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李太白 漢詩: 5. 襄陽歌(양양가: 襄陽의 노래) * 襄陽은 只今의 湖北省 襄樊市(양번시)이다. | ||
⓵落日欲沒峴山西하니 倒著接䍦花下迷라 | 낙일욕몰현산서도착접리화하미 | 夕陽이 峴山 西쪽에 지려 하는데 술 醉해 接䍦(접리) 거꾸로 쓰고 꽃 아래에 헤매노라(昏迷). |
* 落日欲沒峴山西: 晉羊祜卒에 百姓이 於峴山建碑하니 望其碑者莫不流涕라 因名爲墮淚碑라하니라 晉나라 羊祜(양호)가 죽자 百姓들이 峴山에 碑를 세우니, 이 碑를 바라보는 者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因하여 ‘墮淚碑(타루비)’라고 하였다. * 倒著接䍦花下迷: 晉山簡이 每至高陽習家池하여 飮輒大醉하고 歸歌曰 山公時一醉하여 逍遙高陽池라 日暮倒載歸하여 酩酊無所知라 時時騎白馬하고 倒著白接䍦라 擧鞭謝葛强하니 何如幷州兒오하니라 晉나라 山簡은 언제나 高陽의 習家池에 이르러 술을 마시고 크게 醉하여 돌아오면서 노래하기를 “山公이 때로 한 번 醉하여 高陽의 못에 逍遙하네. 날이 저물자 수레에 드러누운 채 돌아와 술에 醉하여 아는 바가 없네. 때때로 白馬를 타고 거꾸로 쓴다오. 채찍을 들어 葛强(갈강)에게 私禮하니 幷州의 아이들과 어떠한가.” 하였다. | ||
⓶襄陽小兒齊拍手하고 攔街爭唱白銅鍉라 | 양양소아제박수 난가쟁창백동시 | 襄陽의 小兒들 一齊히 손뼉 치며 길거리를 누비면서 白銅鍉를 노래하노라. |
* 白銅鍉: 樂府에 有銅鍉歌하니 釋云 胡人歃血之器라 韻府에 作鞮하니 註에 革履連脛이니 卽今靴라하니 恐非라 白銅鍉 《樂府》에 〈銅鍉歌〉가 있는데 解釋하기를 “鍉는 오랑캐들이 盟誓(맹세)할 때에 피를 마시는 그릇이다.” 하였다. 《韻府》에는 鞮(제)로 되어 있는데 註에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가죽 신발이니, 바로 只今의 靴이다.” 하였는데, 이는 잘못인 듯하다. | ||
⓷傍人借問笑何事오 笑殺山翁醉似泥라 | 방인차문소하사 소살산옹취사니 | 옆 사람 무슨 일로 웃느냐고 물어보자, 무에 그리 우스운가. 山翁이 醉하여 泥蟲(이충)과 같음이 우습다네. |
* 笑殺(쇄)山翁醉似泥: 殺는 煞(살)로도 쓰는 바 ‘매우’라는 뜻이고, 山翁은 晉나라의 名士인 山簡을 가리키며, 泥는 南海에 산다는 뼈가 없는 벌레로 물에 있을 때에는 살아 움직이지만 물이 없는 곳에서는 진흙덩이와 같다고 한다. | ||
⓸鸕鶿杓鸚鵡杯로 百年三萬六千日에 一日須傾三百杯라 | 노자표앵무배 백년삼만륙천일 일일수경삼백배 | 鸕鶿의 술 국자와 鸚鵡의 잔으로 百年. 三萬 六千日.에 하루에도 모름지기 三百 잔은 기울여야 하네. |
* 鸕鶿杓: 가마우지 模樣으로 생긴 술 국자, 또는 가마우지의 목처럼 자루가 긴 술국자라 한다. | ||
⓹遙看漢水鴨頭綠하니 恰似葡萄初醱醅라 | 요간한수압두록 흡사포도초발배 | 멀리 漢水를 바라보니 오리 머리처럼 푸르러 恰似 葡萄酒가 처음 괴는(醱酵:발효) 것 같구나. |
⓺此江若變作春酒면 壘麴便築糟丘臺라 | 차강약변작춘주 루국변축조구대 | 이 강물이 萬若 變하여 봄 술이 된다면 쌓아올린 누룩으로 곧 糟丘臺(술지게미를 쌓은 언덕) 지으리라. |
⓻金鞍駿馬換小妾하고 笑坐金鞍歌落梅라 | 금안준마환소첩 소좌금안가락매 | 金鞍裝의 駿馬를 小妾으로 바꾸고는 웃으며 금 안장에 앉아 落梅曲을 부르누나. |
* 金鞍駿馬換小妾: 後魏사람 曹彰은 駿馬를 보면 기어이 사야만 直性이 풀렸는데, 主人이 말을 아껴 팔지 않으면 愛妾과 바꾸었다고 한다.《獨異志》 臺本에 ‘喚’字로 되어 있으나 本集에는 ‘千金駿馬換小妾’으로 되어 있는 바, 本集을 따라 ‘換’字로 바로잡았다. * 愛妾換馬애첩환마: 梁나라 簡文帝(간문제)는 愛妾을 말과 바꾼다는 뜻. * 落梅낙매: 梅花落은 악곡의 이름으로 옛날 羌笛(강적)의 樂曲(피리 연주곡)인 落梅花曲을 이른다. | ||
⓼車傍側掛一壺酒하니 鳳笙龍管行相催라 | 차방측괘일호주 봉생룡관행상최 | 수레 곁에 한 병의 술 기울여 걸어놓으니 鳳凰 피리(笙簧:생황)와 龍젓대로 가는 길 서로 재촉하네. |
⓽咸陽市上嘆黃犬이 何如月下傾金罍오 | 함양시상탄황견 하여월하경금뢰 | 咸陽 城안에서 黃犬을 恨歎하였으니 어찌 달 아래에서 金술잔 기울임만 하겠는가. |
