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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행
홍 영 숙(가정학과72학번)
수술하면 괜찮을 거요. 진찰을 마친 젊은 의사는 자신 있게 말했다. 원장은 출장 중이었다.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수술이라니,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의사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바지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할 때면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는 버릇이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딱딱한 물체가 손에 잡혔다. 마스코트 삼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모형비행기였다. 바지주머니 속에서 모형비행기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수술을 하더라도 사진은 찍어봐야죠. 그는 서슬이 퍼래서 수술을 단언하는 의사에게 조심스럽게 동의를 구했다. 말을 하면서도 자신만만해 하는 의사 앞에서 상대적으로 고분고분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삼일 전부터 시큰거리던 왼쪽무릎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져서 가까운 개인외과를 찾아온 길이었다. 평소대로라면 대학병원을 갔겠지만 근무시간에 쫓기다 보니 시간도 여의치 않고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그는 처음 무릎이 시큰거렸을 때 어디에 부딪혔거나 운동을 하다가 잘못 디뎠나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나면 덜할 줄 알았던 무릎의 통증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서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찍어보나 마나예요. 의사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염증 같은 것은 사진에 나타나지도 않아요. 마지못한 듯 사진 찍을 준비를 하면서 의사는 또 말을 덧붙였다. 그를 시트위에 옆으로 눕게 한 뒤 왼쪽다리가 위로 올라오게 한 장을 찍고 바로 앉게 한 다음 위에서 다리를 내려다보며 한 장을 더 찍었다. 의사는 사진도 현상하기 전에 바로 이튿날로 수술날짜를 잡았다. 이상한 일은 그가 다른 의사에게 더 보이지 않고 별 의심 없이 수술을 한 것이었다. 그는 집에서 똑같은 반찬이 연거푸 두 번만 올라와도 젓가락을 대지 않을 정도로 까다로운 편이었다. 수술은 했지만 다리는 한 달이 지나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아지기는커녕 걸음을 걷기 위해 왼쪽다리를 내디디면 장딴지가 당겨서 다리가 펴지지 않고 점점 더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났다. 나중에야 젊은 의사가 그 병원에 온지 며칠 안 되는 군의관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대에서 사병 다루듯 한 젊은 의사의 말만 믿고 수술한 것을 후회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아픈 다리를 끌고 대학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신청했다. 결과는 염증이 아니고 뼈에 금이 간 것으로 나왔다. 그 정도면 깁스만 하고 있어도 낫는다는 말도 했다. 명백한 의료 사고였다. 의사들끼리 나누는 말을 종합하면 수술하는 과정에서 신경을 건드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심증만 있을 뿐 증거가 없었다. 동료를 궁지로 몰면서까지 그를 도와주는 의사도 없었다.
결국 그는 불구자가 되었다. 거울 속에는 어깨가 실한 스물일곱 살의 젊은이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다. 몸이 불구가 된 후, 그는 너무 억울해서 밥도 먹기 싫고 잠도 오지 않았다. 일생 중 가장 푸르고 빛나는 시절에 불구자로 살아야 하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다시는 뛸 수 없는 자신의 앞날이 암담해서 하늘에 칼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집안의 장손으로 무슨 시험이든 한 번에 합격해 어른들의 기대를 모았으며 집에서 다니느라 지방의 국립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장학금도 받았다. 주변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한 일도 기억에 없었다. 남보다 일찍 회사원이 된 것은 나이 많은 부모의 외아들인 덕에 군 복무를 면제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입사시험을 쉽게 통과해서 회사를 다니고 윗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병원 가는 시간도 줄였던 지난날이 한바탕 꿈을 꾼 듯 허망했다. 운명의 장난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너무 어이없고 분했다.
