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30일 수요일 <참 소중한 당신> 10월호 김병수 대건안드려아 신부님 글 꿈은 숨겨진 자아를 찾아가는 나침반이다 * 몇 년 동안 지속되어온 나의 습관 중 하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꿈을 기록하는 일이다. 항상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모든 꿈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지만 기록되는 꿈은 바로 머리맡에 있는 노트에 기록한다. 꿈은 이성과 의식을 사용하지 않기에 시간이 흐르면 급격히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사라진다. 물론 평생 기억에 남는 꿈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꿈들은 쉽게 사라진다. 마치 아침의 안개가 태양이 떠오르면서 증발해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꿈들의 조각들을 사금파리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처럼 무시해 버리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일 테지만 나는 그것을 이삭 줍듯이 소중히 주워 모은다. 나를 찾아가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꿈 얘기를 나누고자 한다. 꿈의 의미와 가치는 굳이 심리학자가 아니라도 중요하다. 꿈의 이해는 결코 낯설거나 불가능한 접근 대상이 아니다. 모두가 꿈을 꾸기 때몬이다. 꿈은 예언적 꿈, 경고의 꿈, 치유의 꿈 등등.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닿아 있다. 과거에는 개꿈, 돼지꿈, 악몽, 길몽, 태몽, 예지몽 등등.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신의 계시 수단, 운수예감 등으로 이해를 했었다. 그러나 꿈을 한낱 일확천금을 안내하는 정도로만 대한다면 그것은 꿈의 진정한 가치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우리는 꿈의 존재와 가치를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꿈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감춰진 내면의 자아를 파악할 수 없다. 꿈은 나의 현실적인 행동과 사고에 빈드시 의미가 있으며 자아를 인지하는 정답이 사실 내 안에 있지만 소홀히 대하기가 쉽다. 성경의 여러 곳에도 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요셉은 꿈쟁이였고 왕의 꿈을 해석하여 유명해졌다. 하지만 해몽은 바로 인생의 비밀을 엿보는 능력을 지녔다 해서 형제들의 미움을 샀다. 다니엘도 네부카드네자론 왕의 꿈을 해석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 이라는 책을 쓰고 나서 사람들은 꿈을 달리 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류 문명의 역사 속에서 신대륙 발견에 버금가는 놀라운 인간 자아에 새로운 발견이었다. 현대의학에서 꿈은 '낮 동안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뇌에서 처리되는 과정' 으로 이해한다. 또 우리 몸이나 정신 상태가 꿈에 영향을 주어 때로는 악몽을, 때로는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꿈은 시ㆍ공을 초월하며 전개된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가 혼합되어 나타난다.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정체성> 에서 '그녀가 꿈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ㆍㆍㆍ꿈은 한 인생의 각기 다른 시절에 대한 수용하지 못할 평등성과, 인간이 겪은 모든 것을 평준화시키는 동시대성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꿈은 현재적 특권적 지위를 부정하며 현재를 무시한다' 고 말한다. 그의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꿈은 진정한 나를 알게 해주는 나침반 같은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특권적 지위와 명분에서 벗어났을 때 자아의 깊은 곳에 숨겨진 '못난 자아' 마저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꿈은 내가 쓴 가잠 재미있는 1인칭 소설이다. 꿈속에서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해도 결국 자아가 주인공이 되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나의 꿈은 그래서 가장 정직한 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체면을 생각해서 가식적 행동을 하지 않는, 직선적이고 정직한 소설이다. 전에 있었고 직ㆍ 간접으로 체험했던 바가 투영되기에 꿈은 절대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또 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어릴 때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그네를 타고 강을 날아 건너는 꿈, 새들과 어울려서 노는 꿈 등 상상한 바가 실제 상황처럼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두가 꿈을 꾸지만 꿈은 난해한 경우가 많다. 꿈은 마치 해독을 기다리는 암호같이 알 수 없는 상징과 뜻 모를 메시지를 담고 있다. 왜 이 시점에서 나는 이 꿈을 꾸었을까? 꿈은 말한다. 꿈은 생소한 일들이 나와 결부되어 여러 현상과 일들을 보기도 하고 겪기도 하는데, 전에 내가 직 ㆍ간접으로 체험하고 겪었던 일이 현재의 정서와 부합하여 나타난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감지되지 않는, 모르는 생소한 일이 꿈을 통해서 나타나고 보여지는 것이다. 