* 咸陽市上嘆黃犬: 秦李斯臨刑에 嘆曰 安得復牽黃犬하여 遊東門하여 逐狡兎乎아 秦나라 李斯가 處刑될 때에 歎息하기를 “어떻게 하면 다시 누런 개를 끌고 東門에서 놀아 狡猾한 토끼를 잡을 수 있겠는가.” * 金罍: 구름과 우레의 모양을 그린 金술잔을 이른다. | ||
⓾君不見晉朝 羊公一片石이 龜龍剝落生苺苔라 | 군불견진조 양공일편석 귀용박락생매태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晉나라 羊公의 한 조각 碑石이 龍머리와 거북座臺 깨져 떨어지고 이끼만 끼어 있네. |
* 羊公一片石: 晉나라 羊祜(221~278)의 追慕碑를 이른다. 羊祜는 荊州諸軍事都督으로 襄陽에 駐屯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 그 部가 峴山에 屬하게 되었다. 百姓들에게 많은 恩惠를 베풀었으므로 生前에 그가 노닐던 땅에 碑石과 祠堂을 세워 每年 祭祀를 지냈는데, 보는 者들이 모두 그를 思慕하여 눈물을 흘리므로 杜預(두예)가 墮淚碑란 이름을 붙였다.《北堂書鈔》 * 龜龍剝落生苺苔: 本集에는 ‘龜龍’이 ‘龜頭’로 되어 있다. | ||
⑪淚亦不能爲之墮요 心亦不能爲之哀라 | 루역불능위지타 심역불능위지애 | 눈물도 이 때문에 떨어뜨릴 수 없고 마음도 이 때문에 슬퍼할 수 없다오. |
⑫淸風明月不用一錢買하니 玉山自倒非人推라 | 청풍명월불용 일전매 옥산자도비인추 |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한 푼 들여 주고 살 必要 없으니 玉山이 절로 무너지니 사람이 떠민 것이 아니라오. |
* 玉山自倒非人推: 晉嵇康이 醉倒하면 人謂如玉山之將頹라하니라 晉나라 嵇康(혜강)이 술에 醉하여 쓰러지면 사람들은 “玉山이 將次 무너지려는 것과 같다.” 하였다. | ||
⑬舒州杓力士鐺이여 李白與爾同死生이라 | 서주표력사당 이백여이동사생 | 舒州의 술 국자와 力士의 술 주전자(양푼)이여 李白은 이것들과 死生을 함께하리라. |
* 舒州杓力士鐺: 舒州 同安郡에서 生産되는 술 국자와 발에 力士의 얼굴을 새긴 술이나 차를 데우는 가마솥 模樣의 그릇이다. | ||
⑭襄王雲雨今安在오 江水東流猿夜聲이라 | 양왕운우금안재 강수동류원야성 | 襄王의 雲雨之樂,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강물은 東쪽으로 흘러가고 원숭이는 밤에 슬피 우누나. |
* 襄王雲雨: 楚나라 襄王이 宋玉과 함께 雲夢의 臺에 올라가 高唐의 景致를 구경하였다. 구름 氣運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王이 무슨 氣運이냐고 묻자, 宋玉이 “전에 先王께서 高唐에서 노닐다가 巫山의 仙女를 만나 雲雨의 情을 나누었습니다. 그 仙女가 헤어지면서 ‘저는 巫山의 南쪽에 사는데 아침에는 떠다니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됩니다.’ 하였는데 바로 그 떠다니는 구름 氣運입니다.”라고 하였다.《文選》〈高唐賦序〉에 依하면 先王 즉 楚 懷王이 仙女와 만난 것인데, 여기서는 襄王의 故事로 되어있다. * 宋玉(BC.290~BC.222?)의 〈高唐賦〉에 나오는 男女間의 浪漫的이면서도 덧없는 사랑을 말한다. | ||
| ||
* 賞析: 이 詩는 古文眞寶 前集 第8卷과 《李太白集》 7卷에 收錄되어 있다. 李白은 元來 襄陽에 暫時 살았는데, 사람은 간데없고 터만 남아 있는 이곳의 옛 遺蹟을 빌어 人生은 짧으니 及時行樂하자는 自身의 생각을 十分 말한 것이다. 襄陽에는 晉나라 羊祜의 墮淚碑('울게 하는 비석')와 山簡(字 季倫)이 술에 醉해 다녔던 習家池가 있는데, 이것을 모두 詩材로 삼았다. 詩의 內容 中에 “淸風明月不用一錢買 玉山自倒非人推”는 特히 재미있는 句이다. ‘玉山倒’는 《世說新語》 14卷에 보이는 內容으로 술에 醉한 모습을 描寫한 것인데, ‘玊山自倒’라 하여 네 글자로 만들고 그 아래에 ‘非人推’라는 세 글자를 넣음으로써 斬新하게 만들었다. 歐陽修(구양수)는 바로 이 句節에 대하여 “太白의 橫放을 엿볼 수 있으니, 그가 千古를 놀라게 한 理由가 本來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라고 評하였다. | ||
* 泗軒 趙誠烈님 *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