집안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신부의 팔자가 세다 보니 결혼한 지 반년밖에 안된 새신랑이 불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불구가 된 것도 기가 막히지만 대가 끊길까봐 더 걱정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고개도 들지 못하는 며느리를 데리고 관상을 보러갔다. 너희가 아무리 그래도 우리 며느리는 박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은 오기도 있었다고 아버지는 훗날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날 아버지는 흡족한 얼굴로 돌아왔다. 나중에 아들 딸 낳고 잘 살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점점 힘을 잃어가는 왼쪽 다리를 밤마다 쓸어보며 그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꿈에 시달렸다. 절뚝거리는 자신의 몰골이 보기 싫어서 거울을 향해 몇 번 재떨이를 던진 이후로 그의 방에서 거울은 자취를 감추었다. 깰 것을 염려한 아내가 다시 거울을 사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그 지경으로 만든 의사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그런다고 굳은 다리가 정상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씩 성질을 부릴 때마다 아내가 남몰래 우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아내는 아버지가 중매로 선택한 며느리였다. 그는 좋아하던 여인이 있었다. 대학 때 동아리에서 만난 연옥은 홀어머니의 외동딸이었다. 아버지는 집안이 번족하지 않음을 문제 삼아 연옥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궁합도 나쁘다고 했다. 아내는 모든 면에서 어른들의 조건에 맞는 규수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정혼을 하라는 통고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어른들 몰래 처갓집 동네를 찾아갔다. 영 아니다 싶으면 목숨 걸고 투쟁할 각오를 했는데 먼발치에서 본 인상이 상상했던 것보다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불구가 되고 보니 좋아하던 연옥과 헤어진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아내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구자 남편으로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아내는 그만 없으면 홀가분하게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내를 친정에 보내고 몰래 사 모았던 신경안정제를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그는 어떤 집 앞에 서 있었다. 그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나타나더니 그를 가로막았다. 자세히 보니 이 년 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장손인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를 사랑했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를 부르며 가까이 다가갔다. 할머니는 그가 가까이 갈수록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쫓았다. 그는 너무 서러워서 눈물만 흘리다가 눈을 떴다. 순간 아버지의 침통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눈가에도 물기가 남아 있었다. 밤낮으로 그를 주시하던 아버지가 한밤중에 신음하는 그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는 얼른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뜨기가 세상을 만나기가 두려웠다. 그 이후로 그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퇴원 후, 아버지는 할머니가 생전에 다녔던 절로 그를 보냈다. 말이 요양이지 하루 종일 산이나 쳐다보는 생활이 무료하고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스님이 공부하라고 갖다 놓은 불경책은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분노뿐이었다. 스님이 잠들기를 기다려 소나무에 새끼줄을 걸었다. 스님이 잠시도 틈을 주지 않아 짚은 구할 수 없고 풀줄기를 뜯어 만든 새끼줄이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돌멩이를 디디고 올라서서 새끼줄을 목에 건 뒤, 성한 한쪽 발로 돌멩이를 차 버리려는 찰나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면서 나뒹굴고 말았다.
그는 고향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고향 사람들을 떠나 낯선 사람들 틈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불구가 되기 전, 그는 농산물수출회사에서 이년 반을 일했다. 이년 반 동안 그는 할머니를 잃었을 때를 빼고 한 번도 결근을 하지 않았다. 사장은 그의 성실성을 신임했다. 그의 소원은 무역회사의 오너가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나중에 세계를 넘나드는 무역상이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는 영어회화학원도 등록을 해 놓은 상태였다. 취미도 소원에 맞게 바꾸었다. 원래 모형자동차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지만 세계를 날아다닐 것에 대비해서모형비행기로 바꿨다.
취직은 의외로 쉽게 되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대학동창이 아는 건설회사 사장에게 그를 소개했는데 채용하겠다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복사꽃이 흩날리던 사월, 그는 아내와 함께 고향을 떠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서글퍼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그는 홀가분했다. 동구 밖까지 따라온 어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떠나는 그가 안쓰러워 눈가를 닦고 또 닦았다. 분홍색 꽃구름과 함께 멀어지는 동네를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활기찼던 젊음도 같이 묻히기를 바랐다. 다시는 고향산천을 찾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것을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사장은 상상외로 그를 반겼다. 그는 경리여직원 둘의 도움을 받아 한 달 동안 회사 살림을 파악하느라 바빴다. 원래 경리가 전공도 아닌데다 외근이 많은 건설회사라 사무실에 붙박이로 있는 남자직원은 그밖에 없었다. 그는 수입과 지출내역을 꼼꼼히 살피며 대충 제목만 달아 놓았던 금전출납부도 사장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빠짐없이 정리를 했다. 한 달 후, 사장은 그를 경리과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고맙다는 치하를 했다. 전임자는 사장의 처남이었는데 지출이 심해서 그로 바꿨다는 말도 곁들였다. 사장은 처남이 회사 돈에 손을 대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가 서류정리를 정확히 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손바닥 보듯 알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모형비행기를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사장은 같이 가볼 데가 있다며 그를 불렀다. 따라간 곳은 사장이 단골로 다니는 철학관이었다. 그를 채용할 때도 그 철학관에서 감정을 받은 사실을 사장은 그때서야 털어 놓았다. 역술인이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회사 일을 다 맡겼다는 말도 했다. 나이든 역술인은 그를 보자마자 대뜸 역학을 배우라고 권했다. 관상을 보나 사주를 보나 남의 운명을 감정해 주는 팔자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 꿈에서라도 자신이 역술인이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수심에 찬 아버지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런 몸으로 언제까지 회사를 다니겠소? 그냥 한자리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그는 역술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고향의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사장의 양해 하에 한 시간 먼저 퇴근해서 사주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는 손님을 맞는 자세부터 배웠다. 일흔이 넘은 노스승은 사람을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대하라고 가르쳤다. 남의 운명을 감정해 주는 것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공이 쌓이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사주학을 배우면서 가슴속에 감춰두었던 칼을 내던졌다. 아니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과 아내의 운세를 분석한 결과 수술할 당시 아내의 운세가 남편을 치는 상관(傷官)운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내에게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아내의 운을 탓해본들 마비된 다리가 정상이 될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점쟁이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지, 집안의 장손인데.
