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화학물질은 카페인으로 중추신경에 자극을 준다. 커피를 마신 후에 졸음이 달아나고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는 것은 카페인의 효력이 실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200 밀리리터 기준, 한 잔의 커피에 포함된 카페인은 대략 50에서 150밀리그램 정도이다. 그러나, 모든 커피 들어 있는 카페인 량이 다 비슷한 것은 아니다. 커피에 있는 카페인은 커피 콩의 생산지 혹은 커피 콩의 종류나 상태에 따라서 함유량이 다르다. 예를 들어서 이디오피아에서 생산되는 아라비카(arabica) 커피 콩은 서아프리카나 브라질, 베트남 등에서 생산되는 로보스타(robusta) 커피 콩보다 카페인 함량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커피 한잔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양은 커피의 종류는 물론 볶는 방법, 커피를 내리는 방법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디카페인 커피. <출처: Gettyimage>
카페인이 없는 커피, 디카페인 커피
그런데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들은 저녁 무렵 혹은 심지어 오후에 커피를 마셔도 밤에 잠 잘 안 올 정도로 카페인의 위력은 대단한다. 그런 사람들이 찾는 커피가 있다. 바로 커피에서 카페인 성분만을 제거한 커피를 디카페인 커피(decaffeinated coffee)다.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면서 카페인의 섭취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커피이다. 그러나 디카페인 커피라고 해서 카페인이 100% 제거된 것은 아니며, 1-2% 정도의 양은 남아 있어도 카페인 없는 커피로 분류된다. 수많은 화학물질이 포함된 커피 콩에서 카페인만 추출해 내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화학물질의 종류도 많으며, 화학반응을 통해서 선택적으로 카페인만을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카페인을 어떻게 추출할까?
카페인을 추출하는 과정
카페인이 주성분인 각성제 알약. <출처: (CC) Ragesoss at Wikipedia>
아직 볶지 않은 커피 콩 일정한 양을 물에 불리고 담가 놓는다. 그러면 카페인을 포함한 수용성 화학물질은 물에 녹아서 우러난다. 카페인은 실온에서 물 100 밀리리터에 약 2.2 그램이 녹는다. 끓는 물에서는 카페인은 약 30배 정도 더 잘 녹는다. 그러므로 뜨거운 물로 커피 콩을 우려내면 그 물(용액)에는 카페인은 물론 많은 수용성 화학물질이 동시에 녹아있는 용액이 된다. 그 용액을 활성탄소(activated charcoal)를 채운 관을 통과시켜서 카페인을 분리하고 빼내면, 나머지 성분은 그대로 포함된 용액이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제조한 용액에는 커피 향이나 맛을 결정 짓는 많은 화학물질은 그대로 녹아 있고 카페인만 없다. 새로운 커피 콩을 이 용액에 일정한 양을 담그면 카페인만 선택적으로 녹아 나오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카페인을 제외한 나머지 화학물질들은 이미 용액에 포화된 상태로 녹아 있으므로 그런 성분들은 더 이상 녹아 나오지 않는다. 그 용액에 없는 카페인만 커피 콩에서 추출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커피 콩을 말리고 볶은 것이 카페인 없는 커피의 원두이다. 추출된 카페인은 청량음료 회사나 제약회사 등에 판매된다. 왜냐하면 카페인이 포함된 청량음료 혹은 두통약을 생산하는데 카페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이 아닌 다른 용매를 사용해서도 카페인을 추출할 수 있다. 커피 콩을 증기로 찐 후에 용매(이염화메탄(dichloromethane, CH2Cl2) 혹은 에틸아세테이트(ethyl acetate, C4H8O2))로 여러 번에 걸쳐서 커피 콩을 씻어낸다. 위에서 설명한 과정처럼 커피에 포함된 다른 화학물질들은 그대로 놔두고 카페인만 빼 낼 수 있다. 이염화메탄은 독성물질이라 요즈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비록 이염화메탄과 같은 용매를 사용했다 해도 카페인을 추출한 커피 콩을 여러 시간 동안 수증기로 씻어서 잔류 용매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도 남아 있던 용매는 커피 콩을 볶는 과정에서 증발하기 때문에 용매가 건강에 해를 끼칠 확률은 0에 가깝다. 에틸아세테이트는 잘 익은 과일에 포함된 화학물질이다. 그렇다고 대량으로 용매를 사용하는 생산공정에서 과일에서 추출한 자연산 에틸아세테이트를 사용하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친건강 친환경 카페인 추출 용매로 이산화탄소를 사용한다. 초임계 상태(supercritical state)의 이산화탄소는 아주 좋은 용매이다. 이산화탄소 용매로 카페인을 추출을 하면 커피 콩에 남아 있던 이산화탄소는 커피 볶는 과정에서 혹은 실온에서 기체로 증발되어 사라진다. 이산화탄소의 초임계 상태는 비교적 낮은 온도와 압력(31oC, 73 기압)에서 만들 수 있다. 이산화탄소는 초임계 상태에서 마치 액체의 특성을 나타내는 유체(fluid)처럼 변한다. 이를 초임계 유체라고 하는데, 다양한 물질을 녹일 수 있는 용매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이산화탄소는 다른 기체와는 달리 용매로 사용해도 독성이 거의 없고, 추출되는 화학물질과 분해 반응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산화탄소 초임계 유체가 추출용매로 각광을 받는 이유이다.
이산화탄소의 상변화 곡선. 임계점(critical point, 31oC, 73 기압) 이상에서는 초임계 상태의 유체가 된다. 초임계 유체는 액체인지 기체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태로, 밀도와 용해성은 액체처럼 높으나 점성이 낮고 확산이 잘 되는 성질은 기체와 비슷하다.
디카페인 커피의 기준은 97% 이상 카페인이 추출된 것
카페인을 추출할 때 일정한 부피의 용매를 사용해서 한 번에 추출되는 카페인의 양은 일정한 부피의 용매를 소량으로 나누어 여러 번 추출하여 모두 합한 카페인의 양보다 적다. 많은 양의 물로 그릇을 한 번 씻는 것보다 소량의 물로 여러 번 씻으면 더 깨끗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디카페인 커피의 국제기준은 약 97 퍼센트 이상 카페인이 추출된 커피이다. 그러므로 보통 디카페인 커피 한 잔에도 10 밀리그램 이하의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다.
디카페인 커피의 카페인 함량은 3%이하이다. 디카페인 커피를 일반 커피의 수십 배 마셔야 비슷한 양의 카페인을 섭취할 수 있다.
일찍 자고 싶다면 디카페인 커피를!
디카페인 커피는 맛에서 차이는 느끼지 못한다. 카페인 하나 때문에 커피 맛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인한 커피 한잔의 효능은 확실하게 다르다. 밤샘 작업이 필요한 사람은 저녁 식사 후에 카페인이 들어있는 일반 커피를, 일찍 잠들고 싶지만 그래도 커피의 향과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 될 것이다. 그러나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은 디카페인 커피라도 카페인이 조금은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저녁에 마신 디카페인 커피 한잔으로도 본의 아니게 한 잠도 잘 수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커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이미 커피는 많은 사람들의 기호 식품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디카페인 커피의 소비량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글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