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악보찬송가는 1894년간 <찬양가>이다. 한국 개신교 첫 상주 선교사였던 언더우드(H. G. Underwood)가 편집하여 그의 형의 재정적 지원으로 일본에서 인쇄하였다. 1894년간 <찬양가>는 한국 교회를 위한 최초의 악보찬송가로 한국 교회음악사 뿐만 아니라 한국의 서양 음악 보급에 기초를 놓은 역사적 위치를 차지한다. 장로교의 <찬셩시> 악보판이 1905년에 출간되었고, 장,감 연합 <찬숑가> 악보판이 1909년에 나왔으며, 감리교의 <찬미가>는 악보판을 내지 못한 것을 볼 때 선교초기에 단독으로 제대로 규모를 갖춘 악보찬송가를 한국교회에 선사했다는 것을 놀랄만한 일이다.
<찬양가>의 출판년도는 그 표지에 “구세쥬강생일천팔백구십사, 예수셩교회당간”이라 되어 있고 뒷표지에도 “Print by The Yokohama Seishi Bunsha, Yokohama, Japen. 1894”라고 밝히고 있다.
<찬양가>(1894년)에는 번역자의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영문 서문에 감리교의 <찬미가>(1892년)가 나온 후에 더 큰 찬송가를 만들기 위해 감리교의 G. H. Jones 목사와 장로교의 S. A. Moffett 목사의 책임 하에 당시에 양 교파에서 번역하여 사용하던 50편을 모았는데 그 중에 반 정도가 언더우드가 번역한 찬송이라 하였다. 그 후에 언더우드가의 편집하에 더 많은 찬송가가 첨부되어 한국인 창작찬송가 9편을 제하고 108편이 번역찬송가로 <찬양가>에 수록되었다. 번역 찬송가 108편 중 75편이 영국 찬송으로 I. Watts와 C. Wesley 등 18세기 영국의 복음적 찬송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찬양가>에는 원작자의 이름이 수록되지 않고 영어 가사 첫줄만 나타나 있다.
<찬양가>에는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여호와”나 “아바지”로 바꾼 흔적이 있다. <찬양가> 10장 “여호와이 텬디내고” 115장 “여호와이 텬디만물 만드신 줄 나는 믿네” “여호와” 다음에는 “이”가 아니라 “가”가 와야 하는데 “하나님”을 “여호와”로 급히 바꾼 흔적이 여러군데 나타나 있다. 신의 호칭 문제는 선교사들간에 다른 의견이 있었는데 언더우드는 문제가 되는 “하나님” 호칭을 의도적으로 빼고 문제가 없는 “여호와”나 “아바지”로 바꾸었으나,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좋아하는 선교사들이 언더우드가 마음대로 바꾼 것에 불쾌하여 <찬양가>의 사용을 거부한 이유가 되었다. “여호와” 외에 <찬양가> 9장에는 “샹뎨”, 20장과 77장에는 “하늘의 아바지”, 1장에는 “샹쥬”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으나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하나도 찾을 수 없다.
1894년간 <찬양가>는 한국 최초의 악보찬송가로 서양음악 유입의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