그는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어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사주학을 알아갈수록 자신은 역술인이 될 운명을 타고 났고 그 과정에서 사고가 났을 뿐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가 철학관의 문을 연 것은 공부도 다 마치기 전이었다. 자리를 비운 스승 대신 감정을 해 준 것이 용하다고 소문이 나자 스승은 홀로 설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그는 현저동 산비탈 동네의 한옥에 사랑채를 얻어 간판을 달았다. 낮에는 철학관에서 손님을 받고 밤에는 스승에게 공부를 하는 생활이 삼 개월이나 계속되었다. 손님은 많았다. 그는 역술인이 되었지만 심하게 절룩거리는 자신의 뒷모습을 손님들에게 보이기가 싫었다. 손님이 많을 때는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이면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어느 때는 감정을 하다가도 자신의 다리에 손님의 시선이 오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그의 앞에서는 깍듯이 선생님이라며 아양을 떨던 손님도 돌아서서는 절름발이 점쟁이라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철학관 책상 서랍에도 모형비행기를 넣어두었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모형비행기를 보며 허공으로 흩어져버린 자신의 꿈을 되새김질했다. 그러나 모형비행기로도 해결이 안 될 정도로 기분이 가라앉은 날은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 울적한 마음을 담배연기에 날려 보냈다. 그는 처음 철학관을 열 때 회갑까지만 하고 예순두 살 부터는 아내와 시간을 보내리라 작정했었다. 예순세 살부터 바뀌는 자신의 대운이 건강을 해치는 운으로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거니와 말년은 아내와 여행도 다니면서 한가롭게 지내고 싶었다. 불구가 된 이후로 그는 아내와 동반외출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십여 년을 살아온 지금의 동네에서도 그와 아내가 부부인 것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동반외출을 할 때도 아내를 앞서 걷도록 했다. 힘들여 걷는 모습을 밖에서까지 보여주기도 싫었지만 아내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싶어서였다.
그는 맏딸의 예비시부모와 상견례 때도 혼인이 깨어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자신이 불구인 것 때문에 맏딸이 상처를 받는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맏딸의 기색만 살피다가 마지못해 약속장소로 나갔다. 걱정과는 달리 바깥사돈이 흔쾌히 손을 잡으며 요즘아이답지 않게 잘 길러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제 어미를 닮아 대범한 성격인 맏딸이 설명을 잘 한 모양이었다. 맏딸은 시집가면서 그에게 지팡이를 선물했다.
딸에게서 새 지팡이를 받던 날, 그는 가슴 속에만 묻어두었던 이름을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김 연옥, 그는 아무리 불러도 질리지 않는 그 이름을 지팡이에 붙였다. 이제 밖에서의 그의 동반자는 연옥이었다. 평생 아내를 힘들게 했으니 외출할 때만이라도 그 짐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는 배려도 숨어 있었다.
결혼은 셋째 딸이 제일 늦었다. 잘 나가던 셋째의 혼담이 깨졌을 때를 생각하면 그는 늘 가슴 한쪽이 쓰라렸다.
아버지가 힘들여 버신 돈을 그렇게 쓸 수는 없지요.
