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문학 활동사와 그 언저리
남진원
▣ 박경종 선생께서 경오년 1990년의 휘호를 보내주셨다.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의 진용선 시인은 1990년대 생활문학의 터전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였다. 그가 펴낸 문확회보는 [느낌과 생각]이었다. 얼마간의 활동을 하였지만 그 내용은 매우 충실하였다.
「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선한 마음을 갖는 순간의 언어가 곧 시이기에 시는 인간의 가장 가장 인간다운 언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들은 점점 더 깊은 아류와 집단을 형성하고 이념을 내세우며 그나마 얼마되지 않는 독자들이 획득한 <시를 읽어보고자 하는 느낌> 마저 혼란시키고 있다.
그러기에 [느낌과 생각]은 시가 그동안 일부에 의해서만 누려왔던 귀족주의를 가부하고 생활 속에 배달되는 통신문학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전달자의 입장이 되고자 한다. (중략) 가능한 대로 문화 소외 지역을 우선적으로 찾아가기 위해 소박한 복장을 하고 나서기로 했다. (중략) 현명한 독자는 따스한 눈길로 지켜보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위의 글은 <느낌과 생각> 창간호 편집 책임을 맡고 있던 배경숙 시인의 글이다. <느낌과 생각>이 지향하는 바를 뚜렷이 내세우고 있다.
창간호에는 함형수 시인과 진용선 시인의 ‘유니폼’, 권혁소 시인의 ‘추천역’ 시가 게재되어 있다.
창간호 [느낌과 생각]에 게재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해바라기의 碑銘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1918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김동리, 김달진, 서정주 등과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열차에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고 전해온다.
함형수는 젊은 나이에 미리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듯하다. 이 작품은 자신의 유언 같은 작품이다. 죽음 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해바라기를 심고 해바라기 사이로 푸른 보리밭을 보여달라고 한다. 푸른 보리밭 사이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가 있으면 날아오르는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하였다.
작품 자체가 희망으로 가득 찬 호소적인 글이어서 현실에서는 매우 불안하고 힘든 생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의 작품에 해바라기가 나온다. 해바라기는 무엇인가? 해를 향해 살아가는 식물이다. 밝은 태양을 바라보며 사는 아름다운 희망의 나날들이 시인에게는 하나의 향수처럼 가슴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해바라기 사이로 부른 보리밭을 보게 해달라는 것 역시 겨울도 이겨내고 힘차게 자라는 보리의 생명력 같은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면 희망적인 생각을 한 데 대해, 칭찬의 말을 하기 이전에 마음이 아픈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느낌과 생각> 제6호에는 [정선 출신 시인들과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신승근, 남진원, 징용선의 시를 실었다.
들판에 서면
남진원
새들이 지저귀는
저 소리는
포름한 연두색이다
땅에선
물컹 솟아나는
흙냄새
나무는
가지마다
분홍 꿈을 꾸고
고개 들면
어디선가
꽃 내음으로 다가오는
봄오는
봄오는 소리
이 작품은 권영세 시백께서 글씨를 써 주셔서 내가 액자에 넣어 표구를 하여 걸어두었다. 벌써 40여년 전의 일이어서 액자가 고려 시대의 물품처럼 낡았다. 그래서 더 졍겨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