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악기에 대한 관심이 점차 사라지고 배우려는 사람이 적어지는 분위기속에 적지 않은 우리의 민족악기가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고는 하지만 퉁소소리만은 명절때나 행사때가 되면 여전히 흥이 나게 울려퍼진다.
악기의 앞뒤로 구멍이 훤히 뚫렸다고 해서 한자로 통소(洞箫)라고 쓰고 퉁소라고 읽는다. 문헌에 퉁소라는 명칭이 정식 기재된 것은 1671년으로 ‘강사찬이란 사람이 명나라로 음악가들을 거느리고 갔다가 올 때 퉁소도 함께 들여왔다’고 적혀있다.
현재 연변 각지에는 많은 퉁소협회가 성립돼 활동하고 있다. 그중 훈춘시 밀강향은 국무원으로부터 ‘퉁소향’으로 지정받은 만큼 퉁소협회의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달 23일, 훈춘시 룡원공원. 흥을 돋구는 퉁소소리와 장고소리를 따라 가보니 쿠나하물결이 넘실대는 강변의 한 정자에서 우거진 록음을 배경으로 훈춘시퉁소협회의 20여 명 단원들이 한창 련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예닐곱명의 퉁소연주자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색을 입힌 퉁소를 부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퉁소의 성급무형문화재 전승인 리길송(61)이였다.
1983년, 그러니까 28세 때 밀강중심소학교 음악교원으로 근무하면서 리길송은 퉁소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훈춘시문화관에서 음악교원들을 상대로 퉁소학습반을 조직했는데 악보를 볼줄 아는 사람이 저뿐이라 제가 가서 배웠습니다.”
학습반이 끝난 후 리길송은 퉁소의 매력에 빠져 자습을 견지했으며 1989년부터 학생들한테 퉁소연주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제가 배워준 학생 가운데 기교가 아주 뛰여난 학생이 있었는데 2000년대 초반인가, 전국소수민족기악대전에서 금상까지 받아안은 경력이 있습니다.”
퉁소는 함경도의 퉁소가 좀 길며 다른 지방의 퉁소는 좀 짧은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일찍 우리 선조들이 이주하면서 갖고 온 퉁소지만 어느 땐가 문화교류때문에 중국을 방문한 조선의 음악교수와 만났을 때 정작 퉁소에 대해 잘 몰라서 의외였다고 한다.
퉁소는 세로로 부는 관악기로 구멍이 앞쪽에 5개, 뒤쪽에 1개가 나있다. 퉁소의 음색은 처량하면서도 웅글지기때문에 주로 남성들이 즐겨 분다. 하지만 현재 연변 각 지역의 퉁소협회에는 녀성연주자들도 가끔씩 볼수 있다.
일찍 “퉁소산조”를 창작했던 김복실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우리 민족의 퉁소명연주가였다. 그 뒤를 이어 지금까지 주로 활동한 단체와 연주가들로는 왕청현 연변라자의 ‘민악대’, 훈춘시 밀강향의 한신권, 연길시의 김창순, 김천석, 문태봉, 화룡시의 리임룡, 안도현 리홍래, 연변가무단의 백문순, 도문문화관의 한원철, 훈춘시예술단의 김철호, 북경의 김하일 등이 있다.
연변의 퉁소도 기타 전통악기와 마찬가지로 개량작업을 거쳤다. 일찍 연변가무단의 전신인 ‘길동보안군 정치부 문예공작대’의 악대가 서양관현악대로 발전하면서 당시 단장이였던 정진옥에 의해 시작됐다고 한다.
전통퉁소는 민족조식인 5음계를 사용했으나 개량을 거쳐 청음과 변궁음에 건을 장착해 음역을 넓혔으며 재료도 대나무로부터 박달나무, 고로쇠 등 섬유질이 견고한 재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제가 지금 사용하는 퉁소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제가 직접 주문, 제작한것인데 가볍고 단단하며 변형될 념려가 없습니다.”
여직 톡특한 음색으로 인해 현대관현악기와의 배합이 어려웠던 퉁소는 개량에 의해 음역이 훨씬 넓어지고 새로운 연주기법까지 더해져 무대에서의 역할이 한층 돋보이게 되였다. 특히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만들어내는 롱음은 퉁소의 강하고 진한 맛을 보여주면서 더욱 짙은 민족특색을 보여준다.
일찍 1952년 주덕해는 로일대들의 별세로 하여 보귀한 민족유산이 망각되는 정황에 주의를 돌리고 “불 끄러 가는 소방차의 속도로 시급히 사라져가는 민족의 유산을 발굴, 수집, 정리, 연구하는 사업을 다그치라”고 호소했고 그로 인해 민족문화예술의 복구발전사업이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퉁소는 조선족들 사이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는 악기로 되였으며 악기보급에 따라 상당한 연주기교를 가진 연주자들도 늘어나고있다고 한다.
일찍 2006년부터 련속 4년 동안 개최된 ‘연변퉁소예술절’에는 돈화시를 제외한 7개 현, 시의 퉁소대표팀이 예술절에 참가했는데 해마다 행사에 참가한 연주가들이 약 300명에 달한다고 하니 퉁소보급의 효과를 짐작케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주고 희망을 부풀려줬으며 행복한 생활을 노래해준 퉁소소리, 지난 세기 말부터 이뤄진 퉁소보급의 노력이 지금에 와서 결실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타 사라져가는 전통악기들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글·사진 리련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