중매쟁이가 요구하는 혼수품목을 전해 듣고 셋째 딸은 과감히 그 혼담을 정리했다.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잘해서 아들 부럽지 않다는 칭송을 들어오던 셋째 딸이었다. 딸이 원한다면 그는 적금통장이라도 깨서 혼수를 장만해줄 결심이었다. 몸이 온전하지 못한 아버지라서 능력도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싶었다. 셋째 딸은 반대였다. 자신이 저축해 놓은 범위 안에서 결혼비용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중매쟁이는 의사라는 직업이 무슨 보증수표라도 되는 듯 시종일관 신랑 편이었다.
딸 셋을 내리 얻고 막내로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그는 좋다는 약도 많이 먹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손자를 안겨드려야 한다는 아내의 성화 때문이었다. 아들이 태어나자 그의 아버지는 이제 조상님들을 만나도 할 말이 있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좋으면 뭐해요? 궁합이 나쁘면 아버지가 반대하실 텐데.
사귀는 아가씨가 있으면 데리고 오라는 말에 아들은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아들은 나이가 찰수록 그의 직업도 그가 말하는 운명론도 못마땅해 하는 태도로 그의 심경을 긁었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그는 동창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열등의식 때문에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던 동창들이었다. 그는 연옥을 대동하고 동창계에 나가기 시작했다. 송년모임은 동지를 하루 앞 둔 날로 예정되어 있었다.
셋째네 들렀다 올 테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내는 그의 곗날을 미리 예상하고 계획을 세워둔 눈치였다.
이 년 전 아내의 회갑 때, 그는 집문서와 목돈이 든 통장을 모두 아내에게 넘겨주었다. 아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대로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요즈음 아내는 어릴 때 잘 먹이지 못한 딸들이 마음에 걸린다며 아직 아이가 어린 셋째 딸에게 살림을 사다주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고 있었다. 어제는 지방연수원에 가 있는 아들을 먹일 보약도 지어왔다며 흡족해했다.
두시 사십 분, 그는 연옥에게 몸을 의지하고 송림다방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덩달아 기분이 유쾌해져서 찬바람이 같이 밀려드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운차게 다방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약속시간 이십 분 전이었다. 그는 자신이 걷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언제나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습관이 있었다. 창가 자리로 향하려던 그는 잠시 발걸음을 늦추면서 주춤거렸다. 다방 안은 빈자리가 많은데도 그가 즐겨 앉는 창가 자리엔 웬 늙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송림을 애용하는 이유가 창가 그 자리 때문인데, 그는 얼른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모형비행기를 한번 만진 뒤 반대편 구석자리에 가서 앉았다. 우리 자리는 이미 누가 앉았구먼. 그는 지팡이를 옆자리에 기대 놓으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문득 곱게 늙은 연옥이 옆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옆자리에는 그의 오랜 손길에 반들반들해진 지팡이가 겨울 오후의 스러져가는 햇빛처럼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날이 많이 춥지요?
찻집아가씨가 탁자 위에 김이 솔솔 나는 엽차 잔을 내려놓으며 아는 체를 했다. 그는 많은 다방이 카페로 개명하는 시대에 옛날 이름을 고수하고 있는 송림이 편했다. 커피를 주문한 뒤 자신의 오늘 운세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갑진(甲辰) 일주에 일진(日辰)은 경인(庚寅)이니 운세는 편관(扁官)과 비견(比肩)이었다. 신강사주인 그에게 편관은 나쁜 운이었다. 일곱 가지 살이 작용할 것이었다. 지지의 비견도 보통운은 되지만 일일 운세를 볼 때는 천간을 중하게 보므로 결코 운이 좋은 날은 아니었다. 손님에게는 이런 날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을 것이었다. 그는 어제 민 여사와 약속을 하고 나서야 오늘 운세를 짚어보고 안 좋은 것을 알게 되었다. 웬일인지 그는 약속을 깨고 싶지가 않았다. 계모임은 안 가도 그만이겠지만 민 여사를 만날 때는 그냥 한 번쯤 운세를 모르는 사람처럼 호기를 부려보고 싶었다. 그는 잠바주머니에서 신문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까 봐 집에서 들고 온 것이었다. 집에서 읽다만 두 번째 장을 펼쳤다. 하단부에 무면허 행위를 알았다면 수술 부작용의 삼십 퍼센트는 본인 책임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울분이 치솟았다. 아직도 수양이 덜 되었는가, 사십여 년을 눌러왔던 분노를 삭이기 위해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리쉬었다. 오 분쯤 지났을까. 휴대전화 벨소리에 그는 눈을 떴다. 조금 늦는다는 민 여사의 전화였다. 그는 활달한 민 여사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바뀌어서 휴대전화를 다시 잠바주머니 속에 넣은 뒤 신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철학관을 그만 두기로 한 회갑 때, 그는 매달 들어오던 수입을 포기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단골손님들의 항의도 한몫을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일 년을 넘기고 이 년 째를 맞게 되었다. 딸들은 일도 쉬고 담배도 끊으라며 성화였다.
