 대한기독교교육협회 이봉구 총무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상을 받는 것도 최도규 선생님의 덕이었다. 만일 그때 알려주지 않았으면 나는 이 상을 받지 못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나는 1977년부터 각종 지면에서 원고를 청탁받기도 하고 내가 알아서 투고하기도 했다.
<시청각신문>에는 ‘봄’의 또 다른 작품 ‘봄’을 보냈다. 봄에 대한 싱그러움과 즐거움, 희망을 그린 작품이었다. 당시 봄빛으로 가득찬 내 마음의 한 모습을 투영하였던 것이다.
봄
남진원
활짝 핀 잎 사이
바람도 푸러라
새들은 둥지 틀며
노랫소리 부풀고
저 봄창 일렁이는 곳
마구 크는 넝쿨들
흥겹다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흥겹다
따스한 시냇물은
구름 싣고 하늘 싣고
둥둥둥 봄이 달린다
젖은 봄이 달린다
파란 봄 빨간 봄이
솟구치는 마을 마을
꽃 웃음 비단인냥
들판마다 깔아놓고
그 옆에 시냇물 소리
귀를 열고 떠 간다.
( 1978년 2월 20일. 「 시청각교육 신문」 )
* 삼척군 화전국민학교에 근무할 때 류제하 선생에게 시조 창작품을 몇 편 보내드렸다. 샘터시조상을 받은 후에 시조문학 전문지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시조를 쓰시는 데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였다. 그런 연유로 보내드린 작품이었다. 당시 꽤 많은 작품을 보내드렸는데 첨삭을 해주셨다. 그러나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평이어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시조 작품 ‘가을 산조’ 같은 작품도 보냈는데 매우 혹평을 하셨다. 그런데 하나도 가감하지 않은 그 작품이 1980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당선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마다 작품을 보는 눈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후로는 나는 제자들의 글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좋은 점을 발견해 칭찬 위주로 말을 하였다.
어찌 되었든 내가 보낸 작품 중에 ‘겨울 숲’이란 작품을 류제하 선생께서는 1978년 시조문학 여름, 가을호에 발표를 시켜주셨다. 시조문학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여름호를 내지 못하고 합병호를 낸 것이었다.
겨울 숲
남진원
1
바람이 도끼처럼
날을 세워 패는 숲속
앙상한 가지들의
울음소리만 터뜨려놓고
살점도 다 뜯긴 달을
서천으로 몰고 간다.
2
어둠은 빛난 상처
믿음은 굳은 약속
머리도 맞대인 채
마음도 껴안고서
해 하나 안으로 품고
온몸으로 견딘다.
3
하늘의 뜻으로
눈은 내려 쌓인다.
보내고 맞는 이치
저들은 아는지
눈 덮인 겨울 숲에서
하얗게 언 기도 소리.
(시조문학 1978. 여름, 가을 합병호 )
그리고 그 해인 1978년 12월 겨울호엔 『시조문학』에 ‘저녁 산길’이란 작품을 초회 추천 하셨다. 추천위원은 이태극 정완영, 이근배 등 세 분이었다.
[1회 추천 작품]
저녁 산길
남진원
흩어진 소리를 부르며
나그네 길을 가다
저무는 햇살을 거두어
사방에 씨를 뿌린다.
길고 먼 저승을 돌아
너와 나를 붙이고
한 묶음 바람에
우리는 얽힌 숲속
산신도 그늘에 묻혀
길을 잃은 저녁인데
생애를 지신 밟으며
귀를 찾는 숲과 숲.
( 1978년 겨울호 시조문학 초회 추천작)
막연한 이미지들을 형상화하였는데, 지금 보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런 졸작임에도 선뜻 추천을 해 주신 류제하 선생의 높은 인품과 사랑에 늘 고개가 숙여진다. 몸이 아픈 내색도 전혀 하시지 않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단아하고 천년의 비바람에 씻기고 닦인 수석 같은 분이셨다.
1980년 여름호에는 시조문학에 ‘매미소리’라는 작품으로 추천완료가 되었다. 이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도 시조 ‘가을산조’가 당선되었다.
** 1978년 6월 6일
기독교 아동문학 현상 작품 동요 동시 부문 가작 입상
1978년 5월에 도규 형의 전화가 왔다. <기독교교육 현상 문예>가 있으니 응모해 보라는 것이었다. 도규 형은 이미 그 전에 당선하셨다. 나는 숲속의 모습을 ‘함지’ 로 생각하여 동시조를 써서 응모하였다. 가작에 입상하였다. 대한기독교교육협회에서 주는 상이었다.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표창 패>가 우편으로 왔다.
