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날씨가 추워지는데 잘들 지내셨는지요.
오늘은 손병걸 시인의 시를 함께 감상할 텐데요 손병걸 시인에 관해 사전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손병걸 시인은 1967년 강원도 동해 출신으로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거치고 군대도 특전사를 제대하였습니다. 결혼하여 슬하에 자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30대 초반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손병걸 시인은 베체트병으로 양안의 시력을 잃게 됩니다. 그는 절망 속에서 아내에게 재가하라며 떠나보내고 어린 딸과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절망 속에서 수십 번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다시 일어섭니다. 버릴 수 없는 식구가 있기 때문이죠. 그가 다시 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계기는 시를 접하고 나서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시로 발산합니다. 2005년 부산일보에 당선되고 이후 장애인의 날 때 국무총리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문학상을 받습니다.
오늘 감상할 시는 2006년 제10회 구상솟대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시인 손병걸이 가장 힘든 시절을 그린 내용입니다.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낙하의 힘 / 손병걸
모든 물질들은 때가 되면 떨어지고
떨어지는 그 힘으로 우리는 일어난다
그때도 그랬다, 천수답 소작농으로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쌀독 탓에
수백 미터 갱 속, 아버지의 곡괭이질과
시래기 곶감 담은 대야 이고 눈길을 헤치던 어머니의 힘으로
우리 남매는 교복을 입고 푸르른 칠판을 바라보며
김이 오르는 밥상 앞에 앉아왔다
어느덧, 딸내미 책가방도 무거워가는데
떨어지고 떨어지는 허기진 살림 탓에
아내는 새벽부터 출근을 서두르고 나는
채 익숙지 않은 흰 지팡이를 펴고
늘, 시큰둥한 면접관을 만나러 간다
떨어지는 힘으로 제자리를 잡는 일이
어디 우리네 살아가는 일뿐일까
이를 악물고 비바람을 견뎌온
꽃봉오리가 펼친 꽃잎이 떨어지는 힘으로
덜 여문 열매가 익어가고 땅은 또 씨앗을 품듯
떨어진 이파리가 겨울나무의 발목을 덮어주며
기꺼이 썩어주는 열기로 봄은 돌아오는 것
보라, 떨어지는 별들의 힘으로
못내 구천을 떠돌던 가난한 영혼들이
하늘에 내어준 빈자리에 자리를 잡듯
그 순간, 별똥에 소원을 비는 것도
다들 낙하의 힘을 믿고 있는 탓이다
절절하지만 힘이 있는 시입니다. 과실이 떨어지는 건 중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무가 과실이 무거워서나 가치를 다했기에 떨어뜨린 것도 아닙니다. 과실 속의 씨를 틔우기 위해서죠.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것도 나무와 과실의 씨앗에게 썩어서 양분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부모님이 늙어가고 우리가 늙어가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끝없는 추락과 낙하만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절망일 겁니다. 바닥을 친 공이 튀어오르듯 절망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은 다시 일어섭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봄날은 올 것이고 그때 희망의 씨앗을 발아할 수 있겠지요. 모든 것들은 떨어집니다. 중요한 건 그 낙하가 가지는 의미나 희망이겠지요.
여러분 우리 낙하의 힘을 믿어보도록 합시다.