당신같이 바쁘던 사람은 갑자기 일을 그만 두면 병이 난대요.
평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던 아내는 철학관을 그만두는 것을 반대했다. 의외였다. 일을 그만둔다고 하면 아내가 두 손을 들어 환영할 줄 알았었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운세를 가르쳐줄 수가 없었다. 사십여 년 간 그를 의지하고 살아온 아내는 불구인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바가지를 긁은 적이 없었다. 미리부터 아내를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할수록 그녀가 홀로 남겨졌을 때가 염려스러웠다. 젊어서는 바람이 날까 봐 번 돈을 다 주지 않았다.
지난 번 계약은 가르쳐준 대로 했는데도 성사가 안됐어요.
손님의 항의를 받고서야 그는 자신의 운이 다한 것을 깨닫고 철학관의 간판을 내렸다. 한 달 동안 바깥출입도 하지 않았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피곤했다. 다시 손님과 연결이 된 것은 휴대전화 때문이었다. 몇 십 년 동안 운세를 물어왔던 단골손님들은 갑자기 그가 사라지자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기왕에 끊기로 한 것,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면 그만이겠지만 마음으로 손님을 대하라던 스승의 가르침이 생각나서 그는 결심을 바꾸었다.
이십여 년 전, 민 여사가 처음 찾아 왔을 때 그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얇은 블라우스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이맛전이 반듯해서 첫사랑인 연옥과 비슷했다. 그는 연옥을 보는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 아가씨가 왜 왔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차례를 자꾸 양보하며 뒤로 처지는 바람에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뒤 그녀와 마주앉게 되었다. 그녀는 안마시술소에서 일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루에도 서너 명씩 남자 손님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참 별난 손님이 왔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손님 중에서 스무 살 연상의 아저씨가 살림을 차리자고 하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다. 그는 그녀의 사주를 풀어 보았다. 초년에 도화살이 있어서 편히 살기는 어려운 팔자였다. 그래도 젊은 아가씨가 꼭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제 뒤에 딸린 식구가 일곱이에요. 제가 돈을 보내지 않으면 병든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그녀는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을 했다. 그는 거짓말이 섞인 줄 알면서도 자꾸 아가씨의 입장이 되는 것이 이상했다. 남자의 운세는 돈을 벌기는 하겠는데 관리 능력이 없어서 별로 건지는 것이 없었다. 앞으로 돌아오는 대운에서는 그녀가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재물이 새도록 되어 있었다. 역술인이 된 후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키지 않는 감정을 했다.
오 년만 그 남자하고 사시오. 대신 아가씨 인생에서 이런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약속할 수 있겠소?
그녀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 후, 그녀는 중년남자의 첩으로 살면서 가끔 소식을 전했다. 고향에 땅도 사고 집도 고쳤다는 것이었다. 오 년 뒤 남자는 사업이 망했다. 민 여사는 남자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끝으로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런 민 여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어느 해 봄이었다.
선생님, 제가 사무실 앞에 와 있는데 나오지 않으실래요?
그는 여간 친하지 않고서는 손님과 따로 만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왜 민 여사의 청은 한 번도 거절을 못하고 번번이 들어주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무실을 나섰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길가의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잠깐 동안 벚꽃을 바라보았다. 벚꽃은 서울로 올 때 고향에서 보았던 복사꽃처럼 꽃구름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포장마차로 가서 민 여사와 마주 앉았다. 그녀를 보니 벚꽃 때문이 아니라도 가슴 한복판에 불이 들어온 듯 화끈거렸다. 젊은 시절처럼 양쪽다리에 힘이 솟는 것 같았다.