* 1978년 5월에는 「기독교교육 현상문예」에 동시조 ‘함지’가 입상하였다.
함지
남진원
멀리서 멀리서 보면
숲속은 작은 함지
가만히 함지 위에
파란 보자 씌워지고
함지 속 오골오골 끓는
팥죽 같은 새소리 떼
올망졸망 푸른 산도
내려앉은 함지 속
졸졸졸 시냇물도
노래처럼 흘러가고
귀연 채 어여쁜 황새
꽃이 되어 서 있네
오솔길에 쪼르르르
다람쥐도 꺼내놓고
돌담가 흐드러지게
꽂아놓은 찔레꽃
그리운 봄바람 한떼
넝쿨처럼 엉겼네
밤이면 작은 별들
동전 같은 달이 뜨고
단잠 든 아기새들
고요만 깊어갈 때
그윽한 물소리들만
함지 가득 채운다
(기독교 교육 1978년 현생문예 동요 동시 입상 작품)
어릴 때 고향에서 지낼 때의 농촌의 아침이 늘 싱그러운 한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다가왔다.
농촌의 아침
남진원
새벽 장닭 울음 소리가
담장 밖을 타 넘어
온 마을
이집 저집 대문을 두드릴 때면
잠 깬 나무들은
햇살을 받아
청청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래서 더욱 밝은 우리들은
저마다 갓 피어나는 아침햇살
한 다발 햇살을 휘감고
맑은 하늘 따라
가슴을 펴면
문득
고목나무 중지 속에서 들려오는
콩죽 같은 새소리들
소모는 소리가 길게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 1978. 5. 『어린이새농민』 )
대한교원공제회에서 발행하는 회보가 있었다. 그 회보에도 기고하였다. 역시 아침에 관한 시였다.
아 침
남진원
능금알 같은 해
햇덩이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함지 같은 마을엔
터질 듯
쌓여가는
햇살, 햇살
잠시 후
햇살에 섞인 바람이
숲에서 숲으로
타 들어가자
하늘이
끙 끙
내려누르기 시작했다.
( 「공제회보」. 1978. 7. )
‘해’에 대한 비유가 구체화되었다. 이미지를 ‘능금알’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매우 정열적인 마음을 시로 표현한 것 같았다. 내 정열적인 마음을 해로 상징시킨 것 같기도 하다. 새까만 탄광지대에서 살았기에 더욱 환한 밝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밝고 환한 이미지를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어린이 잡지인『소년중앙』6월호에도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그 작품 역시 ‘아침’이었다.
아 침
남진원
곷잎들 오롱조롱
풀어내는 향기를
한바탕 바람 달구지에 싣고
달리는 햇살
바람 결에 바람 결에
촉촉이 물기 어린
풀잎, 풀잎의 음성
도란도란 이야기
아침을 목에 걸고
부신 상쾌함
호르륵 호르륵
날려보낼 때
새들의 하늘 파란 노랫소리
쯔빗 쯔빗 쯔르르르
한밤 내 빛 고운 음표를 수놓는다
( 1978. 『소년중앙』6월호 )
1978년 7월 한국연대아동문학가협회 창립 발기 취지문을 이재철 박사께서 보내셨다.
류제하 선생은 자신이 몸이 아픈 가운데에서도 시조 추천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 주시고 당신 자신 또한 치열한 글쓰기를 하신 강한 분이셨다.
내가 이처럼 잊지 못할 고마운 분들 중에 또 한 분은 조규영 시인이다. 현대시학 전봉건 선생에게도 내 작품을 소개해 주셨고 곧 현대시학에 추천이 되는가 싶었는데 전봉건 선생의 타계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다정한 문우이던 김진광 시인은 서울의 전봉건 시인을 만났다고 했다. 전봉건 시인의 사무실은 낡은 2층 건물이었다고 했다. 나무 계단을 오르내리면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였다. 그런 곳에서 문학을 위해 열정을 바친 전봉건 선생! ‘현대시학’을 편집하던 전봉건 시인이었다.
1978년 『강원문학』6집에는 ‘아가’라는 연작시 형태의 시를 발표하였다. 1977년에 결혼하였고 나는 아들을 얻었다. 집사람이 키우는 아기의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에서 시적 이미지를 얻었다. 아래 작품들은 정리하면서 조금 씩 수정하였다.
아 가
남진원
1.
그리
좋은 일이 있는지 자면서도
싱긋이 웃는다
2.
