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이란? 화백제도(和白制度)
흔히 화백제도(和白制度)라고 하면 우리는 신라를 연상하게 됩니다.
신라시대에 화백제도가 있었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 연원은 훨씬 더 깊으며,
다만 신라시대까지 그 제도가 전해져왔을 뿐인 것입니다.
이 제도는 한단시대(한국(桓國)시대, 신시배달시대, 단군시대)에 실제로 행해졌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있고,
이는 자재율(自在律)과 구심력(求心力)과 원심력(遠心力), 그리고 공전과 자전의 원리를 바탕으로 개인과
전체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이상적인 정치형태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단고기> '삼성기전 하편'에서「한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하늘을 열고 백성을 낳아 교화를 베풀고 천경
(天經 : 천부경)과 신고(神誥 : 삼일신고)를 가르치니 무리들이 잘 따르게 되었다.
이후에 치우천왕(治尤天王 : 14대 자오지(慈烏支) 한웅, B.C.2706)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서 군대를 조련하고 산업을 일으켰다.
때에 구한(九桓)은 모두 삼신(三神)을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고 소도(蘇塗)를 관리하고 관경(管境 : 관할하는 경내를 뜻하는 말로 온 <누리>라는 말의 <누리>의 뜻이 담겨 있다)을 관리하며 벌을 다스리는 것 등을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하나로 뭉쳤는데 이를 화백(和白)이라 하였다.」
고 하였고,
<한단고기> '단군세기'에서 「마침내 뭇 한(汗)들과 약속을 세우시사 말씀하시기를, "... 마땅히 나라 사람들과
더불어 다스려 다스림을 자산으로 하고 겨레가 소중함을 우선으로 가르친다. 포로와 죄수를 풀어주고 아울러
사형제도를 없애고 책화(責禍)로 경계를 지키고 화백(和白)을 으뜸으로 한다. 오로지 이처럼 하나같이 베풀고
함께 화합하는 마음을 갖고서 겸허하게 낮추며 스스로 수양한다면 어진 정치가 비롯되리라."라고 하셨다.」
하여, 화백제도가 신시배달시대와 단군시대의 중요한 치세 방편 중의 하나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한단고기> '한국본기(桓國本紀)'에 의하면, 오가(五加)의 무리들이 우두머리를 뽑는 방법에
「제각기 생각하는 바대로 판단하여 스스로 선택하게 하였으니 그 추구하는 핵심은 오로지 구한(九桓)이
공평하게 대동단결하여 하나로 돌아감에 있었다」하여, 이 제도의 뿌리가 한인(桓仁)의 한국(桓國)시대에까지
닿아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서(隋書)>의 '신라전(新羅傳)'에 「대사(大事)를 공유(共有)함에 군관(群官)을 모아 상세히 모아
상의하여 완결 짓는다」하였고, 또한 <당서(唐書)>에서는 「일이 있음에 반드시 무리를 모아 논의함을 화백이라 하니 한사람이라도 다르면 파(罷)하였다」하였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아 화백제도란 본시 무리를 공평하게 다스리면서 전체를 하나로 돌아가게 하는 일종의 의결제도로서 만장일치제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공평하게 함"은 곧 화(和)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로 돌아감"의 본래의 뜻은 백(白)의 뜻에 부합합니다.
왜냐하면 백(白)이란 한민족에 있어 곧 허(虛), 공(空), 극(極)의 뜻을 포함하여 만유(萬有)의 근본을 말하고 있으며, 전체가 이것으로 돌아감은 황궁씨족('부도지' 참고)의 염원이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해설>
화목할 화(和) : 벼 화(禾) + 입 구(口), 입에 먹을 것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어 웃음이 있고 서로 잘 화합할 수 있음을 뜻함.
흰 백(白) : 일백 백(百) - 날 일(一) = 100 - 1 = 99
9 x 9 = 81
(八) + (十) + (一) = 근본 본(本)
천부경 81字, 노자 도덕경 81章 모두 근본 本을 뜻함.
따라서 화백(和白)은 "공평하게 함"은 곧 화(和)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로 돌아감(本)"의 본래의 뜻은 백(白)의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화백제도는 사실상 '마고성의 맹세', 즉 '복본(複本- 원시반본과 같은 뜻)의 서약'을 이루기 위하여 행한 의결제도의 일환으로 삼신일체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일(一)'과 '다(多)' 사이의 '혹(或)'을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제도로서, 가장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제도이지만,
참가자들이 우주의 근원과 실질적으로 결정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온전하게 밝아야 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 송호수 박사(개천대학장)에 따르면 화백(和白)을 화(和=다) + 백(白=사리=사뢰다, 말한다)로 '모두 다 말한다', '사람마다 의견을 개진한다'는 뜻으로 풉니다.
사실상 현대에 있어 다수결제도가 인간의 다양한 개성과 창조의 의지를 존중한다는 취지가 있으나, 화백제도가
그 당시 실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사람들의 높은 의식수준을 반증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화백회의 중에 견해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각자 옆방으로 가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 어떠한 일인가를 재삼 생각하고, 다시 회의에 임하여 모든 사람이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회의를 하여 국사(國事)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화백제도는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여 진정 나라와 민족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하고자 만든 훌륭한 제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제도를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사사로운 욕심과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지 않을 정도로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한테 이런 화백제도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라고 하면 아마도 한 건도 결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화백제도가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보다도 훨씬 앞선 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한마디로 영적수준이 우주와 하나된 광명의 정신과 지공무사(至公無私: 지극히 공적이며 사사로운 감정이 없는 것)의 정신이 있어야한다).
화백(和白)이 안되기 때문에 대안(代案)으로 나온 것이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다수결의 원칙은 소수의 옳은 의견이 무시되고 다수의 잘못된 의견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이런 일이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황청에서는 아직도 우리의 화백제도와 비슷한 방법인 만장일치제로 교황 선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통으로 교황이 선출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징기스칸이 천하의 대제국을 건설하는데 이 쿠릴타이(부족의 대표자들 회의로써 만장일치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화백제도)가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데 아주 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몽고족은 대대로 단군조선의 제도가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죠. 한 예로 임검을 보필하는 좌, 우현왕 제도가 바로 단군조선의 통치방식이였죠.
지금도 전세계에 퍼져있는 징키스칸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부족들은 아직도 이 화백제도로써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단결과 화합력이 아주 강합니다.
<출처:해달별사랑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