그동안 서울 근교에서 음식점을 하며 남부럽지 않을 만큼 돈도 벌었다고 민 여사는 말했다. 문득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화살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예뻐 보이고 좋은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도화살은 여자는 남자가 많이 따르고 남자는 여자가 많이 엮어져서 이성관계가 복잡해지기 쉬운 살이었다. 다리만 성했어도 연옥을 닮은 민 여사와 연애를 했을 것 같은 상상 때문인지 그는 술이 더 당겼다. 그때 민 여사가 메모지 한 장을 그의 앞에 내놓았다. 그는 게슴추레한 눈을 힘주어 뜬 뒤 메모지를 들여다보았다.
저를 좋다고 하는 청년의 사준데요. 궁합 좀 봐 주세요. 순수한 사람이라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살 수도 없잖아요.
그는 대충 궁합을 맞춰 보았다. 남자가 똑똑하지는 않아도 마음이 착해서 백년해로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결혼하면 남편 뜻 거스르지 말고 속죄하면서 살라고 민 여사를 훈계했다. 그는 정말 그 순간만은 그녀의 부모가 된 듯 엄숙한 심정이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 뒤 민 여사는 음식점을 점점 늘려 지금은 강남에 있는 번듯한 레스토랑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엉덩이를 조금 돌려 탁자 밑에 뻗치고 있던 왼쪽다리를 의자 안쪽으로 조금 당겨 앉았다. 그 바람에 옆에 비스듬히 세워두었던 지팡이가 의자 밑으로 미끄러졌다. 아이고 미안하이. 그는 얼른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바닥의 찬 공기가 올라와선지 다리가 뻣뻣했다. 두 손으로 잘 구부러지지 않는 왼쪽 다리를 주물렀다. 차가 막히는가, 민 여사는 네 시가 넘었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볼일을 보고 오는 모양이었다. 이 친구가 많이 늦네. 그는 지팡이의 윗부분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지팡이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민 여사가 호들갑을 떨며 다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눈웃음을 살살 치며 콧소리를 냈다. 아유, 선생님 조금 바빠서요. 그러니까 우리 가게로 나오시면 좀 좋아요. 그는 양식은 별로였다. 언제나 한식이 입에 맞았다. 민 여사는 자기네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 아니고 근사한 데 가서 한 턱 쏠 수도 있다며 깔깔거렸다. 그를 처음 만났던 처녀시절로 돌아간 듯 얼굴도 환했다. 그는 민 여사에게 안 넘어가는 남자가 없겠다는 생각과 달리 무슨 일 때문이냐고 점잖게 말을 이었다. 민 여사는 지금 세 들어 있는 집을 주인이 내놨는데 그것을 사서 다시 짓고 싶은가 보았다. 그는 민 여사와 남편의 운세를 맞춰보았다. 그녀는 벌기도 잘 벌지만 나가는 것도 많은 팔자를 타고 났다. 배포는 남자 못잖아서 사업을 잘 꾸렸다. 그는 명의는 꼭 남편 앞으로 하라고 일렀다. 그렇게 해야 남편도 마음을 붙이고 살 재미가 있을 것이었다.
민 여사는 고맙다며 탁자 위에 봉투를 놓고 돌아갔다. 그는 기분이 묘해서 담배를 꺼냈다. 연옥을 잊지 않는 한 민 여사를 걱정하는 마음도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윗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파란 글씨가 다섯 시 삼십 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계모임 시간은 여섯 시였다. 창밖은 이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서 반사되는 불빛만이 유리창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만 일어나세. 그는 지팡이와 함께 다방을 나섰다. 싸늘한 초겨울 바람이 메마른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자네도 춥지? 그는 지팡이를 어루만지며 옷깃을 여몄다.
계모임 장소는 횟집이었다. 이렇게 썰렁한 날은 아내가 끓여준 따끈한 추어탕을 먹는 것이 제격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횟집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아내는 추어탕을 잘 끓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솜씨만 가지고서는 음식점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팔딱팔딱 뛰는 미꾸라지가 특효약이라고 들었는지 사철 추어탕을 끓여대는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그는 추어탕을 잘 먹었다. 그는 계속되는 추어탕에 물릴 때도 처음 추어탕을 끓이며 곤욕스러워하던 새댁시절의 아내 모습이 떠올라 아무 말 없이 먹곤 했다. 그러나 저수지 하나는 채울 만큼 미꾸라지를 먹었건만 그의 다리는 아직 그대로였다. 그는 사람들이 오가는 밝은 쪽을 피해 가장자리 길을 지팡이를 의지해서 걸었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짧은 머리의 남자아이가 그를 흘끔거리며 앞질러 나갔다. 조부모에게 장손 대접을 받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다. 그가 취직하는 것을 보고 저승으로 떠난 할머니는 어린 그를 위해 길바닥의 돌멩이도 캐낼 정도로 정성을 다했었다.
