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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강건너 마을 이 재 익
강건너 남촌에서
먼 길 삭은 세월을 돌아 강 건너 남촌에서 바라보는 고향마을은 낯선 듯 낯선 듯.
강물은 예대로 속삭이는 데 메아리 주고받던 멱 감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노고지리가 알을 까던 사래긴 호밀밭은 과수원 숲으로 남촌에 서서 남촌이 그립다.
유체이탈한 혼이 육신을 보듯이 더러는 내 밖에서 나를 보아야지 스스로 낯설어 서성거리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이재익)
수필 작가 피천득(皮千得)선생은 올해(2005) 95세의 고령이신데 이번에 중국 상하이를 다녀오셨다 한다. (*2007년 05월 25일 작고) 1937년 상하이 호강대학을 졸업한 지 거의 70년 만이다. 그분이 먼 이국땅 중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한 중국 여인을 회상하며 찾았다고 한다. 그녀를 회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누렇게 변색된 조그마한 사진 한 장이란다. 그 사진을 70년이나 고이 간직하였다가, 죽기 전에 한번 만나보았으면 하는 그리움에 사무쳐서 70년 전 옛 길을 더듬었다. 대만으로 갔는지, 미국으로 갔는지, 하늘나라로 갔는지, 까마득하여 행방을 알 수 없었지만, 소중한 추억의 장소로 좀 더 가까이 가서 회상하는 귀한 시간이 된 것 같다. 조국을 잃은 청년 영문학도 피천득과 중일전쟁 이후 쇠퇴일로를 걷던 중국의 처녀가 서로의 처지를 깊이 위로하며 가까워졌지만 인연은 되지못했다. 당시 호강대학 영문과에는 학생이 불과 4명 뿐이었다. 여학생이 셋, 남학생은 선생 혼자였는데 그녀는 다섯 살쯤 아래인 같은 학과의 학우였다고 한다.
허사일 줄 알면서도 찾아보고 싶은 추억의 장소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법이다. 나도 몇 해 전에 어릴 때 추억이 어린 곳이 그리워 찾아갔던 적이 있다. 소년은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려고 낙동강에 나가서 멱을 감았다. 강가 진흙에 뒹굴었는데, 요즘 용어로 그게 ‘머드팩’ 비슷한 것이었고, 조개와 다슬기, 갈게를 잡기도 했다. 강 건너 산 아래 외딴 초가집 몇 채가 있어서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거리였지만 ‘어이, 만나자’ 하고 외치면 저쪽 아이들도 응답해왔다. 언젠가는 강 건너 마을로 가서 아이들을 만나보리라는 소박한 꿈을 꾸었다. 어른들은 강 건너 마을의 산중턱 큰 바위께로 구름이 걸리면 어김없이 비가 오는 것으로 예측하였으므로 강 건너 마을은 신비로운 곳으로 생각되었다. 부모 세대에는 우리 마을에 공비(共匪)가 출몰하여 여유가 있는 집들은 배를 타고 강건너 지역으로 피난하여 살기도 했다.
직선거리 불과 2~3백m 강건너 쪽으로 가보고 싶었던 소년의 이 소박한 꿈이 실현된 것은 50년도 더 지난 후였다. 길을 돌고 돌아서 낙동강 반대편으로 가서 고향 마을을 최단 직선거리에서 바라보았다. 넓은 강폭에는 잦은 봄비로 시위가 내리고 상큼한 풀 냄새는 향기로웠다. 고향 마을 뒷산의 스카이라인은 눈부시게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마을은 더 커졌지만 내가 살던 옛집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지랑이만 아롱거렸다. 노고지리가 알을 품던 경부선 철둑 넘어 강가의 사래 긴 호밀밭은 과수원 숲으로 변하여 장관을 이루는 마을 원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쓸쓸하였다. 그렇게 낯익었던 풍경이건만 이제는 낯설고, 하염없는 추억의 상념에 잠겼다. 가보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은 언젠가는 실현되는구나, 누구나 꿈을 꾸고 결코 잊지 않는 다면.........
강 건너로 가서 바라 볼 수 있는 고향을 가까이 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망향의 한을 안고 임진강으로 가서 북녘 땅을 바라보는 실향민들의 심경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허전한 것은 강건너에는 동경했던 소년 소녀도, 몇 채의 가옥도 간데없고 이제는 거대한 상수도 취수장이 들어서 있었다. 강가에 전망 좋은 곳에는 몇 군데 가든 음식점이 있지만 인적 없이 한산하다. 갑자기 50년의 나이를 한꺼번에 먹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흘러간 세월이여! 아직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 남촌의 그리움이여! 유체이탈하여 혼이 자신의 육신을 바라보듯이 더러는 내 밖으로 나를 보러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나는 서두와 같이 자작시 ‘강 건너 남촌에서’을 읊어보았다. (2005.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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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기서 보면 동네위쪽 모텔이 멋 있던데요!
강건너 남촌에서...... 세계 어느 풍경보다도 더 절실한 고향.....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