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제31회신인작품상 시조 부문 당선
1980. 8.
( 동시인줄 알았는데… )
* 내가 고향의 모교인 문래국교에 와서 2년 차 근무할 때였다. 1980년 5월에 「월간문학사」로부터 당선 전보 통지를 받았다. 그런데 전날 밤에 꿈을 꾸었다.
내가 존경하는 형님인 최도규 시인은 1976년 월간문학 신인상 아동문학 부분 중에서 동시 ‘교실 꽉찬 나비’로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나도 얼마나 기뻤던지 몰랐다. 그곳은 좀체로 뚫기 어려운 문단 등용의 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한국문단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한국문인협회 산하의 기관지였기 때문에 더욱 공신력이 컸던 것이다. 문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한 번 쯤은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 되는 게 작은 꿈이기도 하였다.
나는 솔직히 내 작품이 아직 그런 곳에 당선될 수준은 못 된다고 여겼기에 그간 작품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시조 작품은 어느 유명한 분에게 그 작품을 보내니 작품이 매우 안 좋아서 많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씀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땀 흘려 쓴 작품이기에 마음을 돌려 월간문학 신인상 응모에 보내 놓았던 것이다. 물론 그런 꾸중을 받았던 터라, 당선은 꿈도 꾸지 않고 그냥 보냈던 것이다. 한 번 심사평이라도 들어볼 심산이었다.
1980년 고향인 정선군 임계면 골지리 문래 국민 학교 교사로 오면서 시조와 동시를 월간문학 신인상 공모에 보내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애써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리면 애만 타고 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고향의 모교인 문래국교에 와서 2년 차 근무할 때였다. 1980년 5월에 「월간문학사」로부터 당선 전보 통지를 받았다. 그런데 전날 밤에 꿈을 꾸었다.
내가 가르치는 반 아이인 전순희 어린이가 관사의 방문을 열고 무엇인가를 전해주는 꿈이었다.
나는 꿈을 꾼 날 낮에 점심을 먹으러 관사에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보니, 우리 반 귀염둥이 순희가 환한 얼굴로 “선생님!”하고 부르며 전보 쪽지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전보였다.
그 당시 나는 월간문학에 동시와 시조 작품을 응모했었다. 나는 시조가 당선된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동시가 당선된 줄 알고 더욱 기뻐했다.
이런 일을 통해 크게 깨달은 점이 있었다.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좋게 본 작품을 다른 사람은 폄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이 폄하한 작품을 다른 사람은 좋게도 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이번 공모를 통해서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뜻대로 마음을 가다듬어 작품을 써서 내놓는다. 다른 분들이 좋게 말하가나 나쁘게 말하거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일은 다 부질없는 일이란 것을 알았다. 다만 읽은 작품이 내가 공감하고 감동을 주는 작품이면 그냥 좋은 작품으로 마음에 남겨두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 되고 있다.
- 문래 국교 당시 이용석 교장 선생님과 사모님, 홍경란 선생님과 함께 찍은 축하 사진 -
그러고 보니, 정치판은 더 심한 걸 알았다. 한쪽 편의 말과 행동, 또는 한 일은 같은 쪽에서는 무조건 칭찬하고 다른 쪽에서는 무조건 악랄할 정도로 비방하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잡지 못한 사람이나 서로 상대를 비난하는 짓거리를 지금도 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역겹다.
그건 그렇고,
최도규 형도 1976년에 월간문학에 동시 <교실 꽉 찬 나비>로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월간문학』에 동시가 당선되었다고 도규 형에게 자랑을 했던 것이다. 도규 형은 한편 놀라면서도 크게 칭찬을 하셨다.
나는 나중에 [월간문학 8월호] 책이 온 걸 보고 놀랐다. 눈을 씻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당선작이 동시가 아니라 시조였던 것이다. 시조는 샘터에 투고 한 것이 처음이었고 월간문학에는 두 번 째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작품들이 당선되었던 것. 남들은 평생을 해도 안 되는 일이 내게는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였다.
그해 여름!
당선 기념 축하도 받을 겸, 도규 형과 김진광 마석규 선생을 이곳 골지천 강변에 모셨다.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여 川獵을 하였다. 그때 잡은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 맛과 소주 맛은 최고였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그렇게 음식 솜씨가 있는 줄을 몰랐다.
[수상 작품]
가을 산조
1.가을밤
마당엔 산이 누워 깊숙이 생각이 크고
뉘집 창 불빛 사위듯 저물어가는 풀벌레 울음
이 세상 인연과는 먼 곳으로 자꾸 떠나는 저 삶은 ...
2.귀뚜리
별들이 잎새 위에 스러져 잠이 든 밤
달빛은 가만가만 고독을 덮고 엎드려
마을 끝 댓돌 밑까지 귀뚜리 소리를 파내더니
그 울음 잠에 고인 목소리를 끌어내어
동구밖 여기저기 씨뿌리듯 뿌려놓고
저만치 멀찍이 떨어져 희죽이 웃는 뜻은...
뛰르뛰를 뛰르르르 뒤뜨르 뒤뜰뒤뜰
달빛이 서러워서 삶이 너무 서러워서
가을 밤 하얗게 열고 낭자히 구르는 독경소리
3.밤의 숲
어둠 갈피갈피 고요를 접어넣고
잎새들 설핏한 머리칼 잘라먹는 바람 한떼
짓푸른 피냄새 맡으며 바람 뒤에 내가 섰다.
갈기갈기 펄렁이는 개구리 울음처럼
목 말라 목이 말라 갈증을 펄렁이는 풀벌레
갈색 잠 연한 개울가에서 물소리를 씹는다.
별들이 산에 안겨 무성하게 자라는 밤
하늘은 달을 떼다 산마루에 걸어놓고
외로움 짙은 눈빛을 풀어 잠든 산을 태운다.
한국문인협회가 연말에 시상식과 축하연을 하였다. 나는 수상식에 참여하였으나 심사위원이셨던 이상범 선생은 만나지 못했다. 내가 너무 늦게 갔다. 서울행은 낯설어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강릉에 내려가서 구영주 시인을 우연히 처음으로 만났다. 구영주 시인은 이미 월간문학에 시로 당선한 선배 시인이었다.
구영주 시인이 내게 귓속말로 말하였다. “이번 심사에서 얼굴 모르고 뽑은 사람은 남선생 혼자뿐이래.”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중에야 이해를 했다.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