횟집 홀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종업원이 안내해 준 방문을 열자 먼저 와 있던 김 원장이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치과의사인 김 원장은 모임의 회장이었다. 그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부동산 중개사인 박 사장도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신수가 훤해졌네.
빈 말이 아니었다. 그도 요즘 자신의 몸이 좋아진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철학관을 할 때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그렇게 기운을 빼앗기는 것인 줄 몰랐었다. 계원은 모두 만난 지 사십 년이 넘는 동창들이었다. 그는 서너 번 잔을 부딪치며 회를 먹다보니 배가 불러서 매운탕은 떠먹는 시늉만 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김 원장이 먼저 일어나며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친구들을 따라 노래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래방 주인은 남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들어서자 직접 큰방의 문을 열어주며 아가씨의 수를 물었다. 김 원장이 다섯 손가락을 좍 펴들고 흔들었다. 그는 얼른 손가락 한 개를 접고 넷만 부르라는 주문으로 바꿨다. 김 원장이 그의 손에 마이크를 쥐어주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그의 눈앞에 동구 밖에서 눈물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그는 문득 그때의 어머니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 자신이 서글퍼져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냥 살다 보니 어느 틈에 한 평생이 가는 것을, 젊었을 때는 어찌 그렇게 멀게만 여겨졌는지 알 수 없었다. 노래를 마친 그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댄 뒤 밖으로 나왔다. 몸이 불편한 그가 빠져야 사지가 멀쩡한 그들이 즐겁게 놀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우리 오늘은 한번 멋지게 걸어볼까? 지팡이를 꼭 잡은 그는 술도 한잔 걸친 김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가운데 길로 나섰다. 다리를 다치지 않았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불쑥불쑥 떠오르는 그 생각이 또 고개를 쳐들었다.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연옥의 얼굴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사내로 태어나 온전한 육신을 가지고 활개 치며 살지는 못했지만 자신 앞에 놓인 책임은 다하려고 노력했었다. 혈기가 왕성할 때는 자신의 육신이 혐오스럽고 절뚝거리며 걸어가야 할 길이 너무 아득해 그만 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욕심을 부릴 것도, 후회할 것도 없었다.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그는 횡단보도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빨간불이었다. 신호등 앞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으며 서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습관처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았다. 아홉 시 사십삼 분. 노루 꼬리같이 짧은 겨울날이지만 그에게는 긴 하루였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아내가 데워 놓았을 따끈한 돌침대에 눕고 싶었다. 아내는 그의 굳어버린 다리를 위해서 전기만 꽂으면 사철 몸을 지질 수 있는 돌침대를 다른 가구보다 먼저 장만했다. 처음 침대를 들여오던 날, 초라한 살림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같이 화를 냈지만 콧잔등이 시큰했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는 것을 보고 그는 지팡이에 의지해 차도로 내려섰다. 같이 기다리던 남자 둘은 그가 내려서는 사이 벌써 두세 걸음 앞질러 가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건장한 두 다리가 부러웠다. 그때 수술을 하지 않았으면 소원대로 무역회사의 오너가 되어 뿌듯한 인생을 살았을까. 서글픔이 목젖을 적셔왔다. 그는 자신도 한번 힘차게 디뎌볼 요량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때 벼락을 치는 것 같은 오토바이 굉음과 함께 무엇인가가 그를 쳤다. 그는 붕 날아올랐다. 짚고 있던 지팡이도 같이 날았다. 아버지를 존경한다던 맏딸의 음성이 허공에 흩어졌다. 그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모형비행기도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언제나 뻐근하니 불편했던 한쪽 다리도 가볍게 함께 날았다.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는 그냥 이대로 연옥과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홍영숙
. 건국대학교 가정학과 72학번
. 1994년 창작수필 등단
. 2006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 5인 에세이집 ‘하늘을 보면 눈이
첫댓글 " 반들반들한 지팡이가 겨울 오후의 스러져가는 햇빛처럼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읽고 또 읽고......멋집니다. 올해도 문운 청청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