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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월01일 (1일차) |
07시00분 1l시00분 11시30분~ 15시30분 16시00분 17시20분 18시10분 18시20분~19시30분 20시00 |
수원출발 조식(통영에서 해장국) 통영 용화사 미륵산 산행시작 하산완료 중식(생선구이 백반) 욕지도항 요지도항 여객선 탑승 욕지도 도착 욕지도 자유관광 석식(회정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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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월2일 (2일차) |
06시30분 07시30분~08시10분 08시30분~
19시00분 |
기상 조식(백반) 욕지도 천황봉 망덕봉산행및 욕지도 해안 버스투어 관광 석식(회정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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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월3일 (3일차) |
06시30분~07시30분 08시00분 08시20분 08시30분~11시30분 12시00분~13시00분 13시20분 14시00분~15시30분 16시00분~17시00분 17시10분 21시30분 |
조식 욕지도 출발 연화도 도착 연화도 등산 중식(백반) 통영행 여객선 탑승 통영 동피랑관광 석식(백반) 수원으로 출발 수원도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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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비용 |
버스대여료 회정식 (2회제공) 식사 (7식) 숙박 (2일) 배삯 통영-욕지-연화 기타 가이드부대비용 총비용합계 |
관광버스 3일 대여비 욕지도 버스 도선료 일반식7회, 회정식2회 왕복 여객선료 숙박료포함 300,0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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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458m
위치 : 경남 통영시 봉평동
특징, 볼거리
미륵도 중앙에 해발 우뚝 솟은 위풍 당당한 미륵산(彌勒山)은 용화산(龍華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에 고찰 용화사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또 이 산은 미륵존불(彌勒尊佛)이 당래(當來)에 강림하실 용화회상(龍華會上)이라 해서 미륵산과 용화산을 함께 쓴다고도 한다.
산 봉우리에 옛날 통제영(統制營)의 봉수대터가 있고 미륵산 자락에는 고찰 용화사와 산내암자 관음암, 도솔암이 있고 효봉문중(曉峰門中)의 발상지 미래사(彌來寺)가 있다.
정상에 오르면 한려해상의 다도해가 조망이 일품이다.청명한 날에는 일본 대마도가 보인다. 미륵산에는 국내에서 제일 긴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어 케이블카를 타고 10여분 만에 상부 역사에서 내려 15분을 걸으면 정상에 이른다.
산행코스로는 봉평동 용화사 광장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와 산양읍 미래사 입구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있으며 봉우리까지 40분이면 충분하다.
현금산은 선금산이라고도 하는데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는 없다. 중계탑과 낡은 초소가 정상의 전부이다. 초소 앞으로 몇 발짝 나가면 통영대교를 중심으로 그림 같은 바다풍경이 눈에 잡힌다. 현금산은 미륵산과 연계하여 산행한다.
미륵산은 통영 미륵산, 전북 익산의 미륵산, 강원 원주의 미륵산 등이 있다.
충무시와 연육교로 이어지는 미륵도(彌勒島)의 복판에 솟은 산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등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지형도에는 용화산(龍華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석조여래상(경남유형문화재 43호)과 고려중기의 작품인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이 보존되어 있는 용화사(龍華寺)가 있음. 도솔선사(兜率禪師)가 창건한 도솔암, 관음사(觀音寺), 봉수대터 등이 유명하다
통영은 섬나라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영을 ‘바다의 땅’이라 부른다. 통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섬들이 모여 연화열도를 이룬다. 연화열도의 중심 섬인 욕지도는 그 중에서도 최고의 비경을 자랑한다. 통영항에서 32km, 한 시간 거리의 뱃길이다. 청보석의 바다와 점점이 떠있는 섬과 여들. 욕지도 바다의 풍경은 한편의 산수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름답다.
욕지도는 주변에 크고 작은 섬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탁 트인 남태평양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다도해의 소담함과 대해의 장쾌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섬이다. 욕지도를 본섬으로 하는 욕지면은 10개의 유인도와 45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욕지도에 면소재지와 각종 관공서가 위치해 있다. 욕지도에는 2,000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각종 욕지도 관광안내서에는 욕지(欲知)의 뜻을 ‘알고자 하는’으로 풀이해 놓고 있다. 무얼 알고자 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그냥 글자 뜻풀이일 뿐 욕지도란 이름의 진짜 의미를 풀이해 주지는 못한다. 욕지도의 뜻은 그 자체로는 결코 풀이될 수 없다. 욕지도 한 섬만으로도 풀이가 되지 않는다. 욕지도의 뜻은 주변의 다른 섬들, 연화도, 두미도, 세존도 등의 섬들과 연계될 때 비로소 실마리가 풀린다.
욕지도를 비롯한 이들 섬의 이름은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於世尊)”이라는 불경 구절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화세계(극락세계)를 알고자 하는가? 그 처음과 끝을 부처님께 물어보라.” 옛날 욕지도를 비롯한 연화열도의 섬들은 스스로 이미 연화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 이름은 불국토, 이상향을 염원하는 누군가의 기획 하에 지어진 것처럼 아귀가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이름의 섬들이 통영 바다에만 몰려있을까. 근처의 미륵도와 반야도 또한 이 불국토의 자장 안에서 지어진 이름이리라
산에 올라야 섬의 진면목이 보인다
욕지도에는 신석기 시대 유물인 조개무지(패총)가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이미 욕지도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삼한시대나 가야,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도 사람살이가 이어졌을 것이다. 가야시대에는 6가야 중 수로의 막내 동생인 말로가 지배하던 소가야 소속이었다. <고려사>에는 우왕 4년(1378년) 8월 “배극렴이 욕지도에서 왜적을 물리치다”라는 기사가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 태종9년(1409년)7월15일 기사에도 욕지도란 지명이 등장한다. 욕지도란 이름은 그만큼 오래된 이름이다. 그 이전에는 ‘호주’라 했다고 추정하기도 하지만 사료는 없다.