엄마가 아가 옆에서 잔다
아가가 엄마 옆에서 잔다
아름다운 평화를
깨뜨릴까 봐
난로도 조심스러워
조심조심 탄다
3.
아가를 안고
책을 읽는다
아가도 따라
책을 본다
4.
아기가 잠든 모습을 보니
예쁜 꿈을 꾸는 가 봐
아가를
꼬옥 껴안고
나도 잠이 든다
아가처럼 예쁜 꿈을 꾸기 위해. .
5.
엄마 품에
안겨서
잠자는 아가는
이미 아가가 아니다.
6.
엄마는
아침마다 창을 닦는다
떠오르는 해님을
그대로
아가 방에 채워넣기 위해.
낙하산
남진원
비행기가 똥을 싼다
하늘에서
똥을 싸면서 달린다
엄마만
남진원
엄마만
언제나
아기와 같이 잔다
엄마는 큰 천사
아가는 작은 천사
재수 없는 날
남진원
고추 있는 아가를 데리고
아줌마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고추 없는 우리 아가와
바꾸자고 떼를 썼다
아줌마는 웃기만 했다
재수 없는
날이다.
1978년 6월 29일은 아들의 돌날이었다. 어미가 돌상을 차려주었다. 의젓한 모습이 귀엽웠다. 지금은 50대에 가까운 장년의 나이가 되었구나!
1978년 9월엔 <빨강댕기 산새>의 시인 김구연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다.
** 1978년 12월 1일, 『조약돌』에 동시 『꽃밭』을 발표하였다.
나는 1978년부터 조약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월 25일자 <조약돌> 회보를 보고 알았다. 그때, 엄성기 선생이 김진광 시인에게도 연락하여 같이 활동해 주기를 바랐다.
‘꽃밭’이란 소재는 아주 흔한 시의 소재이다. 진부하기까지 한 소재이다. 그렇지만 ‘꽃’이나 ‘꽃밭’은 오랜 옛날 ‘헌화가’라는 노래가 있었듯이 역사적 의미도 있고 다양한 상징성이 있기에 ‘꽃’을 노래하는 일도 흔히 있어 왔다. 나 역시도 ‘꽃’에 대한 시를 많이 쓰고 있다.
내가 국민 학교에 근무할 당시, 아이들에게 동시 제목을 낼 때에는 ‘꽃밭’, ‘구름’, ‘하늘’ 등의 제목이었다. 꽃을 보면 마음이 즐거워졌다. 꽃은 마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1978년 11월엔 유화자 사백의 편지를 받았다. 정선 사람을 통해 서울 소식도 알 수 있었다.
[꽃 밭]
남진원
1.
빨강
파랑
노랑
웃음이 오순도순 흐른다
2.
나비가
웃으면
꽃이
따라 웃고
꽃이
웃으면
나비가
따라 웃고
3.
나비는
하루 종일
망설이기만 했다는 데
꽃은
‘나비야 - ’
하루 종일 기다렸대요
4.
고개 내민
고개 내민
곱디 고운
얼굴들
이 밝은
얼굴은
미워하던 내 마움도
사랑으로 바꾸어 놓았네
5.
엄마 해바라기
아빠 해바라기
아기 해바라기 …
왼 종일
해 따라
웃으며 섰네
6.
한두 번
바람이 쓰다듬고 가면
티끌도 부끄러워라,
앉으려다가
그냥 간다
7.
가만 가만히
겨울 꽃밭 가까이 가
귀 대어 보면
땅 속에서 소곤소곤
꽃씨들의 소곤거림
들리는 듯 해!
8.
그래 그래
눈 감으면
멀리서도 알지
땅속에서 들려오는
꽃씨들의 소곤거림
빨강 꽃씨는 빨강 꿈
노랑 꽃씨는 노랑 꿈
저마다 소곤대는
고운 꿈자랑
그래 그래
눈 감으면
멀리서도 알지
9.
바람이
매일 같이
꽃밭에 들르는 이유
너, 아니?
그래, 그래
바람도
향기에 취하고 싶기 때문이야.
10.
올해도 꽃씨를 받는다
안개꽃, 기생꽃, 족두리꽃 …
꽃씨를 받노라면
어느새 마음은
내년을 향해 달리고
거기엔
올해 보다 더 눈부신 꽃밭에 서 있는
나를 본다.
** 1978년 『아동문학평론』제10호에도 동시를 발표하였다.
거울 앞에서
남진원
바둑이는 두 귀를 맞대고
정다운데
전등은 엉덩이를 대고
서로 삐져 있다.
