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진당 조정육
만화 영화 “쿵푸 팬더”를 보면, 쿵푸라고는 전혀 모르는 평범한 팬더가 어떻게 해서 전설적인 용의 전사가 되는가가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가업으로 이어오는 잘 나가는 국수집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도와 국수배달을 하고 있던 포는, 평화의 계곡에서 ‘용의 전사’를 뽑는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간다. 그 곳에서 대사부 우그웨이로부터 자신이 평화의 계곡을 지킬 운명의 주인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나 쿵푸 마스터 시푸 사부는 물론이고 포 자신조차 믿지 않았다. 쿵푸라고는 전혀 모르는 데다 평균 수면 시간 22시간, 120cm 키에 몸무게가 160kg나 되는 고도비만이었기 때문이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시푸 사부가 그런 가망 없는 포를 지도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대사부인 우그웨이의 유언 때문이었다. 그냥 자신을 믿고 자기의 길을 계속가라는 유언이었다. 이 때 감옥에 갇혀 있던 사나운 타이렁이 탈출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강력한 적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시푸 사부는 비대한 포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바로 먹을 것이었다. 이동 속도가 시속 30cm밖에 되지 않는 포가 먹을 것을 발견하자마자 순식간에 2층 난간 위로 뛰어올라 고수들도 힘든 다리를 쫙 찢는 자세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음식’은 포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렬한 동기유발체였던 것이다. 시푸 사부는 먹을 것을 이용해 포에게 짧은 시간 내에 쿵푸를 가르친다.
드디어 교육이 다 끝나던 날, 시푸 사부는 사원에 들어가 용의 전사만이 읽을 수 있는 용문서를 전해준다. 전설에 따르면 용문서를 읽으면 최고의 권법인 나비날개권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깊은 동굴 안에서도 밝게 볼 수 있고, 우주 만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나비날개권. 그런데 용문서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실망한 포는 시푸 사부를 뒤로 하고 피난길에 오르기 위해 아버지가 운영하는 국수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신이 난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가문의 국물제조법을 알려준다. 국물제조법의 비밀은 ‘재료에 비밀이 없다’는 것이 비밀이었다. 어느 집에서나 먹는 평범한 국물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 사이에 맛있다고 소문이 난 것은 그 국물에 특별한 비법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특별하다고 믿는 것. 그것이 비법이었다.
그 말을 들은 포는 용의 문서가 가지는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석도, <산수도>, 청 1690년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기운생동
“쿵푸팬더”를 보면서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바로 석도(石濤:1642-1718)의 <산수도>였다. 분홍색과 청색점이 매화꽃처럼 찍혀 있는 바위산은 구불구불한 선 때문에 마치 춤을 추듯 불안정하다. 그림의 중앙에 바위와 같은 색으로 그려진 누각 안에 석도 자신인 듯한 선비가 앉아 있다.
그림은 명나라 이전에 이미 완성됐다는 생각으로 옛 대가들의 작품만을 모사하고 있던 당시 화단에서 석도의 작품은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렇게도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붓질과 먹의 사용은 이후 양주화파의 뿌리가 되었다.
그런데 왜 이 그림이 명작이 되는 걸까. 양화의 우열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구도? 색채? 필선? 그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바로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기운생동은 중국 남제의 사혁(謝赫:500년경-535년경 활동)이 제시한 회화창작의 기준인 ‘6법(六法)’중의 하나이다. 후대의 화론의 바탕이 되었던 ‘6법’은 ‘기운생동(氣韻生動)’, ‘골법용필(骨法用筆)’, ‘응물상형(應物象形)’, ‘수류부채(隨類賦彩)’, ‘경영위치(經營位置)’, ‘전이모사(轉移模寫)’등이다.
그 중에서도 ‘기운생동’은 6법의 기본이면서 어떻게 말로 설명이 안된다. 기운이 생동하다는 뜻인데 기운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다만 느낄 뿐이다. 느낄 뿐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물제조법에 비밀이 없듯이 기운은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석도는 명 왕실의 후손이었는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자 오랫동안 익명으로 살았다. 20세 때 선종의 승려가 되었던 그는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사물의 외양이 아니라 영혼을 취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그는 여산과 황산 등 명산에 올라 ‘자연에서 배우고 사실적으로 그리라’는 좌우명을 실천하였다.
이런 기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장르가 초상화다.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자화상>은 기운생동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윤두서는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힘없는 남인으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게 되자 고향 해남에 내려가 학문에 전념하는 것으로 여생을 보냈던 선비다. 당파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쳐 보이지 못한 선비의 <자화상>에는 신산스런 그의 삶의 여정이 담겨있다. ‘터럭 하나라도 틀리게 그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초상화의 법칙을 증명하듯 수염 한 올까지 세밀하게 그렸다. 겉모습만 닮게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 등 정신까지도 담겨 있어야 초상화다. 초상화에서는 ‘정신을 전한다’는 뜻의 ‘전신(傳神)’을 중요시했다.
윤두서, 자화상, 종이에 담채, 38.5cm×20.5cm 개인소장
그런데 이 그림의 어디에 기운생동이 들어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윤두서의 인간성과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걸까.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설명의 영역이 아니라 느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느낄 뿐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이 나를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이끌어가는 것. 그것을 운명이라 했던가.
생떽쥐뻬리의 『어린왕자』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가, 자신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꽃을 가지고 있는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똑같은 꽃이 한 정원에만 5천 송이가 넘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실망해서 풀밭 위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 여우가 한 말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믿으면 실현되는 것.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것. 동양화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언어를 알아듣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신 언어를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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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감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드러내 같이 나누고자 하시는 무진당님의 수고에 윤거사님의 수고를 보태서 ㅎㅎ()()()
그래서 항상 오리무중입니다. ^^* 감사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미안하게도 난 그림을 잘이해못하거든요...그래서 덧붙쳐놓은 설명을 자세히읽고 또읽고 다시그림과 마추어보고 합니다. 그래도 고맙게 읽고갑니다.
편하게 읽어보시라고 올린 글이니까 편하게 보세요.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에 늘 감사 드림니다 작가의 깊은뜻을 제가 알기란 어려운건데 잘 알게 해주심에 감사 듦니다
범효님~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주세요. 보충하겠습니다.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대명거사님~이 곳에서 뵈니 반갑습니다. ^^* 이번 글은 좀 늦었습니다. 게으름을 좀 벗어나려고 노력중입니다.
중요한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_()_()_()_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그러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는 느낄 수가 있지요. 감사합니다.
~언어를 이해하고나면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