욕지도에는 고려 말까지도 주민들이 살았지만 조선시대 들어서는 거주가 허가되지 않았다. 왜구들의 노략질 때문에 실시된 공도(空島)정책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주로 군선들의 정박지로 이용됐다. 통제영 소속이던 욕지도가 조선시대 후기에는 왕실 궁례부의 명례궁 소속으로 바뀌었다. 왕실의 욕심 때문이었다.
욕지도에 공식적인 입주가 다시 허락된 것은 조선시대 말에 와서다. 1887년(고종 24년) 조정에서 욕지도 거주 허락이 떨어졌고 1887년 장수나무 아래서 입도인 4명이 소를 잡아 개척제를 지내며 사람살이를 시작했다. 1988년에는 ‘욕지개척100년기념비’가 세워졌다. 개척 당시에는 사슴이 많아서 ‘녹도’라 불리기도 했다. 개척자들의 구전에 따르면 입도 당시 욕지도에는 전함이 계류하던 곳인 전선소, 관청인 치소, 손님의 숙소로 쓰던 관소가 있었고, 산정에는 위급을 알리는 봉화대도 있었다. 아직껏 남아 있는 조선포나 관청마을, 옥섬 등의 지명이 여기서 유래한 듯 보인다.
욕지도는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했다. 입도 후 욕지도 주민들은 대체로 어업에 종사했다. 워낙 어장이 풍성했다. 욕지도는 특히 멸치의 주산지였다. 솔가지에 불을 켜서 멸치를 유인한 뒤 잡는 챗배 멸치잡이가 주요 어법이었다. 또 김경일과 김홍포 등이 들망을 발명해서 어업기술을 발전시켰다. 일본이 황금어장인 욕지도 바다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욕지도는 일제가 식민지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어업 이민지 중 하나가 됐다. 1895년 경부터 도미우라라는 일인이 욕지도를 들락거리며 조업을 하는 동시에 욕지도의 수산물을 매입해 일본에 팔기 시작했고 1900년대 초반에는 아애 욕지도에 정착했다. 선박과 어구, 어업자금을 빌려주고 어민들을 수탈해 갔다. 그가 정착한 곳이 욕지도 고등어 파시가 열렸던 자부포(좌부랑께)였다.
일제 때는 고등어, 전갱이 등으로 풍어를 이루었고 남해안의 어업전진기지였다. 당시 욕지도에서 잡힌 물고기들은 서울, 마산, 일본, 만주 등지로 수출됐다. 1915년경에는 조선인 2만864명, 일본인 2,127명 등 인구가 2만3,000명에 이를 정도로 섬이 번창했다. 지금 욕지도는 잡는 어업보다는 기르는 어업이 중심이다. 욕지 내항은 돔, 우럭 등의 가두리 양식장으로 가득하다. 또 욕지도에서는 처음으로 고등어 양식이 시작되어 성공했다. 서울 등 뭍에서 먹는 고등어회는 거의 욕지도 산이다.
욕지도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지만 욕지도의 진면목은 해변에 있지 않다. 해변에 가면 섬의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욕지도만이 아니다. 어느 섬이든 섬을 온전히 보고 싶으면 섬의 산에 올라야 한다. 욕지도를 찾는 사람들은 주봉인 천왕산에 올라야 진짜 욕지도를 봤다 할 것이다. 가장 높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는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발길이 날렵한 사람은 30분만에도 오를 수 있다. 욕지도에는 천왕봉(392m)을 비롯해 대기봉(355m), 약과봉(315m), 일출봉(190m) 등의 여러 산이 있다. 산에는 등산로가 잘 나 있어서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에 오르지 못할 형편이라면 혼곡마을 등산로 입구에서 노적, 통단마을까지 이어진 해변 트레일을 걷는 것도 좋다. 탁 트인 바다와 오솔길을 번갈아 걸을 수 있는 이 길은 여행자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황홀하다.
천왕봉은 옛날부터 섬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긴 산이다. 섬사람들은 산기슭의 제당에 천왕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동항마을 위 상수원 저수지 기슭에는 아직도 산신당이 있다. 천왕봉은 최근까지도 천황봉이라 불렸다. 본래 천왕봉이었는데 일제 때 천황봉으로 바뀌었다가 제 이름을 되찾은 것이다. 한국의 산 이름은 대부분 불교에서 유래했다. 천왕봉의 천왕은 사천왕의 그 천왕이다.
<연화도 코스>
A코스 : 여객선터미널 -> 연화봉 -> 보덕암 -> 출렁다리 -> 용머리 -> 여객선터미널 (약3시간 소요)
B코스 : 여객선터미널 -> 연화사 -> 보덕암 -> 출렁다리 -> 용머리 -> 여객선터미널(약2시간소요)
▲ 연화도 명물 출렁다리
출렁다리는 아찔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 다리를 건너면 용머리 전망대까지 갈 수 있다
▲ 연화봉
해발 212.2m
용머리 해안을 비롯하여
연화도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출렁다리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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