목욕탕에서
남진언
아버지 것은
썪었다
나는 내 고추를
한참 들여다 보았다.
종소리가 나자
남진원
신발들이
날악갈 듯
앉아 있다.
청 소
남진원
아침마다
창을 닦는다
찾아오는
해님을
그대로
아가 방에 들여보내기 위해.
1978년은 교직에 근무한지 6년 째이면서 화전 국교에 있은 햇수로는 6년이고 만으로는 5년이었다. 가정환경이 극도로 어려웠다. 아버지는 큰 돈을 가까운 친척에게 떼이고 주저앉으셨다.
어머니는 집안 식구들을 책임져야 했다.
한 여름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주문진에 가서 고기를 받아 이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팔러 다니셨다.
1978년 11월 7일 『소년교육』에 ‘어머니’의 힘든 삶을 시로 발표하였다.
어 머 니
남 진 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이고
고기를 파신다
아기를 업고
등에 맨 아기의 무게 때문에
그래서
더욱 무거운 고기를 파시는 …
어느 때부터인지 나도 몰라
동네
동네 아주머니가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가난한 불빛 아래
어둠처럼
흔들리는 발걸음이
몇 번이고 몇 번이시었던가
기다리는
동구밖
머얼리
땟물을
햇살에 말리는
목마름이여
피곤한 들판을 돌아오시는
내 어머니 함지 속엔
오늘도
먹물 같은 어둠이
눈물처럼 출렁거리고
누구인가?
바람으로 우는
저 소리는.
(『 소년교육 』, 1978. 11. 7.)
이 당시 어머니의 고생은 말로 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어린 날 고향집에서의 어머니는 비록 힘들었지만 행복하셨다.
어머니의 저녁상
남진원
물놀이를 끝내고 돌아오니 산 그림자가 먼저 집에 와 있었다. 삼촌들은 종일 논밭에서 검게 그을리며 고된 일을 하고도 집에 들어오면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늦게까지 일 하시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 부앜에서 저녁을 준비ᄒᆞ셨다. 가장 힘들게 일하시더니 가장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놓으셨다. 저녁상에 둘러앉아 풍성한 마을 소문도 쌈에 싸서 먹었지.
어머니의 따뜻한 집안 살림으로 가족들이 모두 천하장사였다.
( 2024. 3. )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을 모아 보았다.
어머니의 부엌
남진원
어머니는 늘 이른 새벽에 물을 길으셨다
길어오신 물을 솥에 부을 때면
쏴 --
굴참나무 숲에 있던
바람 소리가 났다
곧이어
가마 솥에서는
쇠죽이 끓고
부엌과 마굿간 사이로
따뜻한 평온이 서로 통하였다
모든 게 어머니 온기 덕분이었다.
웃음 박꽃
남진원
엄마 손 잡고
이웃짐 가까이 걸어 갔다.
엄마가 울 너머로
두 손을 모아
큰 소리로 순이 엄마를 불렀다.
마루밑에 있던 봉당개가
반갑다면서
먼저 짖어댔다.
슬그머니 순이 엄마 손에 담긴
인절미 한접시
그때 두 분이 함께 웃던
웃음!
젤 예쁜
웃음 박꽃이었다.
어머니
남진원
책만 펴놓으면
눈꺼풀이 무거웠다
졸음이
올 무렵
‘얘야 〜 !’
잠을 깨우시는
어머니 음성
어머니 손에 들려 있던
꿀물
미소 지으시며
볼을 만져 주시던
어머니 얼굴
내 어둠을 밝히는
따스한 등불이셨다.
( 2024. 2. 25. 이후 2025년 11월 수정 )
어머니의 굴뚝
남진원
한 무더기 곰이 하늘로 오르고 있다
하늘에 올라간 곰들은
다시
생 싸리나무, 밤나무 가지 사이로
발톱을 뿌려댄다
회색빛 눈발
우리 어머니의 굴뚝에서
치솟는 연기는
하늘로 오르는 또 한무더기 곰의 울부짖음이었다.
회색빛 연기
눈이 쌓이고
길이 막히고
새소리가 까마득하게 뜬 겨울 날
어머니의 아궁이는
싸리나무가 연신 불꽃으로 타고
밤나무 가지가 연신 불꽃으로 타고
하늘에 올라건 곰들은
다시
생 싸리나무 사이로
생 밤나무 사이로
내려왔다
회색빛 눈발
잿빛 토끼가 마구 날아다녔다.
2024년5월에는 [어머니 물동이길]이라는 시집도 발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