꿈은 재미있었거나 인상이 깊었던 경험이나, 정서 등이 융합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전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트라우마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꿈은 자아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라는 시처럼 나를 비춰 주는 거을과 같은 것이다. 꿈은 나를 감추고 부정하고 싶은, 그래서 때로는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자아, '정상적 에고' 가 하지 않는 행위를 함으로써 자아의 이면을 표출한다 꿈을 기록하라. 꿈이 생각나는 날이면 일어나자마자 바로 적어라. 가능한 자세히 행동, 말, 상황들을 사실대로 적어 보면 그 속에서 낯선 어떤 사람의 행동이 나올 것이다. 설마 저런 모습이 나일까라는 의구심과 당혹감이 들 수도 있다. 나라면 절대 저런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 ㆍㆍㆍ저런 모습, 저런 행동, 저런 개념들은 과연 나의 어느 곳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그 낯설음에 놀랄 수도 있다. 그래서 꿈속의 '그 사람' 이 싫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나이다. 분열된 또 다른 나이다. 해리된 콤플렉스된 자아이다. 내 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나' 가 있지만 교육이나 상식으로 억제되고 통제된 나의 자아는 분명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무의식, 전의식,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나의 모습은 왜곡되어진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의 꿈을 기록해 보자는 것이다. 나는 피정을 갈 때나 조용한 시간에 나의 꿈 노트를 펼쳐서 소설을 읽듯 읽어 본다. 의외로 재미있고 자아를 객관화 시켜 보는 가장 효율적인 작업이다. 자아 치유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답은 모두 내 안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나' 는 그림자까지 포함된 자아이며 분열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무의식고 전의식 속의 자아까지를 포함한다. 그런 자아는 대부분 꿈 속에서나 최면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일상생활이나 상식적 자아, 교육된 자아의 모습 속에서는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부정하기 때문에 쉽게 감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꿈을 대할 때 우리의 정확한 태도는 꿈의 내용이나 그 암시하는 미래의 예견 같은 것에 탐닉해서는 안 된다. 좋은 꿈을 꾸었으니 오늘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대하거나 로또를 사려 드는 유치한 행동에 이끌리지 말자. 내가 자신의 꿈을 대하는 태도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우선 내 꿈을 과소평가 하거나 부정하러 들지 말아야 한다. 그 꿈의 의식과 행동과 감정들은 없는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아니 때 굴뚝에 연기가 날까? 내 몸에 내 안에 어디에 숨어 있는 나의 분신이요 조각들이다. 이성과 교육에 의하여 억제되어 통제된 상태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성을 잃거나 사리분별 능력이 떨어질 때에는 그 모습이 재현될 수 있다. 치매에 걸리면 의식이나 상식의 영역이 쇠퇴되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반면 무의식, 전의식, 본능감각 등은 더욱더 드러나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치매에 걸려도 착한 치매가 있고 막무가내이거나 예의 없는 치매 현상들이 구분되어 나타나는 것은 바로 그 꿈의 조각들인 전의식과 잠재의식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약한 치매는 그 자아 안에 고약한 심성이 기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꿈을 통해서 나의 경향성을 미루어 짐작해 보거나 파악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악몽을 자주 꾸게 되면 지금의 내 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내면의 내 자아가 정리되어 있지 않음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꿈을 통해 심리적, 영성적 긴장의 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꿈의 가치이다. 꿈의 내용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는 꿈을 꾼 주체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꿈의 내용을 통해 그 꿈을 꾸는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꿈의 의미와 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자아를 포함하여 그 꿈을 꾼 그 사람의 내 ㆍ 외적 자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꿈은 뜬금없는 허한 행위가 아닌 매우 인간적이며 인문적인 행위이다 ㅡ끝 나는 친정아버지가 꿈에 나타나면 반드시 초상이 난다. 그래서 조금 힘들기도 한다. 이번에 누가 돌아가실까 하고 심란해진다. 또 신기하게도 꿈에 큰것을 보거나 불이 나면 어디에서든 돈이 생기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 십 원짜리 동전을 줍기도 한다. 그래서 괜한 기대감이 생긴다. 그러나 이젠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